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중봉 일기 5 / 이용호
-배롱나무에 물들다
그대에게 번져가기 위해서는
햇살의 중력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정착하기 위해 제 한 몸을 던져 버리는
저 목숨들
가을엔 누군가 저 집에 와서
처마 밑에 풍경을 여럿 달고 갔다
사방이 어른거리던 저녁 가지에서
안타깝게 떨어지던 고요를
하나 둘 받아내던
나무 한 그루
대지를 향해 투신하는 건
차마 열매 맺지 못한 잎새들이지만한때는 슬프게 일생을 울기만 하던 것들마저
이제는 눈부시게 자라나 있어
바람이 불면 저 풍경들 스스로 불을 밝혀
커다란 별 한 채씩을 세울 것이니
봄이 되면
풋풋하게 터져 나올 수많은 가지의 새순들이한때는 고통의 상류에 정박했을 과거를
눈처럼 툭툭 털어낼 것이다
투명하게 빨아올린 저 먼 미래의 수분들이
뿌리를 거쳐
맨 윗가지의 진실에 닿을 것이니
그 날부터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풍경들이
더욱 푸르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국내 문학상 > 중봉조헌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7회 중봉 조헌문학상 대상 (0) | 2013.05.23 |
---|---|
제6회 중봉조헌문학상 대상 (0) | 2012.05.23 |
제5회 중봉조헌문학상 대상작 (0) | 2012.04.09 |
제4회 중봉조헌 문학상 (0) | 2011.08.17 |
제3회 중봉 조헌 문학상 / 이인주 (0) | 2011.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