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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주역(周易)‘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합니다. 앞으로 연재상으로는 여러 회 강의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전강독 강의 전체 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몇 번의 강의로는 주역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무엇부터 강의해야 하나 매우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주역을 60년 동안 계속 연구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64괘의 괘사만 읽으려 하더라도 1년으로는 부족합니다. 몇 회의 강의로 주역을 읽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강의는 여러분과 합의한 바와 같이 역시 ‘주역의 관계론’에 초점을 두게 됩니다.
주역은 동양적 사고의 가장 심층에 놓여 있는 기본적 사고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역에 담겨 있는 사상이란 말하자면 수 천년 수 만년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수많은 경험의 누적입니다. 그 반복적 경험의 누적 속에서 발견한 법칙성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역을 역경(易經)이라 하여 유가경전(儒家經傳)으로 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왕필(王弼)도 주역과 노자를 회통(會通)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다시 거론하기로 하겠습니다만 주역은 동양사상의 이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주역은 쉽게 이야기해서 점치는 책입니다. 점쳤던 결과를 기록해 둔 책이라 해도 좋습니다. 여러분 중에 점을 쳐 본 사람은 많겠지만 주역 점을 쳐 본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주역을 읽어 본 사람은 없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주역은 점치는 책입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나는 점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점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을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류의 의기(意氣) 방자(放恣)한 사람에 비하면 훨씬 좋은 사람이지요.
겸손한 사람이며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며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은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약한 사람으로 느끼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약한 사람은 대체로 선량한 사람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선량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선량하기 때문에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단언할 수 없지만 선량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선량하나 무력한 사람’이 대개는 부정적 의미로 쓰여집니다만 세상에는 반면(半面)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반면(半面)이란 모순의 반대측면을 이루는 것으로 반면(半面)이면서 동시에 반면(反面)이기도 합니다.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일면입니다. 본질을 구성하는 일면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약함이 선량함의 반면일 수 있습니다. 본론에서 빗나간 이야기였습니다만 주역이 점치는 책이고 점치는 마음을 우리는 비과학적이라고 비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있는 정직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귀신은 있는가? 손 한 번 들어보겠습니까? 그 보세요. 여러분 중에도 귀신이 있다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저도 귀신을 만나거나 확인한 적은 없지만 귀신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에 문득 문득 귀신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밤늦게 연구실을 나와서 내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참이었기 때문에 복도에 불을 끄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습니다. 연구실이 6층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지요.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닫히자 여자 목소리로 멘트가 나왔어요. “올라갑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나는 내려가야 하는데 어떤 여자귀신이 나를 데리고 올라가려는가 보다고 순간적으로 생각했었지요.
아마 캄캄한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잘못 눌렀던 거지요.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었던 거지요. 당연히 내려가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여자귀신이 나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려는가 보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게 되지요.
귀신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식의 밑바탕에는 귀신에 대한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지요.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점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지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눕니다.
상(相)은 관상(觀相) 수상(手相)과 같이 운명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命)은 사주팔자(四柱八字)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相)과 명(命)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占)은 ‘선택(選擇)’과 ‘판단(判斷)’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에 찾는 것이 점(占)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 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경(書經) 홍범조(洪範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汝則有大疑 謀及乃心 謀及卿士 謀及庶人 謀及卜筮
  汝則從 龜從筮從 卿士從 庶民從 是之謂大同 

  
의난(疑難.의심스럽거나 어려운 상황)이 있을 경우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 다음 조정대신(朝廷大臣)에게 묻고 그 다음 서민(庶民)에게 묻는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의난이 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소 복서(卜筮)에 묻는다 즉 점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임금 자신을 비롯하여 조정대신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지혜를 다한 다음에 최후로 점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괘와 서민의 의견과 조정대신 그리고 임금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를 대동(大同)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대학제로 진행하는 대동제(大同祭)가 바로 여기서 연유하는 것이지요. 하나되자는 것이 대동제의 목적이지요.
주역은 판단의 준거(準據)입니다. 무수한 경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구성된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를 기초로 미래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역은 귀납지(歸納知)이면서 동시에 연역지(演繹知)입니다. 주역이 점치는 책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험의 누적으로부터 법칙을 이끌어내고 이 법칙으로부터 다시 구체적 사안을 판단하는 구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관계론적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1. 주역의 의미

우선 주역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주역의 본 이름은 그냥 역(易)입니다. 그리고 역(易)에는 하(夏)나라의 연산역(連山易. 神農氏시대의 역), 은(殷)나라의 귀장역(歸藏易. 黃帝시대의 역)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현재 전(傳)하는 것은 주나라 문왕(文王)때의 역(易)이라 추측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周易)이라 합니다.
역(易)은 글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일(日)과 월(月)의 회자(會字)입니다. 일(日)은 양(陽), 월(月)은 음(陰)을 의미하여 역은 음양(陰陽)이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물을 음양의 대립과 통일로 설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지(天地), 일월(日月), 강유(剛柔), 고저(高低), 명암(明暗), 대소(大小), 남녀(男女), 군신(君臣), 선악(善惡), 길흉(吉凶) 등 천지 만물과 그것의 변화를 음양과 음양의 작용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모순(矛盾), 대립(對立), 통일(統一), 연관(聯關), 전화(轉化) 등 변증법적 구조와 매우 유사합니다.
주역정의’(孔潁達 周易正義)에 ‘易一名而含三義 易簡 易變 不易’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이라는 이름에는 3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그 3가지가 바로 역은 간단하고(易簡), 역은 변화이며(易變), 역은 불변이다(不易)라는 것입니다. 그 3가지의 함의(含意)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역(易)은 간이(簡易)의 의미입니다. 즉 간단하고 쉽다는 의미입니다. 복잡한 현상을 간소화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만물의 구성과 운동을 2개의 개념 즉 음양으로 설명하는 것은 복잡한 것을 간소화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만물이 이루어내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세상의 변화를 8괘와 64괘로써 설명하고 있습니다.
극도로 단순화된 추상적인 모델입니다.
  
2) 역(易)은 변역(變易) 즉 변화라는 뜻입니다. 즉 변화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역은 변화에 관한 법칙이라는 의미입니다. 주역은 사물의 변화 발전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변화에서부터 생주이멸(生住移滅)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무한한 변화의 와중에서 영위됩니다.
이 변화의 와중에서 피고취락(避苦趣樂)하려는 의지는 생명의 운동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변화를 읽으려는 의지는 매우 현실적이며 지극히 근원적인 생명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역(易)은 불역(不易) 즉 불변의 의미입니다. 주역은 불변의 법칙이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변화의 내면을 일관하고 있는 법칙이라는 의미입니다. 불변의 진리라는 뜻이지요.
복잡다단한 변화발전의 과정을 법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구조를 주역은 제시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역(不易)이란 의미는 두 번째의 의미인 변역(變易)과 첫 번째의 의미인 간역(簡易)의 결론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변화를 간단한 개념으로 법칙화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주역이 이와 같은 3가지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역이 사물의 변화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에서 이를 법칙화하고 있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크게 대별(大別)합니다. 공자 이전 2천5백년과 공자 이후 2천5백년이지요.
  

  

  
공자 이전 2천5백년은 점복(占卜)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 이후의 시기는 주역의 견(經.텍스트)에 대한 해석(傳)의 시대입니다.
텍스트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어떤 사물과 사물의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인식 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傳)은 이를테면 논문입니다.
예를 들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이란 책은 ‘춘추(春秋)’라는 텍스트(經)를 좌씨(左氏.左丘明)가 해설한(傳) 책이란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역의 경(經)과 전(傳)에서 동양적 사고의 체(體)와 용(用)을 함께 읽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학파가 경에 딸린 10개의 해설인 십익(十翼)을 이루어 놓기 이전은 복서미신(卜筮迷信)의 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역의 경(經) 즉 텍스트 자체는 동양사상의 근본적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오랜 경험과 그 경험의 반복과 축적 위에서 형성된 실천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합니다. 삶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점(占)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내고 해석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자의성(恣意性)을 지적하여 미신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괘(卦)의 구성과, 점을 친 기록들인 괘사(卦辭) 효사(爻辭)에는 동양사상의 원형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역을 흔히 춘추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춘추전국 시대 5백50년 간은 기존의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부국강병이라고 하는 유일한 국가 경영목표를 위하여 사활을 건 무제한의 신자유주의적 경쟁이 행해지던 시기였습니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수립되기 이전의 혼란한 질서 속에서 불변의 진리와 법칙성에 대한 탐구가 불역(不易)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시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이론에 대한 근본적 담론이 가장 왕성하게 개진되었던 시기였음은 전에 이야기했지요.
한마디로 주역은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에 이루어진 시대적 산물이라고 합니다.

 

2. 주역의 구성



  
위에 보이는 그림이 주역의 구성을 개략적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兩儀)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팔괘 중에서 태극기에 있는 4개만 보았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처음 보지요? 음양을 나타내는 부호를 효(爻)라고 합니다만 이는 물질성을 구성하는 요소 같은 개념입니다.
물론 효사(爻辭. 점을 친 문자기록)에서는 그것을 어떤 단계의 의미로 읽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사람의 의미로 읽기도 하고 어떤 지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8개의 괘(卦)를 중심으로 주역을 거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괘(卦)는 걸다는 뜻입니다. 걸어 놓고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괘에다가 어떤 의미를 담아 놓는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8개의 괘에는 각각 이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8개의 이름은 물론이고 그 모양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각 괘의 작용과 성질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위 표에서는 가장 간단하고 일반적인 의미만을 표시하였습니다.
  

3.효와 괘의 의미

 

도대체 이 효와 괘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에 대하여 매우 난감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예를 들어봅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물(事物)이 있고 사물과 사물이 관계하여 이루어내는 사건(事件)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사건이 중첩되거나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태(事態)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상사태 또는 전쟁상태라는 표현도 가능합니다. 효와 괘는 이를테면 사물과 사건에 해당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주역의 각 구성부분을 이러한 세계를 이해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규칙적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효(爻)가 사물을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상(四象)이 그러한 개념으로 사용되기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괘(卦)가 그런 의미를 띠기도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역의 각 구성부분은 어느 경우든 사물, 사건, 사태와 같은 범주적 개념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범주적 인식이 곧 철학적 인식입니다. 주역의 범주는 기본적으로 객관적 물질세계의 연관성으로부터 도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역(簡易)이기 때문에 물질세계의 복잡한 연관을 모두 담아낼 수는 물론 없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각 구성부분을 여러 범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범주가 매우 중층적입니다. 결코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는 앞으로 예제를 통하여 설명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역의 판단형식이 매우 중층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판단형식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서구적 사고양식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시실입니다. 주관적인 판단형식으로서의 범주는 물론 궁극적으로는 객관적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바로 이 판단형식에 있어서의 단순함이 근대성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사회관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회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사회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의 인식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관과 인간관 등 여러분이 익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인식 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는 개인의 집합이다’ 또는 ‘인간은 이기적이다’와 같은 인식 틀을 봅시다. 이러한 사고는 매우 단순한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는 개인을 분석함으로써 개인의 집합인 사회 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틀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인식으로부터 사회변화를 설명하는 한 자본주의의 시장원리가 지양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집니다. 이러한 인식 틀은 사회를 단일한 요소로 환원하여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사회를 개인의 단순한 양적 확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역의 구성과 비교하자면 효(爻)로써 8괘인 소성괘를 설명하고 나아가 64괘인 대성괘마저도 효의 단순한 집합으로 설명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극히 일차원적 사고방식입니다.
이와는 달리 이를테면 계급적 관점으로 사회구성을 설명하는 소위 좌파적 인식 틀은 어떻습니까? 신분(身分)이나 혈연(血緣)이나 다른 집단을 단위로 하여 사회구성을 이해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개인과는 다른 범주로 사회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회구성에 대한 것만 아니라 세계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구조를 반성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의외로 기계적이고 단선적인 논리로써 변화를 읽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당구공과 당구공이 부딪치는 경우처럼 원인과 결과라는 단선(單線) 논리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효와 괘를 어떤 의미로 이해할 것인가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예를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주관적 판단형식으로서의 범주적 인식의 단순함을 반성하자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앞으로 검토하게 되겠지만 이러한 우리들의 인식 틀에 비하여 주역은 객관적 세계의 연관성을 훨씬 더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4.주역의 경(經)과 전(傳)

1) 주역의 經
  
8괘(八卦), 64괘(六十四卦), 괘사(卦辭), 효사(爻辭)를 주역의 경(經)이라 합니다. 이것은 8개의 소성괘(小成卦), 64개의 대성괘(大成卦) 그리고 64개의 괘사, 3백84개의 효사를 의미합니다.
괘와 효는 고대문자이며, 괘사(卦辭), 효사(爻辭)는 점을 친 문자기록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앞의 주역의 구성이란 그림에서 보는 8괘를 소성괘(小成卦)라고 합니다만 이 소성괘를 2개 겹쳐서 만들어진 괘를 대성괘(大成卦)라고 합니다. 이 대성괘가 모두 64개가 있지요. 8 x 8 = 64지요.
이 64개의 대성괘는 각각 한 개씩의 패턴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변화의 패턴을 64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 64개의 대성괘마다 괘사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64개의 괘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성괘를 구성하고 있는 6개의 효마다 효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효사의 숫자가 64 X 6 = 3백84개나 됩니다.
주역의 기본적 범주는 바로 이 64개의 대성괘라 할 수 있습니다. 각 대성괘에는 그 괘의 성격을 규정하는 이름이 명명되어 있고 괘 전체의 의미를 부연하는 괘사가 달려 있으며 괘를 구성하는 6개의 부분과 그 6개 부분이 서로 맺고 있는 시공간적 관련성을 효사가 설명하고 있는 그러한 구조입니다.
대성괘를 주역의 기본적 범주로 이해하는 경우 우리는 칸트나 헤겔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주들과는 그 수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범주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판단형식의 단순함에 비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64개의 대성괘는 지금까지 보여온 어떠한 철학체계보다도 객관세계의 복잡한 연관성을 최대한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주역의 傳 
  
전(傳)이란 괘사와 효사에 관한 후대(秦漢초)에 성립된 10개의 해설을 말합니다. 경에 달린 10개 날개란 뜻으로 십익(十翼)이라 합니다. 공자의 저작이라고 전하나 공동창작으로 추측됩니다.
십익(十翼)은 단전(彖傳) 上下, 상전(象傳) 上下, 계사전(繫辭傳) 上下,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으로 예제 해설에서 내용을 읽으면서 설명하겠습니다만 단전(彖傳)은 괘사를 부연 설명하는 것입니다. 단(彖)은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상전(象傳)에는 대상(大象)과 소상(小象)이 있는데 대상은 괘 전체의 뜻과 상하(上下)괘의 배치에 관한 설명이고 소상은 각 효의 효사를 설명한 것입니다.
계사전(繫辭傳)은 괘사를 철학적으로 논리부여하고 괘사와 효사를 묶어서 해석한 것입니다.
문언전(文言傳)은 건위천(乾爲天)과 곤위지(坤爲地)괘에만 있으며 괘사, 효사에 대한 설명입니다.
설괘전(說卦傳)은 괘에 대한 해설입니다.
서괘전(序卦傳)은 64괘의 배열순서에 대한 설명으로서 다음과 같은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1.乾爲天.-->

2.坤爲地.-->

3.水雷屯(준은 盈 즉 채운)-->

4.山水蒙(어릴 몽)-->
5.水天需(음식, 먹임)-->

6.天水訟(송사,재판)-->

7.地水師(무리)-->
8.水地比(친화)-->

9.風天小畜(축적) -----> 
  
잡괘전(雜卦傳)은 64괘를 2괘씩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역을 읽을 때는 처음 읽는 경우는 십익을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경문은 그 의미가 어렵기 때문에 해설서를 먼저 읽어보면 주역의 의미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5. 효(爻)와 괘(卦)
  
1) 양효(陽爻.)는 하늘(天) 또는 남자(男)를 나타내고 음효(陰爻.)는 땅(地) 또는 여자(女)를 나타냅니다. 물론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3개의 효(爻)로 1개의 괘(卦)를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괘를 소성괘(小成卦)라 합니다. 8괘가 그것입니다. 3개의 효로 괘를 만드는 것은 3개의 효가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양학이 자연을 생기(生氣)의 장(場)으로 인식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기억하시죠? 어떤 개념을 천지인의 삼재(三才)로 구성하는 것 역시 그러한 사상의 일환입니다.
효(爻)의 명칭은 아래에서부터 초(初)효, 이(二)효, 삼(三)효, 사(四)효, 오(五)효, 상(上)효로 읽습니다.
양효를 구(九), 음효를 육(六)으로 씁니다. 그래서 초효가 양효인 경우에는 그것을 초양(初陽)이라 읽지 않고 초구(初九)라 읽습니다.
그리고 이효(二爻)가 음효인 경우에는 이음(二陰)이라 읽지 않고 이륙(二六)이라 읽습니다. 양(陽)을 구(九)라 하고 음(陰)을 육(六)이라고 하는 까닭에 대하여 많은 논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九)가 홀수이고 육(六)이 짝수여서 각각 양과 음을 표시하는 숫자가 되지 않았겠는가 하는 정도 이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이미 사용했듯이 제1효를 초효(初爻)라 하고 제6효를 상효(上爻)라 합니다. 그래서 초육(初六), 상구(上九)등으로 씁니다.
  
2)팔괘는 위 표에서 설명하였듯이 태극(太極) --> 음양(陰陽)--> 사상(四象)--> 팔괘(八卦)로 분화된 것입니다.
  
  건(乾-天)

  태(兌-澤)

  이()

  진(震-雷)

  손(巽-風)

  감(坎-水)

  간(艮-山)

  곤(坤-地)


이 8개의 괘는 그 모양과 의미는 기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름과 기능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역을 읽을 때 기본적인 단위, 즉 기본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분들은 이 팔괘를 손가락으로 자유자재로 표현하였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선 이렇게 합니다. 엄지손가락은 3개의 손가락으로 칩니다. 이 엄지를 나머지 검지, 중지, 무명지 이 3개의 손가락과 연결하거나 뗌으로써 8괘를 표현합니다.
건괘()는 엄지와 나머지 3손가락을 연결하면 됩니다. 그리고 읽기는 건삼련(乾三連)으로 읽습니다. 3효가 모두 연결된 모양 즉 양효(陽爻)라는 뜻입니다.
태괘()는 엄지와 중지 무명지를 연결합니다. 그리고 검지는 떼어놓습니다. 그리고 읽기는 태상절(兌上絶)이라 읽습니다. 제일 위에 있는 효(爻)만 떨어졌다는 것이지요. 즉 음효(陰爻)라는 뜻입니다.
감괘()는 중지와 엄지가 연결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검지와 무명지는 엄지와 떨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는 감중련(坎中連)이라 읽습니다. 감괘는 가운데가 연결되어 있다, 즉 가운데 효가 양효(陽爻)라는 뜻이지요. 이 감중련은 조지훈의 시(詩)에 부처님의 손가락을 표현하는 단어로 나옵니다. 대학의 교양국어 강의시간에 이 단어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지요.
이괘()는 엄지와 검지, 무명지를 연결합니다. 그리고 중지만 엄지와 떨어진 모양입니다. 읽기는 이허중(), 이괘는 가운데가 비었다, 즉 가운데가 음효(陰爻)라는 뜻입니다.
나머지 괘들을 손가락으로 한번 표시해 보세요. 진하련(), 손하절(), 간상련(), 곤삼절() 등으로 읽습니다. 각자 손가락으로 표시해봅시다.
이 팔괘 하나 하나는 음양의 구분이 있습니다. 팔괘는 음괘가 있고 양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음양을 결정하는 방법이 매우 독특합니다. 8괘를 구성하는 3개의 효 중에서 양효(陽爻)가 홀수이면 양괘(陽卦), 음효(陰爻)가 홀수이면 음괘(陰卦)가 됩니다. 셋 중에서 언제나 소수가 전체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양(陽)이 하나면 당연히 음(陰)이 둘이고 음(陰)이 하나면 양(陽)이 둘임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소수가 전체 성격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경험이 없습니까? 남자 두 사람과 여자 한사람인 집합(集合)에서 결국 여자의 의견이 관철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까?
여자와 남자가 결합하면 2가 되어 다수가 되고 그 다수인 2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있지요. 남자 2대 여자 1의 구성이니까 결합의 주도권은 당연히 여자가 행사하지요.
반대로 여자 두 사람과 남자 한 사람인 집합에서는 남자가 주도권을 잡고 전체 성격을 결정합니다. 괘의 음양을 결정하는 방법이 매우 실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3) 8괘 두 개를 상하(上下)로 겹쳐 놓은 것을 대성괘(大成卦)라 합니다. 이에 비하여 8괘는 소성괘(小成卦)라 합니다.
대성괘는 상하 2개의 8괘로 이루어져 있지요. 위의 괘를 상(上)괘 또는 외(外)괘라 하고 아랫 괘를 하(下)괘 또는 내(內)괘라 합니다. 대성괘는 모두 64개가 있다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지요. 8 X 8 = 64지요.
대성괘는 두 소성괘의 성질, 위치에 따라 그 성격과 명칭이 정해지기도 하고 두 소성괘가 이루어내는 모양에서 명칭과 뜻을 취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이()’괘는 간(艮,)과 진(震,)을 상하로 겹쳐 놓은 것이지요. '’괘의 모양은 입니다.
그 모양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상하의 입술과 그 가운데 치아(齒牙)가 있는 형상입니다.
그 형상이 턱과 같아서 괘의 이름을 턱 이()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기를 양(養)으로 하였습니다.
괘의 이름을 짓는 방법이나 뜻풀이가 참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팔괘의 모양으로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간(艮)은 산(山)이고 진(震)은 뇌(雷)입니다. 산 아래에 우뢰가 있는 형상입니다. 땅 속에 잠재력을 묻어두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기를 양(養)이기도 합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지요.
‘진(晉)’괘는 곤(坤,)괘 위에 이(,)괘를 올려놓은 형상입니다. ‘晉’괘의 모양은 입니다.
곤(坤)은 땅(地)을 의미하고 이()는 불(火)을 뜻합니다. 땅위에 불이 있는 형상입니다. 따라서 이 진(晉)괘는 지평선에 해가 뜨는 형상으로 풀이하여 진(晉)으로 하고 그 뜻을 나아갈 진(進)으로 하였습니다.
  
