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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의 총 / 이병철

 

 

의병이 아름다운 춤을 멈췄다 해와 달 부서져 내린 새벽 싸움터에서 의병은 화살촉보다 날카로운 별빛을 허리춤에 총총히 박은 채 웅크리고 있다

 

  비겁하게 숨어 피는 꽃들이 의병의 피를 흉내 내며 붉게 울지만 그 울음은 자명한 거짓이고 꽃잎은 또한 끝없는 욕심이어서 우리는 헌화(獻花) 없이 주검을 수습한다

 

  의병이여, 네 몸뚱이에 새겨진 도흔(刀痕)은 네가 경작하던 산비탈 밭뙈기와 마을 어귀를 지나 머나먼 사직(社稷)을 향해 길을 뻗고 있구나 길은 좁다가 넓고, 한 길이다가 여러 갈래가 된다 그러나 구름을 잔뜩 집어먹은 네 까만 눈 속에 사직은 없고

 

  아무도 네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살던 마을의 개들은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제 발을 핥을 것이고 능수버들은 여전히 낭창낭창 햇살을 감아댈 것이다 조정(朝廷)은 백성을 모르고 백성은 세상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네 죽음을 펼쳐 읽는다 거기 돋을새김 된 네 어린 새끼들의 눈망울과 네 아내의 푸른 귀밑머리를 또박또박 읽어 외워둘 것이다 네 몸뚱이에 댕긴 화톳불에서 솟는 연기가 충(忠)이고 의(義)다 의병이여, 너는 지금 아름다운 춤으로 하늘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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