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마상격문(馬上檄文) / 이인주


 

辛國의 서쪽방향으로부터

반쯤 벙근 매화가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을

국경 너머로 밀어낼 때

발향보다 더 저릿한 낯빛을 한 사내가

수리치재를 달린다

휘날리는 갈기 사이로 그의 얼굴이 어둡다

길은 늘 그랬다 처음이면서 마지막인 역사의 몇 장처럼

아련한 끝을 보이며 만져질 듯 만져질 듯 사라져갔다

이 길도 그럴 것이다 처음이면서 마지막인

저 하늘과 저 태양, 목숨을 요하는 허허벌판

거기 오직 뜨거운 피를 묻으러

이 땅에 없는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꺼져가는 횃불, 조정의 명운이 단애에 부딪치는 파도로 부르고 있다

창백한 왕보다 더 창백한 백성의 마을을 위해

하나 남은 패를 던져야 하는

싸움은 사면초가에 있다

그런 세상의 가망 없는 끝을 향해 걸어간 민들레뿌리 같은

妻子의 울음 가슴에 묻고

달려간다 눈물을 뿌리리, 군중의 맹서여

살아있음은 이리도 가물거리는 별빛인가!

갑옷처럼 갑갑한 이 생의 껍질을 베어

사초의 제단에 바치리니 구름떼 비로 쏟아지리라

스러져가는 유황불 등에 짊어지고

우우우 일어서는 가뭇한 범의 입속으로

마지막 결의는 채찍을 내려친다

 

 

 

 

백매도

 

nefing.com

 

 

3회 중봉조헌 문학상 응모작품 공모전에 뛰어난 역사적 상상력으로 중봉 선생 출정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인주 씨의 시 마상격문(馬上檄文)’이 대상을 차지했다.

 

()중봉조헌선생선양회가 주최한 이 행사는 중봉 선생의 의기와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고 국내 우리 문학의 발전을 도모키 위해 시와 수필 두 장르에서 열려 시 156, 수필 71편 등 총 227편이 응모했다.

 

이 가운데 열 편의 시와 다섯 편의 수필 등 열다섯 편이 1차 예심을 통과한 뒤 수필 2편과 시 2편이 2차 본심에 올라 심사에 어려움 없이 마상격문’(이인주 작)이 대상에, 수필 소나무’(오삼자 작)달맞이꽃’(곽흥렬 작), 시 부문에서 사과의 입술’(노점섭 작) 3편이 우수상에 선정됐다.

 

대상에 선정된 마상격문은 심사에서 특정인물의 문학적 형상화에서 범하기 쉬운 도식성에서 벗어나 역사의식과 문학적 상상력이 팽팽한 균형감각을 형성하고 있는 작품으로, 대상을 수여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평가됐다.

 

우수상에 선정된 '사과의 입술'은 사과의 성숙 과정을 매우 높은 수준의 서정성과 호소력 짙은 시어로 표현해 냈고 '달맞이꽃'은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달맞이꽃에 비유해 사라져가는 정서에 대한 안타까움과 도시화의 물결 속에 묻혀가는 진정한 것들을 대비해 보여주는 안정적 문체가 탁월했다는 평가다.

 

, '소나무'는 율곡 선생과 중봉 선생을 소나무의 청정함에 비유해 두 사람의 관계와 중봉 선생의 역사적 의미를 진정성 있게 묘사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이번 심사에는 총 홍문표 오산대 총장과 이하준 중봉조헌선생선양회 이사장, 홍성식 명지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하준 중봉조헌선생선양회 이사장은 심사보고를 통해 "오로지 사실의 영역으로 중봉 선생을 받아 안는 것보다 무릎을 칠 만큼 절묘한 상상력에 훨씬 대단한 감동을 받아 심사하는 과정이 큰 보람의 연속이었다""문학상 공모를 통해 중봉 선생을 형상화한 작품이나 일반적인 문학작품이나 모두 중봉 선생에 대한 연구가 전제되었으리라 본다"면서 "이 과정과 열의가 지속적으로 연결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로 전파돼 중봉 선생을 현재의 시점으로 모셔와 아름답게 혹은 정당하게 아로새기는데 새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728x90