4) 64개의 대성괘를 상경(上經) 30괘(卦)와 하경(下經) 34괘(卦)로 나눕니다. 주역을 이처럼 상경과 하경으로 나누기는 합니다만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편의상 상하(上下)로 나눈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덕경(道德經)의 경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30은 3이 홀수로 양이고, 34는 짝수로 음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눈 것으로 이해합니다.

 

아직 주역의 경문(經文)을 읽지 않았습니다만 먼저 주역을 읽는 방법에 있어서의 특이한 점을 몇가지 밝혀 두어야 합니다. 이른바 주역 고유의 독법(讀法)입니다.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방법에 있어서 주역 고유의 독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독법으로부터 주역사상의 특징을 찾아내야 합니다. 점(占)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하는 것은 주역을 올바로 이해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주역을 읽는 데 있어서 반드시 이해하여야 할 개념이 매우 많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위(位)와 응(應)에 대하여 주로 검토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위(位)
  
주역의 독법에 관하여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위(位)입니다. 즉 ‘자리’입니다. 어떤 효(爻)의 길흉화복을 결정하는 것은 효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효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상입니다.
대성괘는 6개의 효로 이루어져 있고 따라서 각각의 효가 위치하고 있는 1(初), 2, 3, 4, 5, 6(上)의 여섯 개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 여섯 개의 자리는 1, 3, 5는 양(陽爻)의 자리이고 2, 4, 6은 음효(陰爻)의 자리입니다.
양효가 양효의 자리 즉 1, 3, 5에 있는 경우를 득위(得位)라 합니다. 음효가 음효의 자리인 2, 4, 6에 있는 경우도 물론 득위라 합니다.
효가 그 자리를 얻지 못한 경우 이를 실위(失位)라 합니다. 양효가 음효의 자리 즉 2, 4, 6에 있는 경우는 실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음효가 양효의 자리인 1, 3, 5에 있는 경우도 실위인 것은 물론입니다.
각 효는 득위하여야 좋은 것입니다. 주역 사상에 있어서 이 ‘위(位)’의 개념은 매우 중요합니다.양효라 하여 어떤 자리에 있거나 항상 양(陽)의 성질을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음효는 어떤 자리에 있거나 음효일 뿐이라고 하는 고정된 관점은 없습니다.
개별적 존재에 대해서는 그것의 고유한 본질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러한 개별적 본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깁니다. 이는 동양적 전통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그 처지(處地)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그 운명도 달라진다는 생각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금언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라는 말은 처지에 따라 그 생각도 달라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처지에 눈이 달린다고 하는 표현을 하지요. 눈이 이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발(立場)에 달려 있다는 뜻이지요.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입장(立場)이라 합니다. 계급도 말하자면 처지(處地)입니다. 당파성(黨派性)과 계급적 이해관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길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어쨌든 개인에게 있어서 그 자리(位)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됩니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걱정되지요? 어떤 자리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인가를 아는 비결이 어떤 것이지 궁금하지요?

이건 여담입니다만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터보다 집이 크면 그 터의 기(氣)가 눌립니다.
용적율(容積率)의 개념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기(地氣)가 눌리지 않으려면 용적율이 50% 미만이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빌딩은 지기를 받지 못하는 건축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공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요.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땅에 너무 많이 쌓아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터와 집의 관계도 그렇습니다만 집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집에 눌립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 조금 작은듯한 집이 좋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궁금한 ‘자리’의 문제로 돌아가지요.
그 ‘자리’가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傷)하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철학’을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30정도의 여유는 놀고 먹자는 것이 아니지요.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는 30을 어떻게 채울 수 있습니까?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일 그 자체도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잘못된 사람이 차지하고 앉아서 나라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능력과 적성에 아랑곳없이 너나 할 것 없이 ‘큰 자리’나 ‘높은 자리’를 선호하는 세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70%의 자리’가 득위(得位)하는 비결입니다.
나는 축구경기에서도 이 70%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표팀 축구선수 중에 슛을 130%로 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경기를 보는 기회가 있으면 누구인가를 찾아보세요. 거명(擧名)하기가 좀 미안합니다.
반드시 골인시키겠다는 의지가 과잉입니다. 그러한 과잉의지로 슛을 하게 되면 대부분 골을 벗어나기 마련입니다. 슛은 골키퍼가 받아내기에 상당히 불편한 곳으로 공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70%의 슛입니다.
여담이었습니다만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딛고 있는 처지와의 동태적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라는 논리가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의 이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이나 사람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득위(得位)와 실위(失位)의 개념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서구의 존재론(存在論)과는 다른 동양학의 관계론(關係論)입니다. 주역의 독법은 이처럼 매우 철저한 관계론적 패러다임입니다.

2) 중(中)과 정(正)
  
위(位)와 응(應)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지나가려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몇가지 개념을 더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역의 관계론적 성격을 드러내는데 강의의 초점을 둔다면 설명이 없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먼저 중(中)의 개념에 대하여 이야기합시다. 대성괘(大成卦)를 구성하고 있는 여섯 개의 효 중에서 제2효와 제5효를 ‘중(中)’이라 합니다.
2효와 5효는 각각 하괘와 상괘의 가운데 효입니다. 가운데 효를 중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역에서는 가운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일 위에 있거나 제일 앞에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쟁사회의 원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여러분들도 강의시간에 질문하라고 해도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지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거지요. 중간은 무난한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 “뒤로 돌아 갓”을 할 경우에도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내내 똑 같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는 뒤로 돌아가라는 구령이 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지요. 그래서 세파를 많이 겪은 노인들은 모나지 않고 나서지 않고 그저 중간만 가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중간과 가운데를 선호하는 정서는 매우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물론 중간을 매우 선호하는 편입니다만 그 선호하는 이유가 무난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가 중(中)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5급이 바둑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바둑 1급은 비슷한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중간은 그물코처럼 앞뒤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선망의 적이 되고 있는 선두(先頭)는 스타의 자리입니다. 최고의 자리이지요. 그 자리는 모든 영광이 머리 위에 쏟아질 것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매우 힘든 자리입니다.
나는 물론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경쟁으로 인한 긴장이 가장 첨예하게 걸리는 곳이 선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두가 전체 국면을 주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선두는 겨우 자기 한 몸의 간수에 여력이 있을 수 없는 고단(孤單)한 처지(處地)입니다.
그와 반대로 맨 꼴찌는 마음 편한 자리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아마 가장 철학적인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기를 쓰고 달려가야 할 곳이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내가 무기징역 받고 감옥에서 모든 것 다 내려놓고 헌 옷 입고 햇볕에 앉아 있을 때의 심사(心事)가 무척 편했던 기억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곳이 비록 편안하고 한적한 달관(達觀)의 공간이긴 하지만 그곳은 무엇을 도모하거나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왜소한 공간이라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관계 맺기에 매우 창백한 처소(處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는 아니지만 어쨌든 주역에서는 중간을 매우 좋은 자리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가장 힘있는 자리로 칩니다.
막상 가장 위에 있는 제6효인 상효(上爻)는 실권(實權)에서 물러난 사람에 비유합니다. 그래서 음효가 음의 자리에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는 것을 정(正)이라고 하면서도 가운데 효가 즉 중(中)이 득위하였는가 득위하지 못하였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따라서 음(陰)2효와 양(陽)5효는 중(中)이면서 득위(得位)하였기 때문에 이를 중정(中正)이라 합니다.
중정(中正)은 매우 높은 덕목으로 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중정(中正)’이란 현판이나 붓글씨를 많이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중정(中正)이지만 양5효를 더욱 중요하게 봅니다. 음2효가 하괘를 주도(主導)하는 효임에 비하여 양5효는 괘 전체의 성격을 주도하는 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응(應)과 비(比)
  
우선 응(應)이란 무엇인가부터 보지요. 위(位)란 것이 효와 그 자리의 관계에 관한 것인데 반하여 응(應)은 효와 효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효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보는 것입니다. 여섯 개의 효 중에서 1효와 4효, 2효와 5효, 3효와 6효의 음양상응(陰陽相應)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괘의 1, 2, 3효와 상괘의 1, 2, 3효가 서로 음양상응관계 즉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응(應)입니다.
주역사상에서는 위(位)보다 응(應)을 더 중요한 개념으로 칩니다. 이를테면 위(位)의 개념이 개체단위의 관계론이라면 응(應)의 개념은 개체와 개체가 이루어내는 관계론입니다. 이를테면 개체간의 관계론이지요.
그런 점에서 위(位)가 개인적 차원의 관점이라면 응(應)은 사회적 차원의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위(失位)도 구(咎.허물)요 불응(不應)도 구(咎)이다. 그러나 실위(失位)이더라도 응(應)이면 무구(無咎)이다”고 합니다.
실위(失位)도 허물이고 불응(不應)도 허물이어서 좋을 것이 없지만 설령 어느 효가 득위(得位)를 못하였더라도 응(應)을 이루고 있다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지요. 나쁜 효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위(位)보다 응(應)을 더 상위(上位)의 개념으로 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의 도처에서 직면하는 것입니다.
집이 좋은 것보다 이웃이 좋은 것이 훨씬 더 큰 복이라 하지요. 산다는 것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보면 응(應)의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직장의 개념도 바뀌어서 최근에는 직장동료들이 좋은 곳을 좋은 직장으로 칩니다.
위(位)가 소유(所有)의 개념이라면 응(應)은 접속(接續)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하다가 그만 소유와 접속의 문제에 언급하게 되었습니다만 나는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소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접속의 시대가 열린다는 거창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실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나 주택을 소유하기보다는 임대하여 사용하는 형태로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유의 종말’에서 전망하는 접속형태의 소비란 ‘소유의 종말’이 아니라 ‘소유의 분할’입니다. 시간적으로 분할된 소유이며 동시에 공간적으로 분할된 소유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새로운 생산방식에 조응한 ‘다품종 소량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단위를 더욱 작은 단위로 분할함으로써 소비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유의 변화라기보다는 소비패턴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후기산업사회의 소비형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소비의 변화, 소유의 변화는 물론 많은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1회 완료적인 매매는 매매성립과 동시에 매매쌍방의 관계가 종결됩니다. 남는 것은 물건과 소유자와의 관계일 뿐입니다.
그러나 접속형태에서는 지속적으로 소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쌍방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즉 빌려주고 빌리는 관계가 지속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위(位)를 소유에 비유하고 응(應)을 접속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소유가 완전히 종말을 고하는 단계, 즉 임대자의 소유권마저 종말을 고하고 모든 소유가 접속으로 전환된 상태로 발전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하자면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고 국가적 소유나 협동적 소유만 존재하는 소위 사회주의적 체제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유의 종말’이 전제하고 있다면, 그런 점에서 접속은 이를테면 사회적 개념, 사회주의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대자의 소유가 사적 소유로 남아 있는 한 그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소비형태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후기산업사회의 변화된 소비패턴이며 보다 정교해진 마켓팅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소유보다는 접속에 더 익숙합니다.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소유가 아닌 접속입니다. 독선생(獨先生)을 두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감상을 하는 것도 소유가 아닌 접속입니다.
우리의 삶은 접속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소유로부터 접속으로 전환하리라는 리프킨의 주장은 매우 새삼스러운 이야기로 들리지요.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의 삶과 정서는 기본적으로 접속과 관계를 그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응(應)의 개념은 우리의 삶을 저변에서 지탱하는 원천적 패러다임이라는 것이지요. 응(應)은 소유의 개념과는 구별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소유제도 즉 사유재산제도는 사실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할 수 있는 벽이 되기도 합니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호소 앞에서 더불어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 ‘자유(自由)’가 바로 이 소유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응(應)의 개념은 자본주의사회, 개인주의사회, 그리고 경쟁사회의 보편적 덕목은 아닙니다. 그러나 동양문화의 패러다임을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단연 이 응(應)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응(應) 이외에도 효와 효의 상응관계를 보는 개념으로 비(比)가 있습니다. 이 비(比)는 인접한 상하(上下) 2효의 상응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응(應)이 하괘와 상괘 간의 상응관계를 보는 것임에 비하여 이 비(比)는 인접한 두 효의 음양상응을 본다는 점에서 응(應)에 비하여 다소 그 관계의 범위가 협소합니다. 그러나 그 기본적 성격은 관계론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상에서 주역의 몇가지 관점(觀點)을 소개하였습니다만 그나마 너무 간략한 설명이었습니다. 주석서(註釋書)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관념적인 해석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은 오히려 주역 이해에 더 장애가 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의 고전강독강의에서는 벌써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만 관계론의 재조명이라는 강의 목적의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것만을 논의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효의 명칭(名稱)에 관한 것입니다. 효가 처하는 위치 즉 아래위에 있는 효와의 관계에 따라서 그 명칭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르는 이름마저 달라지는 것이지요. 당연히 그 성격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음효 위에 있는 양효 즉 양재음상(陽在陰上)인 경우를 거(據)라고 하고 그 의미는 공제(控制)입니다.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음효가 양효 아래에 있는 경우 승(承)이라 합니다. 즉 음재양하(陰在陽下)인 경우를 승(承)이라 하고 순종(從順)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같은 음효라 하더라도 그것이 양효 위에 있을 때 즉 음재양상(陰在陽上)일 때 승(乘)이라 호칭하고 그 의미를 반상(反常) 즉 역(逆)으로 읽습니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바와 같이 주역의 독법은 철저하리만큼 관계론적입니다. 개별적 의미는 매우 협소합니다. 그것이 갖는 의미와 역할은 그 개별적 존재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망 속에서 사후적으로 규정되고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주역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관계론(關係論)’입니다. 효와 그 효가 처한 자리(位)의 관계, 효와 효의 관계 즉 응(應), 비(比). 그리고 괘와 괘의 관계 등 ‘관계’가 판단과 해석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주역사상은 지난 시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사물과 현상, 그리고 존재와 변화에 관한 범주적(範疇的) 판단형식(判斷形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역사상에서 우리는 동양적 판단형식 즉 동양적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형식과 사고방식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개별적 존재나 개별현상에 대한 존재론(存在論.實體論이 더 적절한 용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적 관점보다는 존재와 존재들이 맺고 있는 관계망(關係網)에 대한 관점이 기본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학파가 십익(十翼)을 이루어 놓기 이전은 ‘주역(周易)’이 물론 복서미신(卜筮迷信)의 책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십익(十翼) 이후의 해설은 매우 철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역의 복서(卜筮)도 사실은 단순한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점(占)이라 하는 것 역시 그 본질에 있어서는 어떤 현상과 상황을 우리들의 일상적 관점과는 다른 논리로 재해석하고 조명하는 인식체계입니다.
그것 역시 사물과 변화에 대한 판단형식의 일종이며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철학적 구조를 띠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역은 사회경제적으로 농경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 유한공간(有限空間)사상이며 사계(四季)가 분명한 곳에서 발전될 수 있는 사상이라고 합니다. 무수한 반복적 경험의 축적과 시간관념의 발달 위에서 성립할 수 있는 사상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년 내내 겨울이 지속되는 극지(極地)나 반대로 일년 내내 여름인 상하(常夏)의 나라에서는 발달하기 어려운 문화임에 틀림없습니다. 반복적 경험을 통해서만이 사물과 사물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하여 천착해 들어갈 수 있으며 변화를 반복해서 경험하는 동안에 비로소 그 변화를 법칙적으로 읽으려는 노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역사상은 유목적 생활환경에서는 발전하기 어려운 사상형태입니다. 유목생활은 기본적으로 무한공간(無限空間)사상입니다. 일정한 토지에 정착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 갑니다.
따라서 어제의 경험이 오늘이나 내일에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반복적 경험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농본적 문화가 과거의 경험을 매우 중시하는 이를테면 ‘노인보수문화’임에 비하여 유목적 문화는 어제의 경험이나 노인들의 경험이 별로 의미가 없는 문화입니다.
오히려 청년전위(靑年前衛)문화입니다. 상(商)문화는 유목적 문화로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주나라 문화는 상(商)문화와 여러 면에서 구별됩니다. 아마 상(商)과 주(周)의 차이에 대하여는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주역은 주(周)나라 문화와 사상의 토대이며 이후 중국문화, 동양적 사고의 기본적 틀이 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공자는 주역을 열심히 읽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죽간(竹簡)으로 되어 있는 주역의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다음 시간부터는 주역 대성괘를 예제로 하여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구성이 어떤지 그리고 괘사(卦辭)와 단전(彖傳)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1) 지천태(地天泰)  

주역에는 대성괘가 64개가 있습니다. 64개를 모두 읽을 수는 없지요. 그 중에서 몇 가지만 보기로 하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 개의 괘는 그 경(經)과 전(傳)을 온전하게 다 읽어보겠습니다. 주역의 구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몇 개의 괘는 그 핵심적인 의미만을 읽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지천태(地天泰)괘를 보기로 하지요. 지천태 괘를 우선 여러분들이 그려보시지요. 천()위에 지()를 올려놓은 모양입니다. 다음과 같은 모양입니다.

  

이제 이 지천태 괘의 경(經)과 전(傳)을 모두 소개합니다. 먼저 괘사(卦辭)입니다. 이 괘사는 물론 경(經)입니다. 8괘, 64괘, 괘사(卦辭), 효사(爻辭) 이 4가지를 경(經)이라 한다고 하였지요. 기억하시지요?
  
卦辭 泰 小往大來 吉亨
괘사 : 태(泰)괘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온다. 길하고 형통하다.

이 괘를 판단한 단전(彖傳)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전은 물론 경(經)이 아닙니다. 전(傳)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彖曰 泰 小往大來 吉亨 則是天地交 而萬物通也 上下交 而其志同也 內陽外陰 內健外順 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也
단(彖)에 이르기를 태(泰)괘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기 때문에 이것은 천지가 만나고 만물이 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하(上下)가 만나고 그 뜻이 같다. 내괘(內卦)는 양(陽)이고 외괘(外卦)는 음(陰)이다. 안은 강건(剛健)하고 바깥은 유순(柔順)하다. 군자가 안에 있고 소인이 바깥에 있다. 군자의 도(道)는 장성(長成)하고 소인의 도(道)는 소멸(消滅)한다.
상전(象傳)은 다음과 같습니다.

象曰 天地交泰 后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后(후) : 천상(天上)의 제(帝)에 대하여 지상의 통치자(제후를 포함)
財成(재성) : 재성(裁成). 재단하여 이룸.
輔相(보상) : 도우다. 左右(좌우) : 인도하다.
  
주(註)를 자세히 달았습니다. 각자가 한번 새겨보기 바랍니다.
상(象)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태평하다. 왕자는 이 괘(卦)를 보고(后以) 천지의 도(道)에 천지(사람)의 마땅(正義)함을 보태어 대성하게 하고 인민을 (태평하게) 인도하여야 한다.
태괘(泰卦)는 주역 64괘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괘라 합니다. 하늘의 마음과 땅의 마음이 서로 화합하여 서로 교통(交通)하는 괘입니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양은 물론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자연의 형상과는 역전된 모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태화(泰和)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향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만난다는 이치입니다. 서로 다가가는 마음입니다. 다음 예제인 천지비(天地否) 괘는 이와 정반대의 의미입니다.
지천태 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의미입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라는 금언이 바로 이 태(泰)괘의 사상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개인의 경우에도 태화(泰和)의 근본입니다.
경복궁에 가본 사람은 기억할 것입니다. 교태전(交泰殿)이 있습니다. 중전(中殿)마마가 거처하는 곳입니다. 흔히 중전이 교태(嬌態)를 부려 임금과 침소에 드는 곳이라고 오해합니다만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은 바로 주역의 지천태(地天泰) 괘에서 이름을 딴 것입니다. 천지교태(天地交泰)입니다.
천지가 뒤바뀐 모양을 태화(泰和)의 의미로 풀이하는 까닭이 과연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주(周)나라는 여러분이 잘 알 듯이 쿠데타에 의하여 건국된 나라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세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은(殷)의 폭군 주(紂)왕의 정벌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풀이가 그것입니다. 주(周)나라 건국을 합리화하는 괘로 풀이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천태 괘를 천지개벽(天地開闢)의 괘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혁명의 괘로 풀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하(上下)가 뒤바뀐 것에서 그러한 풀이를 이끌어냅니다.
천지개벽과 혁명은 장기적으로 보면 태화의 근본임에 틀림없습니다. 혁명은 한 사회의 억압구조를 철폐하는 것입니다. 억압당한 역량을 해방하고 재갈물린 목소리를 열어줍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잠재적인 역량을 해방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혁명은 흔히 혼란과 파괴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그래서 지천태라는 뒤집힌 형국 즉 혁명의 의미가 어떻게 태화의 근본일 수가 있을까 하고 여러분은 납득하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혁명을 치르지 않은 나라가 진정한 발전을 이룩하기는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혁명을 치르지 않은 사회는 두고두고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는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습니다.이런 관점으로 지천태 괘를 읽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어서 효사(爻辭)를 읽어봅시다. 효사를 그런 관점에서 읽어보도록 합니다. 전위조직(前衛組織)의 건설과 전개과정을 상정하고 읽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국가의 일생 즉 국가를 창건하여 흥성과 쇠망에 이르는 일국의 흥망사로 읽어도 좋습니다.
  
