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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어부바 / 유종인

 

 

바닷가 소나무숲에 들어갔다

수평선은

가늘게 눈을 뜨고 날 바라봤다

혹여 당신이 가 계신 곳 아느냐 물으면

어부바, 어부바

발끝에 닿는 파도소리에 업혀온 말

당신이 날 업으려 온몸으로 건넸던 말들

솔숲에 파도소리로 부려놓았다

 

세월은 당신인데 가벼워진 몸,

더 깊어진 속종을 미소로 갈무리한 채

당신은 여전히 내게

늡늡한 영혼의 등을 내보이며 어부바,

실패와 좌절조차 꽃처럼 받아 안듯이

넉넉히 등을 내미는 말, 어부바는

수평선이 영원의 선반처럼 해와 달을 업어주는 말

 

바닷가 소나무숲에 서 있었다

소나무는 하나같이 허리가 굽었다

당신이 그러하였다

굽은 소나무 허리를 쓰다듬을 때

어부바 어부바 당신 목소리가 나무에서 흘러나왔다

이젠 내 차례에요 해와 달이 모셔간 어머니

나는 눈부신 수평선처럼 등을 내밀어

당신 이제 파도처럼 철썩 제게 업히세요

어부바

 

 

 

 

교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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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백교효문화선양회는 11일 강릉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하는 제12회 백교문학상 대상에 유종인 시인의 시 '어부바'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우수상에는 전순선씨의 시 '하늘 높이 날고 싶은 오월', 최남미씨의 수필 '아버지의 그림', 이임진씨의 수필 '신사임당과 이율곡의 효사상 계승'이 뽑혔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후인 시인은 대상작에 대해 "어머니와의 사랑을 노래한 감동적인 시”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백교문학상은 해마다 효친 사상과 문화를 주제로 한 시와 수필 작품을 공모, 시상하고 있다. 수상작은 '사친문학지'에 실리며 시상식은 10월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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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기적 / 유종인

 

다람쥐나 청설모가
입안 가득한 상수리 열매를 어쩌지 못해
도린곁 어웅한 데다
그걸 파묻어 버리곤 더러 잊는다고 한다
나 같으면 나무 십자가라도 세워 놓았을 그곳을
까맣게 잊어버린 탓에
먼 훗날 푸른 어깨를 겯고 숲이 나온다 한다

기억보다 먼저
망각이 품고 나온 숲,
용서보다 웅숭깊은 망각,
어딘가 잊어 둔 파란 눈의 감정도
여러 대륙에 걸쳐 사는 당신도
어쩌면 망각을 옹립한 탓에 

 

 

 

 

숲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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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0회 김만중문학상 시시조부문에 응모한 작품집들을 읽었다. 작품집들을 상대로 대상 수상작을 선정하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경합한 작품집들의 수준도 높았고, 각 작품집들의 문학적 관심사도 다양했다.

 

우리나라 시의 활력과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새롭고 충분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만큼 고유하고 신선한 작품세계를 선보인 작품집들도 많았다. 심사위원들의 고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제10회 김만중문학상 시시조부문 대상작으로 유종인 시인의 시집 숲시집을 선정했다. 유종인 시인은 1996년에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했다. 그 동안 왕성하고 우직하게 시작활동을 해왔으며 시적 갱신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아왔다.

 

유종인 시인의 시집 숲시집은 세계에 대한 해박한 고전적 이해에 기초해 있고, 바깥 풍경에 자신만의 내면을 세심하고 유려한 시구로 투영하고 있는 작품집이다. 은은하고 고적하고 겸허한 시심이 돋보이는, 근년에 그 시적 성취가 단연 돌올한 작품집이다. 뿐만 아니라, 유종인 시인이 앞으로 선보일 작품들이 우리 시단에 싱싱하고 힘찬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유종인 시인의 수상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문태준, 오형엽

 

 

 

아껴 먹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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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이 지난 10일 유배문학관에서 ‘제10회 김만중문학상 심사위원회’를 개최한 이후, 수상작 선정을 마무리하고 당선작을 발표했다고 18일 밝혔다.

올해 김만중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은 ‘숨은 눈’의 장정옥 작가, 시ㆍ시조 부문 대상은 ‘숲시집’의 유종인 시인이 영예를 안았다.

