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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택배를 출항시키다 / 오희옥

 

통영에서 수천 마리의 멸치 떼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종이 박스 모서리를 뚫고 출렁,

마룻바닥으로 쏟아졌다

멀미가 났을 것이다

 

해풍에 이마주름 말리시는 아버지

유자나무 열매에서도 지독한 비린내가 났다

내가 질색하며 뱉어버린 바다

토악질을 해도 늙지 않았다

해초에 몸을 감는 파도 따라

어망을 던지는 아버지

유자처럼 얼굴에 곰보자국이 선명했다

그때, 신음하는 물결

뜨겁게 할퀴어 찢기는 파도에

잘게 부서지는 아버지를 보았다

 

목이 늘어진 아버지의 바다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달팽이관 안에서 탁, 탁 그물 터는 소리

거실 바닥으로 좌르르 쏟아졌다

종일, 멀미가 났다

 

 

 

 

 

 

[은상] 노을에 들다 / 조수일

 

대문을 열고 나오려다 멈칫, 숨을 죽인다

주차된 차 후미 귀퉁이를 잡고 바스라질 듯, 서있는 옷깃이 보인다

비둘기색 양복 바짓단 헐렁거림이 보여 온다

비스듬히 차체에 기댄 주렁이 보이고

주렁 끝 손잡이마냥 곡진하게 굽은 등이 보인다

노신사, 볼 일 보는 중이다

 

오줌발, 얼마나 곤궁스레 수척이 말랐는지 소리도 없다

뒷바퀴를 방울방울 새의 눈물, 그것처럼

타고 흘렀을 생의 끝자락이 보인다

비척비척 걸음을 뗀다

애가 타는지 얼굴 벌겋게 달아오른 해가 골목을 붉게 물들인다

잦은 잔바람에 이제는 노쇠해져 훌렁훌렁 넘어지는

집집마다 노송 한 그루, 지금 노을 속으로 들고 있다

 

문 틈새 담벼락 타고 막 피어오르던 넝쿨장미의 눈 가,

벌개진다

 

 

 

 

 

 

[은상] 길에서 별을 뽑/ 봉윤숙

 

영안실 담벼락 아래

낡은 숟가락처럼 등이 구부러진

뽑기 아줌마

귀퉁이 헌 보따리에 꽁꽁 묶인

과거를 푼다

가스버너 구멍마다

서걱이는 눈물바람 일어

눈을 뜰 수 없을 때마다

그녀 하늘을 본다

일순간에 솟아오르는 불꽃 파다닥

쭈그러진 생을 불에 올려놓고

부풀어 오르지 않는 생활에 소다를 넣고

가슴 밑바닥을 휘휘 젓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까맣게 눌어붙는 운명

울컥 뱉어내고 나면

양철판박이에 별 하나 깊숙이 박힌다

그때 길에서 서성이던 비둘기는

별을 훔쳐 달아나고

빼앗긴 별을 찾아

그녀 길을 떠난다

헤매고 다녀도 별을 찾지 못한 그녀

주저앉아 다시 별을 찍는다

팔짱 끼고 지나가던 남녀 한 쌍이

흠집 하나 나지 않은 별을 뽑아

재빨리 사라진다

 

 

 

 

 

 

[은상] 노는 힘 / 이종임

 

하늘 말갛고 산수유 노랗게 핀 날

체험학습 나온 날

창경국지나 종묘 답사하고 경복궁 도착했을 때

더는 걸을 수 없었다

가이드 선생님 팔에 매달렸다

그럼, 여기만 보고 쉬자는 말씀에

바람처럼 박물관 돌고 나왔다

박물관 앞마당 민속놀이기구들 보자

눈이 번쩍 떠졌다

꿀 찾은 나비 떼처럼

쌩- 날아서

패앵팽팽이 돌리고

굴렁굴렁 굴렁쇠 굴리고

탁탁 제기차고

쉬잉쉬잉 투호 던지고

어기엉차 수차 돌렸다

어른들은 꾀병 부렸다지만

우리 마음 저장고엔 노는 힘이 가득차 있어

건드리면 솟아난다

해지도록 퐁퐁퐁 솟아난다

 

 

 

 

 

[동상] 가을, 번개 맞다/ 김창희

 

번개의 번뇌일까

느닷없는 번개의 외침이 생경스러운 이른 가을

굳이 물어오지 않아도 될 안부

번뇌를 쏟아 부어 온몸으로 건네 온 짜릿함

동맥을 타고 흘러내려 저만치 아랫도리까지 흘러내리는

오줌저린 후의 낯선 느낌의 혼란스러움

 

번개 맞은 가을은 옴짝할 수 없을 만큼의 소용돌이로

기력이 쇠한 채 긴 울렁임만 가득하고

드러누운 싯누런 들판이 을씨년스럽다

 

 

 

 

 

 

[동상] 위령가 / 이애란

 

한산섬 바닷길 고동줄무늬 같은 시간이 내 혈관에 감겨 돈다. 파도의 가슴은 비릿하다.

