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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침엽의 생존방식 /

활엽을 꿈 꾼 시간만큼 목마름도 길어
긴 목마름의 절정에서 돋아난 가시들
침엽은 햇살도 조금 바람도 조금
마음을 말아 욕심을 줄인다

대리운전하는 내 친구 금자
밤마다 도시의 휘청임을 갈무리 하는 사이
보도 블록 위에 포장마차로 뿌리 내린 민수씨
그들은 조금 웃고 조금 운다
바람 속에 붙박혀 시간을 견디는 일이
침엽의 유전자를 가진 자들의 몫이므로
뾰족이 가둔 눈물이 침엽의 키를 늘이고
세월을 새겨 가는 것

그들의 계절에는 극적인 퇴장
화려한 등장 따위는 없다
한가한 날 고작 흰 구름 몇 가닥 바늘 끝에 걸쳐두거나
흐린 겨울 하늘이 너무 시릴 때
눈꽃으로 피사체를 만들어 보거나

혹한의 계절에도 홀로
숲의 푸른 내력을 지키는 건 침엽이다
그들의 날카로운 생존방식이 숲을 깨우고
바람의 깃털을 고른다
햇살도 이 숲에선 금빛으로 따끔 따끔 빛난다







[은상] 은행나무의 안부 /

우편배달부는 내가 사인을 하는 동안에도
흰 봉투에 새겨진 길을 살피느라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건네 준
은행잎으로 만들었다는 푸른 알약들
안부를 묻는 지인의 손길처럼 싱싱하다
몸 속 오지의 좁은 길까지
큰 혈관으로 혹은 미세혈관으로
길을 터준다고 했다
요즈음 나는 가끔씩
자주 다니던 길 위에서 헤맬 때가 있었고
가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했다
굽은 길 위에 서 있던 우편배달부도 돌아간 어둑 저녁
은행나무 아래에 선다
푸들푸들 바람 비벼 나누는 인사
잎 잎으로 뻗은 손 흔들고 있다
동서남북 흩어진 지구인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져
이 저녁 나는
키 큰 한 그루의 여름 은행나무로 선다







[은상] 바람의 본적  / 류명순

바람의 신경은 온통 깃발에 쏠려 있다
모든 걸 흔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바람의 입이 물고 흔들어대는 저 초록의 산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날개들이 있다
벼랑 끝에 서서 암 덩어리처럼 뭉쳐진 소나무를 보았다
전신에 바늘이 박힌 채 하늘 향해 흔들리고 있었다
몇 만 번의 흔들림으로 나이가 먹었을 그 소나무
수많은 바늘을 꽂고 호젓이 저물어 갔다
바람의 본적을 묻고 싶다
내가 모르는 어느 별에다 호적을 두고 온 것인지
히말리아 보다 몇 배의 습곡이 되었을 바람의 역사
나의 날은 늘 흔들림의 날들이었다
낮 달처럼 그림자도 없이
그렇게 바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망치도 없이 등이 휜 여자의 늙은 뼈에
수 천 개의 구멍을 뚫은 바람
나도 오래된 무처럼 바람이 들기 시작했다
본적이 어디인지도 모를 그 바람을 쫓아
어석어석 살아가야만 했다

 

 




 

[동상] 봄날, 코스모스를 심다 / 최연숙

텅 빈 봄
안개 넘어 한 줄기
기다림의 빛을 끌어당기며
오늘 코스모스를 심는다
더디게 이파리들 키워
꿈이 되지 못한 커다란 생명들
위로처럼 왔다가고
지글거리는 한낮을 숨죽여
우주의 시계가 세시쯤 되면
가는 목 세워 바라볼 하늘에
둥글고 빛나는 그것과
눈 맞출 수 있어야한다
뚫린 가슴에
바람이 둥지를 틀 무렵이면
작은 저것 어쩌면 제 몸만큼
작은 내일로 피겠지

