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동호 댁 할머니 손가락엔 구구단이 산다 / 오서윤

 

 

동호 댁 할머니 손가락엔 수상한 장부가 산다

계산법을 알 수 없는 덧셈과 뺄셈이 숨어 있다

수리에는 없지만 가끔 세상에서 발견되는 셈법

옆집 상처와 몹쓸 사람에겐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숫자를 솎아내는 속 깊은 구구단이다

 

할머니의 손가락엔 천기를 읽는 두꺼운 달력이 산다

팥꽃이 피는 시기와 산을 넘어오는 장마

콩이 여물어 갈 때마다 할머니는 더 바쁘다

복잡한 족보와 길흉의 절기와

식구들의 생일과 오래전에 죽은 나이도 다 기억한다

 

갑골문자처럼 단단한 할머니의 손등

주판알 튕기듯 못생긴 손가락 하나하나 세어 왕복할수록

할머니의 곳간이 풍성하다

이른 봄 멀리서 오는 소식을 감지하던

손가락이 파르르 떨릴 때도 있지만

어느새 넓적한 손등이 어지러운 마음을 덮어버린다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본 주먹구구식이지만

할머니의 몸엔 여러 곳의 교문이 있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이름 없는 할머니의 졸업장

 

동호 댁 할머니 돌아가시고

그 집 식구들 모두 가막눈이 되었다

 

 

 

- 오서윤 시집 <체면>(시작시인선 0413)

 

체면

 

deg.kr

 

 

 

‘2021 목포문학박람회’ 목포문학상의 영예의 수상작품이 결정됐다.

시는 31일 김종식 목포시장,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 채희윤 목포문학상 운영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목포문학상 당선작을 발표했다.

국내 단일부분 최대상금 1억원인 장편소설 부문에는「보트 하우스」(이숙종, 64세)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시 부문에는「동호 댁 할머니 손가락엔 구구단이 산다」(오정순, 64세) △희곡 부문에는「행진곡」(박소연, 58세), △문학평론 부문에는「돌봄의 위기 속에서 문학이 윤리를 말할 때」(강도희, 27세)가 선정됐으며 상금은 각 1천만원이다.

문학을 주제로 전국 최초로 개최되는 목포문학박람회(10.7~10)의 대표 프로그램인 목포문학상은 전국의 문학인과 해외 6개국(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호주, 캄보디아) 교민 등 총 1,136명이 3,728편을 응모해 뜨거운 참여 열기 속에서 진행됐고, 한층 높아진 성장성과 잠재력, 브랜드가치를 나타냈다.

「보트 하우스」는 문장의 묘한 리듬으로 작품이 필요로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능력, 감각과 사물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한 문체, 원거리에 사회적인 상처를 배치해 두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쓸쓸하고도 담담한 삶을 그려내려는 작가의 윤리적 태도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작가 이숙종씨는 “미국 허드슨 강가의 별장인 보트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의 불, 물, 꿈, 영혼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다양한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은희경 장편소설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이승우, 우찬제, 김별아, 김형중, 편혜영)은 “1억원이라는 상금과 목포문학상의 향방을 가르는 첫 회 심사라 부담이 컸다. 모든 심사위원이 3회에 걸쳐 심사를 진행했고, 본심에 오른 9편의 작품을 5번 투표하는 등 숙고 끝에 최종 수상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목포문학상을 한국 굴지의 문학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목포 출신의 한국 문학사의 거목들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은 ‘오로지 가장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라 믿고 예상 응모수의 두 배가 넘는 작품들을 읽으며 뜨거운 8월 한 달을 기꺼이 심사에 헌납했다”고 심사소회를 밝혔다.

향후 장편소설 수상작은 문학박람회 기간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된다. ㈜문학과 지성사는 최종 당선작 발표와 함께 목포지역 소외 계층 문학 꿈나무를 위해 출판 도서 605권을 시에 기증했다. 

목포문학상 시상식은 목포문학박람회 기간이자 한글날인 10월 9일 평화광장 해상무대에서 개최되며, 심사위원과 심사평은 목포문학박람회 홈페이지에서 9월 1일 확인할 수 있다.

