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_DAUM->
동면하지 않는 도마뱀
심은섭
비상하려던 고층빌딩 숲 속 목각새들, IMF교 종파에
감염되어 넥타이를 풀었다
통장계좌를 타고 들어온 푸른 몸값 몇 장에
아내는 치매 걸린 문풍지였다
방패연처럼 아이들을 하늘 높이 날리려면
허공을 문 도마뱀이 되어야 했다
골목길 하나 보이지 않는 절벽
자폐증을 앓던 도마뱀의 다리는 늘 절름거렸다
벽은 외로운 사람들의 섬, 그래도
절벽을 숭배하지는 않았다
옆구리에 찬 녹 쓴 페인트통과 자루 빠진 붓을 들고
공중으로 달리던 태양이 낮 달을 만날 때까지
나무 한 그루 없는 절벽을 산책했다
눈물 흘릴 구멍 하나 없는 절벽산책 길에
박달 나무로 짠 동창東窓의 창틀을 끼우고
어둠에 박힌 보석, 가로등을 세우고
눈雪 속에서도 피는 변산바람꽃을 그렸다
혼돈 된 절벽으로 하얀 단색의 골목길이 나고
90° 낮아진 벽의 허리
녹 쓴 통장에서 투구를 눌러쓴 눈칫밥이 빠져나간 자리에
푸른 지폐들이 모여 수근거렸다
지갑은 철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이동했다
절벽으로 산책을 끝낸 페인트 공
동면하지 않은 완벽한 도마뱀이었다
[심사평] 심사위원 / 고재종(시인)
[시는 삶과 세계의 근원적 총체적 속에 그 뿌리를 둔다]
먼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옥타비오 파스가 자기의 저서 『활과 리라』의 서두에서 해한 시에 대한 정의를 한번 들어보자.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행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선택 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 박은 양식이다 시는 격리 시키면서 결합시킨다. 시는 여행에의 초대이자 귀향이다. 시는 들숨과 날숨이며 근육운동이다. 시는 空을 향해 기원이며 無의 대화이다. 시의 양식은 권태와 고뇌와 절망이다. 시는 기도이며 歎願이고 顯現이며 現在이다. 시는 악마를 쫓는 주문이고 맹세이며 마법이다. 시는 무의식의 승화이자 보상이고 응집이다. 시는 계급과 국가, 인종의 역사적 표현이면서 역사를 부정한다 시 속에서 모든 객관적 갈등들이 해소 되고 인간은 마침내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것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을 얻는다. 시는 느낌이고 감정이며 직관이고 방향성이 없는 사유이다.
<중략>
시는 순수하면서 순수하지 않고 신성하면서도 저주받았고, 다수의 목소리이면서 소수의 목소리이고, 집단적이면서 개인적이고, 발가벗고, 치장하고, 말하여지고, 색칠되고, 씌어져서, 천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결국 시편은 빔vacio ? 인간의 모든 作爲의 헛된 위대함에 대한 아름다운 증거! ? 을 숨기고 있는 가면일 뿐이다.”
비상하려던 고층빌딩 숲 속 목각새들, IMF교 종파에
감염되어 넥타이를 풀었다
통장계좌를 타고 들어온 푸른 몸값 몇 장에
아내는 치매 걸린 문풍지였다
방패연처럼 아이들을 하늘 높이 날리려면
허공을 문 도마뱀이 되어야 했다
골목길 하나 보이지 않는 절벽
자폐증을 앓던 도마뱀의 다리는 늘 절름거렸다
벽은 외로운 사람들의 섬, 그래도
절벽을 숭배하지는 않았다
옆구리에 찬 녹 쓴 페인트통과 자루 빠진 붓을 들고
공중으로 달리던 태양이 낮 달을 만날 때까지
나무 한 그루 없는 절벽을 산책 했다
눈물 흘릴 구멍 하나 없는 절벽산책 길에
박달나무로 짠 동창東窓의 창틀을 끼우고
어둠에 박힌 보석, 가로등을 세우고
눈雪 속에서도 피는 변산바람꽃을 그렸다
혼돈 된 절벽으로 하얀 단색의 골목길이 나고
90° 낮아진 벽의 허리
녹 쓴 통장에서 투구를 눌러쓴 눈칫밥이 빠져나간 자리에
푸른 지폐들이 모여 수군거렸다
지갑은 철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이동했다
절벽으로 산책을 끝낸 페인트 공
동면하지 않은 완벽한 도마뱀이었다
-심은섭 「동면하지 않는 도마뱀」전문
위 시에는 기지, 반어, 냉소, 조롱 등의 방법적 수용을 통해 삶과 세계를 풍자하는 방법이 있다. 이 풍자의 세계의 속에 들어온 사실적 존재들은 풍자를 구성하는 풍자적 또는 우화적 요소로 변모하여 사실적인 가면을 쓴 관념이 된다.
“어제 나는 내 귀에 말뚝을 박고 돌아왔다/오늘 나는 내 눈에 철조망을 치고 붕대를 감아버렸다./내일 나는 내 입에 흙을/ 한 삽 처 넣고 솜으로 막는다”(황지우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부분).
이 시에서 ‘말뚝’ “철조망’ ‘붕대’ ‘흙’ ‘솜’이 본래의 의미를 숨기고 있는 풍유이다. 이 구체적인 사물들은 그 이면에 ‘귀막음, 눈가림, 입막음’ 이라는 관념적 의미의 층을 숨기고 있다. 물론 이 모두는 ‘살아남을 위해’라는 변명 위에 행해진 우리들의 비겁함이라는 작가의 질타이다.