기다림으로 피겠지






[동상] 붉은 칸나가 필 때쯤 / 최현임

햇빛을 한 잔의 맥주처럼 잔뜩 들이 킨
붉은 칸나가 길섶을 휘휘 저으며 비틀거리고 있다.
누군가 뜯다 내버린 붉은 칸나 꽃잎이
상처에서 흘린 핏빛처럼 처연하다.
그는 앞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빙글빙글 돌아 공중으로 분해 되었다.
자꾸 붉게 올라가는 꽃대만 망연히 바라보고 싶었다.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는 대신 꽃의 주름만 만지작거렸다.
소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지상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 생에 단 한번뿐일까? 골똘히 나는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붉은 칸나는 꽃 위에 꽃을 더 자꾸 피워 올리고 있었다.
온몸으로 화들짝 감각이 불타올랐다.
잊은 지 오래된 정념의 깃발도 다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불혹의 나이에 난파된 배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이려니 수긍하기로 했다.
내가 흔들리다 부서지기 전에 그는 날개를 달고 떠났고
나는 그를 더 이상 흔들지 않기 위해 침묵했다.
붉은 칸나가 피는 계절이 오면
오래된 이야기 가슴에서 비워내지 못해
한 잔 술에 거나해서 거리를 갈지자로 걷는다.
붉은 칸나를 만나면 꺼이꺼이 울기도 한다








[동상] 커피는 희랍어로 말 걸어온다 / 서희자

몇 주, 가뭄 든 정서에 가랑비가 내리더니
감색 숄 걸친 나무 한 그루의 분위길 깔고 있다
저리 곱게 물들려면 얼마큼 내공을 쌓아야 할까
삶의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가지끝 바람이 차다
마술 주전자가 딸깍 딸깍 연기를 뿜어 올리자
안개 속의 여객선 한 척! 내게로 온다
블랙박스를 구호품인 양 챙기는 사이
맨하탄 시가지가 떠오르면서 티파니의 아침은
몇 모금의 환유처럼 달콤했다 역마살 낀 그 시절도
알고 보면 고뇌를 우려 낸 커피 색이다
어느새, 검게 물들기 시작한 지중해
내 고달픈 여정도 정박을 꿈꾸는가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피라밋!
그 슬픈 신화를 넘기는 순간
뜨겁게 달군 일상이 금새 식어버렸다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최복임 "물의 책 "

  

이제 막 깨어난 바람이 기지개를 켰다
공중에 흩어져 있던 어깨를 추스르자
섬 사이로 뻗어있던 다리가 돌돌 감겼다
물떼새가 물고 온 눈망울, 등대위에서
밤새 바다를 밝히느라 핏발이 서 있다
바람은 외눈을 끼워넣으며 음색을 고른다
처어얼썩 쏴아
처어얼썩 쏴아
구름이 잠시 쉬어가려는지 웅크린 짐승으로 변하고
태양도 두꺼운 외투를 벗으며 그를 본다

물의 한 페이지가 열리고 있었다
온통 푸른 여백이었던 그 책의 서문은
햇살로 뒤범벅된 문장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뒤틀다 공중에서 그네를 탔다
달려 온 포말들의 순서 없는 목차
수면 위 떠있는 동그란 입술들의 군무
보글보글, 작은 거품을 내놓으며
깊은 바다 속에서 떠돌던 이야기들을 적기 시작했다
새들의 날개로 버무린 공기에 취해
폭풍의 밤, 심해의 절벽으로 떨어졌던,
먼 바다로 나가 어부들의 노래가 되고
결국 바람의 한쪽 무늬가 되었다던 이야기.

물 위로 떠오른 해파리떼, 삽화가 되어
모든 귀를 열고 책속으로 파묻힌다
호기로운 바람의 목소리가 먼 해안까지
그 이야기들을 실어 날랐다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윤승원 "목련을 도배하다"

 

 

갈라진 벽의 틈새
샛바람이 누수처럼 스며드는
셋방에 앉아 도배를 한다

덜컹거리며 창을 넘어오는 4월의 햇살로
초벌을 바르고 그 위에
닥종이 언더웨어를 입히고

더 이상 근심 들지 말라고 목련꽃 피어난 두터운 실크벽질 바른다
그 때마다 종이옷 당겨 슬그머니제 궁핍을 덮는 벽

공중으로 화르르 흰 슬픔들 피어나고
벽 너머로
어깨가 젖은 한 마리 짐승 우는 소리
겹겹의 벽지로 가난을 가려보지만 바르고 또 발라도 어찌할 수 없는 것들

풀 묻은 눈자위 같은 여자가
갓난 것 들쳐 업고 언 골목을 뛰어간다
낡은 천정에서 떨어지던 빗방울 같은 절망과
붉은 딱지 붙은 방에 혼자 앉아 울던 두려움과