김종식 시장은 “목포문학상에 보여준 국내외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사드린다”면서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목포문학상 수상을 발판삼아 한국 문학을 넘어 세계 문학을 이끌어가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목포문학박람회는 ‘목포, 한국 근대문학의 시작에서 미래문학의 산실로’라는 슬로건으로 목포문학관, 목원동 일대, 평화광장 등 목포 전역에서 문학전시관, 4인4색문학제, 골목길 문학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친다.

 

728x90

 

 

[본상] 오월사리 혹은 풀치의 춤 / 윤경예

 

 

나는 먼 데에서 와서 비늘이 긁혔다가 새로 돋는 정오의 바다를 봐요

 

심해의 어둠에 미끄러지는 걸 좋아하는 풀치들

아가미 내리그으며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수평선으로 당겨졌다가 이내 물러서는 춤을 추고 있는지

 

당신은 그 춤을 오월사리라고 이야기했지요

 

바다의 첫말을 꺼내기도 전

귓불 먼저 몽글해지는 소리 같았죠

검은 여로 와서 함께 덮은 웅숭깊은 별의 덫개였을까요?

 

가늘고 긴 당신의 숨소리처럼 봄빛 덜 빠진 바다

아직 두꺼운 낯을 가진 여름은 시작되지 않았죠

그래서 심해는 차고 깊고 해초들은 무섭게 자랐죠

 

어떤 쪽에서도 출항기를 쓰는 뱃고동 소린 들리지 않았죠

그러나 저 무수히 많은 오월사리가 사라진다 해도

당신은 결코 저 춤을 건지는 일은 멈출 수 없다고

물이 살져 오른 포구에서 기어이 닻을 올리고 있었죠

 

심해 밑이 아가미 명당인 걸 당신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다순구미 볕을 괴고 있던 당신의 어깨가 들석거릴 때

다 갯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저 춤 때문에

머리 풀린 어스름이 해안가로 변져온다고 했지요

 

심해는 비늘밖에 보이지 않아 심해라지요

나는 지금 뼛속까지 훤히 비추고도 남을 저 춤을 따라가요

내 몸이 짠내 나는 파도임을 아는 난 풀치니까요

 

 

 

 

[남도작가상] 국도 1호선 표지석 앞에서 / 김현장

 

 

대의동 모퉁이에 엉거주춤 앉은 노인

검게 바랜 손으로 표지석을 만진다

멀어진 신의주 고향길

눈 가득 울음 고여

 

목젖까지 차오른 그 사연을 펼쳐보면

동란 때 목포로 와 머구리 잠수부로

가는 줄 하나 의지해

잠든 바다 깨웠다

 

평화광장 머구리횟집 칠흑 내리 밝히는데

가을비는 알콜과 섞여 부재로 다강고

적막 투명한 울음이

가슴을 적신다

 

 

 

 

 

 

[심사평]

 

목포문학상 후보작으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을 숙독하면서 응모하신 분들의 뜨거운 목포 사랑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그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는가에 따라 좋은 시냐 아니냐가 판별된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 여기서 표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방법에 있어서 문체나 문장의 완성도도 중요하거니와 작품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명확해야 한다. 시는 삶에 대한 명상과 언어에 대한 명상이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도 표현의 방법에 포함될 것이다. 시는 한사코 형이상학이 아니다. 현란하거나 난해하게 쓰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소통과 공감의 좋은 시가 완성될 것으로 믿는다.

 

후보작 중 갯벌을 읽다문장” “경전등 기시감이 느껴지는 단어들과 표현들로 신선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응모작 세 편의 수준도 심사의 대상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곳에 갔네는 치열한 시적 감각이 아쉬웠다. 동시에 관념성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한 점임을 부탁드리고 싶다. 목포의 신사는 상상력은 좋으나 그 상상력을 구체적인 실존 경험으로 되살렸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바다의 후손 갈매기” “밤이면 해골을 쓰고 달려오는 파도” “백구두를 신고와 같은 표현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폐항은 주제에 맞추려 하다 보니 이미지나 표현 자체가 너무 어둡다. 오히려 폐항이라는 시적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 사유가 녹아들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십이동파도선의 해남청자, 새를 품다는 시조로서 정형적인 언어 구조상 자유시보다 훨씬 미학적 균형이 요구되면서 동시에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주었으면 좋겠다.

