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백야 / 이윤학
화단을 지키는 고양이 밥그릇에다
성견 사료 한 알 한 알 떨어뜨려줬더니
골이 났는지 눈길도 주지 않더라
마름모꼴 방 끝의 티브이를 켰더니
화면 중심으로 불 꺼진 성냥골이
쏜살같이 떨어지더라
백합이 품은 짙은 백야를
필사적으로 걸어온 자
물소리를 틀어놓고
자갈을 뒤집는 잠이 들었다
한 번은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최후의 툰드라를 틀어놓고
잠이 들어버린 자
바가지에 틀니를 벗어놓고
옛날 맛 그대로인 김치 씹은 물을 오물거렸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
딱따구리조각마법사
세 시 반의 맨발을 위해
오동나무 상판에 가로의 숨구멍을 뚫었다
카페의 목조계단은 비좁았고, 반들거렸다
음울한 클래식이 지름길로 들어오고 나갔다
그만이 무덤에 갔다 돌아왔다
짙은 백야를 걸었다
천년만년 본드를 흡입하고
봅슬레이를 타고 내려갔다
죽은 자의 힘을 빌려 살지 않겠다
냉골 바닥 거대한 십자가 앞에 팽개쳐져
떨거지가 되지 않겠다
나남출판사에서 수여하는 지훈상의 제17회 수상자로 이윤학 시인과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가 선정되었다.
지훈상 심사위원들은 "신중하고 치열한 심사과정을 통해 문학·국학 두 영역에서 이같은 수상자를 냈다"고 24일 밝혔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문학적 업적과 한국학 연구로 보여준 고결한 정신을 기리고자 제정한 지훈상은 문학과 국학 두 부문에서 시상된다.
문학부문의 상인 지훈문학상을 수상한 이윤학 시인은 196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해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고 2003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품은 지난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시집 '짙은 백야'다.
국학부문 상인 지훈국학상은 이영미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책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푸른역사)에 돌아갔다. 이 교수는 1961년 서울에서 출생해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2003년 PAF 예술상, 2017년 노정 김재철 학술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각 1000만원이다. 시상식은 5월20일 오전 11시 경기도 포천시 나남수목원 내 나남책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국내 문학상 > 지훈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9회 지훈문학상 / 김중일 (0) | 2021.07.13 |
---|---|
제18회 지훈문학상 / 장석남 (0) | 2021.07.13 |
제16회 지훈문학상 / 유종인 (0) | 2017.10.29 |
제15회 지훈문학상 / 김사인 (0) | 2017.10.29 |
제14회 지훈문학상 / 윤제림 (0) | 2014.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