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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의 시위 / 김완수

 

 

반디의 아스라한 시위가 궁금했다

다 켜지 못한 불을 꽁무니에 붙이고

구경꾼도 야경꾼도 없이 시위하는 걸 보고서

짠한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여름밤의 이슬 같은 몸짓이라

그보다 뭔가 고결한 이유가 있으려니 생각했다

 

처음엔 저를 청정으로 내모는 결벽인 줄 알았으나

반디가 제 의식(意識)에서 불면하는 건

서툰 자의가 아니었다

대낮의 쇳소리가 총성같이 울리고

소리의 여백이 산그늘보다 넓을 때

반디는 제가 뿌리내린 숙면에서 깨

의식의 게토로 이주했다

 

사람의 퇴거 명령이 탈바꿈을 재촉하자

반디는 목소리를 키웠다

세상 이목에서 사라질 줄 알아도

날로 산란(産卵)하는 인적은 버틸 수 없었겠지

야박하게 반디들 간을 내먹던 차윤(車胤)*

일찌감치 그 목소리를 읽었을지 모른다

외면의 우범지대에서

내게 황달 같은 불을 켠 반디

 

내 발그레한 시선에 촛농이 떨어지는데

하루살이들의 가열(苛烈)한 시위를 보면서도

손사래로 눈 가릴 수 있을까

이제는 두메 끝 벼랑으로 날아가

촛불을 살리는 반디

반디의 꺼지지 않는 의식이 궁금하다

 

* 가난하여 여름밤에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으로 글을 읽었다고 하는 중국 동진(東晉)의 학자

 

 

 

 

꿈꾸는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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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세 사람의 심사위원(황지우 나희덕 신형철)이 각자 진행한 예심에서 추려낸 본심 진출작의 리스트는 거의 일치했다. 특수한 취향에만 호소하는 작품들이 아니라 객관적 기준을 넉넉히 만족시키는 작품들이었다는 뜻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만을 놓고 본다면, 이들

 

작품의 수준은,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의 본심과 비교했을 때 우열을 쉽게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다. 문학상의 권위는 오로지 응모작의 우수성이 부여해주는 것일 뿐이다. 이만하면 5.8문학상의 권위를 흔쾌히 인정해도 좋으리라.

 

총 여덟 분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반성> 5, <하숙방 참사> 4, <고장 난 체육시간> 9, <반디의 시위> 7, <구름일기> 6, <말을 하고 있었네> 6, <눈동자> 6, <꽃씨의 수화> 6.

 

<반성> 5편은 반성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천착하고 있는 일련의 연작시들인데, 상투적인 인식과 표현을 배반하고 말겠다는 시인 자신의 긴장 상태가 작품 전편을 관통하고 있고, 말을 하는 방법은 산문적인데도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유려한 리듬이 형성되게 만드는 스타일도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수련을 한 (아니면 그렇게 느껴지게 하는 기교를 갖고 있는) 응모자로 보인다. 그러나 연작 전체를 보면 뛰어난 결과라고 평가할 만하지만, 개별 작품들이 각자 홀로 설 수 있을 만큼의 독자적 완성도를 갖고 있지 못해서 그중에서 특별히 우수한 한 편을 고르기가 어렵다(, 당선작이 될만한 작품은 없다)는 점이 결정적인 결함으로 지적되고 말았다.

 

<하숙방 참사> 4편은 5.18의 참상을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그려내고 있어서 주제의식이라는 측면에서는 5?18문학상의 취지에 잘 근접해 있다. 여리고 민감한 감수성으로 일상과 기억,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넘나들며 죽음의 트라우마를 형상화한다. 그러나 소재의 핍진성에 비해 시상을 전개시키는 힘이나 표현력은 다소 떨어진다.

 

<고장 난 체육시간> 9편은 다채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부조리한 현실과 역사의 폭력성을 그려내는 솜씨가 활달하다. <양치기 소년의 증언>에 나타난 잔혹 동화나 <죽음의 춤>에 나타난 이발사의 우화, <귀 먼 자들의 도시>에 나타난 환청과 시체놀이 등은 단순한 알레고리가 되고 만 것이 아니라 풍부한 전언들을 함유하고 있어서, 5.18을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은유적이고 메타적인 시선으로 역사적 상처를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고장 난 체육시간>이나 <사기인간지구력> 같은 미숙한 작품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시적 완성도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지 않은가 한다.

