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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바느질 / 조혜경
눈내리는 소리가 장독대를 걸어다녔다
문살에 기댄 눈이 살며시 찾아드는
창호지를 한 번씩 바라보며
어머니와 함께 하던 바느질
틀어온 솜은 첫눈처럼 고왔다
아버지의 회색 겹바지는
바람소리가 지날 때마다 뚱뚱해졌다
늘 하얀 실밥이 묻어있던 어머니의 머리카락,
나는 이제 바느질을 하지 않는다
기워야 할 것보다 버려야 할 것이 많아진 나이
제가 가진 배터리의 양보다 늘 과부하된 하루를
소파에 부려놓고 잠든,
남편의 양말 엄지발가락 부분이 뚫려있다
남편의 술냄새로 거실이 이내 텁텁해지고
아이들의 코고는 소리 반갑게 기어나온다
양말을 벗겨 올이 풀린 곳을 본다
그냥 꿰매기엔 뚫린 자리가 너무 큰데
덧댈 양말조각이 없다
바느질 몇 땀에 일그러지는 엄지발가락자리
솔기가 신발에 부딪치면 불편하리라
아이들의 꿈속, 가장 부드러운 한 토막을 떼어
덧대어본다
내일은 왼쪽 오른쪽을 바꿔 신으라고 해야 할지,
남편의 잠이 너무 깊다.
[동상] 꽃길에서 / 최영희
햇볕 알갱이들이 따뜻한 흙밭을
톡톡, 뛰어 다닌다
굴뚝 모퉁이에 핀 꽃, 잎이
몸을 움츠린다
빛의 그림자는 마당을 성큼성큼 건너갔다
자맥질하는 허공에 꽃길이 생겼다
뿌리와 뿌리 사이에
돌과 돌 사이에
태초의 얼굴이 피어난 혈흔
하나,
온몸을 짜내어도
꽃잎 내지 못한 나를
단숨에 마셔버린 봄이 저 혼자
하늘에서 영글고 있다
창공에 걸친손, 끝마다
또 하나 계절이 무르녹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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