조금은 환해진 슬픔으로 덕지덕지
시간의 남루를 도배한다 목련 피는 계절에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장선희 "옥탑방 애벌레"

 

 

행거에 걸린 아침 햇살
트럭에 실려온 짐처럼 칭얼댄다
창문 앞에 더께 놓은 헤진 보따리
숨기지 못한 가파른 호흡이 여기저기
소금꽃 피워 물고 있다
벽에 핀 곰팡이가 눅눅해져야
옥탑방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오래 묵은 어둠이 부르튼 손가락처럼
휘휘 라면을 젓는다
창문 흔들며 안부 전하는 겨울바람
아득한 옥탑방 사람에게만 밤은
액정화면 같은 창문에 별문자를 찍어보낸다
칠 벗겨진 뿔테안경 벗으면
듬성듬성 흐릿한 아랫마을 불빛
밤에만 생기는 옥탑방 정원이다
라면 국물로 데워진 온기 속으로 몸 구부리는 사내
사다리 타고 하늘로 오르는 꿈을 덮은
두 겹 세 겹의 홑이불 속에서
동그르 말리는 그의 몸
멀리 날아갈 날개를 만들었는지
자고 일어난 허공 한 쪽이 둥그스름 부풀어 있다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하미숙 "아버지의 내시경"

 

 

아버지는 홀로 낙타 한 마리를 키웠다
낙타는 사막을 지날 때
제 스스로 발바닥의 온도를 높인다
내성이 생겼다는 얘기다

아버지의 병은 내성이 원인이었다.
살을 파먹은 균들이 지친 노구를 떠다니는 동안에도
견딤으로써 병들을 키워왔다.
깨진 유리조각들이 내장을 돌아다니는 동안
속으로 수없이 많은 상처가 생기고 스스로 딱지가 되었을 것이다
유리 조각 하나가 허파에 걸렸다
큰 기침 한 번 소리 내지 못한 허파는 꽈리 열매처럼 쪼그라들었다
거친 음식으로 평생을 되새김질 했을 위와
아버지가 수없이 넘나들던 망죽골 어스름 저녁길 처럼 구불구불한 속
모두 견딤으로써 이제 건널 수 없는 강으로 아버지를 내몰았다

사막을 다 건넌 낙타는
제 스스로 발바닥의 온도를 낮춘다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조정옥 "소나기"

 

후다닥 햇살이 도망가는 틈
흙냄새가 먼저 왔다
허기진 입은
퍼붓는 비를 담아 국수를 말아 먹는다
골목으로 숨어든 흙냄새를 따라
흑백 사진을 찍는다
국수를 둘둘 말아 먹는 아버지
낡은 평상에 앉아
메마른 심장을 펌프질한다
꾸역꾸역 흙탕물을 뱉어
곪은 상처를 털어낸다
한바탕 비는 하수도를 비우고
말간 물이 평상으로 튀어 올라
웃고 있다
아버지 마른 어깨가 들썩인다
아카시가 폈다
찰칵
무채색이 된 얼굴 하나
사진 속으로 숨는다
후다닥
비가 지나간다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이지은 "산딸기"

 

바람이 지나간 야산자락
영혼을 헛디뎌 누워버린 가지
고난의 발아(發芽)에도 빨간 별들이 다투어 뜬다
하나씩 별을 딸 때 마다 옛일도 지워지고
제 몸을 위장할 줄은 아는지
가시를 세운다는 것은 진한 그리움이라 했든가
그리 시지도 달지도 않은 퇴색된 시간
어렴풋한 옛사랑을 기억해낸다
기억의 뒷맛도 가시 같아서
더러 상심의 끝을 찌르기도 하고 씁쓸하다
무엇인가 되짚어보니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서 방황하던
산 그림자의 냄새가 배어있다
별 나무 가지에
무수히 엉기어 있는 산딸기의 칡넝쿨순은
하늘을 향해 아픔을 토하고
살갗에 기록한 생채기로 더 단단해져
어느 쪽으로 향할지 공중의 길이를 재고 있다
별들의 가지엔 가시가 너무나 많다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유경희 "자벌레"

 