 

<구름일기> 6편의 경우 보내온 시가 모두 골고루 뛰어나지만 <나무도마><살아있는 별>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후자는 한 문장도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할 만큼 잘 짜인 시다. 805월에 대한 책을 읽다가 책에 나오는 어느 아름다운 죽은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

 

하는 일이, 하늘의 별을 향해 전화를 거는 일이 되고, 그 별이 다시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지금도 살아 있는 별이 되는 이 상상력의 흐름이 아름답다. 그러나 80년 광주를 제재로 삼았으되 그로부터 새로운 역사적 실존적 인식을 생산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는 점, 기타 다른 시들의 단정한완성도가 소박한인식론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대상으로 천거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고 있었네> 6편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연작들이라는 점에서 5.18의 또 다른 타자를 발굴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 비극적인 죽음을 증언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편 한편에 진심 어린 노력이 투여돼 있다는 것이 충분히 느껴지지만, 시적 형상화는 전반적으로 소박하다.

 

<눈동자> 6편은 언어적 감각이 섬세하고 신선하며, 전체적으로 시적인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일상의 풍경 속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예민하게 포착해 내고 그것을 오래 되새김질한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이 내성적이고 개인적인 목소리는 충분히 독창적이고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5.18문학상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대상으로 선정하기는 어려웠다.

 

<꽃씨의 수화> 6편에서 특히 빼어난 시는 <꽃씨의 수화>였다. 이 시는 광주항쟁 초기 사망자 중 한 사람인 김경철씨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사한 유형의 시들이 고루함과 생경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빼어나다. 과거와 현재, 상처와 극복, 현실과 이상이라는 대립적 구도가 시를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있으며, 꽃씨와 수화의 이미지도 제 몫을 아름답게 해낸다. 부분적으로 어색한 표현들이 있지만, 여느 응모작들보다 한결 더 진실한 울림이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응모자가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의 수준은 이만하지 못했다.

 

결국 대상은 <반디의 시위> 7편을 응모한 김완수씨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데 심사위원들은 흔쾌히 합의할 수 있었다. <반디의 시위><혀짤배기 사관>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둘 중 <반디의 시위>를 대상작으로 선정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응모작 대부분이 골고루 우수했거니와, 심사위원들의 아래 논평은 이 응모자의 투고작품 전반에 대한 것이다. 골자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오랜만에 김수영의 시를 다시 읽는 것 같은 강렬한 부정의 정신과 그 심지에서 타오르는 시적 사유가 돋보인다. 군데군데 다소 자의적인 어색함이 시를 뻣뻣하게 경화시키는 대목이 있지만, 텍스트 안에 스스로 꿈틀대는 사유의 근육이 완강하게 느껴진다.”(황지우)

 

간결하고 담백한 시어로 대상을 정확하게 조준해내는 집중력이 있고, 시적인 논리나 구조가 탄탄하다. 5.18이라는 사건의 재현보다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풍자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주제 의식을 확장하고 있다. 지성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딱딱하거나 도식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서정적 온기와 비판적 의식이 적절한 협업을 통해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나희덕)

 

시에서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이 언제나 제1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도무지 하고 싶은 말 자체가 없어 보이는 시들을 읽다가 지칠 때 즈음이면,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고 그것을 백퍼센트의 상태로 전달하기 위해 역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들 앞에서 반가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작품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5.18문학상이니, 이러한 장점이 더 크게 대접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는 한편 시적 표현의 묘를 놓치지도 않고 있으니 여러모로 모범적인 작품들이라고 해야 하겠다.”(신형철)

 

김완수씨의 수상을 세 사람의 뜻을 모아 경하(敬賀)한다. 세월호의 비극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와중에 5.18문학상 수상작이 우리의 분노와 슬픔을 논리화하고 역동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우리 심사위원들의 마음은 전혀 엉뚱하거나 과도한 것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심사위원 황지우, 나희덕,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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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 이병일