 

최종적으로 오월사리 혹은 풀치의 춤을 본상 당선작으로, 국도 1호선 표지석 앞에서를 남도작가상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본상 당선작 오월사리 혹은 풀치의 춤은 제목도 시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신선하고 시적 사유와 사물을 바라보는 개성적인 눈이 남다르다. 특히 탄탄한 구성과 신선한 표현 그리고 이미지의 전개가 힘이 있어 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함께 응모된 두 편의 작품들도 긍정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자신만의 문체의 완성도가 높다.

 

남도작가상 당선작 국도 1호선 표지석 앞에서는 목포가 신의주까지 대한민국 국도 1호선의 기점이라는 표지석을 소재로 하여 동란 때 목포로 와 머구리 잠수부로삶을 살아온 실향민 노인을 등장시켜 한 편의 드라마를 아주 자연스럽게 시조의 형식에 잘 담아낸 점이 감동적이다. 특히 첫 번째 수의 울음이 세 번째 수에서 긴 적막 투명한속울음으로 승화되면서 국도 1호선 표지석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상징성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당선되신 두 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탈락하신 분들께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요즘처럼 모순이 난무하고 완고한 마음의 시대에 시가 얼마나 소중한 위로와 안식을 주는 것인지 심사 내내 느꼈음을 고백한다.

 

본심위원 : 허형만

 

728x90

 

 

[본상] 나비, 우화를 꿈구다 / 김수형

- 이매방*의 승무를 보며

 

 

어깨를 들먹이다 흐느끼며

울음 끝 곤한 잠에 취한다

한 사람의 생애는 웅크림으로 시작되는가

온몸이 오므라드는 고독

손가락 하나 펼 수가 없다

이승의 사랑을 두리번거린 죄일까

꽃을 상상하는 동안

수천 번 눈물을 퍼 온 무늬가 온몸에 새겨진다

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춤이 천천히 발끝을 내님다

꽃향기가 반짝이는 순간,

단 한 번의 날갯짓을 위해

안간힘으로 몸을 비튼다

연못을 건너가는 노래들의 수런거림

오래 따르던 욕망의 길들이 흩어져 가는

풍경의 한 모서리에서

사랑이여, 얼마나 울었던가

그림자가 허공을 휘청이며 건너가

걸음만 남기고 사라진다

끝끝내 몸 속에서 살던 춤은 몸 밖으로 나왔다

그의 몸은 사라지고 춤만 거기 남아서

생의 가장 눈부신 날개를 햇살에 말리고 있다

 

* 이매방(1927~2015) 목포 출생의 한국 전통 춤 거목, 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

 

 

 

 

[남도작가상] 목포, 울컥 그리운 / 김옥구

 

 

1. 째보선창

 

할매는 두 손에 바다를 키운다

퍼덕이는 아침부터 간간한 저녁

할매는 바다를 끌어다 선창에 풀어 놓는다

 

물혹 같은 낮달이 짭짤하게 뜬 하늘

칼질 당한 하루도 지느러미가 잘리고

칼날이 수평선도 그었나

핏물 배는 저녁

 

2. 용꿈여인숙

 

주전자 가득 끓던 멀미가 살던 곳

말 한마디 없이도 서로의 눈빛을 잃고

눅눅한 이불을 당겨

누추한 꿈 덮어준 밤

 

목매달던 첫사랑 이름을 적어둔 벽

봄은 가고 먼 곳의 그대 아무렇게 늙어가도

언젠가 당신과 내가

한 번은 머물던 방

 

3. 김우진

 

축음기 속 그대 노래, 밀물에 부서진다

내 삶에 세 든 당신도 참 오래 견뎌냈구나

눈이 먼 사랑 하나가 서늘하게 밟는 음역

 

지금은 야윈 달빛을 이불처럼 덮는 시간

심금 뜯는 수평선이 빗방울 튕기면

이제야 바다를 건너는 파도의 맨발, 맨발들

 

 

 

 

[심사평]

 