또한 신인상에는 시조집 ‘목력’의 조경선, 유배문학특별상 부문은 ‘서포 김만중과 남해’ 외 다수의 책을 집필한 김성철 씨가 각각 당선됐다.

소설부문 대상을 받은 장정옥 작가는 대구 출신으로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해무’로 등단했으며, 2008년 제40회 여성동아에 장편소설 ‘스무살의 축제’가 당선됐다. 이후 ‘비단길’, ‘고요한 종소리’ 등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시ㆍ시조 부문 대상을 차지한 유종인 시인은 1996년 ‘문예중앙’에 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02년 농민신문, 2003년 동아일보 시조 부분에 각각 당선됐으며,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도 당선된 시인이다. 시집으로 ‘아껴먹는 슬픔’,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수수밭 전별기’, ‘사랑이라는 재촉들’ 외 산문집으로 ‘염전-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 ‘산책-나를 만나러 떠나는 길’ 등을 발간했다. 지훈문학상, 송순문학상, 지리산문학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김만중문학상 공모에는 407권의 작품집이 접수됐다. 소설 부문 심사에는 한국 문학계의 거장 한승원, 소설가 편혜영,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 허경진 심사위원이, 시ㆍ시조 부문은 시인 문태준,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오형엽 심사위원이 심도 있는 심사를 통해 당선작을 선정했다.

영예의 소설부문 대상 수상작인 ‘숨은 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그것을 깊이 있게 해부해 이 시대에 걸맞은 여성 서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시ㆍ시조 부문 심사위원은 “경합한 작품집들의 수준도 높았고, 각 작품집들의 문학적 관심사도 다양해서 고심이 깊었다”며 “‘숲시집’은 세계에 대한 해박한 고전적 이해에 기초해 있고, 바깥 풍경에 자신만의 내면을 세심하고 유려한 시구로 투영하고 있는 작품집”이라고 평가했다.

장르 구분 없이 진행된 신인상은 소설부문과 시ㆍ시조부문으로 나뉘어 심사위원들이 최종심사 대상작을 선별한 후, 최종 선정하는 엄정하고 객관적인 과정을 밟았다.

신인상 수상작인 시조집 ‘목력’은 생활현실의 경험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동시에 시적화자의 내면 속에 침묵의 심연을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시적회로를 형성하는 묘미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남해군은 오는 11월 2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며, 부문별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천500만 원, 신인상ㆍ유배문학특별상 수상자에게는 500만 원의 상금이 각각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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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현물(現物)이니 / 유종인

 

 

더듬어봐라 숨 놓고 얻게 된 푸른 무덤 오랜 돌비석에 새겨진 당신 이름에 흰 똥을 갈기고 가는 새들이 짧은 영혼을 뒤돌아보겠는가 당신을 품은 무덤도 당신 모르고 당신 이름을 새긴 돌비석도 당신 모르는데, 사랑은 미나리아재비과() 독성 품은 풀빛에도 기웃거린다 아연실색, 제 몸빛조차 모르고 흔들리다, 사라진다더듬어봐라 사랑은 현물이니 맘에 담아 이리저리 말로 꿰려는 이여, 깨어진 돌비석에 역시 깨어진 당신 이름이여 한 이름 둘로 나뉜 비석 돌에 여전히 흰 똥을 떨구고 가는 새들, 성큼 자라오른 가시엉겅퀴 그림자가 깨진 당신 돌 가슴을 겁탈하듯 한나절 끌어안다 가는 것을

 

 

 

 

사랑이라는 재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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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이 조선시대 대표 문인인 송순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문학 발전과 지역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실시한 1회 담양송순문학상의 첫 주인공에 '사랑이라는 재촉들'의 저자 유종인(사진) 시인이 선정됐다.

 

담양군과 담양송순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문순태)은 지난 6일 서울 노보텔에서 1회 담양송순문학상심사를 갖고 유종인 시인의 사랑이라는 재촉들을 영예의 대상에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소설분야에 김혜정 작가의 독립명랑소녀와 아동문학 분야에 유타루 작가의 별이 뜨는 꽃담이 각각 우수상에 선정됐다.

 

입상자들에 대한 시상은 오는 119일 한국가사문학관에서 개최되는 제13회 전국가사문학학술대회에서 있을 예정이며 대상에게는 2천만원의 상금이, 우수상에는 각각 5백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1회 담양송순문학상 심사는 시 분야에 고은 시인, 소설 분야에 최일남·한승원 작가, 아동문학 분야에 황선미 작가, 수필분야에 윤재천 작가가 맡았다.