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吉  
拔(발) 뽑다. 茅茹(모여) : 띠풀.
彙(휘) : 떨기. 征(정) : 가다. 

띠풀을 뽑듯이 떨기로 가야 길하다는 뜻입니다. 띠풀은 잔디나 땅콩처럼 그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띠풀은 한 포기를 뽑으려 하면 연결되어 있는 줄기가 함께 뽑힙니다.
모든 시작은 ‘여럿이 함께’ 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국가의 창건이든, 회사 설립이든, 또는 전위조직의 건설이든 많은 사람들의 중의(衆意)를 결집하여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象曰 拔茅征吉 志在外也 
이것은 효(初九)를 설명하는 소상(小象)입니다. ‘발모정길’의 까닭은 즉 띠풀을 뽑듯이 가야 길하다는 의미는 그 뜻하는 바가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 뜻하는 바가 바깥에 있다는 것은 사사로운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대의(大義)와 정의(正義)를 목적으로 삼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하여야 한다는 의미와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包荒(포황) : 거친 것을 포용하다. 즉 황예(荒穢)를 포용한다.
馮河(빙하) : 황하를 맨발로 건너다.
遐遺(하유) : 멀리하거나 버림. 朋亡 得尙于中行   
제2효인 이 효는 시간적으로 아직도 초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그 세를 계속해서 불려나가야 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제2효의 해석에 참으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경탁 주석본(註譯本)의 풀이를 소개합니다.
“여러 오랑캐 족속을 포섭해서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간다. 먼데 남아있는 사람까지 버리지 않고, 친구를 잃어버리는 일이 있으면 중용의 덕행을 숭상함으로써 그를 얻는다.”
제2효의 의미는 다음의 소상(小象)에서 풀이하고 있듯이 그 뜻을 널리 천명하고(光), 그 세(勢)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가 기본입니다.
따라서 오랑캐에 국한하기보다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도 받아들임에 있어서 황하를 맨몸으로 건너듯이 초기 단계에서 흔히 요구되는 과단성도 잃지 말아야 하며 남아 있는 사람 즉 주변에 있는 비주류도 멀리하지 말아야 하며 특히 붕망(朋亡) 즉 붕당(朋黨)이 없어야(亡) 한다. 항상 중용의 정도를 행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무리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象曰 包慌 得尙于中行 以光大也  
제2효를 설명하는 소상(小象)입니다. ‘포황 득상우중행’의 의미는 그것으로써 빛내고 크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그렇게 함으로써 목적을 널리 알리고 조직을 확대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九三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无咎 勿恤其孚 于食有福 
陂(피) : 기울다.
艱貞(간정) : 어렵지만 곧게 가짐.   
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어렵지만 곧게 마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마라 식복이 있으리라. 이러한 의미입니다.
제3효는 소성괘(小成卦)인 하괘(下卦)의 상효(上爻)입니다. 한 단계가 끝나는 시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평불피 무왕불복’은 어려움은 계속해서 재발하는 것이다. 한번 겪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겪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그에 따른 어려움이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그럴수록 곧게 마음을 가지고 최초의 뜻, 즉 믿음(孚)을 회의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의 복(福)은 대체로 식복(食福)이었나 봅니다. 먹는 문제가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象曰 无往不復 天地際也  
되돌아 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는 것은 천지의 제(際)이다. 라고 소상에서 풀이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매우 애매한 풀이입니다.
제(際)의 의미를 천지의 만남이라고 주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천지의 법칙 즉 운동법칙이라는 의미로 풀이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춘하추동이 반복됩니다. 인간의 화복(禍福)도 대체로 다시 반복됩니다. 그런 의미로 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六四 翩翩 不富以其隣 不戒以孚
翩翩(편편) : 새들이 뿔뿔이 흩어짐.
戒(계) : 경계하다.
왕필(王弼) 주(註)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훨훨 날듯이 부유해지지 않아도 이웃과 (富를) 함께 하여 경계하지 않아도 믿는다.”
‘翩翩 不富以其隣’을 ‘翩翩不富 以其隣’으로 끊어서 읽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제4효가 상괘(上卦)의 첫효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5효와 6효의 효사에서 읽을 수 있듯이 흥망성쇄의 사이클이 하향(下向)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편편(翩翩)은 세력이 분산되고 세가 약화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새들이 흩어지듯 그 세(勢)가 약화(弱化)되는 것은 그 부를 이웃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며 믿음으로써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로 읽어서 그 세가 약화되는 이유를 짚어보는 내용으로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상향곡선을 그려온 과정에서, 즉 세력이 장성되어온 과정에서 그 성과를 공정하게 나누지 않았고 최초의 공명정대했던 뜻, 즉 지재외(志在外)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象曰 翩翩不富 皆失實也 不戒以孚 中心願也
이 소상(小象)은 “편편불부는 실질을 모두 잃음이요 불계이부는 중심으로 원함이다”라고 풀이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편편불부를 붙여서 읽고 있다는 사실과 또 불계이부를 긍적적인 의미로 풀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불계이부는 구태어 경계하지 않아도 믿는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나 편편불부를 왕필 주(註)에서처럼 “훨훨 날 듯이 부유해지지 않아도” 라고 읽는다면 그것이 계실실야(皆失實也) 즉 모두 잃는다는 뜻과는 상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六五 帝乙歸妹 以祉元吉
帝乙(제을) : 은나라 임금으로, 누이를 신분을 낮추어 신하인 주의 문왕(文王)에게
출가시켰음.
歸(귀) : 여자가 시집가는 것.  
제을이 누이를 시집보냈다. 복되고 크게 길하리라.
제5효는 임금의 자리입니다. 괘 전체를 두량(斗量)하는 자리입니다. 양효의 자리에 음효가 있어서 비록 득위(得位)는 못하였지만 음효의 공능(功能)인 유순(柔順)하고 겸손(謙遜)함이 있어서 크게 길할 것이라 하였다고 생각됩니다.
象曰 以祉元吉 中以行願也
그게 길할 것이라 함은 중(中) 즉 제5효가 행원(行願) 즉 소원을 이루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
隍(황) : 성 주변의 해자(垓字). 황참(隍塹).
用師(군대) : 군대를 움직이다. 告命(고명) : 왕명이 통한다.
貞吝(정인) : 곧더라도 궁색하다.
제6효인 상효(上爻)는 전 과정의 종결(終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城)이란 글자그대로 흙(土)을 쌓은(成) 것입니다.
평지의 흙을 파서 쌓으면 성(城)이 되고 흙을 파낸 자리는 황(隍)이 됩니다. 그 구덩이에 물을 채워서 해자(垓字)를 만들지요. 이제 그 쌓은 흙이 황(隍)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성(城)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대를 움직이지 마라. 즉 전쟁을 일으키지 마라는 의미입니다. 자읍고명(自邑告命)은 자기의 마을에서만 명을 받든다. 즉 왕명이 널리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정인(貞吝)은 바른 일도 비난받는다는 뜻입니다. 한 나라의 마지막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대부분의 역사(歷史)가 그렇고 일생(一生)이 그렇고 모든 과정(過程)이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象曰 城復于隍 其命亂也
성복우황 즉 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 명령이 어지럽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 지천태(地天泰)의 괘를 주로 전위조직과 관련된 관점에서 해석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효사의 내용에 있어서 충분히 그러한 의미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지천태 괘가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는 혁명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띠풀을 뽑듯이 함께 간다는 것은 조직의 이념이 광범한 민주적 지반 위에 서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 단계의 실천은 철저히 대중노선을 취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읽을 수 있으며 조직의 내포(內包)를 어떻게 공고히 하고 외연(外延)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과 관련된 내용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를 경계하지 않고 진실로써 결속하여야 하고 이해관계로써 결속하기보다는 초기의 이념적 목표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 등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 단계의 어려움을 극복한 이후에 다음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관료주의와 보수적 경향에 대한 경계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 천지비(天地否)
  
천지비(天地否) 괘는 가장 좋지 않은 괘의 예로 듭니다. 지천태(地天泰) 괘와는 그 모양이 반대입니다. 지()위에 천()을 올려놓은 모양입니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형상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양입니다. 자연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이 괘를 비(否)괘라 이름하고 그 뜻을 ‘막힌 것’으로 풀이합니다. 비색(否塞) 즉 소통되지 않고 막혀있는 상태로 풀이합니다. 천지폐색(天地閉塞)의 괘입니다.
지천태(地天泰) 괘와 마찬가지의 논리로 풀이합니다. 하늘의 기운은 올라가고 땅의 기운은 내려가기 때문에 천지가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저 혼자 높고 땅은 하늘과 아무 상관없이 저 혼자 아래로 향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천지가 불교(不交)하고 만물이 불통(不通)하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지비 괘는 그 요지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효사(爻辭)를 읽지 않겠습니다. 괘사(卦辭)는 아래와 같습니다.
  
否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비(否)는 인(人)이 아니다. 군자가 올바름을 펴기에는 이롭지 않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인(人)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란 ‘人’ 자의 모양처럼 서로 도우는 것이 그 속성인데 천(天)과 지(地)가 서로 불교(不交)하기 때문에 비인(匪人) 즉 사람이 아니라고 풀이한 것이지요.
  
이 괘를 해석하는 단(彖) 역시 지천태 괘와 같은 논리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彖曰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則是天地不交 而萬物不通也
上下不交 而天下无邦也 內陰而外陽 內柔而外剛 內小人而外君子
小人道長 君子道消也

否(비) : 否塞. 막힘. 匪人(비인) : 非人. 人은 관계로 읽는다.
비(否)는 인(人)이 아니다. 즉 사람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이다. 군자가 올바름을 펴기에는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을 잃고 작은 것을 얻을 것이다. 천과 지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만물은 서로 통하지 못한다. 상하의 마음이 서로 화합되지 못한다. 천하에 나라가 없는 형국이다. 무방(無邦) 즉 나라가 없다는 뜻은 나라를 공동체(共同體)로 이해할 경우 약육강식의 패권적(覇權的) 질서가 판을 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습니다. 또는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뜻으로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불교(不交), 불통(不通)이야말로 정의실현(正義實現)이나 공동체 건설에 결정적인 장애라고 보는 것이지요. 내괘(內卦)가 음(陰)이고 외괘(外卦)가 양(陽)이다. 이것은 내심은 유약(柔弱)하면서 겉으로는 강강(剛强)함을 가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핵심에는 소인들이 차지하고 군자는 변두리로 밀려난다. 그리하여 소인의 도(道)는 장성하고 군자의 도(道)는 소멸한다.

천지비(天地否) 괘의 대상(大象)은 다음과 같습니다.
象曰 天地不交 否 君子以 儉德辟難 不可榮以祿 
  
儉德(검덕) : 유덕함을 숨김.
辟難(피난) : 난을 피함. 祿(녹) : 벼슬.
천지는 서로 교통하지 못하고 막혀있다. 군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유덕(有德)함을 숨김으로써 난을 피하여야 한다. 그리고 관록(官祿)을 영광으로 생각하여 벼슬에 나아가서는 안 된다.
천지비 괘는 한마디로 폐색(閉塞)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식민지 상황은 물론이고 해방 후의 현대사를 통하여 줄곧 이러한 상황을 경험하였지요. 이러한 폐색의 상황에서는 지혜를 숨기고 어리석음(愚)을 가장하여 권이회지(卷而懷之)하며, 나아가기(進)보다는 물러나기(退)를 택하여 강호(江湖)에 묻히는 것이 처세(處世)의 일반적 방식이지요.
지천태 괘와 천지비 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다 같이 교(交)와 통(通)이라는 코드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교(交)와 통(通)이 곧 ‘관계’입니다. 이것이 주역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관계론적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지천태 괘가 가장 좋은 괘이고 반대로 천지비 괘는 가장 좋지 않은 괘인 것은 위에서 본 대로입니다.
그러나 태(泰)괘와 비(否)괘의 내용을 검토하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즉 태(泰)괘의 전반부는 매우 순조롭고 상승적인 반면에 후반부는 어렵고(艱難) 쇠락(衰落)하는 국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비(否)괘는 전반부가 간난과 쇠락의 국면임에 비하여 후반부가 오히려 순조롭고 상승적인 국면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태(泰)괘의 후반과 비(否)괘의 후반이 같은 성격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태(泰)괘는 선길후흉(先吉後凶)임에 비하여 비(否)괘는 선흉후길(先凶後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동양적 사고에 있어서는 선흉후길이 선호됩니다. 장자(莊子)의 조삼모사(朝三募四)도 그러한 것이며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정서가 그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태괘가 흉하고 비괘가 길하다는 길흉도치의 역설적 구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주역은 이처럼 어떤 괘를 배타적으로 규정하는 법이 없고 또 미리 주어진 고정적 성격으로 규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존재론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대성괘(大成掛)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성괘 역시 다른 대성괘와의 관계에 의하여 재해석되는 중첩적 구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산지박(山地剝)

산지박(山地剝) 괘의 모양을 그려보지요. 산은 (艮)이고 地는 물론 (坤)입니다.
모양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박(剝)은 빼앗긴다. 박탈당한다는 의미입니다. 박괘는 괘사(卦辭)와 상구(上九)의 효사(爻辭)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역에서 상정하고 있는 상황을 검토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구조를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려고 합니다. 괘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剝 不利有攸往
박괘는 이로울 것이 없다. 잃게 된다.
박(剝)괘는 글자 그대로 빼앗기고 박탈당한다는 뜻입니다. 이 괘는 주역 64괘 중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 괘입니다.
초효부터 5효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효입니다. 음적양박(陰積陽剝)의 형상입니다. 양(陽)을 선(善), 음(陰)을 악(惡)으로 보면 악이 득세하고 있는 말세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온통 악으로 쌓여 있고 단 한 개의 양효(陽爻)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한 개의 양효마저 언제 음효로 전락될지 알 수 없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입니다. 붕괴 직전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박괘를 다섯 마리의 고기가 꿰미에 매달려 있는 고단(孤單)한 형국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산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형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상이지만 천지비(天地否)괘와 마찬가지로 막힌 괘로 읽고 있습니다.
교재에 효사를 전부 싣지는 않았습니다만 초육(初六)에서 육오(六五)까지의 효사(爻辭)는 상(床)이 그 다리에서부터 삭아서 무너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괘는 가장 어려운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괘라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절망(絶望)의 괘입니다. 그러나 그 절망이 곧 희망(希望)의 기회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상구(上九)의 효사(爻辭)가 바로 그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上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象曰 君子得无 民所載也 小人剝廬 終不可用也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 군자는 가마를 얻고 소인은 거처를 앗긴다.
군자는 얻는 것이 없으나 백성의 추대를 받게 되고 소인은 거처를 앗기고 종내 쓰일 데가 없어진다.
상구(上九)의 양효(陽爻)는 관어(貫魚)의 꿰미 또는 ‘씨 과실’ 또는 최후의 이상(理想)으로 읽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내가 좋아하는 글입니다. 붓글씨로 써서 아마 여러 사람에게 선물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왕필주(王弼註)에서는 이 석과불식을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獨全不落 故果至于碩 而不見食’ 즉 홀로 떨어지지 않고, 씨 과실로 영글고, 먹히지 않는다고 풀이합니다.
 ‘먹지 않는다’보다는 ‘먹히지 않는다(不見食)’,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괘의 상황은 흔히 늦가을에 가지 끝에 남아 있는 감()을 연상합니다. 까마귀밥으로 남겨두는 크고 잘 생긴 감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비단 감뿐만 아니라 모든 과일은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은 먹지 않고 씨받이로 남기는 것이지요.

산지박(山地剝) 다음 괘가 지뢰복(地雷復)괘입니다. 다음과 같은 모양입니다.
   
  
땅 밑에 우레가 묻혀있는 형상입니다. 잠재력(雷)이 땅 밑에 묻혀있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復)은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의 복(復)입니다.

‘一陽復來 一陽生 朋來无咎 反復其道 春來’가 괘사입니다.
상구(上九)가 최후의 양심(良心), 최후의 이상(理想)이고 그것이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희망은 있는 셈이지요. 박괘는 64괘 중 가장 어려운 상황을 상징하는 괘이지만 동시에 희망의 언어로 읽을 수 있다는 변증법을 발견합니다.
이 박괘는 흔히 혼돈세상(混沌世上)에서 사상적 순결성(純潔性)과 지조(志操)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현명한 판단과 의지가 요구된다는 윤리적 차원에서 풀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가빈사양처(家貧思良妻), 세란식충신(世亂識忠臣),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등이 그러한 풀이입니다. 가정이 어려울 때 좋은 아내가 생각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충신을 분별할 수 있으며 세찬 바람이 불면 어떤 풀이 곧은 풀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하여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희망을 만드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비단 이 박괘의 상전(象傳)과 단전(彖傳)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희망을 만들어 가는 방법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고난의 언어이며, 희망은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고난에 처하여 가능성을 경작하는 방법이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감나무 끝에 달려 있는 감입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이도 그렸습니다.
이 마지막 남아 있는 감이 희망을 상징하고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씨 과실’이 되어 다음 단계의 가능성으로 땅 밑에 묻혀서 싹이 트고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 그림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무엇보다 모든 잎사귀를 떨어버리고 나목(裸木)으로 서는 일입니다. 거품을 걷어내는 일이지요. 그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품을 걷어내고 화려한 의상을 벗었을 때 드러나는 ‘구조(構造)’를 직시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IMF사태’가 왔을 때 내심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식량자급율 27%, 그나마 그 27%는 기름으로 짓는 농사입니다. 그리고 기름은 100% 수입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IMF사태는 우리의 취약한 구조를 직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지요. 그리고 그 구조의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소위 문민정부의 출범 때에도 그러한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만달러 소득이라는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거품과 허위의식을 청산하고 4, 5천달러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단이 필요하였지요.
그러나 그 때나 IMF때나 미봉책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물론 우리가 주체적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종속성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세계경제구조의 중하위권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모든 책임을 그쪽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가 있지요. 그러한 인식능력과 의지력(意志力)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희망은 현실을 직시하는 일에서부터 키워내는 것이라는 것을 박괘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은 현재의 실상(實狀)을 직시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4)화수미제(火水未濟)-1

화수미제 괘는 64괘의 제일 마지막 괘입니다. 마지막 괘라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먼저 화수미제 괘를 그려보지요. 물()위에 불()이 있는 모양입니다. 다음과 같은 모양입니다.
  
이 화수미제 괘의 경우도 괘사와 단전 상전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괘사를 읽어보지요.
  
未濟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未濟(미제) : 끝나지 않음. 小狐(소호) : 어린 여우.
迄(흘) : 거의 濡(유) : 물에 적시다.
미제 괘는 형통하다.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을 즈음 그 꼬리를 적신다.
이로울 바가 없다.
강을 거의 다 건넜다는 것은 일의 마지막 단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꼬리를 적신다는 것은 물론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만 작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효사에 머리를 적신다(濡其首- 上九)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분명 꼬리를 적시는 것에 비하여 더 큰 실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단전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彖曰 未濟亨 柔得中也 小狐汔濟 未出中也 濡其尾 无攸利 不續終也 雖不當位 剛柔應也
미제 괘가 형통하다고 하는 까닭은 음효가 중(中 즉 제5효)에 있기 때문이다.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다 함은 아직 강 가운데로부터 나오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그 꼬리를 적시고 이로울 바가 없다고 한 까닭은 끝마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효가 득위하지 못하였으나 음양상응을 이루고 있다.
미제 괘에서 중요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제5효가 음효라는 사실이 이 괘가 형통하다는 근거로 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5효는 양효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괘의 전체적 성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자리입니다.
그래서 중(中)이라 합니다. 대체로 군주(君主)의 자리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 중(中)의 자리에 음효가 있는 것을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단전의 해석에 근거하여 동양사상에 있어서는 지(地)와 음(陰의) 가치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미제 괘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많은 경우에 중(中)에 음효(陰爻)가 오는 경우를 길형(吉亨)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양음(陽陰)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음양(陰陽)이라 하여 음(陰)을 앞에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양사상은 기본적으로 땅의 사상이며 모성(母性)의 문화라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꼬리를 적시고’, ‘이로울 바가 없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끝마치지 못한다’는 일련의 사실입니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나 당연한 서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실수와 실수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러한 실수가 있기에 그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든 강물이든 생명이든 밤낮이든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마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세상에 완성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64개의 괘 중에서 제일 마지막에 이 미완성의 괘를 배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요.
그리고 비록 (모든 효가) 마땅한 위치를 얻지 못하였으나 강유(剛柔) 즉 음양이 서로 상응하고 있다는 것으로 끝맺고 있는 것도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봅니다.
지난번에 설명을 하였습니다. 위(位)와 응(應)을 설명하면서 비록 실위(失位)이더라도 응(應)이면 무구(無咎) 즉 허물이 없다고 했지요. 위가 개체 단위의 관계론이라면 응은 개체간의 관계론으로서 보다 상위의 관계론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지요.
실패한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이지요. 응(應) 즉 인간관계를 디딤돌로 하여 재기하는 것이지요. 작은 실수가 있고, 끝남이 없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상태 등등을 우리는 이 단전(彖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상전(象傳)은 다음과 같습니다.
  