힘 좋게 달라붙는 햇볕을 피해
나무그늘 아래 앉았더니
자벌레 한 마리
내 몸에 내려와 치수를 재고 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정확하게
한 자, 두 자, 석 자
오므렸다 폈다 반복하며
거리를 가늠하고 있다
돌아가지 못하는 순간
가늠하던 거리를 잃어버리고
제 몸을 접고 접어 허방을 짚는 자벌레
얼마쯤 더 가야 접을 수 있을까
허방 위의 삶을 더듬는 자벌레
온 몸으로 지나온 길 가늠하며
돌아가지 못하는 순간을 바라보고 있다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박선영 "붉은 열매의 남자"

 

키 작은 남자가 성벽을 쌓고 있다
높은 성벽을 타고 담쟁이 넝쿨이 기어오르자
남자는 더 높이 벽을 쌓아 올렸다
꽃향기가 성벽에 부딪쳐 흩어지자
성벽 안은 남자의 땀 냄새로 가득 찼다
남자는 그 곳에서 습기 머금은 바람을 맞으며
붉은 열매들을 찾아냈다
남자는 붉은 열매를 따서 모으기 시작했다
붉은 열매들이 화살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가자
남자는 붉은 화살을 힘껏 날렸다
붉은 열매가 시들자
화살 날리던 남자의 손은 사막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파도 냄새가 역겨운 아침이면 남자는 헛구역질을
뱉어내며 마른 모래에 빨갛게 부푼 혀를 널어 두었다
밤이면 사막의 성을 빠져나와 바닷가 풀숲으로 들어가
애절한 몸짓으로 물새의 울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깊은 여름 끝,
남자는 담쟁이 넝쿨보다 길게 성벽을 타고 내려와
날개가 채 돋지 않은 물새가 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 풀숲에 둥지를 틀었다
남자는 숲 안에서 동글동글한 바람 소리로
온 몸을 헹궈내며 크고 반듯한 날개가 돋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조진영 "오월, 새들을 위하여"

 

한낮의 허리를 올라타고
나, 오월의 산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방인에게 바람은 충고 합니다
산 밖에서 가져 온 금속성의 비늘들은 떨어내라고
커다란 신발은 잠시 벗어 두라고

 

고요의 시간
붉은 흙덩이들이 푸른 나무의 정액을 들이마시면
아직, 어린 풀들은 파르르 몸을 떨고
하늘은 눈물보다 맑은 비를 내립니다

 

 나,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 주워
해가 보이는 곳에 발바닥만한 구멍을 만듭니다
새들을 위해,
새들의 기억을 위해
여기 작은 무덤 하나 마련합니다.

 

 이제 내가 사는 곳으로 내려갑니다
아직, 매달려 있는 금속성이 찡찡 우는소리를 하고
바람은 옷깃을 붙잡고 그것들을 데려가라 합니다
새들의 눈물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집니다

 

 

 

제9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가작

 

  김균옥 "이별후"

 

 나비를 본 적이 있나요 사막을 이륙하는 바람이 뚫고 간 날개가 뒤틀려 중심이 흔들리던 만화경 속의 햇살처럼 찬란하던 등뼈를 나비의 얼굴이 창백한 발가락 같아요 눈빛이 사라진 당신 날개를 흔들고 싶지만 찢어진 동맥의 줄기가 뚜뚜 신호음만 보내요 정지선을 밟고선 나는 꿈속을 빠져 나온 강아지처럼 꼬리를 둘둘 말고 어둠과 맞서야 해요 온힘을 다해 떠받치던 팽팽한 현이 뚝 끊어져 지평이 무너지고 아아 울어야 할지 몰라 아틀라스의 어깨에 얹힌 하늘이 가벼워져요 직류처럼 흐르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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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주전리 바다 / 정명옥

 

어이, 오늘 바다가 참 가벼워
남편은 낚싯줄 휘리리리 던져 손잡이를 걸어놓고
내게 바다를 통째 들고 있으라는 거야
네 알았어요 바다가 참 가볍네요
쉿 조용히 해 야광찌는 고기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초인종이야
햇살 쓴 물방울들만 입질을 하고
이윽고 들고있던 바다가 기울이자
옥수수만한 고기들을 쏟아낸다
오래 전 팔아먹은 결혼반지도 함께 딸려 나오고
어이, 바다를 놓아버려 고함친다
파도는 뜨개질하듯 손놀림하고
얼른 바다의 뚜껑을 닫는다
별을 품은 칠성어들의 가장 배고픈 시간은 말이야
새벽 안개가 몰려올 때지
그때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나는 바다를 들었다 두둘겨보다가 이글거리며
누워서 보는 바다는 스테인리스 주전자 같고
불룩한 속 두우둥둥
주전자 안으로 흥건히 고여드는 핏물
서쪽 어디에선가 비명내지르며 거둬간다
어이, 이봐 낚싯줄이 암초에 걸렸나봐 어서 좀 풀어줘
대뜸 주전자 안을 뛰어들자
낚싯바늘에 내 아가미가 걸려든다