심은섭의 詩도 황지우 시의 시적 방법론을 판박이 한 것처럼 풍유가 전개 되어 있다. 심은섭의 시 처음 두 행만을 본래의 층으로 해설해보자. “크게 성공하려던(비상하려던) 대기업(고층빌딩 숲 속)의 반듯하고 기계적인 사원들(목각새들), 아예 사이비 종교처럼 세상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는 IMF에(IMF교 종교에) 걸려 넘어져(감염되어) 화이트 칼라에서(넥타이를) 해고되었다.(풀었다.)” 그래서 그들은 빌딩이나 높은 옹벽에 페인트칠이나 하고 청소하는 생활의 절벽에 선 자가 되었다는 것이 내용이다. 한데 이런 시에서 관념적 의미의 층을 대체하며 표면에 드러나는 구체적 사물들이 서로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실패하기 쉬운데 심은섭은 이를 어느 정도 성공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현대사회의 의사소통이 체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적 영역은 경제제도에 의해 침해 당하고 공적 영역은 행정제도에 의해 침해 당한다.”(「소통행위이론」) 다시 말해서 사적 의사 소통은 자본축적의 논리에 의해, 공적 의사소통은 관료제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그 결과 심은섭의 시에서도 ‘아내’는 ‘치매 걸린 문풍지’가 되고 남편이 실직을 하고 얻은 직업인 ‘페인트공’은 ‘절벽으로 산책을’ 하거나 ‘허공을 문 도마뱀’이 된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주체와 대상은 분열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세계-내-존재”라는 현상학으로 유명한 후설이 말한 “생활세계”를 산다. 생활세계 속에서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고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최소한 가능한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를 “상호주관성”이라고 한 모양이다. 주체/대상 혹은 주관/객관의 분리 이전에 인간은 세계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과 관료제에 의해 왜곡된 사회에서는, 심은섭 시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상만 의도적으로 풍자되고 거기에 주체의 자연스런 숨결은 참여 되지 않는다. 대상과 주체의 심각한 분열현상인 것이다.
<중략>
하지만 당선작은 오히려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어 있는 심은섭의 시가 될 수 밖에 없다. 워낙 냉소적인 우화라서 아무런 전망도 없고 한 점 위로도 주지 않는 詩이지만 일단 이 시는 정직하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하나의 인간이 어떤 사물이나 미물짐승으로 바뀌는 그 처절한 모습을 이토록 치열하게 응시할 수 있는 저력이라면 앞으로 어떤 절벽 앞에서라도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략>
시인이란,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처럼 본래 창공을 나는 왕자였으나 지상의 뱃사람들에게 생포되어 굴욕과 모욕을 당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소세키의 소설 속의 겐조처럼 그 굴욕을 온몸으로 껴안고 뒹굴며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어. 일단 한 번 일어난 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그저 여러 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뀌는 거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라고 말하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계속 태어나고 늙고 죽어가고, 그 생의 과정 속에서 서로 얽히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싸우며 살아가는 숙명적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심은섭은 오히려 소세키의 입장을 잘 취한 셈인가.
-심사위원 고재종(시인)-
[수상소감] - 당선자 심은섭
은행나무 골 사거리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그 사람들이 지나간 거리에는 머물러 있는 발자국 하나 없다. 발자국도 떠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 발자국을 누가 집어 삼켰을까? 내가 찍어 놓고 내가 집어 삼키는 도시의 사람들, 사람이 그리워서일까.
내 발자국을 내가 집어 삼키던 오후, 낯선 침입자가 혈관을 타고 들어오자 휴대폰은 머리채를 흔들어 댄다. 침입자는 당선이라는 메시지가 나를 포박했고, 나의 아메바들은 곧 화석으로 변했다. 그 화석은 기화를 준비하는 축제를 시작했다.하지만 응축된 밤의 거대한 어둠을 맨 손으로 부러뜨리던 금남로의 영혼들이 일제히 함성으로 일어나 나의 살점마다 동침을 꽂는 것 같았다. ‘이 몇 줄의 시구로 침묵하는 영혼들의 눈물을 받아 마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내 휴대폰 속 혈관을 타고 들어온 침입자를 맨발로 뛰쳐나가 맞이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동면하지 않는 도마뱀」을 쓴 초라한 시인 하나가 망월동 성역의 침입자가 되지 않기로 바랐다.
그날 그들에게 이 한 편의 詩를 두 손으로 바치며, 문학마당에서 뛰어 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5.18기념재단에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단단한 바위가 되기 위해서는 온갖 풍상을 겪어야 하거늘 아직 고체보다 액체성이 더 강한 제 작품에 수상의 영광을 주신 고재종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또한 시 창작에 눈을 뜨게 해 주신 이언빈 선생님, 오래 전에 밤새워 창작지도해 주신 『시와 세계』발행인 송준영 선생님, 그리고 국제펜클럽 강원지역위원회 박유석 회장님, 항상 격려를 아끼지 않는 김학주 시인과 청송문학회 정민시 회장님과 회원 그리고 강릉지역 모둔 문인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끝으로 불평불만 없이 지켜봐 주던 아내 권기순과 네 눈물의 씨앗 심재환, 심재엽 늘 고맙게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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