 

골육의 정은 바다 밑 산소처럼 목울대에 간절하다. 육신은 물위로 떠올랐어도 바닷말에 간간히 맺혀있구나!

 

갈매기 목청을 길잡이로 하여 여수 오동동으로 달려가는 길. 방금 막춤을 끝낸 동백꽃송이 알알이 꿰 니

 

나라의 꽃으로 부활하는 성웅 이순신, 한산도가(閑山島歌) 내 애간장에 불을 놓는다.

 

땅위 붉은 꽃잎은 절정의 끝으로 떨어졌지만 우국충정의 이름 모를 꽃봉오리는 언제쯤으로 피워날까?

 

배 꽁무니로 쏟아내는 눈물, 해안을 지키던 함성, 하늘 까지 치솟던 북소리, 망부석이 부르던 애가.

 

물방울 모시적삼이라도 지어 입히고 싶다 하니 꽃구름의 심장이 햇살로 핀다.

 

제각각 섬들이 나를 붙잡고 제 혈육 보듯 눈들 반짝인다.

 

 

 

 

 

 

[동상] 바람의 관절 / 조미희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다

길고 긴 노동으로 관절이 닳아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바람도 그늘로 찾아 든 것이다

일광욕을 즐기는 구름을 밀고

다시 일을 나서려는 바람을

구름이 자꾸 더 쉬라며 유혹하는 한낮

망설이는 바람에 나뭇잎 일렁인다

구름을 밀며 바람은 다시 일을 나선다

조각을 내며 모양을 바꾸는 구름

가끔 메마른 땅에 물을 주기 위해

먹구름도 데려와야 한다

산 위의 너럭바위 젖은 등짝도 시원하게 말려주어야 한다

하루 종일 퍼트려 놓은 햇살을 끌어 당겨 챙겨 놓는 오후

자물쇠로 밤새 별빛 그물을 치고

커다란 조명등 하나 끌어다 놓는다

바람은 다시 넓은 바다로 가 칭얼거리는

바다를 잠재우느라 밤새 뜬 눈이다

새벽에 보면 시퍼렇게 멍든 바람 절뚝거리며 골목을 지난다

 

 

 

 

 

 

 

 

 

 

 

제10회 동서커피문학상 맥심상 수상작

 

 

 

 

오름에 오르다 / 장옥경

 

아픔은 명치끝에서 시작된다

가슴에 오목하게 파인 분화구

푸르슴한 물이 고여 있고

우수수 낙엽 떨어지거나 얼음이 얼기도 한다

항상 열려잇는 그곳은 덮개도 없어

수시로 검은 손들이 들락거리고

기초공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위태위태하다

무자년 4월의 통곡소리

꽃과 나무들이 불타오르던 기억

기울어가는 그믐달아래

명치에 두레박을 내렸던 그녀

시원한 물이 아니라 부들부들 떨고있는

물살의 그림자를 끌어올리고는

더 목이타는 갈증에 시달린다 

산방산 이래

유채꽃이 환하다

 

 

 

 

 

 

애기똥풀꽃 / 이인

소나무 그늘이 깊어진 언덕을 오르면 작은 돌무덤이 있다

 

태어난 지 삼칠일리 되도록 노란 똥물만 지리다가 죽은 아기의 무덤이다

엄마 젖에 볼만 비벼대다 울며 잠들었던 아기는

해 뜨기 전 무명천에 쌓여서야 짧은 숨소리를 내려놓는다

 

젖이 불어 돌고 돌면 푸른 이슬 털며 찾아가는 길에

길 숲 버려진 돌 주워 무덤에 얹어주던 것이 지금의 돌무덤이 되었다

 

꽃줄기 솜털 하얗게 돋아 오른 애기똥풀곷

무리지어 피어있다

 

젖비린내 나는 엄마의 가슴 파고들 듯 모시나비 한 마리

꽃술에 입술을 적시자

까르르 까르르 배냇짓을 하며 웃는 애기똥풀꽃

 

 

 

 

 

 

모래시계 / 강만순

비우고
또 비워낸다
한 묶음의 추억도
한 올의 아픔도

비우고
또 비워낸다

영혼 마디 마디
잔무늬 아림들도

비우고
또 비워낸다

그리움 맞닿은 그곳에서
마냥 그렇게.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 지영자

 

와! 엄마

만리포 해수욕장이네요

수년 전엔 기름띠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잖아요

여기

조개, 새끼 물고기 좀 봐요

하얀 은빛 같은 모래가

매우 아름답네요

 

엄마

나의 발자국이 파도로 지워졌어요

엄마 여기 모래성 쌓고 집도 지어요

내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집

푸른 바다

싱그러운 바람이

나를 행복하게 하네요

엄마 새들도 돌아왔어요

 

우리 가족도

만리포 해수욕장에

몸을 담그고

마음껏 파도를 헤쳐 나가요

따가운 햇살이 나의 등 뒤에서

바다로 밀어 넣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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