象曰 火在水上 未濟 君子以 愼辨物居方

불이 물 위에 있는 형상이다. 다 타지 못한다. 군자는 이 괘를 보고 사물을 신중하게 분별하고 그 거처할 곳을 정하여야 한다.
이상에서 본 것이 미제 괘(未濟卦)의 괘사(卦辭)와 단전(彖傳), 상전(象傳)입니다.
나는 이 괘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미제 괘가 왜 주역 64괘의 마지막 괘인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처음 주역을 읽었을 때에는 미제 괘가 꼭 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요. 마지막 단계에 작은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끝이라고 방심하다가 아니면 얼른 마무리하려고 서두르다가 그만 실수하는 경우가 많았었지요.
그래서 그 후로는 어떤 일의 마지막 단계가 되면 속도를 늦추고 평소보다 긴장도를 높여서 조심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하였지요. 그러나 미완성 괘가 주역의 마지막 괘라는 사실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최후의 괘가 완성 괘(完成卦)가 아니라 미완성 괘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변화와 모든 운동의 완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역사와 삶의 궁극적 완성이란 무엇이며 그러한 완성태(完成態)가 과연 존재하는가를 반성하는 괘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태백산 줄기를 타고 내린 물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되어 만나서 다시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漢江)은 무엇을 완성하기 위하여 서해로 흘러드는지...그리고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무엇을 완성하려고 바람서리 견디며 서 있는지...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믿습니다.
둘째 미제 괘는 모든 효가 실위(失位)하고 있지만 응(應)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응(應)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상태 즉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가능성은 어느 개인의 결심이나 그 개인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것이지요.
셋째 실패로 끝나는 미완성과 실패가 없는 완성 중에서 어느 것이 사물과 변화의 보편적 상황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반성(反省)이며,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완성이 사물과 변화의 보편적 상황이라면 남는 것은 결국 과정(過程)이며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 완성이나 달성(達成)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완성(完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목표(目標)’의 개념은 없습니다. 목표가 없다면 남는 것은 과정입니다. 목표와 수단이라는 관념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목표가 선량(善良)하면 수단이 불량(不良)하여도 상관없다는 논리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하물며 ‘하면 된다’라든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폭력과 강제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만연한 ‘속도(速度)’의 개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논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道路)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로는 고속(高速)일수록 좋습니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도로의 개념입니다. 짧을수록 좋고, 궁극적으로는 제로(0)가 되면 자기목적성에 최적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순입니다. ‘길’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 터이기도 하고, 자기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역의 사상을 이러한 마음으로 재조명하는 것이 주역을 새롭게 읽는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내가 붓글씨로 즐겨 쓰는 구절을 소개하지요.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過程)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진선진미란 구절은 논어에 나옵니다만 이곳에 쓰여진 의미와는 다릅니다. 나는 목표와 과정은 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선(盡善)하지 않으면 진미(盡美)할 수 없고 진미하지 않고 진선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
화수미제 괘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내었습니다. 주역 강의가 아니더라고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5) 주역의 관계론 재론

주역 사상을 계사전(繫辭傳)에 단 세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르면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持平)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踏步)하지 않고 부단히 진보(進步)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變化)’입니다. 주역은 사물의 변화와 발전을 해명하려는 구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변화를 읽음으로써 고난을 피하고 안락함을 얻으려는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고취락(避苦取樂)이 궁극적 목적입니다.
주역은 사물(事物)과 사건(事件)과 사태(事態)에 대한 일종의 範疇(kategorie)적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칸트의 판단형식(判斷形式)의 성격을 주역은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주역의 64괘를 철학적 범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범주적 성격은 동시에 객관적 세계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이 점은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의 종류를 표현하는 진술형식(陳述形式)이나, 최상위의 유개념(類槪念)과 통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주역 서론 부분에서 이미 이야기했다고 기억합니다. 요컨대 주역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역에서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철학적 구도 이외에 매우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이 일관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름아닌 절제(節制)사상으로서의 주역입니다.
일례로 건위천(乾爲天)괘의 상구(上九)의 효사(爻辭)입니다. 항룡유회(抗龍有悔) 즉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경계입니다. 초로 만들어진 이카루스의 날개가 태양열에 녹아서 추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좀 많은 시간을 가지고 논의해야하는 주제이긴 합니다만 위에서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하였지요. 그리고 변화를 사전(事前)에 읽어냄으로써 대응할 수 있고 나아가서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절제란 바로 이 변화의 조직,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조직한 관계망(關係網)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법이 로마 이외에는 통하지 않는 것을 잊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논의를 불필요하게 확대하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우리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된 여러 부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아가 과학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객관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따로 분리하여 구성한 세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삶은 천지인을 망라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중심의 주관적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역의 범주는 그것이 판단형식이든 아니면 객관적 존재에 대한 진술형식이든 그 범주는 제한성을 띠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바로 이러한 제한성으로부터 도출되는 당연한 결론이라고 해야 합니다.
오늘 강의로써 주역을 마칩니다. 대성괘 몇 개를 그것도 일부만 읽어보는 것으로 주역을 이해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공자의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주역을 두고 일컬은 말입니다. 책을 묶은 가죽끈이 3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는 것이 바로 이 주역입니다.
그만큼 공자가 심혈을 기울여 읽은 책이 바로 주역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책은 죽간(竹簡)이기 때문에 가죽끈이 쉽게 끊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종이를 묶었건, 대나무 쪽을 묶었건 가죽끈이 3번씩이나 끊어진다는 것은 여간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역 강의를 마치면서 시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나로서는 주역 사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만 여러분은 아마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가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 있을 때 자신의 영정(影幀)에 쓴 시(詩)입니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출처 : hgmja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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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사(楚辭)’는 ‘시경(詩經)’과 함께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습니다만 시대적으로는 ‘서경(書經)’ 다음에 읽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초사는 한(漢)나라 유향(劉向.BC 77-6)이 굴원(屈原) 송옥(宋玉) 등의 작품을 모아 펴낸 책명을 말합니다. 이 책이 나온 이후로는 일반적으로 초(楚)나라의 시체(詩體)를 가리키는 것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초사는 망실되고 현재 전하는 것은 왕일(王逸)의 ‘초사장구(楚辭章句)’ 총 17편입니다.
  
  시경(詩經)이 북방 중원의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한 4언체(四言體) 운문(韻文)인데 비하여 초사는 이러한 북방 4언체를 혁신한 양자강 유역에서 발전한 남방문학입니다. 남방국가인 초(楚)나라의 시체로서 음악에 가까운 운문입니다.
  
  특히 방언(方言) 무풍(巫風) 풍습(風習) 음운(音韻) 등 초나라의 뛰어난 문물과 풍부한 민요 특히 무풍(巫風)의 토양 위에 난숙하게 발전한 낭만문학(浪漫文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경이 사실적이고 노동과 삶과 보행의 정서로 이루어진 시세계(詩世界)임에 비하여 초사의 세계는 자유분방, 정열, 상상력, 신비, 환상 등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노래입니다. 초사는 중국문학사에 있어서 시는 물론 산문 소설 희곡에 이르기까지 중국문학 전반에 광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시경이 집단창작과 전승을 통하여 만들어졌음에 비하여 초사에서는 작자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굴원이 중국시인의 대표인 것도 작자가 초사에서 비로소 그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굴원의 ‘이소‘(離騷)가 초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소‘는 흔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이소‘는 전쟁영웅의 대서사시가 아니라 장편 서정시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시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神曲)‘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두 작품의 주인공이 하늘과 지옥을 여행한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신곡에서는 그것이 인간이성의 구법(求法)여행임에 비하여 ‘이소‘에서는 그것이 실연한 여인의 구애(求愛)여행인 점이 판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소‘가 초사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3백74행이나 되는 너무 긴 시라서 여기서는 짧은 ’어부(漁父)‘ 한 편을 함께 읽기로 합니다.
  
  漁 父(屈原)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歟 何故至於斯
   屈原曰
   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淈其泥 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餔其糟 而歠其釃
   何故深思高擧 自見放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 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 鼓而去

   乃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不復與言
  
  
三閭(삼려)-楚나라 왕실의 세 가문 昭, 屈, 景씨. 滯(응체)-막히고 얽매이다.
  與(여)-어울리다. 더불다. 糟(조)-지게미. 歠(철)-마시다.
  釃(리)-묽은 술. 그를 시. 高擧(고거)-高踏, 孤高함.
  察察(찰찰)-결백한 모양. 깨끗한 모양. 汶汶(문문)-불결한 모양.
  莞爾(완이)-빙그레 웃는 모습. (예, 설)-노.
  滄浪(창랑)-漢水의 하류. 차고 푸른 물. 纓(영)-갓끈

  
  ‘어부’는 굴원이 오랜 유배 중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한 고뇌(苦惱)와 울분(鬱憤)을 토로한 애국적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는 시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시입니다. 고등학교 한문2교재에 있습니다. 중요한 부분만 그 뜻을 새겨보기로 하지요.
  
  전체의 구조는 어부와 유배된 굴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의 구성을 그렇게 가지고 간 것이고 굴원의 자문자답(自問自答)으로 보아도 상관없습니다.
  
  먼저 어부가 유배되어 초췌한 몰골로 호숫가를 거닐고 있는 굴원에게 유배당한 이유를 질문합니다. 굴원이 밝힌 유배의 이유는 다소 엉뚱합니다.
  
  세상사람들이 죄다 부패한데 자기 혼자만 깨끗하였기 때문에 추방당하였고, 세상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해 있는데 자기 혼자만 맑은 정신이어서 추방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굴원이 자신의 결백과 정치적 주장을 굽히지 않은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굴원의 이름은 평(平)으로서 전국시대 말(BC 345-295(?)) 초(楚)나라 왕족의 후예로서 뛰어난 학식으로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26세에 나라의 정사를 주관하는 좌도(左徒)에 오릅니다.
  
  당시 합종연횡(合從連橫)의 시대에 강국인 진(秦)나라와의 연합을 반대하는 반진(反秦)주의자로서 줄곧 제초(齊楚)동맹을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친진파(親秦派)와의 정치적 갈등으로 모함을 받게 되고 유배(流配)와 해배(解配)를 거듭하다가 결국 강남으로 추방됩니다.
  
  어쨌든 추방당한 이유가 부패한 친진파의 참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천하가 부패하고 술에 취해 있는데 함께 어울리지 못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라는 주장은 일단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굴원의 이유에 대하여 어부는 그러한 굴원의 비타협적이고 고고한 처세에 대하여 비판합니다.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사(世事)의 변화와 추이(推移)에 능히 어울릴 수 있어야 함을 들어 굴원의 심사고거(深思高擧)를 나무랍니다.
  
  여기에 대한 굴원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이 구절은 명구로 지금도 회자됩니다.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의 먼지를 떨고 갓을 쓰는 법이며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의 먼지를 떤 다음 옷을 입는 법이라고 선언합니다. 차라리 몸을 물에 던져 죽을지언정 깨끗한 몸을 더럽힐까보냐고 자신의 고고함을 선언합니다. 비타협적 기개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이러한 굴원의 비타협적 선언에 대하여 어부는 혼잣말처럼 노를 두드리며 노래하며 떠나갑니다.
  
  이 노래가 이 시의 결론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어부가 읊조리는 노래로 되어 있습니다만 굴원이 스스로의 생각을 최종적으로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 역시 명구로서 암송되는 구절이지요.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나는 굴원의 이 시를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이 구원(久遠)의 주제에 대하여 굴원의 결론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가장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갓끈을 씻고 반대로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타협주의나 대중추수주의와는 구별되는 대응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획일적 대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초사를 여러분과 함께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물론 현실과 이상의 갈등을 노래한 굴원의 정신세계도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나는 초사가 대표하고 있는 남방문학의 낭만주의적 정신세계가 갖는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낭만주의는 물론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매우 넓은 스펙트럼으로 나타납니다. 문학이나 미학적 영역에서부터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적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낭만주의가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출처 : hgmja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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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詩經)’에 이어서 ‘서경(書經)’의 한 편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경은 이제(二帝. 堯,舜) 삼왕(三王. 禹왕,湯왕,文왕 또는 武왕)의 주고 받은 말을 기록한 책입니다.
  
  물론 유가의 경전이 되기 전에는 그냥 서(書)라고 하거나 상서(尙書)라고 했습니다. 상(尙)은 상(上)의 의미로 읽어서 상고(上古)의 서(書)라는 뜻으로 읽기도 하고 또는 천자(天子) 즉 상(上)의 말씀을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중국에는 고대부터 사관에 좌우(左右) 이사(二史)가 있었는데 좌사(左史)는 왕의 언(言)을 기록하고 우사(右史)는 왕의 행(行)을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이 각각 상서(尙書)와 춘추(春秋)가 되었다고 합니다.
  
  천자의 언행을 기록하는 동양의 이러한 전통은 매우 특징적인 것입니다. 사후(死後)의 지옥(地獄)을 설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구속력이 강한 규제장치로 평가됩니다.
  
  ‘죽백(竹帛)에 드리우다‘는 말은 청사에 길이 남는다는 뜻입니다. 자손 대대로 그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는 것은 대단한 영예가 아닐 수 없지만 반대로 그 악명과 죄업을 기록하여 남긴다는 것은 대단한 불명예요 수치가 아닐 수 없지요.
  
  임금의 언행을 남기는 것은 물론 후왕이 그것을 거울로 삼아 바른 정치를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서(書)는 정(政)에 장(長)하다고 하였지요.
  
  서(書)에는 수많은 정치적 사례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에 정통하게 되면 정치적 판단력과 역량이 뛰어나게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서경,춘추와 같은 기록문화는 후대의 임금들이 참고할 수 있는 사례집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록문화는 그 자체로서 어떠한 제도보다도 강력한 규제장치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상상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처럼 기록으로 남기는 문화전통은 농경민족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농경민족은 유한공간(有限空間)에서 반복적 경험을 쌓아 가는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땅이라는 유한한 공간에서 무궁한 시간의 변화를 살아가는 동안 과거의 경험이 다시 반복되는 구조를 터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과거에 대한 기록은 매우 중요한 문화적 내용이 됩니다.
  
  기록은 물론 자연에 대한 기록에서 시작합니다만 이러한 문화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 발전합니다. 이제 삼왕의 주고 받은 어록으로서의 서경이 탄생되는 까닭이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문화혁명기에 홍위병들이 붉은 표지의 모택동 어록을 흔들며 행진하는 광경을 보고 매우 의아해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연히 마오 어록(毛澤東 語錄)으로부터 공산주의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유일지배체제나 독재체제의 상징처럼 부정적 인상을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오 어록은 중국의 전통에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중국의 전통에 이러한 기록의 문화가 있다는 것도 매우 의미있고 특징적인 것이지만 이러한 기록이 보전되고 읽혀진다는 사실이 실은 매우 희귀한 것입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난 후에 서적을 불사르고 학자들을 매장하는 문화적 탄압, 소위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게 되지만 그는 무엇보다 천하통일사업의 일환으로 중국의 문자를 통일합니다.
  
  이 문자의 통일은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고대문자와 고대기록의 해독을 가능하게 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위치우위(余秋雨)는 그의 ‘세계문명기행’에서 시이저가 이집트를 점령하고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과 ‘이집트사’를 포함한 장서 70만 권을 소각한 사실, 그리고 그로부터 4백여년 후 로마 황제가 이교(異敎)를 금지하면서 유일하게 고대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던 이집트 제사장들을 추방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에서 고대문자를 해독할 능력을 인멸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사에 있어서 기록의 의미는 훨씬 더 커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하는 서경은 공자의 찬(撰)으로 58편인데 25편은 고문(古文) 33편은 금문(今文)입니다.
  
  금문상서(今文尙書)는 진(秦)의 분서(焚書) 이후 한(漢)의 복생(伏生)이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문상서(古文尙書)는 전한(前漢) 경제(景帝) 때 노공왕(魯共王)의 궁실을 넓히다가 공자의 구택(舊宅) 벽에서 얻었다고 전해지는 벽경(壁經)으로서 올챙이 모양의 과두문자(蝌蚪文字)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고문은 청나라 고증학자들에 의하여 후세의 위작(僞作)으로 판명되었으며 금문상서 역시 주공(周公) 전후의 여러 편(篇)이 먼저 성립되어 가장 오랜 부분이고 그 다음에 은(殷)부분이 추가되고 그리고 하(夏), 다시 요(堯), 순(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바 ‘가상학설(加上學說)’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최초에는 주(周)왕조의 창건자인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을 중심으로 기록하였으나 유학자들이 국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전설적인 제왕들에 관한 단편적 기록들까지 추가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서경에서는 단 한 편만 읽기로 하겠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바와 같이 가장 신뢰성이 있는 주공 편에서 골랐습니다.
  
  無逸
  周公曰 嗚呼 君子 所其無逸
  先知稼穡之艱難 乃逸 則知小人之依
  相小人 厥父母 勤勞稼穡
  厥子 乃不知稼穡之艱難 乃逸 乃諺 旣誕
  否則 侮厥父母曰 昔之人 無聞知
  (周書 無逸.10)

  

  稼穡(가색)-농삿 일. 依(의)-의지하다, 기대다.
  諺(언)-함부로 지껄이다. 誕(탄)-방탕 무례함
  侮(모)-업신여김. 厥(궐)-그. 其와 같음.
  

  이 글은 주공(周公)이 조카 성왕(成王)을 경계하여 한 말로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형인 무왕(武王)이 죽고 어린 조카인 성왕을 도와 주나라 창건 초기의 어려움을 도맡아 다스리던 주공의 이야기입니다. 군주의 도리로서 무일(無逸)하라는 것이지요. 안일에 빠지지 말 것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군자는 무일(無逸.편안하지 않음)에 처하여야 한다. 먼저 노동(稼穡)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의 고통(小人之依)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을 보건대 그 부모는 힘써 일하고 농사짓건만 그 자식들은 농사일의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편안함을 취하고 함부로 지껄이며 방탕 무례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업신여겨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聞知)이 없다고 한다.“
  

  이 무일 편에서 개진되고 있는 ‘무일사상(無逸思想)’은 주(周)나라 역사경험의 총괄이라고 평가됩니다. 생산노동과 일하는 사람의 고통을 체험하고 그 어려움을 깨닫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무일사상은 주나라 시대의 고대정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문화와 중국사상의 저변에 두터운 지층(地層)으로 자리잡고 있는 정서라고 생각합니다.
  
  1957년과 80년대에 대대적으로 실시되었던 하방운동(下方運動)의 사상적 근거가 바로 이 무일사상이라고 평가되었지요. 하방운동은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당 간부, 정부 관료들을 농촌이나 공장에 내려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군 간부들을 병사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현장을 체험하게 하는 운동이었지요.
  
  간부들의 주관주의(主觀主義)와 관료주의(官僚主義)를 배격하는 지식인 개조운동이었지요. 1천만 명이 넘는 인원이 하방운동에 동원되었다고 전해지지요.
  
  무일 편은 주공의 사상이나 주나라 역사경험을 읽는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편을 통하여 가색의 어려움 즉 농사일이라는 노동체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생산노동과 유리된 젊은 층의 안일한 사고와 소모적 행태를 재조명하는 예제로 읽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나한테 건설회사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해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는 후배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무일‘이란 이름을 소개하였지요. 건설현장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싶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싫다고 하더군요. 건설회사가 ‘일이 없으면’(무일)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어요.
  
  ‘무일(無逸)‘이 물론 그런 뜻은 아니지만 어감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무일(無逸)이란 의미에 대하여 아무런 공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진짜 이유였다고 생각하지요.
  
  특히 여러분과 같은 젊은 세대의 정서로서는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한마디로 불편은 불행일 뿐이지요. 불편의 의미에 대하여 참으로 삭막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죄짓는 일이라는 달관과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주공에 대하여 좀 더 소개하고 싶습니다. 주공은 공자(孔子)가 며칠 간 꿈에 보지 못해서 아쉬워하던 바로 그 사람이지요.
  
  상(商)을 멸망시킨 무왕(武王)의 동생이 바로 주공(周公)인 희단(姬旦)이지요. 주공(周公)은 주은래(周恩來)와 함께 중국 최고의 정치가로 평가됩니다.
  
  어느 왕조이건 창건의 역사는 파란 만장한 혁명사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주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주나라는 이를테면 신하의 나라가 쿠데타(逆取)에 의하여 역성혁명을 성공시켜 세운 국가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백이 숙제(伯夷 叔齊)가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신하가 임금을 치는 것의 부당함을 간(諫)하다가 듣지 않자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 죽었다는 고사가 바로 이 때의 일입니다.
  
  초기의 권력관계가 매우 복잡하였어요. 무왕이 동생 주공을 노(魯)나라에 봉하였지만 아직 나라가 안정되지 않을 때여서 주공은 아들인 백금(伯禽)을 대신 임지로 보내고 자기는 남아서 계속 무왕을 보좌해야 하였습니다.
  
