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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셔터를 누르는 오후 / 정지윤

 

 

 

 

 

 

 

 

 

 

 

 

 

 

 

참치캔 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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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이 5일 제6회 김만중 문학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남해군은 소설과 시 부문 금상 수상자인 '떠도는 기류'의 선청 작가와 '반 셔터를 누르는 오후' 외 6편의 정지윤 시인을 비롯, 총 4명의 제6회 김만중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소설부문에는 152편의 작품이 응모한 가운데, 김주영·구효서·박상우 작가 등 총 3명이 심사위원을 맡았다.

 

금상 수상작인 '떠도는 기류'는 김만중의 선천 유배시절부터 남해 노도에서의 유배생활까지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정치적 측면에서의 인간적 고뇌와 구운몽이 생성되는 과정을 독특한 개성과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점이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이끌었다.

 

이외 소설부문 은상에 미래적 가능성이 엿보인 구양근 작가의 '칼춤'이 선정됐다.

 

총 2176편이 출품된 시·시조 부문은 이처기 부위원장을 비롯, 안도현·장옥관·장철문 시인 등 4명이 심사를 맡은 가운데 정지윤 시인의 '반 셔터를 누르는 오후' 외 6편의 시가 금상작에, 임채성 시인의 '다랭이 마을' 외 13편의 시조가 은상작으로 선정됐다.

 

정지윤 시인은 작자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표현과 호흡에 유연함을 보여줬으며 임채성 시인은 남해 현장을 오랫동안 마당발로 순례하며 김만중의 생애를 사색하며 그린 시조, 김구의 화전별곡을 새롭게 현대화한 시조 등 남해의 여기저기를 기행적 성격으로 엮은 시조로 시조의 정형을 살리면서 유려하게 육화된 시어로 무리 없이 써 내려가 호평을 받았다.

 

이번 제6회 김만중문학상 시상식은 내달 1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문학제와 함께 개최된다.

 

부문별 금상과 은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각각 1천5백만 원과 1천만 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한편 남해군은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세계와 문학정신을 기리고 유배문학을 계승 발전시켜 한국문학발전에 기여하고자 지난 2010년부터 매년 남해유배문학관 개관 기념일에 맞춰 김만중문학상을 운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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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 연대기 / 정지윤  

 

마을이 사라지면 그뿐,  
그 누가 전설을 남겨두겠는가  
마을보다 먼저 뿌리내렸을 당산나무 
나이테에 지나간 그림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황량한 벌판의 바람이 주인이었던 때가  
아름드리 등고선에 박혀있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드린 치성이 
깊은 주름 골로 새겨 있다  

점차 들어오는 발길보다 나가는 발길 잦아진  
내리막 황톳길 희미하게 새겨 있고 
사십 넘겨 맞선 보러 간 큰집 삼촌 
퇴짜 맞고 거나하게 부르던 ‘목포의 눈물’이 묻어 있다  
고모가 맡기고 간 젖먹이를 업어 키우는 할머니 
아이가 칭얼거릴 때마다  
해거름 당산나무 가지에 자장가를 걸어두었다  

족보의 어디쯤 마디를 잘랐는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내 가지들  
당산나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백 년 전 어느 그림자 내 지문을 닮아있다 

마을은 캄캄한데 당산나무만 밤새 
팔이 근질거린다

 

 

 

 

참치캔 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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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기록되지 않은 삶의 숨소리를 기록하겠습니다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입니다.

 

존재와 부재, 모순되는 두 현상이 공존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대신 자아의 내면에 투영된 쓸쓸한 풍경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오래된 마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어 많이 안타깝습니다. 톨스토이는 당신이 우주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마을을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마을은 인간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이며 일상적인 삶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무한하게 녹아 쌓여 있는 곳입니다. ‘마을이란 단순히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되는 물리적인 공간만일 수 없습니다. 한 마을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거대한 역사책이면서 다양한 형태의 생활사가 누적된 신화적인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외피에 연역적으로 명기된 역사적 사실보다 그 사실들의 보이지 않는 행간에 숨어있는 기록되지 않은 삶의 숨소리가 진정한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역사의 행간을 살다간 민초들의 찰나적인 생과 아픔 그리고 햇빛과 바람과 꽃들을 누가 호명해 줄까요. 기억은 사랑보다 아름답습니다.