전국전남의 예심 통과작 총30편을 숙독하였다. 각각 세편 씩 모두 열 분이었지만 누구의 작품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선고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11회의 연륜도 있었지만 예심으로 걸러진 작품은 시적 역량이 탄탄하고 세련되고 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 소재가 남도의 자연과 역사, 문화 등으로 제한된다는 점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다소 작위적이거나 답답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상당수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의욕이 앞서 주제나 소재가 서정적으로 잘 육화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응모된 작품 중에 주목이 되는 것은 나비, 우화를 꿈꾸다, 목포, 울컥 그리운, 바지락을 읽다, 세발낙지, 목포 먹갈치등이었다.

 

이 다섯 분의 작품은 모두가 개성이 있고 나름대로 시적대상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고 있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바지락을 읽다에서는 독자의 호응과는 다르게 시적대상을 너무 의도화하여 이끌려고 한 점(“우중의 중심, 이곳으로 모여든다” ), 부자연스러운 비유와 서술형 어조의 단순한 처리 등이 거슬렸다. 세발낙지의 작품은 시적 상상력이 다소 부족하고 이완된 긴장감이 문제가 되었고, 목포 먹갈치서술형 어조의 반복과 과거형, 시적 역동성이 다소 미흡한 점이 문제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나비, 우화를 꿈꾸다를 본상으로 목포, 울컥 그리운를 남도작가상으로 결정하였다.

 

나비, 우화를 꿈꾸다의 작품은 전통춤의 거목인 한 사람의 생애를 우화를 하는 나비의 형상으로 비유하며 그 표면 뒤에 내재하는 고뇌와 예술혼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묘사에서 진술로 넘어가는 과정과 마지막의 효과적 여운 처리가 수많은 절차탁마의 결과임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목포자연사박물관-공룡우표, 삼학소주또한 시적 상상력과 안정감이 돋보였다.

 

목포, 울컥 그리운작품은 목포의 가장 인상적인 세 부분을 그리고 있는데 <째보선창>에서는 지느러미도 칼질 당한 하루의 삶을 마지막 종장에서 선명하게 잘 처리하고 있다. “문이 먼 사랑 하나가 서늘하게 밟는 음역音域이라든지 파도의 맨발, 맨발들의 표현도 쉽게 얻어진 표현들이 아니다.

 

두 분에게 축하를 보내며 아쉽게 탈락한 다른 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모두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 우리 시단에 좋은 역할을 하는 시인이 되어주길 바란다.

 

본심위원 : 이지엽

 

728x90

 

 

목포의 눈물 / 이인주

 

 

폐허도 한 송이 꽃이다

그 붉고 난만한 꽃진이 자아내는 여흔은

아무나 발할 수 없는 불립문자다

뻘밭 페이지를 넘기면

그녀가 걸어온 길이 태풍 뒤의 고요처럼 누워 있다

한 세상의 끝에서

간단히 뛰어내려본 자만이

그 지독한 사체의 냄새를 향기롭게 맡을 수 있다

누가 뜨거운 자궁을 폐허로 읽는가

어둠이 습자지처럼 스며드는 갯벌

아무도 몰래 부풀다 자결해 버린

한 송이 꽃의 절정을,

그녀를 차고 환하게 승천하는

바람의 눈매가 젖은 광휘로 읽힌다

꽃 진 다음

상처의 배꼽, 밑자루로 받쳐 올리는

가없는 눈빛

다가가는 모든 위무의 손을 부끄럽게 하는

폐허 위에서는 함부로 흩날리는 꽃잎을 노래해서는 안된다

헝클어진 풍경을 오독해서도 안된다

다만 눈을 감고 끝없이 펼쳐지는 뻘밭 문장을 맨발로 느껴야 한다

그녀가 가르치는 저 뭉클한

포복의 예의를 제대로 읽는 인간이라면

 

 

 

 

백매도

 

nefing.com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2회 목포문학상시부문 예비심사평

 

예심위원 박성민(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최금진(창작과 비평 등단)

 

