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듣고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라일락향이 번집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바람은 모든 나무가 봄 속에 나부끼게 하였고 나는 나의 별빛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축하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친한 친구 하나가 죽었습니다. 시 쓰는 건 그만두고 취미로 한다니까 계속 써보라고 독려해주던 친구였습니다.
전화기 너머 기침은 환풍구에 곰팡이가 슬어서 그렇다면서 지병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학문적 길잡이가 되어주신 강원대 인류학과 김세건 교수님과 임봉길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모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심사평] “주제 쉽고 담채화처럼 그려… 신선·풋풋한 느낌”
응모작품수가 지난해에 비해 배나 되어 우선 기뻤다. 수가 늘어 반드시 좋은 작품이 뽑히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지용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만도 기쁜 일이다. 실제로 좋은 작품도 예년보다는 많았다. 그러나 응모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은 올해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쉽게 읽히지 않는 답답한 시들이 많다는 점이 그 첫째로, 우선 주제가 너무 무거워 시가 주제 밑에 깔려 숨을 못 쉬는 느낌의 시가 많았다. 또 시란 이렇게만 써야한다 라는 고정관념도 심해 보인다. 억지스러운 비유가 많고, 마치 그것을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이거나 재담으로 생각하는 듯한 경우도 많았다.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활달한 발상이 시를 가장 시답게 만든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시 학도들이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시 공부는 비단 시 쓰는 일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좋은 시를 찾아 읽는 일이 더 큰 공부가 될 수도 있으니, 좋은 시를 볼 줄 모르고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응모작 중 먼저 눈에 띈 작품은 ‘포플러’(한진수)로서, 우선 신선하고 풋풋해서 시가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요즘 신인들이 즐겨 택하는 심각한 포즈에서 멀리 벗어나 가볍고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주제의 선택도 시를 크게 살리고 있다. 또 이 시에서 눈여겨 볼 것은 이미지의 어둡고 밝음의 조화로서, 이것이 시에 리듬감을 더하고 있음은 크게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른 봄날의 담채화 같은 쌈박하고 시원한 시다. 우윤미의 ‘계절의 너’ 외 8편은 아주 재미있게 읽히는 단시들로, 굳이 분류하자면 “벌과 같이 작지만 꿀과 침을 다 가지고 있는” 에피그램 시라 하겠다. 비유도 놀라운 데가 있고 위트도 대단했지만, 한두 편만을 뽑을 수도 없고 모두를 당선작으로 할 수도 없어. 역시 당선작으로는 부적절하게 생각되었다. 한아민의 ‘그게 사랑인 줄 몰랐던 거야’는 첫사랑을 노래한 담백한 서정시로 억지도 없고 속도감도 있는 시였지만 무언가 조금 모자란다는 느낌이었다. 좀 더 정리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이상의 시 가운데서 한진수의 ‘포플러’를 당선작으로 선택한 것은 그 시가 오늘의 우리 시가 가지고 있는 답답함을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가졌기 때문임을 말해 둔다.
최종심에 남은 작품은 임승환의 『홍의장군의 노래』 , 육남원의 『벽곡』 , 정와연의 『망치의 생각』 , 정연희의 『종이 한 장」 그리고 최분임의 『빈 목간을 읽다』 등 다섯 사람의 작품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최분임의 「빈 목간木簡을 읽다」,「맨드라미」 그리고 「부활초」를 대상으로, 그리고 임승환의 『홍의장군의 노래』를 우수상으로 선정하였다.
우선 대상을 받은 최분임의 시 『빈 목간을 읽다』를 살펴보면 시어의 표징성이 뛰어나고 시를 이끌어 가며 주제로 육박해 들어가는 집중력과 힘이 탁월하다고 보여진다.