 

 

목포의 눈물 / 이인주

 

 

폐허도 한 송이 꽃이다

그 붉고 난만한 꽃진이 자아내는 여흔은

아무나 발할 수 없는 불립문자다

뻘밭 페이지를 넘기면

그녀가 걸어온 길이 태풍 뒤의 고요처럼 누워 있다

한 세상의 끝에서

간단히 뛰어내려본 자만이

그 지독한 사체의 냄새를 향기롭게 맡을 수 있다

누가 뜨거운 자궁을 폐허로 읽는가

어둠이 습자지처럼 스며드는 갯벌

아무도 몰래 부풀다 자결해 버린

한 송이 꽃의 절정을,

그녀를 차고 환하게 승천하는

바람의 눈매가 젖은 광휘로 읽힌다

꽃 진 다음

상처의 배꼽, 밑자루로 받쳐 올리는

가없는 눈빛

다가가는 모든 위무의 손을 부끄럽게 하는

폐허 위에서는 함부로 흩날리는 꽃잎을 노래해서는 안된다

헝클어진 풍경을 오독해서도 안된다

다만 눈을 감고 끝없이 펼쳐지는 뻘밭 문장을 맨발로 느껴야 한다

그녀가 가르치는 저 뭉클한

포복의 예의를 제대로 읽는 인간이라면

 

 

 

 

백매도

 

nefing.com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2회 목포문학상시부문 예비심사평

 

예심위원 박성민(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최금진(창작과 비평 등단)

 

266명 시인들이 보내온 2,656편의 작품들은 원고지에 적은 육필원고부터 A4에 칼라로 인쇄한 원고까지 다양했으며, 그중에는 십대 청소년들의 앳된 목소리와 인생 황혼에서 길어 올린 깊고 고요한 목소리까지 들어있었다. 접수번호와 작품만 주어진 상황에서 50여명을 선정하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가장 먼저 탈락한 작품들은, 과거의 경험을 여과 없이 옮겨 놓아 감정절제가 없는 시들, 새로운 인식과 발견의 기틀이 마련되지 않은 소박한 서정시들이었다. 이들은 일차적 의미 소통의 부재와 더불어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었다. 앞서 도달한 선배시인들의 시적성취를 넘어서려는 고군분투를 엿보고자 하는 것이 모든 대회 심사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때문에 언어적 실험을 앞세웠으나 그 근거가 부족한 추상적 작품들도 심사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실험이란 기존의 것을 극복하는 것인데, 이미 이러한 시도는 제자리를 반복해서 답습하고 있고, 그것은 권력화 되고 있으며, 그럼에도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을 다시 윤독하여 10명의 본선 진출자를 골라내는 일은 매우 지난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소 부족해 보여도 힘든 삶을 자신의 문학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건강한 작품들과 새로운 도전 정신이 엿보이는 작품들을 뽑았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심사자들의 맹목과 편견이 없진 않았겠으나, 좋은 시는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스스로 우리에게 정서적인 충격과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법이다. 어떤 분이 당선이 되고 어떤 분이 낙선하든, 예심을 통과한 열 분 모두는 지금까지 끌고 온 자신의 문학적 성취들을 끝까지 추구해 나갈 것이라 믿을 만한 분들이었다.

 

심사를 마치고 나와서 바라본 목포의 저녁 바다에는 은갈치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반짝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만난 반짝이는 언어들이었다.