266명 시인들이 보내온 2,656편의 작품들은 원고지에 적은 육필원고부터 A4에 칼라로 인쇄한 원고까지 다양했으며, 그중에는 십대 청소년들의 앳된 목소리와 인생 황혼에서 길어 올린 깊고 고요한 목소리까지 들어있었다. 접수번호와 작품만 주어진 상황에서 50여명을 선정하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가장 먼저 탈락한 작품들은, 과거의 경험을 여과 없이 옮겨 놓아 감정절제가 없는 시들, 새로운 인식과 발견의 기틀이 마련되지 않은 소박한 서정시들이었다. 이들은 일차적 의미 소통의 부재와 더불어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었다. 앞서 도달한 선배시인들의 시적성취를 넘어서려는 고군분투를 엿보고자 하는 것이 모든 대회 심사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때문에 언어적 실험을 앞세웠으나 그 근거가 부족한 추상적 작품들도 심사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실험이란 기존의 것을 극복하는 것인데, 이미 이러한 시도는 제자리를 반복해서 답습하고 있고, 그것은 권력화 되고 있으며, 그럼에도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을 다시 윤독하여 10명의 본선 진출자를 골라내는 일은 매우 지난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소 부족해 보여도 힘든 삶을 자신의 문학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건강한 작품들과 새로운 도전 정신이 엿보이는 작품들을 뽑았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심사자들의 맹목과 편견이 없진 않았겠으나, 좋은 시는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스스로 우리에게 정서적인 충격과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법이다. 어떤 분이 당선이 되고 어떤 분이 낙선하든, 예심을 통과한 열 분 모두는 지금까지 끌고 온 자신의 문학적 성취들을 끝까지 추구해 나갈 것이라 믿을 만한 분들이었다.

 

심사를 마치고 나와서 바라본 목포의 저녁 바다에는 은갈치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반짝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만난 반짝이는 언어들이었다.

 

 

 

 

초충도:이인주 시집

 

nefing.com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2회 목포문학상시부문 심사평

 

참신한 시적 변용

응모작들의 수준이 예상 외로 높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모하는 문학상의 응모작들의 그만그만한 수준을 익히 보아왔던 나는 이번 <목포문학상>에 응모한 작품을 읽다가 깜작 놀랐다. 웬만한 문학잡지의 신인 등단작보다도 더 짜임새 있는 구성과 탄탄한 시적 역량을 맘껏 발휘한 작품이 많아서 당선작 한 편을 선택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당선작으로 뽑힌 목포의 눈물(접수번호 82)은 일견 진부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참신한 시적 변용을 통하여 작품의 배경에 서사적 요소를 장치하면서 뭉클한 생의 깨달음을 알맞은 어조로 담아내고 있다. 이분이 보낸 칼바위 풍란이나 개짐을 빨다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어서 오랜 각고의 시적 수련을 쌓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시를 쓰기까지 남모를 한숨과 눈물을 많이도 흘렸으리라.

 

차상위작으로 뽑힌 푸른 송곳(접수번호 78)도 절제된 언어와 시적 긴장을 통하여 빼어난 시적 성취를 획득하고 있다. 이밖에도 호박(접수번호 91), 지지리궁상(접수번호 236)등을 응모한 분들도 만만치 않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본심위원 오탁번(시인, 고려대 명예교수)

728x90

 

 

해녀 / 한수남

 

 

혼백상자 등에다 지고

가슴앞에 두렁박 차고

한 손에 빗장 쥐고

한 손에 호미 쥐고

한 질 두 질 수지픈 물 속

허위적 허위적 들어간다

이여싸나 이여도싸나

 