 

 

누이야, 혁명을 절규나 침묵으로 해석하지는 말자. 군인들 팔둑에 돋은 힘줄이 도드라진 오월, 죽음을 탁발하는 누이들의 행렬이 길을 메웠다. 그때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무릎은 깨져 피가 별처럼 고이고, 군화는 내 머리통을 밟고 지나가는데

 

구름이 해를 가리던 낮에 큰 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목적없이 와불이 되었다. 돌멩이와 풀은 어둠과 햇빛과 상관없이 어둑어둑해지고 죽음은 살덩어리로 발견되었다. 커튼이 쳐진 방 안의 귀머거리들은 큰 죽음을 모른다. 작은 죽음도 잘 모른다.

 

지평선의 목구멍에 걸린 해는 극락강 수면에 일몰의 저녁을 토해낸다. 알 수 없는 곡소리가 들리고,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노 젖는 시간만이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이름 없는 모덤을 찾아간다.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 작은 팽나무 아래의 새들이 퍼덕거리지 않는다. 군인들은 계속 행군 중이고, 저녁의 낯이 새파랗게 질려간다.

 

그러나 더 이상 밀려가는 벼랑이 없는 나는, 뱀눈 그늘나비와 춤을 빌려와서 꿈을 꾸고 있는 세상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내 몸에서 그림자가 엎질러진 날이기도 했고, 꿈을 벗으려고 하면 총 맞은 자리에서 붉은 피가 왈칵 쏟아지는 오월이기도 했다.

 

 

 

 

나무는 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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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찔레꽃그늘에 앉아서 나를 솎아내고, 앵두나무그늘 접어서 나를 섞어보고, 나는 나를 방정식으로 풀어보듯,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서 초록이파리가 빽빽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내가 쓰는 시가 허구의 세계지만 그 안에는 허황되고도 아름다운 것들이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향 진안에 내려가서 부족한 일손을 돕다가 앞 산 넘어온 비를 바로 마중 나가는 뒷산의 그림자와 젖은 빗방울이 발밑의 묵묵한 목숨들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 작은 날숨들이 만들어낸 오월의 들녘 속에서 5.18문학상의 수상소식을 들었습니다.

 

작년 시월에 사내아이를 얻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아이와 아내에게 좋은 선물 하나 해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이는 지금 말문을 트기 위해 옹알이를 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 합니다. 어쩌면 저는 지금 시에게 말문을 트기 위해, 시에게 가기 위한 배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호기심을 갖듯이 그런 눈빛으로 사물들에게 사랑의 말을 걸어볼까 합니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의 아내 이소연과 아들 이서진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세상의 여리고 작은 사물들의 비애를 꿰뚫어보는, 그런 촉이 예민한 시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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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금년도 5․18문학상에 대한 시 예심자는 다음 사항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예심을 진행하였다. 먼저 5․18기념재단에서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 예술성, 대중성, 독창성, 문학성, 주제의식을 기본적 참고 사항으로 삼되, <5․18문학상>이 기존의 신인문학상과 달리 ‘5월’의 시대정신 구현과, 광주정신의 참다운 재현을 이룩한 작품이어야 하며, 이 때 신인으로서의 언어적 참신성, 신선한 패기, 기존 5월시의 시적 성과를 뛰어넘는, 예술적 수월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발굴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응모작 중 5월의 주제의식에 지나치게 함몰되지 않고, 시적 성과를 뛰어넘는 신선한 시적 발상을 보여준 작품을 위주로 예심을 진행하였고, 예심자의 그러한 소망을 담아 본선에 총 28명의 응모작을 올리기로 하였음을 밝힌다.