 

은상

 

어머니의 바다 / 김후자

 

어머니의 옷에서는 늘 어물전 냄새가 났다
다리 서너 개를 숨기고 다니는 몸빼바지는 고무장화 속에 갇혀
시퍼런 바다 안을 헤집고 다녔다
거뭇거뭇 해질녘이면 살아서 펄떡이는 비린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어머니를 피해 다녔다
모로 누워있는 어머니는 생선을 닮았다
속은 다 내주고 텅 비어버린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의 곱고 보드라운 살만 골라내 맛있게도 먹었다
젓갈골목 어시장엔 퉁퉁 부은 빨간손의 어머니가 있다
울긋불긋 앞치마주머니 가득
불록한 희망을 구겨넣으며
일년이 가도 풀리지 않는 머리에 펑퍼짐한 몸
지나가는 사람 발길 잡아채는 입심 좋은 울진댁이 있다
둥근 나무도마 위에 듬성듬성 바다를 토막치며
한평생 간기에 젖어있는 섬
아직도 푸릇푸릇 살아나는 연탄 옆에 끼고
종이컵 가득 출렁이는 갈색바다
훌훌거리며 몸을 녹이는
제 몸이 바다가 되어버린 어머니가 있다

 

은상

 

배꽃 종착역 / 안성은

 

배꽃에서는

가지마다 쪽쪽 키스 소리가 난다

퍼런 찬바람은 아직

환승도 못한채,

지하철 2호선에서 빙빙 맴도는데

달의 입김을 닮은 배꽃

토라진 입술을 삐죽 내밀 뿐이다

배꽃은

갑자기 퉁, 하고 제 얼굴을 드러낸다

나무 아래서 놀던 꼬마들

깜짝 놀라 배를 뒤집고 넘어지고

노란 열매도 어느새 둥굴어져

퉁, 하고 몸을 놓아버리고

퉁, 하고 땅으로 구르는 소리

소리, 소리들

 

소리가 모여

퉁퉁퉁, 하고 겨울이 쏟아지고

또 퉁, 하고

배꽃 닮은 아이들 피어나겠지

 

엄마가 사고 싶다던

쿠쿠 밥솥에도 배 꽃잎이 한가득이다

 

동상

 

어머니의 주전자 / 권덕필

 

물이 끓기 시작하면 빼앵 소리나는

두 되 들이 주전자가 있다

제대로 소리나게 하려면 뚜껑을 꼭 닫아야 한다

어제 그 주전잘 또 태워먹었다

되가웃 물이 졸아붙도록

아무 기척 없는 주전자

뚜껑을 절대 닫지 않는 어머니

 

그토록 졸아들도록

어머니에게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 속을 설설 끓이던

뜨거운 생이 휘돌아 나갈 때 까지

어머니는 단지

작은 뚜껑 하나 열어 놓음으로 견뎠으리라

부글부글 끓어 넘쳐

연탄불 다 꺼져도 좋았으련만

이글거리는 콧김 피식거려도 좋았으련만

끓어넘치기 직전 멈춰야 했던 어머니,

멈춘 자리가 웅덩이처럼 움푹 패여 있다

 

주전자 뚜껑이 열려있고

방문이 열려있고

삐그덕 대문이 열려있다

그리로 어머니 조금씩 증발하고 있다

열린 부엌문 사이로 쇠 단내가 난다

벌겋게,

소리없이.

쇠의 생이 졸아붙고 있다

 

동상

 

가을이 오는 숲 / 김순희

 

바람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

엉덩이 살랑대며 오는 너는

너무 헤프다

 

너에게로 가면

길이 있다고 손짓하지만 정작

너 또한 그 길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을까

한 번쯤 먼 길을 돌다가

무연히 발걸음 놓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네가 풀어놓은 바람에 물결이 일고

버스럭대는 나뭇잎

신열에 들뜬 듯 운다

나도 그 옆에서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제야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문을 열고

푸른 입술과 붉은 손등에 입을 맞춘다

 

동상

 

물결을 밀치는 바다소리 / 송정예

 

오후의 시간 등짐 지고 음량 볼륨 최대

봉고차 확성기 재생음 굵게 소금 쳐진 목소리 밀어낸다

확성기 타고 뿌려지는 그녀의 사투리

귓속에서 자꾸만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박음질하듯 문장 사이를 듬성듬성 따라가 본다

분명 노련한 녹음으로

비린내가 풍기는 동해안 어디쯤일까?