 

뜻 깊은 상을 받게 되어 기쁘고 행복합니다. 문학의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모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께 깊이 감사드리며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심사평] 해 거듭할수록 작품 수준 높아져현장감 넘치는 흡입력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가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소설, 수필, 수기를 망라한 산문 부분에서는 김기남씨의 수기 '경매는 대박이다', 오승경씨의 단편소설 '별을 그리다', 김태식씨의 수필 '철판을 다듬는 사람들', 신정근씨의 수필 '수표 한 장', 노현수씨의 단편소설 '대리인'이 최종 심사대상에 올랐다.

그 가운데 '경매는 대박이다'는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문장이 거칠다는 점에서, '철판을 다듬는 사람들'과 '수표 한 장'은 문장은 미려하나 이야기의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 혹은 누구나 자료를 찾아보면 나오는 이야기를 벗어나 그 소재에 대한 작가만의 경험과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거기에 비해 소설 두 편은 이야기의 짜임새가 뛰어나고 지금 현재 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리고 일어났을 수도 있었던 일을 잘 그려냈다. 오승경씨의 '별을 그리다'는 여자라는 이유로(물론 다른 이유가 더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지방에 있는 리조트로 발령이 난 여자 주인공이 겪어온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에 대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잘 풀어나갔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이해는 빠르게 전달되지만 그런 만큼 전체 이야기의 구조가 단순하다. 이 작품을 가작으로 올린다.

노현수씨의 '대리인'은 우리가 지나온 정권 어느 시기에 충분히 있었을 법한 해외자원 투자에 대한 금융기관 상층부의 담합 사기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이 방면의 업무 구조나 해외자원 투자에 대한 정책 사정을 모른 채로 글을 쓰면 자칫 허황하게 들리기 쉬운데 노현수씨는 이 방면에 대해 치밀한 취재와 업무 이해를 통해 실제 없었던 이야기라 하더라도 있었던 이야기처럼 현장감있게 글을 써나갔다. 현장감을 바탕으로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도 대단하고 결말의 반전을 이끌어내는 솜씨도 대단해 올해의 대상으로 올린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정진하길 바란다.

시 부문에서는 작품의 수준이 극명하게 갈렸다. 출품작은 많았으나 마지막 심사 대상에 오른 응모자는 박용운·이은주·강신명·정소망·정미경씨 5명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박용운씨의 '불씨를 품다'와 이은주씨의 '타래실', 그리고 정미경씨의 '당산나무 연대기'가 경합을 벌였다.

'불씨를 품다'는 불타기 위해 "어깨를 맞대고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장작들"을 "인력시장에 줄지어 선 사내들"에 빗대어 쓴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아직은 관념적이어서 다음 기회를 보기로 했다. '타래실'은 "엄마와 내가 함께" 실패에 실을 감고 풀었던 ‘실의 시간’을 성공의 반대 개념인 '실패'와 연결해 매우 유니크하게 풀어간 수작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른 동반 작품들이 아쉬웠다.

'당산나무 연대기'는 당산나무에 서리었을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연대기’적으로 풀어가는 솜씨가 뛰어났다. "벌판의 바람이 주인"이었을 때부터 "젖먹이 업어 키우는 할머니의 자장가"까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당산나무'를 그립게 만드는 정미경씨의 출품작을 우수작으로 선정한다. 함께 응모한 '경주마', '나의 느티나무' 같은 작품에도 오랜 습작의 시간들이 녹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시인으로서 정진하시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순원, 이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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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댄서 / 정지윤

 

 

묶인 일들은 풀어버려요 원피스는 바람과

함께 추는 브레이크 댄스

과장된 스텝이 우리를 살게 하죠

 

문자로 날아오는 해고 통지

부은 내 얼굴을 깎아요

 

나는 새우깡에 길들여진 갈매기처럼 날아요

출렁이는 지갑

때론 팔 수 없는 계약들이 있죠

 

흔들릴 때 호명해요 껍질 속의 휘파람

영안실에 두고 온

이력서들을 불러볼까요

 

터질 듯 가벼운

통지서가 우리를 춤추게 해요

더 가벼운 것들로 허기를 채우는 우리는

밀폐된 입을 가진 댄서

 

닿을 수 없는 몸 안에 갇혀 흔들리며

끝없이 증식되는 그림자들

 

 

 

