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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일기 1 / 이병일
―조헌의 충(忠)을 위하여


의병은 스스로 하나의 忠을 위하여
나라의 안위를 근심할 뿐이다
하지만 세상이 미쳐 날뛰는 날이 올 때
나는 실낱의 길 하나를 만들고
자명한 의병으로 내일을 개관시키고
그러나 쥐새끼 같은 정치가들이
쥐구멍만한 동굴 속에서 저들끼리 싸우고
방대한 허위의식에 젖어 忠을 업신여길 때
적은 우리를 경멸하고,
우리는 아슬아슬한 삶의 파랑으로 살 뿐이다

의병은 칼이 아닌 죽창으로 적을 맞고
깨진 물동이 같은 나라를 우레처럼 걱정하고
그러나 정치가에겐 근심할 생각이 비겁한 法이고
의병은 즉각 적을 사랑해야 하므로
찬란한 우둔을 움켜쥔 침묵처럼 기세등등할 뿐이다

이미 이끼 긴 돌 속의 마애불처럼
적이 한반도로 불쑥 들어와 기항지를 세울 때
우리는 끊임없는 갈증처럼 광학으로 적을 맞는다
저 강과 마을을, 동구 밖과 골목을,
처음인 듯 꿈결인 듯 내려다보면서
우리는 광대같이 세상의 무딘 고통 소리에
돌산처럼 몸속을 훤히 밝히면서 방황하였다
그러나 의병은 해질 무렵, 제 몸속 잔뼈에
희미한 불들을 감추고 그 어둠을 견뎌야 하므로
악몽이 자주 꾸는 걸신처럼 황톳길에 가만히 숨어야 하므로
나는 물 없는 웅덩이로
아무것도 스며 있지 않은 삶을 살다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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