 

심사위원으로 나선 고은 시인은 유종인 시인의 사랑이라는 재촉들에 대해 진지한 현학이다. 언어의 당대성이 고전성과 잘도 맞닿아 있다. 표현의 품이 크다는 것. 그리고 온몸으로 피가 고민하듯 아물어간 게 만년 굳히고 굳힌 피의 말이 있었겠다따위의 가혹한 도달점이 나타난다는 것을 높이 샀다. 이쯤에서 다음 행이 도리어 군더더기 일만큼 빛난다. 한 실례를 든 것이다. 10년의 자기복제 이후 다시 재생할지어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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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지붕을 사야겠다 / 유종인

 

 

다시 양철지붕을 올려야 겠다

내게 저 들판 끝 단독의, 아니 독단으로라도

새로 지붕을 얹을 폐가가 있다면

 

빗방울이

얼어오는 몸을 부풀려

눈송이로 맘을 띄우는 겨울이 오기 전에

 

모든 소리에 성감대를 가진

양철지붕을 올려야 겠다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너도 밤나무 나무란 나무들

갈잎과 솔가리에 얹히는 된서리와 별빛 달빛마저

여줄가리 소리들로 쟁쟁하게 되비추는

거울을 눌로 입힌 양철지붕을 그믐밤 고양이가 거닐 때

그 발자국에서

꽃들이 눌러 퍼지는 소리에 소스라치는 고양이여

겨울엗 한뎃잠을 자가 깬 꽃들이

양철지붕에 꿈속의 비명을 던져 올려도 좋겠네

 

한 무덤 방에 누워

부부가 동짓달 궁금한 입 군것질거리를 구시렁거릴 때

그 소리마저 눈보라에 실려

양철지붕에 내려앉으면 그 말 서슬에 깬 아들이

그날로 때아닌 제사상을 보는 저녁도 있어

운감하시라

운감하시라

서로 마음 출출한 날이 가장 좋은 제삿날이니

 

키 높은 옆집 처마의 눈석임물이

양철북을 두드리듯

양철지붕을 두드려 먼가래 한 꽃들의 귀를 부르네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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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출판이 주관하는 지훈상의 제16회 수상자로 문학 부문에 유종인 시인과 국학 부문에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유씨의 시집 '양철지붕을 사야겠다'(시인동네)와 안 교수의 저서 '담바고 문화사'(문학동네)이다.

 

지훈상은 청록파 시인이자 국학자인 조지훈(1920~1968)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상금은 각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2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동 예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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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소식 / 육종원(유종인)

 

 

제주 바닷가에 죽은 상괭이가 떠밀려왔다는 말에

나는 그 입꼬리가 올라간 미소만은 썩지 않게 해달라고

두 손도 모으지 않은 채 기도를 붙드는 것이다

 

살아서는 바다가 제 안방 아니 운동장 같았어도

죽어서는 아무려나 떠밀리는 타향 같은 바다

젖먹이, 그걸 그친 지 오래지만 그 눈웃음만큼은

그 젖빨던 입술로 가만히 번져내던 울음만큼은

아직도 싱싱한 마련인 듯 따개비 등짝을 들썩이게 하는 것,

무슨 일로 바다가

상괭이에게 급살(急煞)을 입혔나 곰곰히 헤아리듯

낮별들도 바닷가 하늘에

물음처럼 물끄러미 턱을 괴고 눈빛을 반짝였을 것이다

 

상괭이가 떠밀렸으나 상괭이 죽음은 아직 이르다

파래 미역 줍던 노파는 상괭이 등짝을 쓰다듬어

그 간절한 손길 아래 다시 지느러미가 움찔거렸으면

옆구리 썩어드는 자리엔

사월의 유채꽃 미소로 새살이 돋았으면

망막이 흐려진 그 눈동자는

늦봄의 천동소리에 맑게 다시 틔어오는 기척이었으면

바다가 아니면 이젠

뭍으로 지느러미가 다리를 내어 걸어 나올 미소여

 

제주 바닷가에 상괭이 주검이 눈에 띄었다는 말에

나는 그 천연의 미소만은 묻히지 않게 해달라고

그제사 두 손을 마저 모은 채

파도처럼 기도를 철썩이는 것이다

 

* 상괭이 : 쇠돌고랫과에 속하는 작은 고래.