참치캔 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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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치과 / 정지윤

 

 

장례식장 입구에 샘 치과가 있다

치통이 그렇듯 부고는 느닷없이 온다

리본을 단 국화의 향기는 학습되는 법이지

 

유리문에 비치는 흰 가운들의 중얼거림

의사는 입속을 뒤적이며 썩은 뿌리를 찾는다

 

산 자들만 이가 썩는 것은 아니야

 

크게 입을 벌리는 참회의 순간

걸어온 곳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찌꺼기들이 곪는다 독하게 뱉어낸

말들이 썩느라 어금니가 아프다

 

소화되어 버린 것들이

말과 말 사이에 치석처럼 쌓여간다

 

치석을 제거하는 사이 유리문 밖으로

한 구의 주검이 빠져나가고,

 

이가 뽑혀 나간 자리

치료가 끝난 치통들이 하나 둘

샘 치과 계단을 내려간다

 

흰 국화와 등을 맞대고 선 자리

나는 떠나간 자들의 마지막 출구에서

치통의 이력을 곱씹으며

이를 꽉 다문 시간들을 빼낼 수 없다

 

 

 

참치캔 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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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두 개의 문학상 심사 중 먼저 기성 신인과 미등단의 신인을 구별하지 않고 공모한 신석정 촛불문학상부터 심사에 들어갔다. 모두 250여 명의 응모작 가운데서 시래기 꽃피다, 중력엔 그물이 없다, 이명, 폐차, 연애시, 과수원 2, 냉장고 속의 풀밭, 적벽외의 작품을 보내준 8명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이 중에서 오랜 단련의 솜씨가 두드러져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의 개성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채플린처럼연작을 응모한 냉장고 속의 풀밭이 단연 두각을 보였다. 하지만 세련되지 못하고 단지 거칠기만 한 육성이 신인의 미덕일 수도 있지만 가볍지 않은 단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촛불문학상의 수상작은 한 사람의 개성 있는 신인의 몇 편을 뽑는 게 아니라 응모된 전체 작품 중에서 자기 수준을 유지하는 응모작들 중 최우수작 1편을 뽑는다는 관점에서 시래기 꽃피다, 중력엔 그물이 없다, 이명등이 마지막 논의에 올랐다.

 

일상적 생활의 체험이 육화된 이명은 겉보기엔 그럴싸했으나 응모자의 다음 작품에서 너무나 상투적인 풍경 묘사가 힘을 잃었고, 시래기 꽃피다는 수수하고 담백한 시적 진술이 눈을 끌었으나 역시 다음 작품에서 보여준 '의 혼동, 여기저기 미숙한 띄어쓰기 등이 문학적 자질을 의심케 하는 결함으로 지적되어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찌르레기 소리를 볶다는 선배 시인의 어떤 작품을 연상케 하여 치명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중력엔 그물이 없다등의 작품이 남았는데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는 노동에 의미를 부여한 표제작의 인위적 발성보다는 오히려 그다음 작품 샘 치과의 욕심 없고 조촐한 사유에 선자들의 점수가 높았다. 또한 같이 응모한 그 외의 작품들도 그만그만한 키가 어울려 보기에 좋았다. 응모작 중 최선의 한 편을 뽑는다는 규정에 의하여 비록 소품이긴 하지만 선자들은 샘 치과촛불문학상의 영예를 안기에 충분하다고 흔쾌히 합의하였다. 당선작을 결정한 다음 응모자의 인적 사항을 알아보니 그는 안양에 사는 정지윤이라는 여성 시인이었다.

 

- 심사위원 : 신경림, 강인한, 이시영 시인

 

 

()신석정 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가 수여하는 2회 신석촛불시문학상의 수상자로 정지윤 시인이 선정됐다고 20일 발표했다. 올해 심사에는 문학상 운영위가 추천한 신경림 시인을 위원장으로, 이시영, 강인한, 신경림 시인이 참여했다.

 

신석정 시인의 첫 시집 촛불(1938)’의 간행을 기념해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신작시를 응모한 신석정촛불문학상수상자로는 경기 안양 출신의 정지윤 시인이 이름을 올렸다. 정 시인은 250여 명의 응모 작품 중에 예심을 거친 10명 중 단독으로 선정된 작가다. 수상작으로는 샘 치과란 작품이 선정됐다.

