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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시를 쓰는 아기 / 조여랑


아기를 보면 시를 따로 쓰지 못한다
몸이 전부 시어詩語인 아기가 온몸으로
주어는 부드럽고 탄탄하게 문장을 시작한다
동사는 재잘재잘 강보와 베개를 돌아다니고
부사는 날렵하게 몸짓을 가누는데 빈틈없이 거든다
형용사가 꽃으로 피다가 나비 날다가
관형사는 몸짓의 대부분을 통통하게 의미를 살찌운다
목적어를 잊은 적이 없어서 알맞은 전치사가 제자리에 있고
인칭을 붙이지 않아도 분명한 주격
가정법을 쓰지 않아도 바라는 미래가 코앞에 있다
웃음과 울음과 짜증이 접속사로 물결 흐르며
귀여움이 과거분사를 지나 능동태를 붙잡고 언제나 현재진형이다
내 몸 안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을 때부터 양막 첫 장을 깨알 같이
행갈이는 내개 맡길 요량으로 한 번 고치거나 지우지 않고 썼다
아기가 몸으로 쓰는 문장을 읽다 보면
써 본 적이 없는 낱말이 수두룩
알려진 어휘로 받아쓰기에는 불가능한 글자들이 넘쳐난다
해독하느라 늪에 빠져 헤엄치다보면 시간은 의지 강한 미래 완료형
아기는 글귀를 달에서 별까지 옹알옹알 광속으로 쓴다
받아쓰는 것만으로도 공책이 차고 넘친다.

 

 

 

풍경 風磬 / 김수화


내소사 절집 앞에서 풍경 하나를 샀다
갈 곳 없는 그 소리를 둘둘 말아 집으로 가져와
문 밖에 걸어두었다
소리가 처마 밑에서 날았다.
타종의 승객이 타고 있다는 듯 댕댕 가끔 울린다.
아니, 물고기 우는 소리가 타고 있었다.

바람의 창문 같았다.
댕그랑거리며 잠깐 열렸다 닫히는 풍경이었다.
작은 고리도 지나가는 바람도 다 날개다
자주 그 밑을 확인하는 날들
깨진 씨앗 하나 떨어져 있을 것 같은 공중 소리의 발 밑
둥근 물방울 떨어진 흔적만 남아있다.

날아가는 것들은 모두 날개가 있다는데
흔들리는 저 금속성의 소리는 멀리 달아나지도 못한다.
어느 딱딱한 물로 날아오르려
밤낮없이 자신의 깃털을 고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느러미도 날개도 없는 단단한 주물 하나가
흔들리는 계율을 실천하고 있다.

문 밖의 소리는 문을 버리면 된다지만
문 안의 소리는 문을 열어도 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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