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 마을 / 임채성
- 바래길 유배기행1
얼마를 더 올라가야 하늘에 가 닿을까
일백여덟 계단 위에 백팔층탑 쌓아 봐도
여전히 아득하여라,
앞도 뒤도
아찔
단애
우리네 어제오늘도 그러구러 허튼쌓기
가파른 생의 제단 막돌 한 장 올려놓고
온몸에 주름이 잡힌 파도소리나 듣는 것
천둥지기 다랑논을 한 발 한 발 톺아가다
지층의 나이테를 제 몸에 새긴 사람들
팽나무 늙은 가지가
밥무덤*에
절을 한다
* 동제를 지낸 후 제삿밥을 묻어두는 구덩이
[심사평]
모두 네 분의 심사위원이 253명이 보낸 2176편의 시와 시조를 돌려 읽었다. 그 편수로 보나 작품의 수준으로 보나 이즈음 해남의 가을 들녘만큼이나 풍성했다. 심사장은 긴장으로 팽팽했다. 서포 김만중 선생의 문학 세계와 그 정신을 기리는 문학상이라는 점을 의식한 투고자가 많아서 그의 삶과 유배를 다룬 작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공모 안내문에 ‘주제는 자유’라고 명기한 만큼 거기에 특별히 가산점을 주지는 않았다. 특별히 ‘유배’에 제제를 한정하지 않더라도 우리말로 쓰인, 좋은 문학은 김만중의 문학 세계와 정신에 마땅히 부합하기도 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미리 읽고 와서 논의에 붙인 작품은 20여 편이었는데, 순차적으로 다음 두 가지 경향을 띤 작품들이 젖혀졌다. 이미 익숙하거나 식상한 관념이나 표현에 의해 작자 자신의 목소리가 묻히거나, 낱낱의 표현에 집착한 나머지 파편적으로는 빛날지 모르지만, 그 작위적인 표현들 속에 역시 작자 자신의 호흡과 리듬이 갇힌 경우이다. 특히 시조는 그 정형성에 갇혀 그 작품만이 가진 내재적 리듬과 개성적 울림을 길어 올리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 앞에 놓인 작품은 시에서 <반 셔터를 누르는 오후> 외, <울음의 냄새> 외, <국지성 폭염-산책> 외였으며, 시조에서 <다랑이 마을> 외, <석년石年을 읽다> 외였다. 심사위원들은 작자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면서 그 표현과 호흡에서 유연함을 보여준 작품이 선정되는 데 동의했다. 시와 시조의 두 분야로 응모된 까닭에 각 분야에 고루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심사위원들로서는 애석했다.
끝으로 김만중문학상이 그 연륜만큼 해를 거듭할수록 그 제재나 시 의식에서 더 자유롭고 개성적인 작품들이 더 많이 투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적지 않았다.
심사위원: 안도현, 장옥관, 장철문, 이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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