(전략)...토기를 빚던 손을 빌린 나무둥치가/수신인 당신의 눈 코 입을 묻네요/빗살무늬 캐던 동물 뼈는 잠의 미간처럼 생각이 많아/기다림을 새기기 적당하죠/좀처럼 속내 드러내지 않는 보름달이/당신에게 대신 전할 목간木簡을 읽기 위해/더 밝은 높이에 눈동자를 띄우네요/산길을 향해 구부정하게 걷는 달빛/반짝, 허리가 펴지네요/거미줄처럼 널린 감정들이 강물의 명경明鏡속/뾰족한 빗살무늬로 비칠까 옹이는 지우고...(후략)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능수능란한 언어의 마술사적 필치로 목간의 표징성을 감각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시인의 렌즈에 잡힌 목간은 빗살무늬토기를 빗던 어느 먼 선사의 것일 수도 있고, 당신에게 전할 나의 간절한 마음결일 수도 있다. 그러한 시적 소재와 모티프를 요리조리 끌고 다니며, 언어로 요리해 내는 솜씨가 훌륭한 셰프의 칼놀림에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
또한 최분임 씨의 다른 작품인 「부활초」에서 “간절하지 않는 생은 어디에도 없다/사막의 모가지는 아직 자라는 중이다”와 같은 결구에서 보여주고 있는 생명애의 약동과 부활의 소망이라는 주제가 무리한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맺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상작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또한 그의 다른 작품 「맨드라미」도 수작으로 꼽힌다. 대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직관력이 번득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 진정성 있는 좋은 시인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 최분임씨의 작품을 대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임승환의 「홍의장군의 노래」 등은 특히 시적 구성의 힘과 운율미 비장미가 대단히 곡진하게 표현되어 있어 진실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진정성의 미덕이 돋보였고, 나름대로 시를 완성해 내는 형상력이 우수하여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나의 이름을 칭송하지 마라/임진년에 나 홀로 붉었더냐/진달래 철쭉 영산홍 자산홍/모두 일어나 온 산이/불 탓 듯이, 내 이름 위로/의병들의 선혈이 붉게 젖었다.....”(후략)
임승환씨는 한 편의 시로 홍의장군 곽재우의 내적 고뇌를 나름대로 성의 있게 표현해 내고 있다. 홍의장군을 시적 화자로 끌어내어 전승을 자신의 공과로 돌리지 않고, 전장에서 함께 피 흘리며 싸우던 다른 의병들에게 오히려 공을 돌리는 인仁의 장수 곽재우를 과장하거나 영웅시 하지 않고 무리 없이 시적으로 살려내어 서사시로서의 묘미를 배가 시키고 있다. 다소 서사에 치우치다 보니 시의 미적장치와 긴장미가 덜하다는 약점이 노출이라는 아쉬움에 선자를 망설이게 했지만, 요즘 한국 시단에서 찾아보기 힘든 서사에 주목했다는 점과 시를 대해는 진정성이 느껴져 기꺼이 우수상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모쪼록 더욱 분발하여 우수상에 답하는 좋은 시를 보여주기 바란다.
입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응모작들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작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용솟음치고 있어 한국 시단의 밝은 미래를 예견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입상자들의 무한한 발전을 바라며 천강문학상이 전국적인 응모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뛰어난 시인들의 등용문으로서 한국 시단에 크게 이바지해 가기를 소망한다.
고민하고 한 선택이라도 그 고민이 결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선택은 그냥 입장권이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삶의 맨 가장자리에 서면 무모함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길 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이민이 그랬고, 시를 쓴다는 것이 그랬다.
총을 들고 훈련할 때보다 휴가를 나와 거리 한복판에 군복을 입고 섰을 때 나는 내가 군인인 줄 알았었다. 이민 오고 한참 만에 고국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이도 저도 아닌 이민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모래를 벨 수 없다.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대적이지 않는, 때로는 친절하고 이해심까지 갖춘 상대를 무모함이라는 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밤에 걸려온 낯선 전화에(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당황해서 생각되지도 않은 말들이 입을 나서 수화기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침묵의 며칠, 희망을 놓아야만 하는 경계쯤에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글을 쓰겠다는 똥고집 하나밖에 없는 사람에게 신춘문예는 신기루다 못해 신앙이다. 낯선 땅에 고립된 상황에서 가능성을 따져 접근하려는 것은 어쩌면 불경스럽다.
지난 몇 년 동안, 새해 첫날 각 신문사의 당선된 시를 읽으며 '당선되지 못한 소감'을 안으로 삭히는 데 익숙한 나에게 '당선소감'은 참 어색하다. 아버지께, 나의 무모함을 함께한 가족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분께 그리고 심사하신 분께 감사드린다.
올해에는 유난히 투고작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의 논의를 거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시 부분에서 '귀' '물을 향해 걷는 나무 곁에서' '손을 부수다' '뱀을 아세요?', 시조 부문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눈 오는 밤, 프란츠 카프카' 등 모두 6편이다. 시·시조 두 장르에서 당선작 1편을 뽑아야 하는 만큼 심사위원들의 고뇌가 컸지만, 작품의 수준을 제1의 원칙으로 한다는 기준이 있었기에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엔 큰 무리가 없었다.
