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랫동안 사용해서 그의 육체는 낡고 닳아 있다.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과 폐에서 가르랑가르랑 소리가 난다. 찰진 분비물과 오물이 통로를 막아 바늘 구멍처럼 좁아진 숨구멍으로 그는 결사적으로 숨을 쉰다. 너무 열심히 숨을 쉬느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숨이 차면 자주 입이 벌어진다. 벌어진 입으로 침이 질질 흘러 나오지만 너무 심각하게 숨을 쉬느라 그것을 닦을 겨를이 없다.
밤이 되면 숨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목구멍에서 그르렁거리는 낮은 소리는 때로 갑자기 강해져서 거목을 뽑고 지붕을 날려 버릴 것처럼 용틀임을 한다. 휘몰아치는 바람의 힘에 흔들려 그의 몸이 세차게 흔들리다가 이윽고 가래와 침을 뚫고 기침이 뿜어져나온다. 기침이 나올 때마다그는 목을 붙잡고 컹컹 젖으며 방바닥에서 뒹군다. 몸 속에서 한바탕 기운을 쓴 바람은 차츰 조용해져서 다시 허파에 얌전히 들어앉아 가르랑거린다.
필사적으로 바람을 견디다가 찢어진 비닐 조각처럼, 떨어져 덜컹거리는 문짝처럼, 망가지고 허술해진, 바람을 더 견디기엔 불안한 몸뚱어리를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눕힌다. 조금이라도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불규칙하면 몸 속에서 쉬고 있는 폭풍이 꿈틀거린다. 숨이 바늘구멍을 무사하게 통과하게 하느라 그는 아슬아슬 호오호오 숨을 고른다. 불손했고 반항적이었던 생각들과 뜨겁고 거침없었던 감정들로 폭풍에 맞서온 몸은 폭풍을 막기에는 이젠 너무 가볍고 가냘프다. 고요한 마음, 꿈 없고 생각 없는 잠이 되려고 그는 더 웅크린다.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스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씩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발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지구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이상화 문학제는 문학 공연, 상화 시인상 시상, 특별 전시회로 구성돼 있으며 1부에서 아미 풍물단의 풍물 들놀이를 식전행사로, 상화 추모시 낭송, 초청 성악, 상화 시노래 공연, 창작무용 등이 이어졌고 2부에서는 상화시인상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24회 상화시인상 수상자로는 '태아의 잠' '바늘 구멍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등을 출간한 김기택 시인이 선정됐다. 1957년 안양 출생인 김기택 시인은 중앙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김수영 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올해 상화시인상 수상작은 그의 시집 '껌'이다.
함께 열린 특별전시회에서는 이상화 선생의 시와 서예 작품, 사진 작품을 비롯해 김기택 시인의 시와 서예 작품 10점이 전시되고 있다. 또 찬조 작품으로 염색 공예가 신계남의 천연염색 작품도 전시중이다.
특히 올해는 지금까지 죽순문학회 주최로 시상해온 상화시인상을 이상화 기념사업회(회장 윤장근)주최로 시상하여 문학제의 의의를 더하고 있다.
예심에서 넘어온 이 대표적 시인들의 엄청난 다산성에 놀랐다. 흐드러지게 만발한 꽃밭에 들어선 것처럼 감탄과 기대도 크지만 이 많은 노작 중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단 한편의 시를 뽑아내는 일의 지난함 앞에 걱정이 앞섰다.
어떤 시인의 개별적 시편은 그 자체로 매우 개성적이고 독특한 경지에 도달했으나(시 '별자리''짧은 낮잠' 같은 경우가 특별히 예시되었다) 같은 시인이 발표한 다른 시편들 전체의 수준과 관련지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사실 한 시인이 도달한 시적 성과는 시 한편의 내적 긴장이나 개별적 시상의 높이에 의해 나타날 수도 있지만 결국 한편 한편의 시는 그 시인이 추구하는 시정신의 한 도정으로 다른 시편들의 빛을 받거나 그의 시 작업 전체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해석되고 음미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인들의 놀라운 '다산성'은 때로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전체 후보 중에서 특히 몇몇 시인이 전체 심사위원들의 호의적 평가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가운데 투표에 의해 우선 6명의 후보로 대상이 압축됐다. 그중 4명이 여성 시인이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고, 전체 6명 중 김기택 시인이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
이후 이어진 토의 과정에서 결국 김기택의 시 '어떻게 기억해냈을까'를 수상작으로 정하는 데 전원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 시인은 우리 시단에서 독특한 묘사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보이면서 일찍부터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현상 속에 잠복해 삶의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으면서도 습관에 의하여 무반성하게,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는 폭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힘들을 일정한 거리에서 정밀하게 관찰하며 지극히 고요하고 단정한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대상과 언어 사이에 미묘한 긴장상태를 빚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그로테스크한 힘이나 어두운 현실의 단순한 드러냄에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면 그의 세계를 지배하는 듯한 폭력과 어둠은 오히려 그 사이를 비집고 솟아오르는 연약한 생명의 힘을 더욱 신선한 것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가령 '얼룩''소나무''초록이 세상을 덮는다', 그리고 수상작 '어떻게 기억해냈을까'는 이런 일련의 연약하지만 끈질긴 생명의 힘을 세상 속으로 곧장 뻗쳐 들이밀고 있는 경우다.
