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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어느 가을날 부르는 희망의 노래 /

가을바람이 미닫이 창문을 덜컹대며
저녁향기를 실어 나르고 있다.
노을빛 찻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 한 잔
투명한 식탁 위에 조용히 놓여 있다.
둥글게 감겨오다 살포시 풀어지는
향기 사이로
어른어른 한 얼굴이 그려지고
다갈색 그 미소
커피향을 넝쿨처럼 타고 올라
한송이 꽃으로 환히 피어난다.

남편의 실직으로 얼마 전 시장 어귀에
생선 좌판을 차렸다는
내 고등학교 동창인 그녀에게선
사실, 향기라 할 수 없는 비린내가
배어 있었다.
나지막한 침묵에도, 체취인 양 깊게
그러나
참아내기 어려운 삶의 이력조차
꽃길을 산책하듯 향기롭게 이야기할 줄 아는
저 지혜를 그녀는 어디서 배웠을까

'커피 한 잔 하고 가지 그래'
우연히 우리가 마주쳤을 때
그녀가 자판기 커피를 내미는 순간
아! 보았네 나는
거칠고 메마른 손등, 그 척박한 大地 위에
야생화처럼 피어 있는 상처들을
순간, 커피향에 코끝이 찡해오고
피할 수 없는 삶의 쓴 잔을 마시듯
채 몇 모금 넘기지 못하고 돌아 왔었네
씁쓸히

어느새 어둠이 창가를 기웃대고
바람의 응얼거림이 더 요란히 부딪쳐 온다
그래, 수요일이다
그녀가 새벽시장을 다녀왔을 요일
팔린 생선 대신 하루의 피곤이
좌판 가득 쌓였을 시간
나는 커피 주전자에 물을 얹고
보온병을 챙긴다
촉촉히 피어나는 추억의 향기를 마주하고
우린 잠시,
우리들의 生이 빛났던 그 시절
플라타너스의 풍성한 그늘 아래서
부르던 희망의 노래
나지막이 흥얼거릴 수도 있겠지
잘 견뎌내자는 어설픈 위로 대신
커피향이 참 좋다고 둘러대면서
아! 보름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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