섬에 와서 노래를 배웠다. 민박집 주인 할매는 죽은 할머니와 여러 군데 닮았다. 담배도 잘 피우고 욕도 잘하고 이여싸나 이여도싸나 큰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방바닥 장단을 두드리더니 숭한 년, 옆집 살던 과부 욕을 해댔다. 고데구리배 그물이 몸땡이 감아드는 줄도 모르고 젊은 것이 욕심을 부렸다고, 해삼이고 전복이고 소라고 하나 더 따믄 뭣에 쓸 거냐고, 온 동네 발칵 뒤집힌 사연 날수를 헤아리다 아껴둔 소주병을 꺼냈다. 홍합을 까먹으며 매운 소주를 마시며 섬에 온 지 사흘째 나던 밤이었다. 네일 아침배로 어서 떠나라고 육지가시네 갯바람 들면 탈난다고 해놓고 뜨건 국물을 자꾸 부어주고 있었다. 열여덟에 시집와서 어언 오십년 물질 안하고 놀면 몸살 나는 내력을 조곤조곤 털어놓고 있었다. 비닐장판이 익어가는 아랫목 스르르 잠이 들면 꿈에서 꼭 이어도를 볼 것만 같은 밤이었다. 낭창한 허리에 볼그족족 뺨이 붉었다는 그 젊은 과부가 살고 있을까 이여싸나 이어도싸나 마당가 빨랫줄에 걸린 검정 고무 옷도 휘잉 휘이잉 슬픈 노래를 부르던 밤이었다.

 

 

 

 

 

 

 

[심사평]

 

쉬워서만이 아니다.

 

다른 작품들이 거의 예외 없이 너무 빠른 이들의 짱구 돌리기나 너무 늦은 이들의 詠物詩차원이어서 지겨운 탓만도 아니다.

 

현재 우리시의 가장 큰 문제점인 다음 세 가지에 대해 자의식을 우선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점, 몇 마디 하겠다.

 

첫째, 노래와 줄글이 함께 있다. 물론 그 자체로서 온전치는 않다. 그러나 기왕의 전통 音譜律지옥이라는 폄하까지 곁들여 대책 없이 내던지고 줄글로 무장해제하는 것에 대한 경계와 자각이 분명히 깔려 있는 점은 우선 중요하다. 산문이 혼돈 그 자체는 아니다. 散調에도 本疾이라는 미학적 규범의 조건이 분명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국권상실과 함께 이미 있었던 이른바 허튼소리의 전통까지도 다 잃어버린 점이다. 사설시조로 봐도 한양가에는 노래와 줄글의 엇섞임이 있다. 이런 엇섞임이나마 되살리고 싶은 의지가 은연중 서려있는 점 때문에 감히 당선작으로 고른다. 겉으론 줄글이지만 그 밑에 서양식 비트가 집요하게 거늘려 있는 요즘의 시유행 따위는 도무지 봐줄 건덕지가 없다. 그리고 은 특별히 성교소리(voice of sex)’라고 부른다. 높낮이도 없는 평균적인 퉁퉁퉁과 왔다 갔다 뿐이니 애당초 지루하다. 성교도 사랑이 있을 땐 높낮이는 상식 아닌가!

 

지금 우리시의 제일 명제는 새 차원에서 들숨 날숨의 장단을 회복하는 것이다. 장단위에서 그 나름으로 줄글이다. 박둥을 잡아야만 바람직한 요즘의 엇 그늘이 생기는데 해녀는 일단 그 소망에 접근하고 있다.

 

둘째, 분명 민중시 계열임에도 남성 코드가 아닌 여성적인 바다감성이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오는 여성중심의 음개벽에서 매우 중요하다.

 

셋째, 머지않아 흰 그늘의 네오, 르네상스는 시산기의 상식이 될 것이다. 그 전제가 지금 대유행중인 色魔性에서 惡魔性에로의 검은 그림자 이동 현상인데 바람직한 것은 그 검은 그림자말고 툭 터진 열과 색정의 세계, 그야말로 흰 그늘일 것이다.

 

해녀들의 그 큰 엉덩이의 숭한 이나 낭창한 허리에 볼그족족 뺨이 붉은 젊은 과부등의 그 칙칙한 색정의 그늘은 이여싸나 이여도싸나의 저 새하얀 신비의 섬 이어도의 투명한 빛과 융합된다.

 

15세기 피렌체 르네상스의 미학적 열쇠말은 어스름한 저녁 그늘 속에 문득 솟아오르는 흰빛인데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말의 부정적 출처가 다름 아니라 당대한 젊은 시인의 다음의 시 구절이었다는 사실이다.

 

흰눈부심을 거느린 검은 악마들의 시위마지막으로 해녀玄覽性(여성스럽게 아기스러움)이 앞으로 큰, 목포문학의 큰 미덕이 될 것이다.

 

- 심사위원 : 김지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