  당시 72제후국 중 희(姬)씨가 55국으로 압도적으로 장악하였지만 여(呂)씨가 17국으로 만만치 않은 세력을 확보하고 있었어요.
  
  원래 주(周)나라는 서쪽에 있던 산간(山間)의 제후국(諸侯國)이었는데 남하(南下)하여 위수(渭水)평야로 이동하고 문왕(文王) 때에 태공망 여상(呂尙)을 얻어 강대해졌다고 하는데 그것이 곧 강족(姜族)과 주족(周族)의 연합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었어요.
  
  17개 제후국을 장악한 여(呂)씨가 바로 여상(呂尙)의 강족(姜族)이지요. 여상은 문왕과 연합하여 그 세력을 확장하여 결국 무왕 때에 이르러 상(商)을 무너트린 것이지요.
  
  이 여상이 곧 강태공(姜太公)입니다. 문왕을 만나기까지 곧은 낚시를 강물에 던져두고 세월을 낚고 있었다는 강태공이지요.
  
  병법과 지략에 뛰어난 전략가로서 육도삼략(六韜三略)의 저자이며 무왕(武王)의 장인이기도 하지요. 강력한 정치세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을 변방인 산동성으로 거세시킨 것도 모두 주공의 정치적 수완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왕이 상(商)을 정벌한 후 상(商)의 마지막 임금 주(紂)의 아들 무경녹부(武庚祿父)를 후(候)에 책봉하여 상(商)나라 유민(遺民)을 그에게 복속시켰어요. 상(商)나라 유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무왕(武王)은 그의 두 동생 관숙선(管叔鮮)과 채숙도(蔡叔度)를 무경(武庚)에게 사부(師父)로 붙였는데 무왕(武王)이 죽자 무경(武庚)과 두 동생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주공(周公)은 성왕(成王)의 명을 받들어 동생인 관숙선을 죽이고 채숙도를 추방합니다. 그리고 상(商)나라 유민을 모아 주(紂)의 형인 미자(微子)를 따르게 하고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丘縣) 부근인 송(宋)에 나라를 세우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미자(微子)는 송(宋)의 시조(始祖)가 됩니다. 송(宋)은 상(商)나라를 계승한 주(周)나라의 제후국이 된 것이지요. 이 송(宋)나라와 인접한 나라가 공자(孔子)의 나라인 노(魯)나라이며 이 노(魯)가 바로 주공(周公)이 봉해진 제후국입니다.
  
  주공은 조선시대의 세조와 같이 어린 조카를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기가 군권(君權)을 장악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지만 끝까지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닦았습니다.
  
  주공은 일반삼토(一飯三吐), 일목삼착(一沐三捉)이라는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입니다. 현인을 정성을 다하여 공손하게 모신 예화입니다.
  
  한 끼 밥 먹는 동안에도 세 번씩이나 먹던 밥을 뱉어내고 손님을 맞으러 달려나가는가 하면 한 번 머리 감는 사이에도 세 번씩이나 젖은 머릿단을 움켜쥐고 손님을 맞으러 달려나갔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잠시 중국의 고대사에 대하여 몇 가지 언급해 두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중국고대의 제왕계보는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우(禹, 夏)-탕(湯,殷, 商)-문(文)-무(武)-주공(周公)으로 이어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듣던 말이 바로 이 ‘요순우탕문무주공’이었거든요. 그러나 황제 이하 요(堯), 순(舜)까지는 가공의 인물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반면에 하우(夏禹)는 실제 인물이라고 주장됩니다. 서경 우공(禹貢)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하(夏)의 건설지로 알려진 하남성 옌스시엔(偃師縣) 얼리터우(二里頭)와 그 주변지역에 있는 궁궐터, 분묘 등의 유물과 유적은 당시에 이미 권력과 계급의 존재를 증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염지(鹽地)유적은 그 곳이 경제적 중심지였음을 추측하게 합니다. 그리고 갑골문자(甲骨文字.가장 오래된 것 19대 盤庚 이후) 또는 복사(卜辭. 龜甲,獸骨에 새겨진 문자)의 존재라든가 우(禹)의 아들 계(啓)가 왕위를 세습함으로써 비로소 세습왕조가 시작되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일반적으로는 은대(殷(商)代)부터 실재한 왕조로 인정하는 것이 현재의 통설입니다.
  
  BC. 1760년 경에 이 하(夏)를 멸망시키고 들어선 나라가 은(殷)입니다. 원래는 상(商)이었는데 주(周)가 상(商)을 정벌한 후에 수도의 이름을 따서 은(殷)나라로 낮추어 불렀지요
  
  이 상(商)의 마지막 왕인 28대 주(紂)왕(帝辛)을 무(武)왕이 멸하고 주(周)를 세웠습니다. 이 때가 BC. 1100년 경이었습니다.
  
  사마천(司馬天)은 사기(史記)에서 서(書)는 선왕(先王)의 사(事)를 기록한 것으로 정(政)에 장(長)하다고 하였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춘추(春秋)에 대해서는 시비(是非)를 변(辨)한 것이므로 치인(治人)에 장(長)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레닌은 ‘우리는 어떤 유산을 거부해야 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역사공부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를 준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였지요.
  
 나는 이 무일(無逸)편을 여러분과 함께 읽으면서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읽으면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어떠한 반성적 시각인가를 묻게 됩니다.
  
  첫째 나는 이 무일 편이 효율성과 소비문화를 반성하는 메시지로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능력 있고 편안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반성하는 경구로서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노르웨이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 저장탱크 속에 반드시 정어리의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정어리의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무일 편을 통하여 불편함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씹어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둘째 무일 편은 생산하는 사람은 업신여기고 소비하는 사람은 우러러보는 우리들의 사고(思考)는 과연 어디서 연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한 개인의 아이덴티티가 소비행위에 의하여 실현될 수 있는지? 적어도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그 사람의 고뇌와 삶의 지속적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지를 반성하는 관점에서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셋째로 노인에 대한 태도입니다. 노인들을 아는 것이 없다고 업신여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세태였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오늘날은 IMF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퇴직연령이 낮아지면서 더욱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과거의 지식이 빨리 폐기되고 당연히 노인들의 위상이 급속히 추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 자체의 조로화(早老化)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낭비이면서 역사의 폐기입니다. 소위 ‘도시유목민‘이 정보화 사회의 미래상이라는 전망이 전제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유목문화는 과거의 경험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동일한 공간에서 반복적 경험을 쌓는 문화가 아니지요. 부단히 새로운 들판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경험적인 노인문화보다는 청년문화(靑年文化)가 그야말로 전위문화(前衛文化)로 자리잡습니다.
  
  인류의 정신사는 어느 시대에나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의 압축과 재조명에 의하여 그 진로를 모색하기 마련입니다. 어느 마을에 나이 많은 노인이 한 사람 살고 있다는 것은 그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오늘날의 속도와 변화가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는 물론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사활적 자본축적논리의 비정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적 논리, 인간적 가치와는 한 점의 상관도 없는 것이지요. 인간적 가치와 인간적 논리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경험의 폐기이며 역사 그 자체의 폐기이며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폐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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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동양사상의 특징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특징'이라는 것에 관해서 입니다. 특징이라는 것은 비교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다면 특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징은 반드시 비교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이가 특징의 내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동양사상의 특징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서양사상과의 비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서양 사람의 얼굴의 특징이라는 것은 동양 사람의 얼굴과 비교한 것입니다. 따라서 동양사상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경우 그 특징이 어떤 것과의 관계에서 규정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주로 관계론적인 내용을 동양사상의 특징으로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양사상의 존재론적 특징과 비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근대사회를 그 기본적 구조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어내는 담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론부분에서 그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면서도 막상 빠트린 것이 많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추후에 첨부하겠습니다.
  
  오늘은 ‘시경(詩經’)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어떠한 논의이든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일관된 관점을 견지하는 일입니다. 그 관점이 자의적이거나 경우에 따라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경우는 논지가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시경에 관해서도 숱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3백여 편이 넘는 시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주(註)가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시경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의 사실성(寫實性)에 있습니다. 이야기는 거짓이 있지만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지요.
  
  시경은 민요이며 민요는 개인 창작이 아닙니다. 집단 창작입니다. 그리고 그 전승과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 노래가 계속 불려지고 전승될 리가 없습니다.
  
  시경의 정수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실성(眞實性)과 진정성(眞正性)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이 지극히 불안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진정성 그리고 사실성의 문제는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소위 상품미학과 사이버 세계, 그리고 바로 여러분들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신세대들이 매몰되고 있는 자본주의 문화 일반에 대하여 그 허구성, 가공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반성적 시각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경의 독법은 바로 그러한 시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시경의 시 한 편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지요.
  
  
  
  우선 전체의 뜻을 새겨보지요.
  
  <여강 둑에서>
  
  “저 강 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기다리는 님은 오시지 않고 그립기가 아침을 굶은 듯 간절하구나. 저 강 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저기 기다리는 님 오시는 구나. 나를 멀리하여 버리지 않으셨도다. 방어꼬리 붉고 왕실을 불타듯 하도다. 비록 불타듯 하지만 부모가 바로 가까이에 계시는구려.“
  

  주(註)를 보면 대강의 의미는 짐작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에서 먼저 이 시가 보여주는 그림을 여러분들이 그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첫 연에서 그려볼 수 있는 그림은 이렇습니다. 길게 흐르는 여강과 그리고 그 강물과 함께 뻗어있는 긴 강둑. 그리고 그 강둑에서 나뭇가지 꺾으며 기다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입니다.
  
  전쟁터로 나갔거나, 또는 만리장성 축조 같은 사역에 동원되었거나 벌써 몇 년째 소식이 없는 낭군을 기다리는 가난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땔감으로 나뭇가지 꺾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병역이나 사역에 동원될 리가 없지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요.
  
  두 번째 연에서는 기다리던 낭군이 돌아오는 그림입니다. 자기를 잊지 않고 돌아오는 낭군을 맞는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돌아온 낭군에게 하는 다짐입니다. 그 내용이 지금의 아내나 지금의 부모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먼저 시국에 대한 인식입니다. 방어의 꼬리가 붉다는 것은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방어는 피로하면 꼬리가 붉어진다고 합니다. 물고기가 왜 피로한 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방어는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왕실여훼’란 중앙정치가 매우 어지럽다는 뜻이지요. 권력투쟁을 둘러싼 정변이 잦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왕실이 불타는 듯 어지럽더라도 그러한 전쟁이나 정쟁에 일체 관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지요.
  
  관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부모가 바로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내의 논리지요. 가정의 논리입니다.
  
  그것이 곧 아내의 정치학이 되고 있지요. 정치학이라기보다는 소박한 민중의 삶이며 소망입니다.
  
  나는 이 ‘여분’이란 시를 참 좋아합니다. 그 시절의 어느 마을, 어느 곤궁한 삶의 주인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궁금하기는 이 노랫말에 어떤 곡이 붙었을까, 매우 궁금합니다.
  
  원래 시경에 실려 있는 시들은 가시(歌詩)였다고 합니다. 악가(樂歌)지요. 辭(시) + 調(노래) + 容(춤)이었다고 전합니다.
  
  즉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정의(情意)가 언(言)이 되고 언(言)이 부족하여 가(歌)가 되고 가(歌)가 부족하여 무(舞)가 더해진다(毛詩 大序)고 하였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말로써도 부족하고 노래로써도 부족하고 춤까지 더해서 그 뜻의 일단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악곡(樂曲)은 없어지고 가사(歌辭)만 남은 것이지요.
  
앞에 소개한 ‘여분‘은 국풍(國風)에 속하는 시입니다. 시경에는 모두 3백5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은 것이 각 나라에서 수집한 민요인 국풍입니다. 전체 수록 편수의 절반이 넘는 양입니다.
  
  국풍(國風)은 각국의 채시관(採詩官)이 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입니다. 수집된 노래는 태사(太師)에게 바쳐졌고 태사는 다시 이 가운데서 음률에 맞는 것을 골라 천자에게 바쳤다고 전합니다.
  
  採詩(채시,채시관)→ 獻詩(헌시,사대부가 천자에게)→ 刪詩(산시,공자)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공자가 산시(刪詩)했다는 설은 믿을 수 없지만 시경을 교육 관점에서 접근한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처럼 백성의 노래를 수집하는 주(周)나라(BC 1026-403)의 전통은 한(漢) 이후에도 이어져 악부(樂府)라는 관청에서 백성들의 시가를 수집하게 됩니다.
  
  이렇게 수집 정리된 시경은 약 3천여 년 전의 시로서 세계 최고(最古)의 시입니다. 은(殷)말 주(周)초인 BC 12세기 말부터 춘추(春秋)중엽인 BC 6세기까지 약 6백년 간의 시(詩)와 가(歌)를 모아 BC 6세기경에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周)나라 초에(기원전 10세기) 이미 시경이 편찬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시경은 중국의 사상과 문화의 모태가 되고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인정합니다. 시경은 제후국간의 외교 언어로 소통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공통언어가 성립되고 나아가 중국의 문화적 통일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기강이 어지러워지고 민중적인 정신이 피폐해지면 고문(古文)운동, 신악부(新樂府)운동 등 시가(詩歌)혁신운동을 벌여 시경의 정신으로 돌아가 민중에게 다가서자고 호소합니다.
  
  시경의 이러한 사회시(社會詩)로서의 성격은 문학예술의 사실주의적 전통으로 이어졌으며 동시에 고대사회를 이해하는 귀중한 사료로 시경의 가치가 인정되기도 합니다.
  
  다음 시 한 편을 더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석은 제가 번역한(공역입니다만) ‘중국역대시가선집’의 역문을 그대로 읽어드립니다.
  
  <모과>
  
  “나에게 모과를 던져주기에 나는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지. 보답이 아니라 뜻깊은 만남을 위해서라오.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주기에 나는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지. 보답이 아니라 변함 없는 우정을 위해서라오. 나에게 오얏을 던져주기에 나는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지. 보답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라오.“

  
  경거(瓊), 경요(瓊瑤) 경구(瓊玖)는 2절 3절에서 단조로운 반복을 피하려고 변화를 준 것입니다. 오늘날의 노래가사도 마찬가지지요. 경거, 경요, 경구 어느 것이나 아름다운 패옥으로 풀이해도 됩니다.
  
  그리고 永以爲好也는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정도가 어울리는 해석입니다. 역시 단조로운 반복을 피하기 위하여 만남이나 우정으로 번역하여 변화를 주려고 한 것이지요.
  
  모시서(毛詩序)에서 이 시는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기린 시라 하였으나 완벽한 연애시라 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남녀간의 애정표시로서 과일을 던지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이 시는 남녀가 편을 나누어서 화답(和答)하는 노래, 또는 메기고 받는 노래(독창 + 衆唱)로 추측됩니다. 이 시에서는 남녀간의 애정표현의 자유로움뿐만이 아니라 놀이의 풍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 시 역시 위(衛)나라에서 수집한 민요 즉 국풍입니다.
  
  민요시인 국풍 이외에 궁중에서 연주된 의식곡도 있으며 무용곡(舞踊曲)도 있습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시경의 분류에 관하여 이야기를 조금 더 하지요.
  
  시경은 그 내용에 따라 풍(風), 아(雅), 송(頌), 표현기법에 따라 흥(興), 비(比), 부(賦)로 분류합니다. 이 6가지를 시경(詩經) 육의(六義)라 합니다. 풍(風)은 위에서 소개한 ‘여분‘과 ‘모과‘에서 설명하였듯이 황하를 중심으로 한 각 지방<주남(周南) 소남(召南) 용() 패() 회(檜) 조(曹) 빈(豳) 등 15개 제후국>에서 수집한 민요이며 국풍(國風)이라고 합니다. 160편이 실려 있습니다.
  
  아(雅)는 1백5편이 실려 있는데 궁중에서 연주된 의식곡(儀式曲)으로 대아(大雅-饗宴의 노래) 31편과 소아(小雅-제후가 천자를 뵐 때 연주하는 노래) 74편이 전합니다. 대부분 귀족들의 작품입니다.
  
  송(頌)은 용(容)과 같은 의미입니다. 종묘(宗廟)의 제사 때 연주된 노래로서 무용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송(周頌) 31편, 노송(魯頌) 4편, 상송(商頌) 5편 총 40편이 전합니다.
  
  이에 비하여 흥(興), 비(比), 부(賦)는 표현기법에 따른 분류입니다. 흥(興)은 읊으려는 것을 연상시키는 사물을 먼저 끌어들여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桃之夭夭 灼灼其華 之子于歸 宜其實家는 “복숭아 무성하고 그 꽃 붉고 붉도다. 큰애기 시집가네 그 집에 복덩이 들어가네“ 이런 뜻입니다. 먼저 복숭아꽃을 끌어들여 노래한 다음 본론으로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주자어록에는 어떤 물건을 빌어서 시작하지만 실상 본론은 그 다음 구절에 있다(借彼一物 以引起事 其事常在下句)고 합니다.
  
  비(比)는 읊으려는 것을 비유로 표현하는 방식이며, 대창(對唱)의 한 형식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부(賦)는 읊으려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직서법(直敍法)으로서 독창(獨唱)에 적합한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흥→ 비→ 부의 발전단계를 거친 것으로 추측합니다.
  
  너무 딱딱한 이야기였습니다. 시경의 세계가 노래의 세계이며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만 한대(漢代) 이후 경전화(經典化) 되는 과정에서 시경은 문학성이 상실되고 민중성이 왜곡됩니다. 대부분의 전(傳), 서(序)에서 애정(愛情)을 충성(忠誠)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경의 독법은 사실성(寫實性)과 진정성(眞正性)에 있습니다. 공자는 시경의 시를 한마디로 평하여 ‘사무사(思無邪)’라 하였습니다. (詩三白篇 一言以蔽之思無邪)
  
  ‘사무사(思無邪)‘는 ‘거짓 없음‘입니다. 사(思)는 조자(助字)로 해석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실성이 시경의 정신입니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있는 것을 사실대로 드러내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음 시는 정(鄭)나라에서 수집한 시입니다. 정풍(鄭風)입니다. 음탕하다고 할 정도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褰裳(鄭風)
  
  子惠思我 褰裳涉溱 子不我思 豈無他人 狂之狂也且
  子惠思我 褰裳涉洧 子不我思 豈無他士 狂之狂也且

  

   褰裳(건상)-치마를 걷다. 惠思(혜사)-사랑하고 사모하다.
   溱(진),洧(유)-하남성 密懸부근에서 합류하는 鄭나라의 강.
  
  <치마를 걷고서>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남자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유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내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이 정도의 번역은 상당히 점잖게 새긴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편만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 역시 국풍입니다. 시경을 사실성의 관점에서 읽다보니까 국풍만을 읽게 됩니다.
  
   陟 岵(魏風)
  
   陟彼岵兮 瞻望父兮 父曰 嗟予子 行役夙夜無已 上愼旃哉 猶來無止
  
   陟彼屺兮 瞻望母兮 母曰 嗟予季 行役夙夜無寐 上愼旃哉 猶來無棄
  
   陟彼岡兮 瞻望兄兮 兄曰 嗟予弟 行役夙夜必偕 上愼旃哉 猶來無死

  
   岵(호), 屺(기), 岡(강)-푸른 산, 민둥산, 산등성이. 瞻望(첨망)-멀리 바라봄.
   夙(숙)-이를 숙, 새벽. 無已(무이)-쉬지 못함. 上-尙과 같은 뜻. 부디.
   旃(전)- 之焉의 준말. 之와 같은 뜻.
  
  위(魏)나라는 순(舜), 우(禹)가 도읍 했던 땅으로 유명하지만 강국(强國)인 진(秦), 진(晋)과 접하여 잦은 전쟁과 토목공사로 이산(離散)의 아픔을 많이 겪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는 전쟁터에 징병되었거나 만리장성 축조에 강제 징용된 어느 젊은이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 당대에 가장 보편적인 이산의 아픔이었다고 짐작됩니다.
  
  감옥 속에서 내가 이 시를 읽었을 때의 감회가 생각납니다만 생각하면 이산의 아픔은 산업사회와 도시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보편적 정서이기도 합니다.
  
  고향을 떠난 삶이란 뿌리가 뽑힌 삶이지요. 나는 사람도 한 그루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시의 정서는 3천년을 격한 옛날의 정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산에 올라>
  
  “푸른 산에 올라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아버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아들아.
  밤낮으로 쉴 새도 없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머물지 말고 돌아오너라.
  잎이 다 진 산에 올라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어머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우리 막내야. 밤낮으로 잠도 못 자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이 어미 저버리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등성이에 올라 형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형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동생아.
  밤이나 낮이나 단체행동 하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죽지말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만리장성에 올랐을 때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책에도 이 시를 소개했습니다.
  
  나는 관광지로 유명한 팔달령(八達嶺)으로 가지 않고 찾는 사람도 별로 없는 사마대(司馬臺)로 갔었습니다. 팔달령은 관광목적으로 개축하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회가 덜 할 것 같았지요. 반면에 사마대는 단 한 명의 관광객도 없는 쓸쓸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눈까지 내려 그 엄청난 역사(役事)에 감탄하기도 하고 벽돌 한 장, 한 장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리장성은 동쪽 산해관에서 서쪽 가욕관에 이르는 장성입니다만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은 산해관의 망루에서 1km정도 떨어진 발해만의 노룡두인데 이곳에 맹강사당(孟姜祠堂)이 있습니다.맹강녀의 한 많은 죽음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맹강녀(孟姜女)의 전설은 이렇습니다. 진시황 때 맹강녀의 남편 범희양이 축성노역에 징용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편지 한 장 없는(杳無音信) 남편을 찾아 겨울옷을 입히려고 이곳에 도착했으나 남편은 이미 죽어 시골(屍骨)마저 찾을 길 없었지요.
  