항아리에 건더기 없이 곰삭은 멸치

깊숙이 휘저어 시작한 녹음테이프

아마도 시간이 그녀를 많이 끌고 다니느라

멸치의 은빛 비늘이 겹겹이 밀리고

입맛을 다시면 착 달라붙지 않게

담쟁이 넝쿨이 흡착판을 못 붙인 듯

경상도 토박이 말투로 늘어진 군살이 많다

그녀가 마구 흔들며 헤엄치는 음표

대문마저 등 지고 꼭 닫혀 있는 문을 열수가 없다고

경계의 영역만 기웃거리며 허공에 외친다

발에 채이듯 부산하지도 않게

일말의 변명조차 필요없는 삽살개만 으르렁 거리고

축축하게 공친 반나절을 하소연할 문밖에 서있다

멸어치, 담의소, 멸어치

저 오래된 듯 팽팽한 바다

오선의 마지막에 붙는 도돌이표가 몰려나와

이 골목 저 골목 잠시 부유물이 되어

얼룩진 파도로 뒤척거린다

배차시간 같은 간격이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가작

 

 

아버지의 베갯모

 

붉은 비단천위에
밤새워 꿈을 수놓았던 어머니
씨줄 날줄 머물다 간 자리
그곳에 한 땀 한 땀 마음을 새겨 넣었습니다
현과 현사이 시간과 공간 사이
생이 엉키지 않도록 생각을 고요히 내려놓고
그리운 향기 오래 머물도록
안채를 빙 둘러 바람의 출구에 꽃담을 치고
마당 한 편 모란 두어 포기 심었습니다
나비와 벌들 자유롭게 드나들며
지나가는 햇살의 무늬 가득 고이도록
긴 여백 남겨 놓고
그대 가슴 흥건히 젖어오는 노을 빛 만으로
거실 한 켠 액자 속에서 모란이 활짝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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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바느질 / 조혜경

눈내리는 소리가 장독대를 걸어다녔다
문살에 기댄 눈이 살며시 찾아드는
창호지를 한 번씩 바라보며
어머니와 함께 하던 바느질
틀어온 솜은 첫눈처럼 고왔다
아버지의 회색 겹바지는
바람소리가 지날 때마다 뚱뚱해졌다
늘 하얀 실밥이 묻어있던 어머니의 머리카락,
나는 이제 바느질을 하지 않는다
기워야 할 것보다 버려야 할 것이 많아진 나이
제가 가진 배터리의 양보다 늘 과부하된 하루를
소파에 부려놓고 잠든,
남편의 양말 엄지발가락 부분이 뚫려있다
남편의 술냄새로 거실이 이내 텁텁해지고
아이들의 코고는 소리 반갑게 기어나온다
양말을 벗겨 올이 풀린 곳을 본다
그냥 꿰매기엔 뚫린 자리가 너무 큰데
덧댈 양말조각이 없다
바느질 몇 땀에 일그러지는 엄지발가락자리
솔기가 신발에 부딪치면 불편하리라
아이들의 꿈속, 가장 부드러운 한 토막을 떼어
덧대어본다
내일은 왼쪽 오른쪽을 바꿔 신으라고 해야 할지,
남편의 잠이 너무 깊다.