 

 

 

[당선소감]

 

올해는 유독 가뭄이 길었네요. 길거리 대형 화분에 심겨진 꽃들이 누렇다 못해 하얗게 말라죽는데 제 손길은 미약합니다. 농경지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 속수무책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제 상상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하마(河馬)나 코끼리라도 얼러내고 싶어지네요. 메마른 논밭에 가서 한 1톤씩의 물을 즐거이 토해낼 수 있는 짐승들 말이지요.

 

물이 갖는 그 전지구적인 종요로움이 커지는 시대네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도 물부족 국가의 불명예스러운 대열에 들고 말았습니다. 그 넉넉하던 수려하던 물은 어디로 갔을까요.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선배의 말에서는 물에 대한 농투성이들의 광적인 집착이 종교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렁이 침이라도 모아야 할 판에 장마가 온다니 반가운 일이지요. 물이 있으니 꽃과 열매와 길이 열리고, 선량한 만남도 당연히 면면히 이어져야 할 판입니다. 속악함을 순치(馴致)시키는 물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지요.

 

노담(老聃)선생의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진언(眞言)도 단순히 인문학적 철리(哲理)나 비유의 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물의 실용과 생명성에 대한 직시로도 읽힙니다. 모든 숨탄것들과 함께 메마르지 않고 서로 너나들이 상통하는 물의 성정이 생태계를 웅숭깊고 낙락하게 하는 마음, 그 냅뜰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생의 물길이 트이는 그 생각의 물소리는 곧 시()이자, 관용의 문화이며 포용의 너름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공모는 생태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는 재미, 그 아우라(aura)를 넓히는 발상과 애정으로, 그 기꺼운 생각을 마주하는 계기였습니다.

 

인간과 자연, 사회를 아우르는 생태계에 대한 남다른 탁견으로 제정된 문학상에 제 시편을 흔쾌히 밀어주신 심사위원님 여러분과 평택문인협회 관계자분, 평택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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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생태계의 생명에 대한 존재의 염원

 

태양계 행성 중에서도 생물이 살고 있는 곳은 지구뿐이고 그 이유는 지구가 햇빛, 공기, , 흙 등 생물이 살기에 알맞은 환경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지금 많은 생물의 멸종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기온상승에 의한 지구의 온난화로 생태계의 급속한 쇠퇴가 도래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동물사냥이나 자연을 파헤치는 등 인간으로 인한 자연 파괴 때문에 많은 생물들이 멸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생물의 멸종은 다른 생물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어 모든 생명체들은 공존하며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역사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환경 즉 숲과 물을 파괴한 문명은 거의 모두 멸망했다고 지적한다.

 

육종원(유종인)님의 시 상괭이*소식은 제주 바다에서 죽은 상괭이의 소식을 듣고 전해지는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게 된다. 그 기도 소리는 돌고래의 죽음을 통해 자연생태계 질서의 파괴가 불러오는 비극적인 세계와 단절하지 않고 새롭게 눈뜨려는 인식의 전환이다. 죽음으로 생명이 완전히 소멸되고 이 세계와 절연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불러오는 비극적인 자연환경이 아니라 돌고래의 미소로 새로운 생명성의 가치와 대자연의 우주적인 탄생을 염원하고 있다.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나 기후 변화에 의해 죽은 돌고래의 슬픔을 우주의 원리의 새로운 생명의 생성으로, 생명에 대한 존재를 영속시키고자 하고 있다. 다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국제멸종위기종인 죽은 돌고래의 소식을 듣지 말고, 바다에서 웃는 돌고래를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5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으로 육종원(유종인)상괭이*소식을 대상 당선작으로 뽑았다. 생태계의 새로운 질서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자연생태계의 환경보존과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평택시와 평택문인협회의 취지에 맞는 작품으로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구현시켰다 하겠다. 또한 당선자의 최종후보로 세 편의 작품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크게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이밖에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 수준도 만만찮아서 심사위원들은 심사숙고의 시간을 더 가지게 되었음을 밝힌다. 그중에서 상괭이*소식은 전원일치의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최종심사까지 올라와 경합을 벌인 작품으로는 동백꽃” “들판에 나온 밀항고래. 모두 탄탄한 내공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 심사위원 김영자, 배두순, 성백원, 이귀선, 진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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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나비물 / 유종인