 

 

 

 

초충도:이인주 시집

 

nefing.com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2회 목포문학상시부문 심사평

 

참신한 시적 변용

응모작들의 수준이 예상 외로 높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모하는 문학상의 응모작들의 그만그만한 수준을 익히 보아왔던 나는 이번 <목포문학상>에 응모한 작품을 읽다가 깜작 놀랐다. 웬만한 문학잡지의 신인 등단작보다도 더 짜임새 있는 구성과 탄탄한 시적 역량을 맘껏 발휘한 작품이 많아서 당선작 한 편을 선택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당선작으로 뽑힌 목포의 눈물(접수번호 82)은 일견 진부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참신한 시적 변용을 통하여 작품의 배경에 서사적 요소를 장치하면서 뭉클한 생의 깨달음을 알맞은 어조로 담아내고 있다. 이분이 보낸 칼바위 풍란이나 개짐을 빨다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어서 오랜 각고의 시적 수련을 쌓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시를 쓰기까지 남모를 한숨과 눈물을 많이도 흘렸으리라.

 

차상위작으로 뽑힌 푸른 송곳(접수번호 78)도 절제된 언어와 시적 긴장을 통하여 빼어난 시적 성취를 획득하고 있다. 이밖에도 호박(접수번호 91), 지지리궁상(접수번호 236)등을 응모한 분들도 만만치 않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본심위원 오탁번(시인, 고려대 명예교수)

728x90

 

 

[대상] 나무 아래서 / 임하혁(임세한)

 

 

아버지는 죽어서도 여전히 키 큰 나무다

피가 돌지 않는 아랫도리는 썩고

그 곳으로 벌레들이 몰려와 집을 짓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다

가지마다 연둣빛 자식들을 올망졸망 매달고

크고 탐스러운 열매들을 키워내는 가을이면

아버지는, 한 그루 풍성한 세상의 나무였다

그러던 나무가 갑자기 잎을 떨궈버렸다

바지런히 물 뽑아 올리던 뿌리도 말라버리고

햇빛 맘껏 끌어당기던 연둣빛 눈들이

시들시들 땅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바람 많은 세상의 무수한 죽음 중에서

모든 소임을 다하고 눈을 감은 아버지

그 성스런 최후가 무척 평온한 듯 보였다

아버지를 닮은 것이 소원이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의 행적을 따라가자면

비바람 모진 세월 오래 견뎌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내가 짓는 집들은 너무 작고

눈보라를 감당하기엔 아직 허술하다는 것을

이 고요한 아버지의 비밀을 엿보려고

바람은 국망봉까지 찾아와

푸른 잔디의 등을 부지런히 쓰다듬는다

가난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잎을 피운,

단단한 열매로 세상을 장식한 저 나무들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도 거룩한 희생임을

나는 안다, 바람 많은 날 뒤돌아보면

여전히 아버지는 한 그루 나무라는 것을

 

 

 

 

 

[우수상] 달을 키우며 / 이인주

 

 

댑싸리꽃 울타리 너머 휘영청

보름달이 걸리던 밤

방문을 열고 아버지가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오셨다

맥고모자 깊게 눌러 쓴

앞이 안보이는 아버지는 불쑥

내 안에서 보름달을 꺼내 가셨다

안돼요 아버지, 그건 하나 뿐인 제 목숨이란 말예요

입안에서 또아리를 틀던 말들은 끝내 맥없이 주저앉았다

한 십년은 족히 걸릴껴

산사열매 술내음 풍기며 아버지는

그대로 문지방을 넘어 가셨다

누가 마른 하늘에 벼락을 치는지

옆구리가 마구 결리고 이날 이즉까지 달랑 달 하나

궁글려 시간을 키운 죄밖에 없는 년

방석을 깔고 오금저린 비망록을 쓴다

돌려주세요 아버지 동강난 달이라도 좋으니

흠집난 자리에 곱게 풀칠을 하고

한 십년 너끈히 품어 키울 터이니

들썩이는 장강의 물살 속 떠내려가는 환한 달

나는 멍청히 문설주에 기대어

달쪽으로 기울어지는 몸을 가누며

환장할 듯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백매도

 

nefing.com

 

 

 

[우수상] 강씨 아저씨 / 정순옥

-고향방문·3

 

 

어이, 이제 오는가

근디, 누구다요?