 

 



 

[동상] 꽃길에서 / 최영희

 

햇볕 알갱이들이 따뜻한 흙밭을

톡톡, 뛰어 다닌다

 

굴뚝 모퉁이에 핀 꽃, 잎이

몸을 움츠린다

빛의 그림자는 마당을 성큼성큼 건너갔다

 

자맥질하는 허공에 꽃길이 생겼다

 

뿌리와 뿌리 사이에

돌과 돌 사이에

태초의 얼굴이 피어난 혈흔

하나,

 

온몸을 짜내어도

꽃잎 내지 못한 나를

단숨에 마셔버린 봄이 저 혼자

하늘에서 영글고 있다

 

창공에 걸친손, 끝마다

또 하나 계절이 무르녹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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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풍선 / 이선옥

서랍을 열자 빨간 풍선 하나가 후- 숨을 내쉰다 둥지 속 알처럼 그 누군가의 따스한 꿈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미처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한 알속에는 어둠이 녹아 흐른다 알이 꿈꾸었던 날개가 자라지 못한 채 초승달처럼 기울어진 풍선을 가만히 집어든다 나는 풍선을 불고 싶지 않다 새가 되고 싶어 그 동안 날려보낸 꿈들이 이리저리 찢기고 돌아온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날개를 짜느라 손발이 부르트고 짓물러도 꿈을 키우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었다 그러나 매번 내게 돌아온 것은 구멍난 희망 껍데기뿐이었다

손바닥 위 풍선은 필사적으로 숨결을 몰아쉰다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듯 기울어진 제 몸을 부풀린다 마치 이제라도 날개를 달아주면 아무리 먼 곳의 별이라도 다 물어올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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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우편함 속의 새 / 이영옥

나무로 만든 새장이에요
너무 눈여겨보지는 마세요
둥지 없는 새들이 가끔 알을 낳아두기도 하지요
오늘은 할부금 영수증과
조각난 햇볕이 함께 꽂혀 있네요
알은 따뜻한 햇살 소에서
몸을 부플리고 있어요
복잡한 골목을 따라 바람이 불어와요
빈 저울을 싣고 낡은 트럭이 올라와요
식구들의 생계를 내려둔
저울의 바늘은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네요
소인이 선명하게 찍힌
하루가 배달되었어요
오늘은 알이 깨지고 촉촉하게 젖은 머리가
세상과 만나네요.

우편함 속에는 기다림 대신
햇살과 바람이 가득해요
나무가 자라나고
새가 날아와 울기도 하지요
오늘은 좁다란 하늘 위에
표정을 잃어버린 낮달이 보이네요
우편 적재함 속에는
봉인된 내일이 숨을 죽이고 있어요
이제 곧 새들은 날갯짓을 연습할 거예요
나는 우편함 비우는 연습을 하지요
어젯밤에는
새장 밑으로
어둠이 줄줄이 새어나갔어요

오늘은 우편함이 텅 비어 있네요

 

 

 

 

[은상]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 김혜경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아버지의 자전거를 다시 타고 싶다

 

푸른 추억의 바퀴를 차르르 돌려서

언제나 나무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아카시아 나무 그늘을 지날 때면

저 꽃처럼 향기나는 사람 되라시던 아버지

나는 그 하얀 꽃나무에 기댄

한 마리 참알락팔랑나비였다

 

까르르 까르르 아카시아 꽃들이 바람을 흔들 때면

업무에 시달리던 당신 생도 웃음을 머금은 채

자전거 페달을 밟던 아버지의 다리는 동그란 바퀴가 되었다

 

나는 여태껏 어떤 향기를 풍기며

살아왔을까

세상의 그늘은 아니었는지

 

지치고 상처입은 내 삶이

서러운 날, 나는 보온병에 커피 가득 부어

오랫동안 세워둔 자전거 타고

초록 물결 찰박이는 숲으로 간다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아홉 살 계집아이로 돌아간다

 

 

 

 

 

 

[동상] 자반고등어를 튀기며 / 박정덕

  

뜨거운 해표 식용유를 한가하게 베고

자반이 노르스름하게 몸을 익힌다

기름 위를 굴러다니다 길을 잘못 든 시간 한 토막이

프라이팬 기름 속에 떨어졌다

땀을 송송 흘리던 푸르스름한 자반 등어리는

뒤적거릴수록 울음소리가 커진다

오랫동안 굵은 소금에 절였어도

아직도 절여지지 않는 꿈이 문풍지같이 흔들리며

어느 틈바구니에 매달려 지금까지 아파하는가

무심코 떨어뜨린 내 말들은

누구의 가슴 속을 잘못 열고 들어가

지지지직지지지직

저렇게 자반처럼 타고 있는지

뒤집을 시간을 놓치고

나는 용서의 시간마저 놓친다

그의 가슴 속에서 적당히, 그러나

까맣게 태워버린 생선같이 버려지는 말

깨끗한 식탁 위에 놓을 수 없는 태워버린 말은

음식 쓰레기통에 수북이 쌓이는데

맹렬하게 타오르는 가스불을 끄지 못하고

나는 푸라이팬에 쏟아진 절망 몇 토막을

200℃ 기름 속에서 튀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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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어느 가을날 부르는 희망의 노래 /