 

 

박수소리를 듣는다 그 수도가 박힌 마당은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콸콸콸 물의 박수를 쳐준다

꾸지람을 듣고 온 날에도 그늘이 없는 박수소리에

손을 담그고 저녁별을 바라는 일은 늡늡했다

그런 천연의 박수가 담긴 대얏물에 아버지가 세수를 하면

살비듬이 뜬 그 물에 할머니가 발을 닦으셨다

발등의 저승꽃에도 물을 줘야지

그런 발 닦은 물조차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한 번 박수를 부은 물의 기운을

채송화 봉선화 사루비아 눈치 보는 바랭이풀 잡초까지 물너울을 씌워주고도

박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쯤을 남긴

세숫대야 물을 내게 들려 손님을 맞듯 대문을 여신다

뿌리거라, 길이 팍팍해서야 되겠냐

흙꽃*에게도 물을 줘야지

최대한 물의 보자기를 펼치듯 헹가래를 치는 물

마지막 박수는 이렇게 들뜬 흙먼지를 넓게 가라앉히는 일,

수도꼭지가 박수쳐서 보낸 물의 여행은

아직도 할머니 발등을 적시고 유전(流轉)하는 박수소리로

길을 떠나 사루비아 달콤한 핏빛에도 스며뒀으니

실수하고도 박수를 받으면

언젠가 갸륵한 일들로 재장구쳐오는 날도 있으리라

끝없이 마음의 꿀을 물어오는 저 물의 호접(蝴蝶)

어느 근심의 그늘 밑에 두어도 내내 환하다

 

* 흙꽃: 흙먼지의 방언

 

 

 

 

얼굴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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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말의 몸짓과 삶의 율동으로서의 시

 

2018년 제9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2천 편 가까이 모여진 작품 중에서 대상 한 편, 우수상 한 편을 고르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주최하는 쪽에서 그나마 예심과 본심을 구분해 일감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심사하는 일을 그런대로 수월하게 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대상 수상작을 나비물로 선정했다. 선정하는 과정에서, 예상한 것에 비해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작품을 선정하면서, 나는 시()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의 틀을 세워볼 기회를 가졌다. 내가 늘 시니 소설이니 비평이니 하는 생각 속에서 오래 동안 살아 왔어도 오랜 문학적인 체험에 의한 원론을 체계화시켜본 일은 없어서였다.

 

우선 시는 말로 이루어진 것이다. 세상에는 말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 중에서도 수많은 언어 행위의 한 가지가 바로 시인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말이 되지 않는 말이 있다면, 그게 시다.

 

언어학자 촘스키는 언젠가 짧은 예문을 만들어 보았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의 한 예문을 삼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를 통해 만들어본 의미론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본 예문은

 

“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

 

였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색깔 없는 푸른 생각들이 깊이 잠자고 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번역 문장을, 무색투명에 가까운 녹색 관념이 극단적으로 잠자코 있다, 라고 수정한다고 해도 의미론적으로 완결되지 않는 듯싶다. 이와 같이, 말이 되지 않는 말이 바로 시의 (혹은, 시적) 언어인 것이다. 촘스키는 말이 되지 않는 말의 예문을 만들다가, 우연히 (혹은, 우연찮게) 한 문장으로 된 시를 창조한 것이다.

 

대상 수상작인 나비물'마당은 박수를 쳐주고, 나는 박수 소리를 듣는다.'라는 말이 되지 아니한 말의 상황에서 시상이 비롯되고 있는 시다. 나는 애최 이 도발적인 언술 상항을 주목했다. 시의 소재가 되고 제목으로 활용된 '나비물'이라는 말도 재미가 있었다. 나비물의 사전적인 의미로는 '옆으로 쫙 퍼지게 끼얹는 물'을 가리킨다. 마치 나비가 날개를 펴는 것처럼 시각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말이다. 말들이 쌓여 있는 창고 속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말도 이제 주인을 만난 셈이다.

 

시인은 자기 나라의 말을 사랑하는 임무를 지닌 사람이다. 우리나라 시인이라면 응당 우리말을 사랑하는 마음의 끝을 좇아야 한다. 대상 수상자 나비물에서 너울처럼 큰 물결로 펼치는 과장적인 표현의 '물너울'과 흙먼지의 방언이라고 알려진 '흙꽃'의 대조는 삶의 율동처럼 느껴진다.