홀로, 동네 어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너무 가벼워진 몸 허공에 기대고

휘익 지나버리는 사람과 차 뒤꽁무니에

꾹꾹 세월 도장이나 찍고 있다

 

무서리가 몇 번 내린 뒤였던가

추수 끝난 번든 논배미 짚비늘

사람들, 몽글몽글 뭉개진 볏단 사이 들여다보며

위아래 동네 골목골목을 뜨겁게 달구었던 일

윗동네 자전거 여자와 몇 번 달빛을 몰래 본 것

그것뿐이었다고,

하얀 손사래 내어젔던 그 초겨울 이후

제방공사 사방공사장 돌밭그늘에 묻혀서

그 성긴 돌 틈으로 바람 밀어 냇물 강물

흘려보내느라 명절에만 나타나던

내 친구 아버지, 강씨

 

햇빛 쨍쨍한 토요일 오후

동네 앞 논배미 마다 새 뿌리내린 볏잎들

파랗게파랗게 나풀거리는데

골목 어귀에서 비뚜루 돌담밑 해그늘 지고

해 묵은 짚비늘로

그냥 앉아 계시네 그렇게, 아저씨

 

 

 

 

 

[우수상] 티푸나 / 김정원

 

 

담양 수북에서 읍을 거쳐

순창에 이르는 24번 국도변에는

메타세콰이어가 나무굴을 이루고 있다

겨울이 되어야 침엽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 활엽수들은 이국정취를 풍기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큰 행복을 거저 준다

그런데, 30년의 행복을 삽시간에 앗아가는,

울화통이 터져 절로 욕 나오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고속도로 통과, 벌목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서명도, 사이버 공격도,

시위도 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밤낮 기계톱 소리 요란하더니

황토피 흐르는 길만이 벌렁 발가벗고 쓰러져 있고

자동차 안의 찌푸린 얼굴들이

속력을 낸다

 

돌이켜보면

오늘 우리가 우리 된 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길러주고 지켜준

나무 논 쌀 가축 물 공기 흙 하늘 박테리아…… 조상 같은

생명체들 아닌가

아름드리 나무를 인정사정없이 베고

큰길을 내는 것은

생명을 업신여기는 천박한 문명인의 일,

조상을, 마침내 나를 죽이는 일

아닌가

 

옛날, 아버지는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감 한두개씩 남겨두시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셨고

할머니는 대를 이어 지붕 위에 새들의 모이를 던져주셨지,

한 노승은 꼭두새벽 지팡이로 풀섶을 헤치며 가셨고

이 길을 따라 티푸나*의 깊이를 찾아서.

 

* 티푸나(Tipuna)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말로 조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우리가 일컫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의 조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 하늘, , 공기, 곡식, 짐승 등등, 즉 지금 나를 있게 해준 모든 생명체를 의미한다.

 

 

 

 

아득한 집

 

nefing.com

 

 

 

부천시에서 제정 시행하고 있는 제4회 수주문학상 심사 결과 수원 임하혁(54)씨의 나무 아래서가 대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우수상에는 대구 이인주(37)씨가 달을 키우며1석을, 부천 정순옥(40)씨가 강씨 아저씨2석을, 광주 김정원(40)씨가 티푸나3석을 각각 차지했다.

 

지난 4월 공모 요강을 공고한 후 지난 81일부터 20일까지 접수한 결과 총 346명이 2,579편이나 응모했으며 2차에 걸친 예심과 2차의 본심 등 모두 4심을 거쳐 지난 26일 수상자를 확정했다.

 

응모자수나 작품의 질적 수준에서 유수의 전국단위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수주 변영로의 문학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이 이번 공모를 통해 재확인되었다.

 

대상에는 500만 원, 우수상 3명에게는 각 1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되며 시상식은 928일 오후 3시 부천시청 대회의실에서 가질 예정이다.

 

 

'국내 문학상 > 수주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6회 수주문학상  (0) 2011.02.19
제5회 수주문학상  (0) 2011.02.19
제3회 수주문학상  (0) 2011.02.18
제2회 수주문학상  (0) 2011.02.18
제1회 수주문학상  (0) 2011.02.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