가을바람이 미닫이 창문을 덜컹대며
저녁향기를 실어 나르고 있다.
노을빛 찻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 한 잔
투명한 식탁 위에 조용히 놓여 있다.
둥글게 감겨오다 살포시 풀어지는
향기 사이로
어른어른 한 얼굴이 그려지고
다갈색 그 미소
커피향을 넝쿨처럼 타고 올라
한송이 꽃으로 환히 피어난다.

남편의 실직으로 얼마 전 시장 어귀에
생선 좌판을 차렸다는
내 고등학교 동창인 그녀에게선
사실, 향기라 할 수 없는 비린내가
배어 있었다.
나지막한 침묵에도, 체취인 양 깊게
그러나
참아내기 어려운 삶의 이력조차
꽃길을 산책하듯 향기롭게 이야기할 줄 아는
저 지혜를 그녀는 어디서 배웠을까

'커피 한 잔 하고 가지 그래'
우연히 우리가 마주쳤을 때
그녀가 자판기 커피를 내미는 순간
아! 보았네 나는
거칠고 메마른 손등, 그 척박한 大地 위에
야생화처럼 피어 있는 상처들을
순간, 커피향에 코끝이 찡해오고
피할 수 없는 삶의 쓴 잔을 마시듯
채 몇 모금 넘기지 못하고 돌아 왔었네
씁쓸히

어느새 어둠이 창가를 기웃대고
바람의 응얼거림이 더 요란히 부딪쳐 온다
그래, 수요일이다
그녀가 새벽시장을 다녀왔을 요일
팔린 생선 대신 하루의 피곤이
좌판 가득 쌓였을 시간
나는 커피 주전자에 물을 얹고
보온병을 챙긴다
촉촉히 피어나는 추억의 향기를 마주하고
우린 잠시,
우리들의 生이 빛났던 그 시절
플라타너스의 풍성한 그늘 아래서
부르던 희망의 노래
나지막이 흥얼거릴 수도 있겠지
잘 견뎌내자는 어설픈 위로 대신
커피향이 참 좋다고 둘러대면서
아! 보름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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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차를 끓이며 / 한소운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동안

이름 모를 산골짜기

굽이 굽이 말없이 흘러

이리 합치고

저리 휘돌아온

물의 내력을 더듬어 봅니다

 

찻잔 속에

하늘과 구름

가난한 마을과

이름 모를 사람들의 숨소리들

맑게 어릴 때

 

찻잔 속에 가만히

동그라미를 그려 봅니다

 

처음과 끝이 하나인

동그라미 사랑

안과 밖이 없는

또 하나의 우주가

찻잔 속에 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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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커피의 내력 / 박종운

 

[금상] 사랑 / 진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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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찻집에서 / 유춘 

 

어느 바닷가 자그만 찻집에서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정갈한 몇개 목조의자와 말없는 불빛
가끔씩 지나는 돌개바람에
덜컹이는 들창이
더욱 그대를 생각나게 하네.
계단의 끝에서
햇빛 한자락 말없이 빛나고 있네.

 

젖은 커피 한 잔-
곡명이 희미한 블루스 기타 연주곡-
문득 안개가 보고 싶어
죽은 시인의 시를 읽었네.
익명의 바닷가에서
그도 생전에
얼마나 많은 편지를 띄웠을까...

 

나는 안개 속을 걸어가듯
조심 조심 쓰네.
한번씩 좌절이 깃들 때
늘 그랬듯이
그대는 더욱 당당하게 일어나
인생을 산책하고 황혼이 저녁길을
힘차게 돌아올 것을 믿는다고-

만나지 않으면서도 만나고
헤어지지 않으면서도
헤어진 사람들 처럼
우린 그저 잠시
서로의 바다가 필요했던 것 뿐이라고-

 

다시 만나면 우리는 분명
그전처럼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바람과 햇빛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바다가 끝없이 밀려오던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그때,
그대는 나에게 말할 것이네.
나를 향한 무수한 편지를 보냈었다고..
가끔은 돌개바람 지나고
의자와 불빛들이 말없던
작은 찻집이 있는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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