  당시 축성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 죽으면 시골은 성채 속에 묻어버리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맹강녀가 성벽 앞에 옷을 바치고 며칠을 엎드려 대성통곡하자 드디어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맹강녀는 시골을 거두어 묻고 나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는 것이지요. 맹강녀 전설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이 나오다니 전설은 전설입니다.
  
  그러나 사실과 전설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더 진실한가를 우리는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실보다 전설 쪽이 더 진실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의 내면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어떤 혼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시경의 시가 바로 이러한 진실을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민간에서 불려지는 노래를 수집하는 까닭은 이러한 진실의 창조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다스려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채시관들이 조직적으로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공자도 그 나라의 노래를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지요. 악여정통(樂與政通)이라는 것이지요. 음악과 정치는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오늘의 서울에 와서 음악을 듣고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모시(毛詩. 毛亨의 시경 주해서)에서는 ‘위정자(爲政者)는 이로써 백성을 풍화(風化)하고 백성은 위정자를 풍자(諷刺)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초상지풍초필언(草上之風草必偃),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는 것이지요.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민요의 수집과 시경의 편찬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백성들 편에서는 노래로써 위정자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눕지 않을 수 없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지를 보이지요. 草上之風草必偃 구절 다음에 誰知風中草復立(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이라는 구절을 첨부하는 것이지요. 시경에는 그러한 풍자와 비판과 저항의 의지가 얼마든지 발견됩니다.
  
  석서(碩鼠)의 구절입니다.
  “쥐야 쥐야 큰 쥐야. 내 보리 먹지 마라. 오랫동안 너를 섬겼건만 너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구나, 맹세코 너를 떠나 저 행복한 나라로 가리라. 착취가 없는 행복한 나라여. 이제 우리의 정의를 찾으리라.“
  
  매우 직설적이고 저항적입니다. 그러나 ‘伐檀’(박달나무 베며)은 고도의 문학성과 저항성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절만 소개하지요.
  
  “영차 영차 박달나무 찍어내어 물가로 옮기세. 아! 황하는 맑고 물결은 잔잔한데 심지도 거두지도 않으면서 어찌 곡식은 많은 몫을 차지하는가. 애써 사냥도 않건만 어찌하여 뜨락엔 담비가 걸렸는가. 여보시오 군자님들 공밥일랑 먹지마소,“
  
  ‘중국역대시가선집’의 서문에서 밝혔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중국시가의 전통이 잘못 소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배계층인 양반의 시각과 계급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시가 선별적으로 소개되어 왔었다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음풍영월이 시의 본령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전통과 선입관 때문에 우리는 매우 귀중한 정신세계를 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세계와 시적 정서, 나아가 시적 관점은 최고의 정신적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경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삶과 정서의 공감을 기초로 하는 진정성에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시와 시경에 대한 재조명은 당연히 이러한 사실성과 진정성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성을 통하여 현대사회의 분열된 정서가 반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삶과 유리된 정서에 매몰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품미학, 가상세계, 교환가치 등 현대사회가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위의식입니다. 이러한 허위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한 우리의 정서와 의식은 정직한 삶으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소외이며 분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소외되고 분열된 우리들의 정서를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유력한 관점이 바로 시적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시적 관점은 왜곡된 삶의 실상을 드러내고 우리의 인식지평(認識地平)을 넓히는 데에 있어서도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시적 관점이란 우선 대상을 여러 시각(視角)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동서남북의 각각 다른 공간에서 바라보게 하고 춘하추동의 각각 다른 시간에서 그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결코 즉물적(卽物的)이지 않습니다. 시적 관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다이내믹한 관점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한 관계망(關係網)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를 읽고 시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안도현의 ‘연탄‘이란 시가 있습니다. 연탄이란 하나의 대상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를 여러분이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연탄이란 대상을 여러분은 어떤 시각에서 바라봅니까? 제가 정확한 시구를 암기하고 있지는 못합니다만, 이러한 내용입니다.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너는 언제 한번 남을 위해서 가슴 뜨거워본 적이 있느냐?“
  
  정호승의 시에 ‘종이학‘이 있습니다. 비에 젖은 종이는 내려놓고 학만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시각을 우리가 연마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실 나는 소설 읽을 시간은 없는 편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읽어야 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요. 그러나 솔직히 “물배 차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 많은 글들을 읽고 나서 생각하면 핵심적인 요지는 시 한 편과 맞먹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는 읽는 시간도 적게 들고 시집은 값도 비싸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시를 읽도록 권합니다.
  
  물론 오늘의 현대시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한 둘이 아니지요. 시인이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을 기초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감수성이 주로 도시정서에 국한되어 있는 협소한 것이라는 것도 문제이지요.
  
  문학인이 당대 감수성의 절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개인적 경험세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잘 모르는 시인입니다만 해방정국에서 대단한 문명을 떨친 임화라는 시인이 있었지요. ‘네거리 순이‘라는 시로 유명합니다만 임화는 항상 두보 시집을 가지고 다녔다고 전해지지요.
  
  임화뿐만 아니라 당시의 대부분의 시인들은 문학적으로 호흡하는 세계가 매우 넓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까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는 모시서(毛詩序)의 구절을 소개하였습니다만 이 구절이 김수영의 시에 계승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김수영의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의 이미지가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마 잘 아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입니다. 그 시의 핵심은 바로 한 송이 국화가 피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서리가 내리고, 천둥이 친다는 광활한 시공간적 연관성에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시상이 백낙천(白樂天)의 ‘국화(菊花)‘에 있지요. 간밤에 지붕에 무서리 내려 파초잎새 이울었는데도 추위를 이기고 동쪽 울타리에 금빛 꽃술 환히 열고 해맑게 피어난다(一夜新霜著瓦輕 芭蕉新折敗荷傾 耐寒唯有東籬菊 金粟花開曉更淸)는 내용입니다.
  
  시상의 핵심은 미당이 여기서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누가 누구를 모방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시 세계를 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부단히 열어나가고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시경의 세계는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절한 애환을 보여줍니다.
  
  거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 매몰되고 있는 허구성입니다. 미적 정서의 허구성입니다. 시경은 황하유역의 북방문학입니다. 북방문학의 특징은 4언체(言體)라는 것입니다. 4언체의 보행리듬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노동이나 생활의 리듬으로서 춤의 리듬이 6언체인 것과 대조를 보입니다. 시경의 정신은 이처럼 땅을 밟고 걸어가는 듯이 확실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땅을 밟고 있는 확실함,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되찾아야 할 우리 삶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실상은 물 속에서 발이 땅으로부터 떠있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확실한 보행이 불가능한 상태, 자신이 지향해야 할 확실한 방향을 잃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경의 정서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hgmja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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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의 중국고전강독은 성공회대학교에서 10여년째 계속되고 있는 명강의 중의 하나다. 프레시안이 오늘부터 연재하는 ‘신영복 고전강독’은 이 강의를 녹취하여 풀어쓴 것이다. 이 원고는 신교수의 감수를 거쳐서 게재된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해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68년 통혁당 사건으로 20년간 복역했고 그 기간동안 쓴 서간문을 모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 깊고도 아름다운 산문으로 우리 사회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편집자


1. 나와 중국고전의 인연


  오늘은 나와 중국고전과의 관계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고전강독의 기본적인 방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여러분들 중에 의아해 하는 학생이 있을 것 같아서죠.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이 저는 현재 우리대학에서 사회과학개론, 정치경제학, 교육사회학을 강의하고 있지요. 그리고 제 전공이 경제학이구요. 그런데 왜 중국고전강독 강의를 하고 있는가가 궁금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실제로 나한테 그걸 물어본 학생도 있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나로서는 여러분이 이 강의를 수강한 이유가 도리어 궁금하지요. 컴퓨터정보학과 영어학과 일어학과 신문방송학과 등등 여기 출석부에 적힌 수강신청자 학과가 다양합니다. 다양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예 중국고전과 인연이 없습니다. 중어중국학과 학생들만 제외하구요. 중국고전 나아가서 동양학에 대한 여러분과 나의 관심을 이 시간에 조율해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중국고전에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어려서 할아버님의 사랑방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님 사랑채에 불려간 것이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였어요. 그러나 그것은 할아버님의 소일거리였다고 해야 합니다. 저로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지요. 너무 어렸었지요.
  
  감옥에서 눈뜬 관심
  
  제가 그래도 본격적으로 동양학과 중국고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무래도 감옥에 들어간 이후입니다.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런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제가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세대가 지향했던 방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교육제도와 커리큘럼뿐만 아니라 교육적 정서 일반이 서구적 가치일변도였다는 반성이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었다고 기억합니다.
  
  우리의 대학시절인 60년대는 참으로 절망적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세대는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극도의 패배감과 좌절감속에서 그 유일한 탈출구를 소위 근대기획에서 찾고 있었다는 반성이었어요. 일제식민지 잔재에서부터 해방후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한국전쟁의 처참한 파괴와 상처 속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지요.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대안을 성급하게 찾고 있었다고 기억됩니다.
  
  소위 학생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도 무기징역이라는 긴 시간대를 앞에 놓고 앉아 있는 나로서는 어떤 바닥에서부터 생각하게 되었어요. 근본적 반성같은 것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특히 대학생이나 젊은 세대들은 근본적 성찰은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그러한 반성 자체가 낡은 것으로 치부되나요. 소위 근본적 담론 자체가 봉쇄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도 그러한 반성적 정서가 사회 곳곳에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지나고 보면 지금보다 도리어 덜 절망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노촌 선생을 만나다
  
  감옥의 옥방 속에 앉아서 무기징역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앞에 놓고 먼저 생각한 것이 동양고전을 통하여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다소 역설적인 것이긴 하지만 당시 교도소 규정은 재소자가 책을 3권 이상 소지할 수 없게 되어 있었지요. 물론 경전과 사전은 권수에서 제외되긴 합니다만 멀리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으로부터 책 수발을 받는 나로서는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책에 비하여 중국고전은 1권을 가지고도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주역(周易)’은 물론이고 ‘노자 도덕경’도 한 권이면 몇 달씩 읽을 수 있지요. 3권 이상 소지할 수 없다는 교도소 규정이 별로 문제가 안될 수 있었어요. 나중에는 동양 고전 몇 권을 1권으로 제본해서 보내주도록 아버님께 부탁하여 받기도 하였습니다. 나의 중국고전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감옥에서 나 자신의 성향을 반성하는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또 교도소의 현실적 제약 때문에 그렇게 되기도 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중국고전 공부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옥방에 함께 고생하셨던 노촌(老村) 이구영( 李九榮) 선생님이십니다. 노촌 선생님은 벽초 홍명희, 위당 정인보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분입니다. 작고하신 연민(淵民) 이가원( 李家源) 박사와 동학고우로 학문적으로 같은 반열에 드시는 실로 한학의 대가입니다.
  
  노촌 선생님과 내가 감옥에서 한 방에서 무려 4년 이상을 지내게 됩니다. 같은 방에서 하루 24시간을 4년 이상 지냈다는 것은 내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노촌 선생님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근에 ‘역사는 남북을 가르지 않는다’는 일대기를 출간하시기도 하였지만 노촌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이 중국고전에 국한된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생각하면 노촌 선생님과 한 방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깥에 있었더라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노촌 선생님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삶에 그 시대의 양(量)이 얼마만큼 들어가 있는가 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삶의 정직성 여부를 판별하는 것이라면 노촌 선생님은 참으로 정직한 삶을 사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조선봉건 사회, 일제하 식민지 사회, 전쟁, 북한 사회주의 사회, 20여년의 감옥 사회 그리고 198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 사회를 두루 살아오신 분입니다.
  
  290쪽의 사연
  
  노촌 선생님의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당대의 절절한 애환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의 한가지를 예로 들자면, 해방 후 노촌 선생님을 검거한 형사가 일제 때 노촌선생을 검거했던 바로 그 형사였다는 사실이지요.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일파들이 오히려 반민특위를 역습하여 해체시키는 등 해방정국의 실상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없지요.
  
  노촌 선생님께서는 옥중에 계시는 동안 가전(家傳)되어 오던 의병문헌을 들여와 번역을 하셨고 그 번역을 옆에서 도우며 공부하기도 하였지요. 그때 번역한 초고가 출소하신 후인 1993년 10월에 ‘호서의병사적(湖西義兵事蹟)’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내가 그 엄청난 중국고전을 비교적 진보적 시각에서 선별하여 읽을 수 있었던 것이나 모르는 구절을 새겨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노촌 선생님이 옆에 계셨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공감되는 부분이나 앞으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표시해두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과 같이 강독하자는 교재의 대부분이 그때 표시해두었던 부분인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여러분이 함께 공부하게 될 중국고전강독은 사실 감옥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노촌 선생님의 생각이 간접적으로 전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촌 선생님의 일대기인 아까 이야기한 ‘역사는 남북을 가르지 않는다’에 제가 선생님의 청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서 발문을 썼지요. 그런데 그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무척 재미있다고 하는 부분을 소개하지요. 발문의 끝부분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동안 노촌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였음을 뉘우치게 된다. 그러나 조금도 적조한 느낌을 갖지 않고 있다. 문득 문득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국어사전을 찾을 때면 일부러라도 290쪽을 펼쳐 본다. 국어사전 290쪽은 노촌 선생님께서 바늘을 숨겨 놓는 책갈피이다. 바늘을 항상 노촌 선생님께 빌려쓰면서도 무심하다가 언젠가 왜 하필 290쪽에다 숨겨 두시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290’이 바로 ‘이구영’이라고 답변하셨다. 엄혹한 옥방에서 바늘 하나를 간수하시면서도 잃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여유이면서 유연함이었다.
  
  지금도 물론 나의 가까이에 국어사전이 있고 자주 사전을 찾고 있다. 찾을 때면 290쪽을 열어 보고 그 시절의 노촌 선생님을 만나 뵙고 있다. 다시 한 번 이 책의 출간을 기뻐한다.“

 

2. 교재 문안의 선택에 관하여


  여러분과 한 학기동안 같이 읽을 교재가 학교 문구점에 있는 복사점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구입해야 됩니다. 교재가 없으면 강독할 수가 없습니다. 복사하여 제본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교 바깥의 복사점에서 주문제작했지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요. 학생들이 복사점으로 원본 원고를 가지고 가서 맡겼는데 가격 흥정을 썩 잘해왔었어요. 그 까닭을 물었더니 가관이었지요. 그 복사점 이름이 ‘신영복’사점이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우기고 주인도 값을 깎아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가격이 지금도 학교 문구점의 제작가격에 유력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교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만 중국고전의 극히 일부분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매우 기초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고전 문헌을 섭렵한다는 것은 평생을 걸려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5천년 동안 전승되어 내려오는 문명이 세계에는 없습니다. 이집트만 하더라도 문자해독이 불가능합니다. 해독에 필요한 모든 자료가 파괴되었습니다. 사실 피라밋이 파라오의 무덤인가 아닌가를 판별할 수 있는 확실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실상입니다. 중국문헌만이 고대로부터 해독이 가능한 유일한 문헌입니다. 그 규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지요. 고전을 읽겠다는 것은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입니다.
  
  특히 우리의 강의는 전공과정이 아니고 교양과정에서 비전공자들이 대상입니다. 강사인 나도 비전공자이구요. 그런 점에서 중국의 기본적인 고전을 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등을 다루기도 하지만 주로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송대의 신유학(新儒學)과 심론(心論), 선종불교(禪宗佛敎)의 개요를 읽을 수 있는 정도가 추가되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 이후 시기는 그 당대의 시와 산문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공자가 아니고 나 역시 전공자가 아니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전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고전뿐만이 아니라 역사학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고전과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디까지나 현대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과제와 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재문안을 선택하는 기준을 나름대로 설정하였습니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감옥에서 표시해두었던 것을 기초로 만든 것입니다만 크게 2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성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변혁기 읽기
  
  첫째는 BC 7세기- BC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 즉 한 마디로 사회변혁기를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입니다. 주(周)왕실을 정점으로 하는 고대의 종법(宗法)질서가 무너지면서 시작된 일대 변혁기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 시기는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군사력 경제력 사회조직에 이르기까지 국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무한경쟁시대입니다.
  
  주(周)왕실은 지도력을 잃고 대신 중원을 호령하는 패국(覇國)이 등장하게 됩니다. 수십 개의 도시국가가 춘추시대에는 12제후국으로 그리고 전국시대에는 다시 7국으로 그리고 드디어 진(秦)나라로 통일되는 역사의 격동기입니다.
  
  이 시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하던 그리스시대와 같은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축의 시대(axial era)라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초의 사회조직, 즉 국가를 건설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최대한의 담론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현대적 상황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변혁기와 거대담론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대적 상황이라는 인식이 고전강독에 전제되어 있습니다. 근본적 담론을 재조명하는 일은 후기 자본주의에 대하여, 특히 그것이 요구하는 세계체제와 일방주의에 대하여, 그리고 투기성과 비생산성에 대하여 비판적 전망을 체계적으로 조명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는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이것이 21세기라는 새로운 시점에서 새로운 문명의 문제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최대한의 사회건설담론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고전강독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한 근본적 담론을 기본적 주제로 할 것입니다.
  
  새 패러다임 모색
  
  둘째는 고전강독의 전 과정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을 화두처럼 걸어 놓고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이 화두는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서보다는 오히려 현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의미합니다.
  
  어떤 이상적인 모델을 전제하고 그 모델을 현재와 현실 속에 실현하려고 하는 소위 건축적 의지가 바야흐로 해제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지적 상황입니다. 관념적인 모델을 미리 설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실천을 받아오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교조적이거나 관념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해서는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자주 언급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가 발표한 ‘존재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From Substance-centered Paradigm to Relation-centered One)’에서 문제제기를 해두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서론 부분에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서구 특히 서구 근대사가 그 패러다임에 있어서 ‘존재론적‘임에 비하여 동양적 패러다임은 그 기본에 있어서 ‘관계론적‘입니다. 존재론적 패러다임은 개별적 실체를 기본단위로 인식하고 개별적 실체들이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 가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회든 국가든 개별적 실체들은 각각 독립적 의미와 행동원리를 가집니다. 다만 그것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구조와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회론(社會論)이라는 것이지요.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패러다임은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 관계망(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여러 주제를 가지고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한 학기 동안에 여러분과 강독하게 될 고전구절들은 대체로 이러한 관계론적 사고를 재조명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강독의 참뜻
  
  고전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학에 관한 최근의 저서에서 읽은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1차대전 때였다고 기억됩니다만 알프스산맥에 주둔한 일개 소대가 있었습니다. 젊은 소대장이 일개분대를 정찰임무를 주어 내보냈어요. 그런데 정찰분대가 떠나자 이내 폭설이 쏟아졌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연일 계속해서 내리 퍼부었다고 합니다.
  
  제가 읽은 책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확하게 전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차피 에피소드입니다. 그래서 젊은 소대장은 그 일개분대가 틀림없이 폭설과 폭풍에 전원 조난당했다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주일인가 지난 후에 당당하게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정찰분대가 무사 귀대하였습니다. 반가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떻게 그 험한 풍설 속에서 무사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어요.
  
  대답은 산맥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어느 계곡으로 행군할 것인지 어느 지점에서 설동(雪洞)을 파고 피신할 것인지 등을 모두 지도를 보고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그 풍설을 극복하고 행군할 수 있었고 무사히 귀대할 수 있었다는 의기양양한 답변이었어요, 그래서 소대장이 그 지도를 받아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지도는 알프스산맥의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산맥 지도였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펼쳐들고 있는 고전강독 교재가 이를테면 알프스산맥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산맥 지도인 셈이지요. 그러나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알프스산맥과 피레네산맥은 그 구조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역사학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과학과 이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 중국고전과 한문공부


  앞으로 고전 원문을 함께 읽고 해석하는 일에서부터 강의가 시작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은 대체로 한자공부나 한문공부가 없는 세대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나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나 역시 한문은 전공과도 멀고 소양도 부족합니다.
  
  고전강독에서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고전으로부터 사회와 인간에 관한 담론을 재조명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조명을 통하여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하여 다시 한번 근본적 사고를 간추려보고 나아가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모색하는 일입니다.
  
  한자나 한문공부는 부차적입니다. 물론 욕심입니다만 교재에 있는 고전문장을 여러분들이 다 암기하면 좋지요. 암기는 못하더라도 혼자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강의시간으로는 그것을 확인하거나 습득하게 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문공부에 왕도는 없습니다. 다른 어학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름길이나 편법은 없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서당에서 수학하던 방법은 참으로 우직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습니다. 무조건 암기하는 것이지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암기하는 그런 우직한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서당 방식 놀랍다
  
  서당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록자대야(麋鹿者大也)라는 이야기입니다. 미록자대야란 ‘미(麋)는 사슴중의(鹿者) 큰놈이다(大也)’라는 뜻이지요. ‘麋’은 ‘큰사슴 미‘자거든요. 당연히 麋, 鹿者, 大也라 띄어 읽어야 맞지요.
  