여자의 통통 튀는 듯한 웃음이 싱싱한 사과의 둥근 아니마로 되살아나면서 서류뭉치나 빌딩 같은 우리들 현실의 각이 진 아니무스를 땅속에 깊이 뿌리박은 한 그루 거대한 생명나무로 둔갑하게 하는 이 시의 힘은 과연 미당의 힘찬 시정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시인의 젊음이 오래오래 속으로 강건하기를 바란다.
시쓰기는 제가 좋아서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몸이 배고파서 밥을 찾듯이, 목말라서 물을 찾듯이, 내 몸이 원해서 저 스스로 한 일입니다. 내 몸이 그것을 원한 것은 그 안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어둡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 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고 뒤척이며 몸 밖으로 나오려고 용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 없고 형체 없는 생명체가 자신에게 맞는 언어의 형식을 발견하고 그것을 입는 순간, 몸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등단 전의 습작기간에, 몸 밖으로 나온 것은 괴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눈뜨고 보기 힘든 몰골이었습니다. 내 몸 속에서 충분히 숙성되고 발효되지 못한 것들이 직설적으로 배설하듯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제 습작과정은 그것에 이목구비를 붙이고 피부를 입히는 것이었고, 그래서 아주 흉하지 않게 되었을 때 겨우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 속에 든 것들에게 햇볕을 쪼이고 바람을 맞게 한 것이 지금까지의 제 시쓰기입니다.
내 몸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시쓰기는 자족적인 일이지만, 그러나 자족적인 일이 되지 않을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처음 시를 쓸 때의 절박함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나니, 그 동안 써온 시들이 하나의 관습이 되어 지금까지 달려온 관성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관성의 속도가 자기에게 편승해서 손바람을 날리며 쓰기를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시가 안 써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저는 “쓰지 않는다”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내 박약한 의지와 우유부단과 그것을 합리화해 줄 여러 사정에 의해서 억지로 쓴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써지지도 않고 그래서 꽤 오랫동안 쓰지도 않아서 이러다 정말 시를 못 쓰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될 때도 있었습니다. 먹고사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아예 시가 계속 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삐딱한 생각을 하면 갑자기 시가 솟구쳐 나와서 아슬아슬하게 시인의 이름을 이어가곤 했습니다.
이번 상을 받게 된 시집인 《소》의 ‘시인의 말’에서 저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너무 건조해서 불면 먼지가 날 것 같은 머리와 가슴. 도저히 시가 나올 것 같지 않은 그곳에서 그래도 시가 나오는 이유는 끊임없이 몸을 물고 늘어지며 뒤척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 지루하고 답답한 삶의 압력이 강제로 상상력을 분출시키기 때문.
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미 제 몸은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는 물기가 다 말라버렸습니다. 도시와 아파트와 자동차와 온갖 편의시설이 없으면 하루라도 살 수 없을 만큼 몸은 도시문명에 오염되었고, 많은 본능적인 감각들이 퇴화되었고, 자연과의 친화력은 거의 상실되었습니다. 제 몸은 시를 쓰기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불구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시가 나오는 제 몸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제 몸 속에, 어두운 곳에서 나오고 싶어하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괴물이든 자신에게 맞는 형체와 이름과 언어를 부여받고 싶어하는, 갇혀 있는 생명체가 있어서 그것이 햇빛과 바람이 있는 곳으로 나오려고 하기 때문에 시가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들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저희들의 필요에 의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내 상상력을 압박하여 몸 밖으로 강제로 밀고 나오는 것입니다.
시쓰기는 자족적인 일이니, 쓰는 행위 자체가 자신으로부터 상을 받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송구스럽게도 여기에 더하여 상을 하나 더 얹어 받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보잘것없는 일에 ‘지훈’이라는 큰 이름으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을 받게 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제 시의 왜소함, 부족함, 시에 대한 저의 소극적인 자세가 갑자기 눈에 확 띄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이 지훈 선생님의 투명하고 엄격한 눈앞에서 다 들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제 시를 보는 눈과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저에게 큰 격려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훈문학상이 저에게 주신 반성의 뜻과 격려를 다같이 기쁘게 받겠습니다. 그것들로 새로운 용기를 제 몸에 수혈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격려해 주신 세 분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이 상을 제정하고 운영하시는 나남출판사와 지훈상 운영위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심사위원들은, 지난 2년 동안에 출간된 모든 시집들을 심사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지훈문학상의 규정을 염두에 두면서 이 시기 안에 발간된 김기택의 《소》와 박형준의 《춤》, 이정록의 《의자》를 중점적으로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기택은 사물에 대한 독특한 관찰과 치열한 탐구정신을 지속적으로 보여준 점에서, 박형준은 경쾌한 상상력의 전개와 현대적 서정성을 조화롭게 연결시킨 점에서, 그리고 이정록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개성적인 표현방법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모두 수상자가 될 만한 시인들이라는 데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한 사람의 수상자를 정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김기택의《소》를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시적 진실을 엄정히 추구했던 지훈 선생의 문학정신에 제일 가까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김기택의 《소》는 도시적 삶의 비인간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비관하거나 절망하는 어조를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도시생활의 이모저모를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의지로 관찰하는 가운데, 일상인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새와 나무, 평범한 동물과 미세한 벌레의 움직임 혹은 생명력을 통해 우리의 삶과 현실을 냉정히 반성하고 희망을 찾으려 한다. 이러한 이성적 반성의 노력과 희망의 의지뿐 아니라 이 시집을 관류하고 있는 긴장된 시적 정신과 진실에의 강한 열정도 예사롭지 않은 시인의 미덕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발간된 지 1년이 지난 이제 뒤늦게나마 이 시집에 지훈상의 영예가 돌아가게 된 것을 기쁘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