 

다시, 시란 무엇인가?

 

시는 말씀 '()' 변의 의미부와 절 '()'의 음성부로 이루어진 자형과 자원을 가진 말이다. 말로 된 것이 시다. ()는 시()로도 읽힌다. 이 말은 다시 두 겹의 뜻으로 쪼개어지기도 하는데, 터전()과 마디()가 바로 그것이다. 마디는 규칙이나 법칙을 말한다. 시는 말로 된 규칙적인 터전(형식)을 지녔다. 청각적인 율동의 반복 재생이 시의 형식이다. (운문)에는 줄글(산문)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구성진 말의 물결 같은 흐름이 있다. 그래서 말의 몸짓이 뚜렷한 시일수록, 언어의 육체성을 부여하는 말짓의 현저한 소산으로 한결 남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수상작인 나비물은 말의 내면적인 몸짓을 가졌고, 또 이것은 삶의 율동이라는 내용을 추스르고 있다. 마당에 물을 뿌리는 일도 비범한 것으로 승화시킨다. 7080과 같은 지나쳐온 삶의 내력이 후락한 풍경화처럼 그려져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무수한 기억들, 숱한 사연들이 소환되고 있거니와, 이 가운데서도 마당에 나비물을 끼얹거나 한 바가지나 한 대야의 물도 유전하거나 한다는 생각에는 우리에게 무언가 '재장구쳐오는'울림과 감동 같은 게 있다.

 

수상자 유종서 씨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올해 한글날을 며칠 앞둔 시상식 날에 면전에서 축하라도 해야 하는데 예정된 한글날 행사 때문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 우수상을 받은 최류빈 씨에게도 앞으로 창작의 건투를 빈다. 이서와 구애영라는 이름으로 된 두 분의 후보자들에게도 아쉬움의 말을 전한다.

 

- 심사위원 송희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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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여게가 도솔천인가 / 문채인(문성해)

 

 

칠성시장 한켠

죽은 개들의 나라로 들어선다

누렁개, 흰 개 할 것 없이 검게 그슬린 채

순대처럼 중첩되어 누워있는 곳

 

다 부질없어라

살아서 쏘다녔던 거리와

이빨을 드러내던 증오

쓰레기통 뒤지던 욕망들이

결국은 이 몇 근의 살을 위해 바쳐진 것이라니

 

뒹구는 눈알들은 바라본다.

뿔뿔이 흩어져 잘려 나가는 팔다리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날렵하게 춤추는 저 검은 칼을,

 

이제는 검은 길을 헤매다니는 일은 없을 거야

발길에 차여 절뚝거리는 일도

마음에도 없이 꼬리 흔드는 일은 더더욱....

 

좌판들 위에서

꾸덕꾸덕해진 입술들이 웃는다

이제는 물고 뜯는 일 없이 한통속이 된

검은 개들의 나라에서

 

살아서 오히려 근심 많은 내가

거추장스런 팔다리 휘적이며 걸어간다.

 

 

 

내가 모르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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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겨울숲 우화 / 김충규

 

 

겨울 숲이 뜨겁다 나무들이 서로서로 끌어안고 있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숲속의 좁은 길이 내 발자국을 보듬고 있다 새떼가 후루루 날며 하늘의 푸른 심줄을 당긴다 흙 속 잠들었던 벌레들이 고개를 내민 채 후후 숨을 쉰다 구겨진 햇살이 나무의 밑동을 감고 있다 숲은 고요한데 느닷없이 짐승들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숲 밖으로 말발굽소리 들린다 이를 악문 비명이 찢겨져 들린다 탕, , 총성이 연속적으로 울리고 산이 몸을 뒤척인다 하늘의 심줄을 문 새들이 뚝뚝 피를 흘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나무들이 일제히 빈혈을 일으키며 감고 있던 어깨를 푼다 내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온 바람이 잔기침을 토하며 새들의 빈집을 흔들어 보인다 그 속에 갇혀 있던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지며 숲의 고요는 흩어지고 총성에 섞인 말발굽 소리들 날뛴다 빠르게 해 기울고 온순하던 바람이 얼굴을 벗은 채 칼을 물고 우우 미친 듯 숲을 빠져나간다 숲속은 일순간 어두워지고 숲 밖은 차츰 아우성으로 깊어간다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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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조롱박을 타다 / 유종인

 

 

조롱박에 실톱을 들이댔다

덜 익은 하얀 씨앗들,

뻐드렁니처럼 햇살에 웃고 있었다

두 개의 그릇이 갈라져 나왔다

나를 대신하고 싶을 때마다

당신 바가지를 쓰세요

한 몸으론 그냥 썩을 몸,

갈라져 제 속을 파내야

누군갈 오래도록 퍼먹일 몸!