  그런데 아침에 책방도령의 글 읽는 소리를 듣자니 麋鹿, 者大也로 읽더라는 것이지요.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책방도령의 읽는 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麋, 鹿者, 大也로 바르게 끊어서 읽더라는 것이지요. 스스로 깨치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직한 방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매우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영어공부를 대체로 10년정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어논문을 쓰거나 영시를 짓고 감상할 정도가 되기는 어렵지 않나요?
  
  그러나 과거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는 4, 5년이면 뛰어난 문장력과 작시(作詩)수준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과학적 방식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암기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확실한 성과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요. 나는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고전원문을 선택해서 암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왕 내친 김에 한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어학교육은 어학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님의 탄식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받은 영어교과서는 I am a boy. You are a girl.로 시작되거나 심지어는 I am a dog. I bark.로 시작되는 교과서도 있었지요. 저의 할아버님께서는 누님들의 영어교과서를 가져오라고 해서 그 뜻을 물어보시고는 길게 탄식하셨지요.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와 우주의 원리를 천명하는 교과서와는 그 정신세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천지현황’과 ‘나는 개입니다. 나는 짖습니다‘의 차이는 큽니다. 아무리 언어를 배우기 위한 어학 교과서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한자나 한문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학보다는 그것에 담겨 있는 담론에 주목하면 충분합니다. 그 담론을 열심히 천착하는 동안에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항간에서는 그것을 뭐라고 표현하는지 아세요. 소머리를 삶으면 귀는 절로 익는다고 하지요.
  
  물론 한문공부를 열심히 해서 스스로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면 금상첨화지요. 그러나 일단은 고전에 담겨 있는 사상을 중심으로 그 뜻을 이해하고 구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맘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그것을 암기하는 식으로 순서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4. 서구근대문명과 동양학


  이번 시간에는 서양사상과 동양사상에 대하여 몇 가지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동서양의 문명사적 비교에 관한 저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차이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무엇과 무엇의 차이를 논하는 방식의 접근방법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각, 즉 비교하고 그 차이를 밝히는 관점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러한 관점은 가장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물론 본질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러한 경우보다는 그 형식에 있어서나 그 표현에 있어서의 차이가 지적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소위 차이라는 개념으로 그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경우는 그것이 갖고 있는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비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차이를 보려는 시각은 결국 표면에 국한된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차이를 인식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통합과 공존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논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존은 기본적으로 비슷한 것끼리 더 쉽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差異)보다는 관계(關係)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바로 그러한 관계망(關係網)을 주목하는 것이 바로 관계론적 패러다임입니다. 우리가 고전강독의 화두로 걸어놓은 것입니다.
  
  서양문명은 동양문명에 대한 비교개념으로 만들어진 조어(造語)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류문명입니다. 현대세계를 주도하는 문화는 서양문화입니다.
  
  서양문화는 그 자체가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문화적 준거(準據)입니다. 따라서 동양문화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변적 위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서양적 시각에서 동양문화가 조명되는 구도이지요.
  
  종교와 과학의 모순
  
  근대사는 서구문명이 전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각국이 지난 몇 세기 이래 줄곧 서양문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양문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대세계의 기본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문제점은 곧바로 현대세계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된다고 믿습니다. 현대자본주의 나아가서는 현대의 세계질서를 서양문명의 근본적 구조 즉 문명적 패러다임의 문제로 이해하거나 개념화하는 것은 지나친 환원주의(還元主義)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전을 읽는 동기가 바로 현대적 과제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시각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혁시기의 근본담론이 이 강의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서양문화의 기본적 구도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종합명제(合)라는 것입니다. 흅(D. Hume)과 칸트(I. Kant)의 견해입니다. 서양근대문명은 유럽고대의 과학정신과 기독교의 결합이라는 것이지요. 과학과 종교라는 2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과학은 진리(眞理)를 추구하고 기독교신앙은 선(善)을 추구한다. 과학정신은 외부세계를 탐구하고 사회발전의 동력이 된다. 그리고 종교적 신앙은 인간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회의 갈등과 관계를 조정함으로써 그 기능이 잘 조화된 선진적 문화이었으며 동아시아에 앞서 현대화를 실현한 저력임에 틀림이 없다. 이것이 서양문명의 구조입니다.
  
  그러나 서양문명을 이루고 있는 이 2개의 축(軸)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이 결정적 문제라는 것이지요 과학은 반종교적이며 기독교신앙은 반과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과학과 종교의 모순에 관한 역사적 사례는 얼마든지 발견됩니다. 계몽주의 이전에 기독교 교리를 벗어난 과학자들이 이단으로 박해를 받았지요. 여러분이 오히려 더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입니다.
  
  루터는 코페르니쿠스를 천문학을 뒤엎으려하는 바보라고 비난하고 성경에 여호와가 태양을 멈추라고 명령했지 지구를 멈추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들어 지동설을 비판하였지요. 칼빈도 마찬기지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난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을 위협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생전에 자기의 이론을 감히 발표하지 못했으며 사후에 출판되었을 뿐입니다. 브루노는 지동설을 선전하다 불타죽었고 갈릴레이는 2차례 종교재판을 받고 그의 주장을 포기하고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말을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 외에도 과학과 종교의 모순과 박해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종교의 과학에 대한 억압이 아니지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문명 구도의 와해
  
  거듭되는 과학의 경이적 발전의 결과 오늘날에는 종교에 대한 과학의 압도적 우위로 말미암아 진리(眞理)와 선(善)이라는 2개의 축이 무너지고 그 조화와 균형의 구도가 붕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곧 서양문명의 기본적 구도가 와해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학이 도덕과 인생가치의 기초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 규정력을 행사하면서 사회의 모든 질서를 획일적으로 지배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점을 일찍이 지적하여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황혼, 종말을 이야기하기도 하였지요.
  
  오늘날에는 더욱 현실적인 문제들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하지요. 현대서양사회의 범죄율, 생명경시는 종교와 신앙의 상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과학이 자신의 대립면(對立面)을 상실하고 무한질주를 거듭하였다는 주장입니다.
  
  핵, 세균, 화학무기, 기타 고분자화합물질의 대량생산과 배출로 인하여 생태계는 파괴되고 결과적으로 인류의 생존조건마저 파괴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지요. 과학은 희망을 주기보다는 공포를 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기되는 성찰이 바로 서양문명의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양문명의 구조 자체의 불완전성 즉 과학과 종교의 이원적 구성과 모순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처방으로 제기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을 회복하여 과학이성에 대한 종교의 지도성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종교의 지도성 회복은 불가능하며 현대서양의 몰락은 불가피하다는 예언까지 등장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패권국가의 일방주의적 세계경영은 또 다른 형태의 몰락이라고 주장되기도 하지요.
  
  인문주의로 바라보자
  
  이러한 반성과 성찰의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이 바로 동양학적 패러다임이었습니다. 서양근대문명의 모순이 바로 과학과 용납될 수 없는 종교에 철학적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반성과 함께 도덕적 근거를 비종교적 인문주의(人文主義)에 두었더라면 이러한 모순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동양학에는 과학과 종교의 모순은 없으며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적 현실론이 그 토대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 살펴 보겠지만 자연과 인간과 나아가서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문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고전강독에서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최근 동양학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이와 같은 문명론적 동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양학의 기본구도가 인문주의인 것은 사실이며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는 구조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동양학에 대한 관심은 종래의 운동관성이 그대로 연장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대륙에 이어서 다시 떠오르는 광범한 중국시장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일본자본에 대한 국제금융자본의 관심이 오히려 주된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자본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어쨌든 구미 중심의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모순의 실체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세계화라는 형식을 띤 패권주의적 팽창정책 역시 바로 근대 서양문명의 기본적 모순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자본주의 역시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군사과학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압도적 군사력을 배경으로 동구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소연방의 해체와 러시아의 몰락 그리고 중국의 자본주의화 과정 등 이를테면 대립면을 상실한 과학의 질주에 다름 아니지요.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논리는 한마디로 자본축적운동의 파상적 확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해 왔고 또 당분간 주도해 갈 세계질서 역시 서구 근대문명이 당면한 문제와 동일한 모순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서구문명에 대한 이해를 이러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학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을 바로 이 지점에 세우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양학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러한 과제와 관련되는 범위에 국한하여 정리해보기로 합니다
  

 

5. 동양사상의 특징

       (1)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자본축적운동의 파상적 확장이 마치 대립면을 상실한 근대 서양문명과 그 구조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자본축적은 이제 실물생산으로부터 유리되고 실물생산은 수요로부터 유리되고 있습니다. 자본은 생산과 무관하고 생산은 소비와 무관한 운동을 합니다.
  
  자본운동의 원리는 가치증식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본은 그 가치증식이 반드시 실물생산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증권시장이라는 투기장에서 그것이 실현되더라도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실물생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리지 않더라고 팔린 것으로 간주하고 다음 생산과정에 들어갑니다. 팔리지 않았더라도 팔린 것으로 간주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신용입니다. 어음을 할인해주기도 하고 대출해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축적운동이 대립면을 상실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대립면을 상실한 근대 서양문명의 모순구조와 같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 모순구조를 조명해주는 것이 동양사상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동양사상의 현대적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서구인들의 동양관을 원천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막스 베버에 대하여 이야기해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즉 청교도윤리로서의 금욕주의가 자본축적을 이루었으며 그것이 근대사회를 만들어낸 정신이라는 것이지요. 프로테스탄티즘이 곧 자본주의정신이라는 이론을 전개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베버에게 있어서는 자본주의는 최고 최선의 사회제도이며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입니다. 막스 베버에게 있어서의 동양적 윤리란 이 프로테스탄티즘 즉 청교도윤리를 부각시키기 위한 소도구이며 장치적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위 오리엔탈리즘의 원형이지요.
  
  여러 가지 이론적 분식을 하고 있습니다만 프로테스탄티즘을 요약하면 적게 소비하고 많이 저축하여 재투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금욕주의가 자본축적을 가져왔고 자본주의라는 최선의 사회제도를 가능하게 하였다는 논리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서양문명의 모순구조와 관련하려 베버를 이해할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근검 절약 그리고 자본축적이라는 이러한 금욕주의가 바로 신의 소명(God's calling)이며, 초월적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본축적은 그것 자체로서 절대적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근검 절약의 정신이 인간의 욕망에 대한 합리적 제어장치로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며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매우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베버에게 있어서 종교와 신의 개념은 지극히 순결한 것이며 이에 반하여 동양사상에 대하여는 바로 이 초월적 순결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욕망에 대한 합리적 제어장치가 없다는 것이 베버의 논리이지요. 유교적 윤리는 이러한 초월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내면적으로 초극의 독백이 없고 현세성 또는 현실주의에 매몰되어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현세적 향유만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예와 도덕은 본질적으로 형식적인 체면(face)의 문화라는 것이 베버의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입니다.
  
  결론적으로 동양사상은 비종교적 현실주의이기 때문에 역사적 지체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성립과 프로테스탄티즘간에 정신사적 필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 또 자본주의를 기준으로 기독교와 유교사상을 비교하는 방식 자체가 갖는 비대칭적 구조를 논의할 생각은 없습니다.
  
  더구나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와 절약 저축 재투자 그리고 거대한 자본축적이 신의 소명이며 신의 영광을 구현시키는 것이라는 베버의 체계가 현대자본주의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관하여 논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베버는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적 논리를 개진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자본논리를 합리화하는 작업에 충실하였을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 즉 자본이 사회로부터 독립하고 신의 소명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아가 인간으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인간을 소외시키는 거대한 모순구조에 대하여 베버는 최소한의 전망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면죄부를 주기 위한 논리에 충실하였을 뿐이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교와 동양사상에 대하여 저급한 이해의 층위를 드러내었을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사상이 비종교적이며 현실주의적이라는 점은 베버가 옳게 지적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현실성으로부터 현세적 향락과 체면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것이 하나의 종교적 지배력(The Religion of China)을 행사한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2)道는 가까이 있다


  동양사상은 그 기본적 체계에 있어서 사후(死後)의 시공(時空)에서 실현되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종교적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입니다.
  
  베버가 동양적 형식주의와 체면에 대하여 지적한 것은 물론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에 담겨있는, 즉 그것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동양사상의 관계론에 대하여는 전혀 무지하였음이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양적 사고는 현세를 하나의 초월적 신의 소명(Beruf, Calling, Vocation)과 개인의 직업과 직선적으로 관계 맺는 형식의 단선적 기계적 사유체계가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과 삶은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자연과의 관계성 그리고 인간관계라는 연기(緣起)의 장(場)에서 순간(瞬間)과 점(點)과 가능성(可能性)과 확률(確率)로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베버의 비판은 동양사상이 비종교적 인문주의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철학적 지(智)와 동양의 도(道)가 보여주는 차이에서 그것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철학(philosophy)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智)에 대한 애(愛)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양의 도(道)는 과 首의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은 머리카락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입니다. 首는 물론 사람의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道)란 실천하며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것은 이와는 판이한 것입니다.
  
  로댕의 조각이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진리란 일상적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고독한 사색에 의해서 터득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진리란 이미 기성의 형태로 우리의 삶의 저편에 또는 높은 차원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사랑하고 관조하는 구도 속에 진리는 존재합니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입니다.
  
  진리의 문제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종교적 존재임에 반하여 도(道)는 글자 그대로 ‘길‘에 있습니다. 도재이(道在邇), 즉 도는 바로 옆에 있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이고 윤리적 수준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비종교적 현실주의적이며 당연히 과학과의 모순이 없습니다.
  
  1601년 마테오리치가 가져온 과학이 중국 사대부 계층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과학을 적대시하던 서양의 기독교 사회와는 판이한 반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적 패러다임은 종교라는 대립면을 따로 상정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조화와 균형의 체계를 스스로 완성하고 있는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3)자연은 生氣의 場


  그러나 동양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생기(生氣)의 장(場)‘으로 인식하는 통체적 사상 특히 자연과의 조화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생기(生氣)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농본적(農本的) 성격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동양사상의 이러한 측면에 주목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양사상의 바로 이러한 특징이 후기산업사회의 모순구조를 드러내는 것과 아울러 대립면을 상실한 현대자본주의의 패권적 속성을 명쾌하게 조명해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동양사상에 있어서 자연은 하나의 장(場)입니다. 장이란 비어 있는 공간이란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자력장(磁力場), 중력장(重力場), 전자장(電磁場)과 같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힘의 질서입니다. 그것을 ‘생기(生氣)의 장(場)‘이라 합니다.
  
  그 장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조화되고 통일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조화 통일됨으로 인하여 장이 되고, 그래서 최고의 어떤 질서가 됩니다. ‘부분적 총체들의 복합체(the complex of partial totalities)’이며 ‘관계들의 총화(the ensemble of relation)’입니다.
  
  개개의 부분이 곧 총체인 구조, 다시 말하자면 관계망(關係網)과 연기(緣起)의 장(場)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존재하고 있는 것 중의 최고(最高), 최량(最良)의 어떤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은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우주(宇宙)의 개념으로 확장됩니다.
  
  우(宇)는 상하사방 즉 공간의 개념으로서 유한공간(有限空間)--->체(體)--->지(知)--->상도(常道)의 체계를 구성하고, 주(宙)는 고금왕래(古今往來) 즉 시간의 개념으로서 무궁시간(無窮時間)--->용(用)--->도(道)--->무상(無常)의 체계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유한과 무한의 통일 즉 공간과 시간의 통일체로서 최고, 최대의 개념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일부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이루는 것이지요. 시간과 공간이 통일되는 태극(太極)의 상태 태극의 질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설명이 다소 추상적입니다만 예를 들어 진흙(空)은 그릇(色)이 되고 그릇은 다시 진흙으로 되돌아갑니다. 만약 그릇이 그릇이기를 계속 고집한다면 즉 자기(主我)를 고집한다면 생성 체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흙-그릇-진흙의 과정 즉 생성이 계속된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과 질서는 변화하는 것입니다. 생주이멸(生住移滅),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한 것으로 됩니다.
  
  이러한 통체적(holistic) 체계와 질서에 있어서 어떤 한 존재가 특별히 자기를 고집한다거나 확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주의는 그런 점에서 이러한 자연주의 속에 해소됩니다.
  
  인간주의에 대하여도 특별한 지위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어느 특정분야의 불균형적 자기확대는 곧바로 다른 것과의 생성관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화와 절제가 당연한 가치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러한 가치는 현실적인 삶에 있어서 욕망의 절제로 나타나고 절용휼물(節用恤物), 수분지족(守分知足), 나아가서 안빈(安貧)함으로써 낙도(樂道)하는 삶의 철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항상 천(天), 지(地), 인(人) 즉 삼재지도(三才之道)의 관점에서 규정됩니다. ‘봄여름에는 도끼와 낫을 들고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지 않고 촘촘한 그물로 하천에서 고기를 잡지 않는다.’ (맹자) 자연과 우주의 생성체계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지요.
  
  동양사상의 현실주의란 이러한 자연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두루 포괄하는 사회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규정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초월적 가치로부터 인간을 상대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을 처음부터 부분이면서 전체인 생기의 장에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사상의 인간주의는 서구적 휴머니즘과 다른 차원의 의미내용을 갖는 것입니다.


       (4)동양적 인간주의


  흔히 인간주의를 동양사상의 특징으로 거론하는 경우 우리는 자칫 인정주의 수준의 내용으로 파악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면 서양의 고대노예제에 비하여 동양적 노예제가 훨씬 인간적이라는 평가가 그렇습니다.
  
  인정주의도 인간주의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동양사상의 인간주의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인문적 가치라는 사실입니다.
  
  인성(人性)의 고양(高揚)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고 있는 사회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인간의 외부에 어떤 초월적 가치를 상정하고 그것의 종속적 개념으로서 선의 개념을 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善)한 인간, 어진(仁) 인간처럼 그 자체로서 가치입니다.
  
  그리고 한 개인의 인성은 그 개인이 맺고 있는 여러 층위의 인간관계로서 파악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이 개인적으로 이룩하고 있는 품성의 의미를 넘어선 관계론적 관점에서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동양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仁)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인이 무엇인가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논어에서 그것을 묻는 제자에 따라서 공자는 각각 다른 답변을 주고 있습니다만 인은 기본적으로 人 + 人 즉 二人의 의미입니다.
  
  즉 관계론의 관점에서 본 인간입니다. 문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인간을 인간(人間) 즉 인(人)의 사이(間)로 이해하는 다석 유영모의 ‘사이의 존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여하튼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 가는 어떤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과 장의 개념으로 그 의미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관계론적 의미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지요. 동양적 사상에서 인간주의는 이처럼 철저하게 이러한 관계론적 개념입니다.
  
  인성(人性)의 고양(高揚)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自己)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예를 들면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 나의 노인과 남의 노인을 함께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成人之美)을 인(仁)이라 합니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론이 확대되면 그것은 곧바로 사회적인 것이 됩니다.
  
  동양사상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거론되는 화해(和諧)의 사상 역시 그렇습니다. 화(和)는 쌀(禾)을 함께 먹는(口) 공동체의 의미이며, 해(諧)는 모든 사람(皆)들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言) 민주주의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성의 고양이며 관계론의 사회적 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동양사상은 초월적 가치를 바깥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종교적이며 인간주의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배타적 존재로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천지인의 삼재의 하나이며 그 자체가 어떤 질서와 장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입니다.
  
  그리고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인식하는 경우에도 인간을 관계론적 의미맥락에서 파악함으로써 그것의 내용이 개인에게 귀속되는 개인주의적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5)조화와 중용


  서양문명이 과학과 종교를 2개의 축으로 하는 구조임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서양문명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대립모순의 구조를 내장(內藏)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구조가 내재되어 있음으로서 역사적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합니다. 정확하게는 모든 사상과 문명은 대립, 모순, 긴장, 갈등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사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양적 패러다임이 인문주의적이고 따라서 과학과 종교간의 모순이 없다고 했지만 이것은 그 자체를 실체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내부의 대립모순구조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동양적 패러다임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적대적이지 않은 형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중용사상(中庸思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사상의 2개의 축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가는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입니다. 따라서 유가적 가치는 인문세계(人文世界)의 창조에 있습니다. 그것이 만물의 영장(靈長)으로서의 인간이며 문화생산자로서의 인간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적극의지는 하늘을 다스리고 모든 것을 부리는 소위 감천역물(勘天役物)사상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그 오만한 지점에 인간의 좌절과 인성의 붕괴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 좁은 의미의 인간주의가 갖는 독선과 좌절을 사전에 견제하고 사후에 위로하는 체계가 동양적 패러다임 내에 존재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유가의 대립면으로서의 도가라 할 수 있습니다. 도가는 기본적으로 자연주의입니다. 자연을 최고의 질서, 최선의 질서로 상정한다는 것은 먼저 이야기하였습니다. 자연이 가장 안정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 생명과 지구의 역사가 임상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도가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을 선언합니다. 사람은 땅을 배우고 땅은 하늘을 배우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는 것이지요.(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 대하여 무위무욕(無爲無慾)할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오만과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유가의 인본주의를 견제하고 그 좌절을 위로하는 종교적 역할을 도가가 맡고 있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와 완전지향이라는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하여 그것의 독선과 위선을 지적하는 반체제 이데올로기로서의 반대측면에 서로를 견제하면서 전체적으로 중용의 조화와 균형으로 이끌도록 하는 구조를 내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상이 다른 사상을 대립면으로 삼을 때 비로소 온전한 사상으로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넓은 의미의 관계론적 구조입니다.