 

예심통과작

파도 속에 떠도는 섬 외 스펙에게 외 춤추는 병정 외
그래서 나는 빨갱이였나 보오 외 낙화2 외 오월은 외
망월동 연가 외 광주의 눈물 외 광주 외
1980. 5. 18. 외 서로서로 굳게 손잡아 외 맛의 기억 외
오월의 햇살 외 솟대의 꿈을 꾸는 철새 4월 20일 Pm 8:34-혈흔 외
묵상의 늪 외 맹 외 민둥산의 밭 외
어떤 말에 관한 기억 외 비계공을 위한 서시 외 희망의 사막 외
마그마 외 통곡 외 봄동 외
뿌리론 외 염원 외 때는 5월
칸의 나무배트 외    

 

5·18, 벌써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날을 직접 겪은 이들은 나이가 들었다. ‘그날’은 영상물이나 교육이나 그것을 직접 겪은 어른들 이야기를 통해 전해졌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오늘 우리는 스물여덟 분의 168편의 시를 심사하여 한 편의 당선작을 가려냈다. <오월>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작품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5·18이 이제는 생생한 기록화가 되기도 어렵지만 먼 풍경화일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5월의 정신이 오늘에 어떻게 살아있는가이다. 투고작은 전체적으로 5월을 과도하게 의식해서 설익고 관념적인 어투의 시를 뽑았다. 시각의 참신성, 수사의 활달성, 삶의 구체성, 역사적 건실성을 구현하려는 시적 진정성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가운데서도 현실인식의 튼실성, 5월의 구체적 형상성이 뛰어난 작품을 골랐다.

 

- 심사위원 예심 이승철 / 본심 정희성 · 김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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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둥근 이유 / 하기정

 

 

안골 사거리 우회전 공터 지나 높은 오르막 길을

유모차 한 대 오신다

팔월의 햇살 아래 불 지핀 아궁이 속 같은 열기가 아스팔트 위를 어룽거리는데

유모차엔 아기 대신 노끈으로 친친 동여 맨 삼양라면 박스 새우깡 박스 옥시크린 박스

내용물 없는 빈 상자가 삐죽 튀어 나왔다

노파가 유모차에 걸어 놓은 간판처럼

 

아슬아슬 고갯길이 한참이다

지구는 둥글지, 자꾸 걸어 나가면

지구가 둥근 이유는 멀리 수평선 돛단배를 보면 알지

돛단배는 돛부터 보여주다 차츰 배 전체가 드러나지

 

노파의 등과 아스팔트 길이 쌍곡선이다

저 속도로 가다보면 빈 종이상자의 무게만큼

라면 한 박스라도 바꿀 수 있을까

나아간다는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빈 상자 묶음은 들쑥날쑥, 뒤틀린 판게아처럼

노파의 손은 밀려난 대륙의 끝자락을 잡고 있다

 

지구는 둥글지

굴러도 항상 그 자라 한 바퀴 돌아 나와도 제자리 걸음

바다에 나가 돛의 머리를 보지 않아도 알지, 지구가 둥근 이유를

 

대륙과 대륙이 멀다

닻을 내릴 수 없다

 

 

 

 

 

밤의 귀 낮의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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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2010년으로 30주년을 맞는 5.18문학작품의 외연을 어디까지 넓힐 것이냐는 주최자나 응모자나 공통된 고민 중의 하나일 것이다. 폭넓게 5월 정신의 연장이나 확대를 작용시키자면 그 한계가 모호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 어떤 주제이든 과연 5.18과 연관성을 가지며 과연 절실성은 있는가가 항상 심사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경제적 난국 탓인지 유난히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시들이 많았다. 또한 5.18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아니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생경한 구호성 목소리가 섞여있거나 혹은 지나치게 주눅 들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는 허위를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허위를 말하는 것조차 허위가 아닌지 되물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당선작 지구가 둥근 이유는 작품의 완성도와 사회의식이랄까, 현상의 묘사나 고발에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려는 의지를 높게 샀다. 특히 민중적인 인물들을 내세워 감칠맛 나는 넋두리로 시를 노련하게 이끌어가는 다른 시들과 달라 현대적이고 이지적인 높게 샀다.

 

끝으로 당선은 되지 못했으나 끝까지 고민한 작품은 들창 밖 모시풀, 신기동리 가는 길이었다. 매우 잘 쓴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하다는 느낌이 망설이게 한 것은, 순전히 심사위원의 취향일 수 있는 만큼 다른 지면을 통해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임동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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