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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무게 / 이종섭(이종섶)

- 금산 7백의총에서

 

꽃이 활짝 필수록
점점 휘어지는 가지
꽃에도 무게가 있는 것이다
떨어지는 꽃을 붙잡으려고
가느다란 손을 내밀며
꽃의 뒤를 따라가는
가지들의 행렬
꽃의 마지막 길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가지마다
아찔한 꽃냄새가 말라간다
바닥에 부딪쳐 누워 있는
꽃들을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느끼는 통증
소름처럼 푸른 싹이 돋는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는 빈자리는
떨어진 꽃잎들이 남긴
맨발의 유서들
천 길 벼랑은 언제나
한 발짝 앞에 있었다
아픔을 잊으려고
바람을 찍어 휘갈기는
산 가지들의 울음
누워 있는 꽃들을 위해
조사를 쓰고 있다
제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떨어진 꽃들
여기 잠들다

 

 

 

 

 

[당선소감] 5월의 나뭇잎이 더욱 푸른 이유

 

무성했던 한 시절을 살다가 메마른 채로 추운 겨울 지나 봄까지도 여전히 땅에 누워있거나 가지에 매달려 있는 마른 것들. 한 방울 남은 눈물의 기억마저 징발하는 찬바람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애처로움이 지난하다. 바닥에 주저앉아 뼈가 부러진 손으로 땅을 치고 있는 마른 풀들, 일년생 초목의 헐벗고 헐벗은 박피들의 깡마름, 나뭇가지에 달려 서걱서걱 목이 쉰 소리로 아직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는 잎사귀들, 그들 모두가 마음 편히 물러가지 못하는 모습과 그 시절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 뒤엉킨 철사 같던 검불들이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땅바닥에 엎드려 손톱이 깨지도록 흙을 움켜쥔 채 결코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던 덩굴들이 손에 힘을 빼기 시작했다. 어린 새싹들이 연둣빛 눈망울을 반짝이며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여쁜 제 새끼들을 기어이 보고 눈을 감고자함이었던가. 이제는 아무런 미련 없이 자신의 흔적을 지상에서 완전히 지울 마른 잎사귀와 덩굴들의 족적. 그리고 그들의 세대를 이어갈 새싹들의 푸른 행진. 세상은 그래서 살만한 것인가. 5월의 나뭇잎이 더욱 푸르다.

 

 프로필 : 64년생/경기도고양시/필명:이종섶/2008대전일보신춘문예당선/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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