 

6. 동양철학의 현대적 의미

  중국 고전강독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학기의 짧은 시간으로는 가늠도 못하고 끝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처음처럼 각오가 지나쳐서 우리는 지금 너무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친 김에 하나만 더 합의하고 시작하지요.
  
  21세기를 시작하면서 많은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미래담론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20세기의 연장을 바라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입니다.
  
  미래에 대한 객관적 전망이라고 전제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망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에서 각각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소망이 전망의 형식을 띠고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21세기 담론은 그것이 진정한 새로운 담론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사회를 그 기본적 구조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어내는 담론이 아닌 한 그것은 새로운 담론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먼저 21세기의 과제를 가장 앞서 도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중국적 모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양(Aufheben)이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의 통일과정을 새로운 패러다임과의 관련 속에서 인식하고 관리해나가는 문제에 대하여도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문제를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와 함께 사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남과 북이라는 냉전질서의 청산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문제이기도 하면서 나아가 그것은 동(同)과 화(和)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동과 화의 논리는 앞으로 고전강독에서 지속적으로 그 의미를 심화시켜가도록 하겠습니다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동은 이를테면 지배와 억압의 논리이며 흡수와 합병의 논리입니다. 이것은 돌이켜보면 근대사회의 일관된 논리이며 존재론의 논리이며 강철의 논리입니다.
  
  이러한 동의 논리를 화의 논리, 즉 공존과 평화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패러다임 쉬프트의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통일과정을 어떠한 논리로 관리하고 이끌어 가는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화동논의는 과거와 미래로 열려 있는 귀중한 키워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와 21세기를 성격규정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통일과정이라는 민족문제를 세계사적 문제와 연결시키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앞으로 고전강독을 진행하면서 적절한 곳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고전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어쩌면 오늘날처럼 속도가 요구되는 환경에서 너무나 한가롭고 우원(迂遠)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으며 대개는 길을 틀린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도 합니다.
  
  근본적 논의가 갖는 의미가 오늘의 상황에서 더욱 더 결정적 의미를 가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 hgm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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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韓國의 歷史와 統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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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관 (자연의 해석과 인간의 자연 지배에 관한 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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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귀납적 방법을 주창함으로써 근대 과학정신의 초석을 닦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과학철학서. 책의 제목인 신기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인「기관」(Organum)에 대항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베이컨은 스콜라학자들의 연역 논리학과 결별할 뜻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참된 귀납법'을 통해 얻는 지식만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신기관」제1권은 '(우상) 파괴편'으로 불리는데,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널리 알려진 경구에서 시작해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편견들, 즉 네 가지 우상을 하나 하나 논박하고, 자신이 제창한 귀납법의 개요을 보여준다. 제2권 '(진리) 건설편'에서는 우상에서 해방된 인간의 지성이 과학적 발견을 위해 걸어야 할 길, 즉 '참된 귀납법'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준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중세까지의 '명상에 의한 질적 분석'방법을 비판한다. 인간 역사의 발전은 자연에 대한 올바른 지식의 획득을 통해서만이 가능한데, 그 획득을 위해서는 종래의 방법을 극복한 새로운 방법(신기관), 즉 참다운 귀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실험과 관찰을 중요시하는 근대과학의 방법론적 문제의식을 정초했다. 즉 '실험에 의한 양적 측정'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실험에 의한 질적 분류'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철학의 한계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삼단논법으로 대표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논리학이 자연의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데 부적합하다고 비판한다. 귀납법을 내세운다. 그러나 귀납법을 가졌다고 해서 인간정신이 저절로 올바른 지식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인간정신의 뿌리 깊은 편견, 네 가지 우상을 극복해야 한다.

베이컨은 결론적으로 하느님이 부여한 인간의 의무이자 권리인 자연에 대한 온전한 지배를 위해서는 '위대한 발견'이 필요하고, 이러한 발견을 위해서는 기존의 학문적 전통과 완전히 결별하고 새로운 방법론으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륙의 합리론과 더불어 근대적 사고의 주요한 축이 된 베이컨의 경험주의를 직접 탐색할 수 있는 책이다.

 

 

작가 소개
저자 | 프랜시스 베이컨
엘리자베스여왕 치세에 국새상서이던 니콜라스 베이컨 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이 강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한 후, 스물세 살의 나이에 하원의원이 되었다. 이 해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바치는 진언서>를 집필하기도 하였으나, 여왕의 신임을 얻지는 못했다.
1603년 제임스1세가 즉위한 후 급속히 권좌에 올라 1607년 법무차관, 1613년 법무장관, 1617년 국새상서의 자리에 오른 데 이어, 그 이듬해에는 대법관이 되었고, 같은 해 베룰럼 남작이 되었다. 1621년에는 세인트 올번스 자작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바로 그 해 왕실과 의회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왕실의 특원을 옹호했던 베이컨은 의회의 공격목표가 되었고, 마침내 소송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죄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영원히 공직을 떠나게 된다.
베이컨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인물이었지만, 그의 과학정신은 당대의 그 어느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그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찰하고 실험하고 연구하여 인간이 지배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7세기부터를 근대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베이컨은 근대의 문을 연 사람이고, 근대정신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과학적 접근방법이라고 한다면 베이컨의 귀납적 관찰방법은 근대 과학정신의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저서로는 <수필집>, <학문의 진보>, <신 아틀란티스>, <신기관> 등이 있다.

 

목차
자연의 해석과 인간의 자연 지배에 관한 잠언
과학 시대의 전망 - 베이컨의 '신기관'과 그의 사상 / 진석용

머리말
제1권
제2권

프랜시스 베이컨의 생애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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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소개

 

출처 : 로스쿨에도전하는사람들★로도사★
글쓴이 : 논리연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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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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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지혜를 전하는 동양철학의 고전 <논어>를 번역한 책.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세상을 사는 이치나 교육, 문화, 정치 등에 관해 논의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공자의 혼잣말,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논어>에는 공자의 풍모와 성격이 곳곳에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공자와 제자들이 이야기하던 분위기와 말투가 그대로 살아 있다. 이 번역본에서는 다양한 주를 곁들여 <논어>의 뜻과 교훈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쉬운 우리말을 통해 원전 그대로의 의미와 분위기를 되살리고자 했다.

 

작가 소개
저자 | 공자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인 B.C.551년,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방인 노(魯)나라의 작은 마을인 추읍( 邑)에서 태어났다. 이 때는 인도의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시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은(殷)나라 왕족의 몰락한 후예의 집안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급무사였던 숙량흘(叔梁紇)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안징재(顔徵在)였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고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당시 공자의 집안은 몰락하여 겨우 벼슬을 할 수 있는 계급인 사(士)에 속해 있었다. 사계급은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공자 나이 24살 되던 기원전 528년에 공자의 어머니는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방(防) 땅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묻고 삼년상을 지낸 뒤 또 2, 3년 지나서야 다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한 주(周)나라를 동경하였고, 그 반대로 당시의 권세 있는 대부(大夫)들이 제후(諸侯)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농단하던 사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게 된 공자가 정치에 관여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자가 살던 당시 춘추시대에는 국가간이나 나라안이나 간에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명목의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仁)의 실천,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했던 공자로서는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서도 책이나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자기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설파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직접 벼슬을 맡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벽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두터웠고, 많은 좌절과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인 도덕정치철학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계승되어 한(漢)나라에서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이래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교육자와 뛰어난 정치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낸 공자도 인간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 리(鯉)와 가장 아끼던 제자 안연(顔淵)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며, 여러 나라를 떠도는 가운데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테러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년에는 이런 모든 것을 잊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 『춘추(春秋)』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에 재미를 붙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공부하는 한편, 고향의 이상이 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기원전 479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가장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사상의 중심을 인(仁)에 두었다. 최고의 덕을 인으로 본 공자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대표작품인 『논어』는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책의 제목이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목차
옮긴이의 말
한 인간의 체취가 꾸밈없이 묻어나는 유교 성전 <논어>

제1편 학이(學而)
제2편 위정(爲政)
제3편 팔일(八佾)
제4편 리인(里仁)
제5편 공야장(公冶長)
제6편 옹야(雍也)
제7편 술이(述而)
제8편 태백(泰伯)
제9편 자한(子罕)
제10편 향당(鄕黨)
제11편 선진(先進)
제12편 안연(顔淵)
제13편 자로(子路)
제14편 헌문(憲問)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제16편 계씨(季氏)
제17편 양화(陽貨)
제18편 미자(微子)
제19편 자장(子張)
제20편 요왈(堯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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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Rules for the direction of the mind : Discourse on the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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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바른 사유를 위해 우리의 정신은 어떤 방법으로 훈련되어야 하는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 정신이 따라야 할 규칙은 과연 무엇인가?데카르트의 <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방법이 중시되던 시기에 그 자신이 개발한 방법을 소개하는 글들이다.

 

 

 

작가 소개
저자 | 르네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로 신교도와 구교도의 갈등이 빚어졌던 16세기 후반(1596년) 프랑스에서 투렌지방의 라 에이에서 태어났다. 데카르트의 아버지는 브르타뉴의 고등법원 법관이었고 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머니는 데카르트가 1세 때 죽었다. 10세 때 예수회의라 프레시 학원에 입학하여 철학을 수학했고 1616년 푸아티에 대학에서 법학과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을 통해 이를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서 파리로 향한다. 이어 1618년에는 지원장교로서 네델란드군에 입대했으며 다시 이를 떠나 신교도의 군대에 지원하였다. 이 시기에 물리학을 연구하던 수학자 이사크 베크만을 만나 공동 연구에 몰두하고 『보편수학』의 구상에 이른다. 1620년 군대를 떠나 독일, 네델란드,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다가 1625년 파리 체재기에는 기하광학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하였다. 1629년 이후 다시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온 데카르트는 처음 9개월간은 형이상학의 짧은 논문의 집필에 종사하다가 1629년 3월 제자인 네레리로부터 이탈리아에서 관찰된 『환일현상)』의 해명을 부탁받고 도중에 자연연구로 방향을 전환. 모든 자연학을 포괄하는 『우주론』의 구상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완성단계에서 갈릴레이의 유죄 판결로 인해 출간을 보류하고(1644년 출간), 대신 1637년『방법서설』및 이를 토대로 하는『굴절 광학』『기상학』『기하학』을 출간하였다.

그는 이 시기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전통을 접하고 플라톤주의와 병존하게 된다. 원자론적 세계를 지성의 직관에 의해 실재로서 직접적으로 파악하려는 요구를 가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원리가 도출되기에 이른다. 1641년『성찰』에 이어, 1644년에는 자신의 철학을 집대성한『철학의 원리』를 출간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데카르트 사상의 혁신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나, 칼뱅파 신학자들의 박해로 학문적 자유가 위협받던 네델란드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으로 1649년 가을 스톡홀름으로 가서 지내던 중 폐렴에 걸려 1650년 스웨덴에서 생애를 마쳤다.

 

 

목차
옮긴이의 말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제1규칙
제2규칙
제3규칙
제4규칙
제5규칙
(이하생략)

방법서설
제1부 학문들에 대한 고찰
제2부 방법의 주요 규칙들
제3부 몇 가지 도덕 격률들
제4부 형이상학의 토대
제5부 자연학적 문제들
제6부 자연탐구를 더욱 진척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것 및 이 책의 집필 동기

주해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방법서설

해설 / 데카르트적 방법과 도덕
1. 철학과 방법
2. 직관, 영역 그리고 열거
3. 단순한 것과 합성적인 것
4. 불완전한 도덕과 완전한 도덕

데카르트 삶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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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국부론』은 경제학의 체계를 최초로 세운 책이다. 경제학이 독립된 사회과학으로 정립된 것은 바로 이 책에 의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정치, 경제, 사회, 법률, 역사, 교육, 종교, 철학, 국방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들을 최초로 종합적으로 분석한 전체 사회과학 분야의 최고의 고전이다.


특히 이 책은 1700년대에 유행하던 중상주의적 국가개입(예: 수입규제, 수출장려, 독점적 무역회사의 허가, 식민지건설)을 비판하고 경제활동을 경제인에게 자유방임할 것을 주장한 점에서 주류경제학의 사상적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이 책은 노동가치설을 처음 제시함으로써 마르크스경제학의 탄생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처럼 경제학을 탄생시키고, 사회과학 최고의 고전이 되어 있는 본서의 풀 타이틀은 『한 나라의 국부(國富)가 증감되는 원인 및 국부의 성질(The Cause and Nature of The Wealth of Nations)”로서, 총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번역서는 편의상 상 · 하로 나누었다).


제 1편에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wealth of the nation)가 중상주의에서 주장하는 금과 은이 아니라 한 나라의 주민들이 소비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한 국민의 연간 노동이 국부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분업과 생산적 노동자를 증가시키는 자본축적이 강조된 것이다.
그리고 노동생산물이 생산에 기여한 여러 계급들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가를 연구하면서 임금, 이윤, 지대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노동생산물은 가격을 가지는데, 이 가격은 노동생산물 그 자체의‘가치’의 변화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화폐(금과 은)의‘가치’의 변화에 의해서도 변동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노동생산물의 가치를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으로 측정하기를‘역사상 처음으로’주장한다.


제 2편은 자본의 성질, 자본이 점차로 축적되는 방식, 자본의 사용방식이 상이함에 따라 자본이 고용하는 노동량이 달라지는 것을 다룬다. 여기에서 스미스는 국부증진(또는 사회에‘가장 유리한 투자’)에는‘자연적인 순서’가 있는데, 이것은 농업 · 제조업 · 소매업 · 도매업의 순서라는 것과, 각 개인에게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라고 내버려두면‘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리어 사회 전체의 이익도 증진된다는 것을‘증명’하고 있다.


제 3편에서는 국가들이 국부증진의 자연적인 순서를 교란시키는 경제정책(자연히 저절로 흘러드는 것보다 큰 규모의 자본을 특정부문에 흘러가도록 강제하거나 유인하는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국부증진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제 4편에서는 이런 상이한 정책들이 특정 계급의 사적 이익과 편견에 의해 도입되었을 뿐 아니라 매우 상이한 경제이론들에 의거하고 있음을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를 중심으로 해명하고 있다.
마지막 제 5편은 왕 또는 국가의 세출과 세입 및 공채를 다루고 있다.

이번의 번역판은 이전의 번역판(1992년 동아출판사 판)을 참조하면서도 완전히 다시 번역한 완성본이다. 특히 이번의 번역판은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관한 스미스의 묘사를 올바르게 자세히 번역하려고 애썼으며, 영어권 밖에서 이루어진 번역으로는 최고의 번역서가 되게 하겠다는 의도에서 일본어판, 중국어판 등 동양 언어권의 번역서를 전부 검토하고 대조하고 참조하며 번역하였다. 색인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고 충실하게 만들어서 쉽게 본문을 참조할 수 있게 하였다.


경제활동이 한 나라의 국경에 의해 제한되던 패쇄 경제에서 벗어나 모든 경제활동이 세계화(globalize)된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더 이상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그 효력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경제정책 화두 역시“정부간섭”의 최소화와“민간의 자율화”증진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야말로 경제발전의 핵심이라 주장한 아담 스미스의『국부론』은 새롭게 평가되고 새롭게 읽혀져야 할 것이다. 이제『국부론』을 읽지 않고 경제정책을 입안하거나 경제학을 배웠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시대상황에 우리나라도 들어선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애덤스미스
옮긴이 김수행

김수행 교수는 1942년 10월 24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로부터 고등학교까지 대구에서 다녔다. 1961-67년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75-82년에 런던대학교 버크베크대학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THEORIES OF ECONOMIC CRISES: A CRITICAL APPRAISAL OF SOME JAPANESE AND EUROPEAN REFORMULATIONS 이었다. 1982-1987년 한신대학교에서 근무했고, 1989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서울대학교에서 근무했다.

많은 저서 중 중요한 것으로는
『알기쉬운 정치경제학』(초판 2002; 제1개정판 2005; 제2개정판 2008),
『「자본론」의 현대적 해설』(초판 2001; 제1개정판 2004),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의 쟁점들』(공편저. 2002),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공저. 초판 2003; 제1개정판 2006),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2007),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공편저. 2007)가 있다.

김수행의 가장 큰 공헌은『자본론』세 권 전체를 번역한 것인데, 제 1권(상)(하)는 1989년 3월 초판 발행 이후 1991년 11월 제1차 개역판, 2001년 11월 제2차 개역판이 비봉출판사에서 나왔다. 제2권은 1989년 5월 초판이 발행된 이후 2004년 2월 제1차 개역판이 나왔고, 제 3권 (상)(하)는 1990년 2월 초판이 발행된 이후 2004년 7월 제1차 개역판이 나왔다.

 

목차



제 1 편
노동생산력을 향상시키는 원인들과 노동생산물이 상이한 계급들 사이에 자연법칙에 따라 분배되는 질서

제 1 장 분업
제 2 장 분업을 야기하는 원리
제 3 장 분업은 시장의 크기에 의해 제한된다
제 4 장 화폐의 기원과 사용
제 5 장 상품의 진실가격과 명목가격, 또는 상품의 노동가격과 화폐가격
제 6 장 상품가격의 구성부분
제 7 장 상품의 자연가격과 시장가격
제 8 장 노동의 임금
제 9 장 자본의 이윤
제 10 장 노동. 자본의 각종 사용처의 임금. 이윤
제 1 절 사용처 그 자체의 성질로부터 생기는 불균등
제 2 절 유럽의 정책에 기인하는 불균등
제 11 장 토지의 지대
제 1 절 언제나 지대를 낳는 토지생산물
제 2 절 지대를 낳을 때도 있고 낳지 않을 때도 있는 토지생산물
제 3 절 항상 지대를 낳는 생산물과 어떤 때는 지대를 낳고
어떤 때는 낳지 않는 생산물의 가치 사이의 비율 변동
1.지난 4세기 동안의 은가치의 변동에 관한 이야기
2.금은가치 사이의 비율 변화
3.은의 가격이 계속 하락하지 않을까 의심하는 이유
4.사회의 진보가 세 가지 종류의 천연생산물의 진실가격에 미치는 영향
5.은가치의 변동에 관한 이야기의 결론
6.사회의 진보가 제조품의 진실가격에 미치는 결과
제 4 절 본장의 결론

제 2 편
자본의 성질. 축적. 사용

제 1 장 재고의 분할
제 2 장 사회의 총재고의 특수한 부문으로 간주되는 화폐, 또는 국민자본의 유지비
제 3 장 자본축적, 또는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제 4 장 이자를 받고 대부되는 자본
제 5 장 자본의 각종 용도

제 3 편
각국의 상이한 국부증진과정

제 1 장 국부증진의 자연적인 진행과정
제 2 장 로마제국 멸망 후 농업이 유럽의 구체제에 의해 받았던 억압
제 3 장 로마제국 멸망 후 크고 작은 도시의 발흥과 발전
제 4 장 도시의 상업은 농촌의 개량에 어떻게 공헌했는가?

제 4 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제 1 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제 2 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제 3 장 무역수지가 불리한 나라로부터의 거의 모든 종류의 상품수입에 대한 특별한 제한
제 1 절 중상주의의 원칙상으로도 이러한 제한은 불합리하다
1.예금은행, 특히 암스테르담 은행에 관한 보충설명
제 2 절 다른 원칙에서 봐도 이와 같은 특별제한은 불합리하다
제 4 장 세금환불
제 5 장 장려금
제 1 절 곡물무역과 곡물법에 관한 보충설명



제 4 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제 6 장 통상조약
제 7 장 식민지
제 1 절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는 동기
제 2 절 새로운 식민지가 번영하는 이유
제 3 절 아메리카의 발견 및 희망봉을 경유해 동인도에 이르는 항로의 발견으로
유럽이 얻은 여러 가지 이익들
제 8 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제 9 장 중농주의, 즉 토지생산물이 모든 나라의 수입(收入)과 부(富)의
유일한 원천 또는 주요 원천이라고 하는 경제학설

제 5 편
국왕 또는 국가의 세입

제 1 장 왕 또는 국가의 경비
제 1 절 국방비
제 2 절 사법비
제 3 절 공공사업과 공공시설의 경비
1. 사회의 상업을 촉진하기 위한 공공사업과 공공기구
1) 상업 일반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공공사업과 공공기구
2) 특수한 상업분야를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공공사업과 공공기구
2. 청년을 위한 교육기관의 비용
3. 모든 연령의 국민을 교육할 기관의 비용
제 4 절 국왕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제 5 절 본장의 결론
제 2 장 한 사회의 일반수입 또는 공공수입의 원천
제 1 절 국왕 또는 국가에 특별히 속해 있는 재원, 즉 수입의 원천
제 2 절 조세
1.토지지대와 가옥임대료에 대한 조세
1) 지대에 비례하지 않고 토지생산물에 비례하는 조세
2) 가옥임대료에 부과되는 조세
2. 자본의 수입 즉 이윤에 대한 조세
1) 특수한 사업의 자본이윤에 부과되는 조세
2)제 1 항과 제 2 항의 부록 : 토지. 가옥. 자본의 자본가치에 부과되는 조세
3. 노동임금에 대한 과세
4. 각종 소득에 대한 차별 없는 과세
1) 인두세
2) 소비재에 부과되는 조세
제 3 장 국채

<부록> 백색청어 어업에 대한 장려금
<참고문헌>
<사항 및 인명 색인>

출처 : 로스쿨에도전하는사람들★로도사★
글쓴이 : 논리연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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