 

한편, 시상식은 1024일 오후 3시 부안 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이와 함께 24일부터 2일간 석정문학제가 부안, 전주 일원에서 다채롭게 열린다. 석정시 전국 낭송대회, 시화전, 문학 강연, 석정 시극 공연, 촛불의 탑 향연 등의 행사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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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나무 / 정지윤

 

 

그들의 발소리는 너무 조용하여

먼 훗날 겨우 발견될 뿐,

아르볼 께 까미나(arbol que camina)

태양을 찾아가는 나무의 뿌리는

아마존의 고대 지도를 기억한다

끝과 시작이 맞닿은 유랑

기억을 더듬는 긴 촉수의 뿌리들은

수십 개월 느리게 이동한다

걷는 나무에게 숲은 한낮 궤도일 뿐

달과 달 사이로 시간이 흐른 뒤

숲은 파헤쳐졌다

나무들은 뿌리 앞에서 뒤틀림을 멈춘다

태양을 훔치는 뿌리들은

제 뿌리를 등 뒤에 남기며 다시 앞을 향해 걷는다

숲을 향해 숲이 되기 위해 걷는 일

아마존을 느린 걸음으로 가는 아마존의 나무들

언젠가 숲이 초원에 이르는 날

절룩거리며 걸어 나와

제 그림자와 뒤꿈치에 박힌 상처들을 전할 것이다

나는 잠시 멈춰선 채

먼지 같은 시간을 바라다본다

고통은 크기만큼 가벼워지는 것이어서 깔깔거리며

저마다 제 이름을 깊은 곳으로 불러들인다

아르볼 께 까미나(arbol que camina)

 

 

 

 

 

[당선소감] 직관·초월로 빛나는 언어의 집따뜻한 시 쓸 터

 

시가 오는 길을 늘 열어두고 기다릴 겁니다.

 

알 수 없는 이끌림의 자리에 시가 있었습니다.

 

앎으로 가득한 세계를 넘어 직관과 초월로 빛나는 언어의 집으로 이끌어 준 수많은 질문과 질문 끝의 닫힌 문들, 그러나 그 닫힌 문이 곧 열린 공간의 시작임을 이제 압니다.

 

이미지와 의미들과 숱한 상황들을 붙잡고 표현하기보다 그것들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일은 아직 멀지만 이제 조급해하지 않겠습니다.

 

춥고 힘든 계절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미약하나마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 이 산과 저 산의 봉우리를 깊게 울고 가는 시를 쓰겠습니다.

 

넓고 깊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침반이 되어 주신 이영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귀한 자리에 설 수 있게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경상일보에 깊이 감사드리며 정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참치캔 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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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명징한 이미지로 내면세계 깊이있게 투시

 

응모된 작품 수준이 비슷하여 우열을 가려내기가 힘들었다. 대부분 산문적 요소가 많고, 시가 지녀야 할 함축성이 없으며, 문장이 장황하게 길었다.

 

최종적으로 선자의 관심을 끈 작품은 3편이었다. ‘물의 부스러기’ ‘사파리동네’ ‘걸어가는 나무였다. ‘물의 부스러기는 물을 꽃으로 인식하는 대상에 대한 시선은 돋보였으나, 사유의 깊이가 부족하고 평이한 점이 흠이 되었다. ‘사파리동네는 인간의 삶을, 초원에서 먹이를 찾는 동물에 비유한 추상력이 좋았으나, 의인화와 서술적 표현이 지나쳐 산만했다.

 

이에 비하여 걸어가는 나무는 산만하지 않고 간결하며, 내면적 깊이도 있었다. 식물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태양을 찾아가는 나무의 뿌리가 수 십 개월 느리게 이동하는 일월의 섭리나, 숲이 되기까지의 상처와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을 무리 없이 전개하고 있다. 특히 대상과 내면의 등가적 유추가 섬세하며, 이미지가 청신하여 신뢰감이 갔다. 신인에게는 자기만의 화법과 개성적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이해하기 힘들며 장황하고 모호한 시가 많아진 요즈음 한국시단 풍토에, 명징한 이미지로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투시한 작품은 아주 드물다. ‘걸어가는 나무는 언어가 간결하고, 투명한 이미지가 환기해내는 전이적 상상력을 부여하는 능력을, 중요한 가능성으로 인정하여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 권달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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