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우편함 속의 새 / 이영옥
나무로 만든 새장이에요
너무 눈여겨보지는 마세요
둥지 없는 새들이 가끔 알을 낳아두기도 하지요
오늘은 할부금 영수증과
조각난 햇볕이 함께 꽂혀 있네요
알은 따뜻한 햇살 소에서
몸을 부플리고 있어요
복잡한 골목을 따라 바람이 불어와요
빈 저울을 싣고 낡은 트럭이 올라와요
식구들의 생계를 내려둔
저울의 바늘은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네요
소인이 선명하게 찍힌
하루가 배달되었어요
오늘은 알이 깨지고 촉촉하게 젖은 머리가
세상과 만나네요.
우편함 속에는 기다림 대신
햇살과 바람이 가득해요
나무가 자라나고
새가 날아와 울기도 하지요
오늘은 좁다란 하늘 위에
표정을 잃어버린 낮달이 보이네요
우편 적재함 속에는
봉인된 내일이 숨을 죽이고 있어요
이제 곧 새들은 날갯짓을 연습할 거예요
나는 우편함 비우는 연습을 하지요
어젯밤에는
새장 밑으로
어둠이 줄줄이 새어나갔어요
오늘은 우편함이 텅 비어 있네요
[은상]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 김혜경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아버지의 자전거를 다시 타고 싶다
푸른 추억의 바퀴를 차르르 돌려서
언제나 나무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아카시아 나무 그늘을 지날 때면
저 꽃처럼 향기나는 사람 되라시던 아버지
나는 그 하얀 꽃나무에 기댄
한 마리 참알락팔랑나비였다
까르르 까르르 아카시아 꽃들이 바람을 흔들 때면
업무에 시달리던 당신 생도 웃음을 머금은 채
자전거 페달을 밟던 아버지의 다리는 동그란 바퀴가 되었다
나는 여태껏 어떤 향기를 풍기며
살아왔을까
세상의 그늘은 아니었는지
지치고 상처입은 내 삶이
서러운 날, 나는 보온병에 커피 가득 부어
오랫동안 세워둔 자전거 타고
초록 물결 찰박이는 숲으로 간다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아홉 살 계집아이로 돌아간다
[동상] 자반고등어를 튀기며 / 박정덕
뜨거운 해표 식용유를 한가하게 베고
자반이 노르스름하게 몸을 익힌다
기름 위를 굴러다니다 길을 잘못 든 시간 한 토막이
프라이팬 기름 속에 떨어졌다
땀을 송송 흘리던 푸르스름한 자반 등어리는
뒤적거릴수록 울음소리가 커진다
오랫동안 굵은 소금에 절였어도
아직도 절여지지 않는 꿈이 문풍지같이 흔들리며
어느 틈바구니에 매달려 지금까지 아파하는가
무심코 떨어뜨린 내 말들은
누구의 가슴 속을 잘못 열고 들어가
지지지직지지지직
저렇게 자반처럼 타고 있는지
뒤집을 시간을 놓치고
나는 용서의 시간마저 놓친다
그의 가슴 속에서 적당히, 그러나
까맣게 태워버린 생선같이 버려지는 말
깨끗한 식탁 위에 놓을 수 없는 태워버린 말은
음식 쓰레기통에 수북이 쌓이는데
맹렬하게 타오르는 가스불을 끄지 못하고
나는 푸라이팬에 쏟아진 절망 몇 토막을
200℃ 기름 속에서 튀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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