조롱(嘲弄) 때문에 모든 걸 끝낼 순 없다

먼저 타낸 갈색의 씨앗들

담뱃진 잔뜩 낀 이빨로 웃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재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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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를 보다 / 유종인

 

 

버드나무는 우듬지가 보이지 않는다.

치렁치렁한 줄기 가지로 옅은 바람을 탄다

흰 말이 곁에 있었지만

수양인지 능수인지 모를 버들은 말을 건드리지 않는다

 

말은 예민한 짐승, 잘못 건드리면

주인도 태우지 않고 먼 들판으로 달아난다

거기서 말의 고삐와 안장은

들꽃들의 우스갯거리에 불과하다

이 흰말에 죽은 말벗을 태우려 했나니 이 흰

말의 잔등에 앉아 영원을 달리려 했더니

 

버드나무는 고삐도 없이 수백 년 한자리에 묶이고

잠시 매인 흰 말은 무료한 투레질로

오월 허공에 뜬 버들잎에 허연 침버캐를 묻힌다

가만히 버들가지가 말의 허리를 쓸어준다

흰 말은 치뜬 눈동자가 고요해지며 제 눈의 호수에

버들잎 몇 개를 띄어준다 눈이 없는

버드나무는 말의 항문을 잎끝으로 간질이자, 말은

()이 안 든 허공에 뒷발질을 먹인다 허공은 죄가 없으므로

멍이 들지 않는다 뼈가 부러지지도 않는다

 

주인이 오지 않는 흰 말과 버드나무

사이에 능수(能手)와 능란(能爛)의 연리지(連理枝) 고삐 끈이 늘어진다

버드나무는 오히려 짐승처럼 징그럽고

흰 말은 꽃 핀 오두막처럼 고요하다

친연(親緣)의 한나절이 주인을 빼먹은 일로 갸륵하다

 

* 공재 윤두서의 그림. 보물.

 

 

 

숲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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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부끄럽고 일천한 얘기지만,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지리산을 와 보지 못했다. 지리산은 문학과 관념 속의 지리산이었고 같은 한반도 안에서 언젠가는 가봐야 할 막연한 명산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지리산이 내게 하나의 의미있는 존재로 서서히 그 명암을 드리우기 시작하는 느낌을 가졌다. 그것은 어떤 글이나 그림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기운에 가까웠다. 그것은 단순한 예감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돌올해졌다. 무엇이든지 하나의 산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만한 높이와 넓이와 그늘의 바다를 거느려야 한다는 게 내 판단이라면 판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리산은 내게 하나의 전환기적인 분수령으로 다가드는 드넓은 품일지도 모른다.

 

아득한 세월 저편에 나를 유목하듯이 내버려두고 이제와 이 높은 뫼의 자락에서 다시금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은 나의 바람이자 실제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비록 온몸으로 다가와 이 산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땅이 내게 전해준 서기(瑞氣)를 예전부터 감지하고 있었고 그 막연한 도움 속에서 내가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근친의 관계로 이 땅에 살아있음을 확인해준 산이 있다면 그 맨 앞자리에 지리산을 두지 않을 수 없으리라. 어쩌면 이 순간의 만남 속에 지리산에서 무엇이든 회복할 수 있고 소멸된 그 어떤 것도 복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런 면에서 지리산은 내게 가장 늦된 만남이자 가장 원초적인 선험의, 아니 영험의 큰 뫼로 이미 우뚝했음을 선선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지리산의 기운이 잠재돼 있음을 일깨워주시고 그 문장의 연분이 이제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있음을 보여주신 함양의 모든 분들과 지리산에게 그리고 시문이 또한 지리산 같아야 함을 부족한 글에 독려해 주신 정일근 선생님과 송수권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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