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의 편지 1 / 손병걸
-이름 없는 뼈
강기슭에서 뼈가 발견되었다 아무도 이름을 알 수 없었다
푸석푸석한 뼈는 할 말이 없고 나라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오래전 무너진 돌무덤 속에 의로운 침묵은
보이지 않는 바람 속에서 간간이 쟁쟁했다
는개비가 내리고 축축이 젖은 바람은
푹 파인 상처 같은 돌 틈에 고이고 고였다
그 순한 침묵의 뼈는 켜켜이 흐르고 흘러
시푸른 강물처럼 역사를 완성했다
나는 오늘 펼쳐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으며
새삼 문장이 명백한 그림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시린 강물에 손을 씻듯 상형문자를 어루만지는 오후
강기슭 배롱나무에서는 꽃향기를 쏟아놓지만
핏빛 일렁이는 모래톱에서 의병의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무너진 돌무덤을 휘감던 물의 파열음은
성곽에서 뜨거운 기름이 튀는 소리처럼
귓전에서 먹먹하게 붉다
지나면 아름다운 그림 같은 단 한 줄의 역사
이름 없는 뼈들이 활자로 일어서는 글귀쯤에서
나는 죽음을 함부로 듣고 해석한 날들을 후회한다
단 한 번도 스스로 목숨을 내놓을 충의忠義가 없었던
번지르르한 내 이름 석 자가 깊은 강 수심 속에 잠긴다
[당선소감] 아름다운 풍광 앞에 서면 왜 눈물이 날까
역사의 육하원칙 기술 방식은 간단하다. 그러나 간단한 문장 속 자간과 자간 사이에 숱한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절절한 이야기가 있다. 순한 목숨이 나라를 지탱해온 소중한 진실이 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오래된 과거가 우리의 미래다. 역사를 버리고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백성을 버린 관리의 사조가 아닌 바로 민중 봉기의 역사가 그러하다. 작품을 쓰기 위해 나는 몇 줄짜리 역사 속 주인공들과 만남을 시도했다. 단연코, 짧지 않은 시간의 통증이 꿈틀거렸다. 시를 탈고하기까지 내내 몸이 아팠다. 안타까움과 복잡하게 얽힌 반성이었다. 몇 번의 꿈도 꾸었다. 꿈속에서 온몸에 생긴 칼자국이 쓰라렸고 솟구치는 피가 뜨거웠다. 끔찍한 전장 속에서 끝내 눈을 감는 의병들의 표정을 읽었다. 누구는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아이 그리고 입덧하는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을 테고, 누구는 무기 삼은 괭이로 비알밭에서 캐다가 만 뿌리 열매를 떠올렸을 테고, 누구는 고향에 돌아가 마저 읽을 책 한 권을 떠올렸을 것이다. 순간,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순한 얼굴의 농부였다. 올곧은 선비였다. 그러나 달빛을 품은 바람이 무심히 새벽 쪽으로 불고 돌무덤 즐비한 강가, 강물 위에 눈부신 아침 햇살이 낭자했다. 꿈을 깬 아침이면, 나는 강가에서 오래된 궁금증 하나를 떠올렸다. 왜, 아름다운 풍광 앞에 서면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가. 궁금증은 쉬이 풀렸다. 내가 볼 수 있는 하늘과 상쾌한 호흡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름 모를 뼈와 뼈가 흙이 되어 견고히 다져진 터전 때문이었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서러운 역사가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풍광이었던 것이다. 새삼 절경의 의미를 일깨워준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의 일익 번창하심을 기원하며 부족한 작품을 큰마음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들께도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프로필 : 1967년생/인천시/2005부산일보신춘문예등단/2008전국근로자문학상국회의장상/2011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인국무총리상/경희사이버대학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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