시 '귀'는 실험적이면서도 언어의 미와 사유의 깊이가 잘 살아나고 있었지만, 너무 소품이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물을 향해 걷는 나무 곁에서'는 표현도 참신하고 주제도 서정적이라 가작이지만, 표현의 묘미에 너무 치중한 감이 있다. '손을 부수다'는 존재의 본질적 슬픔을 여러 기발한 표현을 통해 잘 살려 내고 있었지만, 시의 내용이 관념으로 흐르는 점이 지적됐다. 시조 부문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는 시조의 형식미와 서정의 깊이를 확보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 너무 전통적 정서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이에 비해 '눈 오는 밤, 프란츠 카프카'는 시조의 형식미를 현대적으로 살려 내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도 동시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소외의 문제를 연시조로 그려 내고 있어 주목을 끌었지만, 당선작과 최종 경합에서 아쉽게도 2위로 낙착됐다. 그리하여 당선작은 '뱀을 아세요?'로 결정했다.
'뱀을 아세요?'는 뱀이라는 존재의 특성을 통해 현대적 인간존재의 외로움과 그 지향을 참신한 표현과 깊은 사유로 살려 내고 있어 높은 수준을 보여 주었다. 일로매진하여 한국문단의 큰 별이 되기를 기원한다.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오영호 의령군수)는 지난 4일 제7회 천강문학상 수상자와 제1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결정, 발표했다고 7일 밝혔다.
군에 따르면 지난 9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접수한 제7회 천강문학상은 754명에 3781편이 접수 되었고 제1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에 164명에 301편이 접수됐다.
이에 천강문학상은 분야별로 시에 217명 1538편, 시조에 70명에 504편, 소설에 138명에 233편, 아동문학에 동시 125명 893편과 동화 50명에 150편, 수필에 154명에 463편이 접수됐다,
심사는 비공개로 엄정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어 수상자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최종 결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심사장소인 의령을 찾아 곽재우 장군과 휘하 17장령 및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에서 참배를 한 후 기념관을 둘러보고 곽재우 장군의 생애와 사상, 철학, 문학의 업적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심사에 임했다.
천강문학상 부문별 대상으로 시 부문 대상 박형권(창원)의 <현고수>가 차지했다.
시조에는 권점희(서울)의 <갈잎, 붉다>가, 소설 부문에 문서정(경북 포항)의 단편 <개를 완벽하게 버리는 방법>이, 아동문학 부문에는 이은미(경기 용인)의 동화 <깜지>가, 그리고 수필 부문에 김현숙(대구)의 <유리로 만든 창>이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제1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대상은 초등학교(저학년부) 부문에 의령초등학교 김건의 <“얼음”…. “땡”>이, 초등학교(고학년부) 부문에 의령초등학교 김도원의 <햇살 담기>가, 중등부 부문에 지정중학교 조시언의 <액자>가, 고등부 부문에 의령여자고등학교 송인영의 <홍의동화>가 영광을 차지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25일 금요일 오후 4시 의령 군민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제7회 천강문학상은 시를 비롯해 시조, 소설, 아동문학, 수필 등 5개 부문에 걸쳐 공모를 했다. 시상금은 소설 부문 대상은 1000만원, 우수상은 500만원이다. 시와 시조, 아동문학, 수필은 대상에 각 700만원, 우수상은 각 300만원이다.
특히 올해는 ‘제1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을 신설해 군내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초등 저학년부(1~3학년), 초등 고학년부(4~6학년), 중등부, 고등부 4개 부문에서 운문 및 산문 실력을 겨루었다.
두 번의 수술로 몸과 마음이 지쳐 올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귀를 의심했습니다.
너무 떨려서 전화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분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젊은 문학도의 길을 가로막은 건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게 출발해 시의 발아점까지 달리기엔 숨이 찼습니다. 햇빛도 보기 전에 멈춰버린 날들이 폐지처럼 수북이 쌓였습니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시를 놓고 있다가 느닷없는 당선 소식으로 마음에 불꽃이 일었습니다. 이 소중한 불꽃, 시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태우겠습니다.
옛날 호롱불 밑에서 밤늦도록 책을 보시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 저의 가슴에 시의 씨앗 하나 묻어놓으신 분들, 기뻐하실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납니다.
주저앉은 제 손을 잡아주신 유종호, 신경림 심사위원님과 세계일보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시의 길로 이끌어 주신 박주택 선생님, 항상 용기를 주시던 이문재 선생님께 큰절 올립니다.
힘들 때 힘이 되어 주시던 마경덕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시사랑 화요팀 선생님들과 문우들 고맙습니다.
묵묵히 지켜보는 남편과 딸 미라, 아들 명훈이와 창훈이, 친지들, 친구들,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해보다 작품 수준이 높다는 것이 심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지만, 개성이 강한 작품이 많지 않다는 지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행을 타는 것인지 응모작들이 서로 비슷비슷한 점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창작교실 등의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 중에서 특히 정수박이, 설수인, 이해원의 작품들은 당선작으로 일단 손색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정수박이의 ‘능선을 바라보며’는 무리 없이 읽히는 장점을 지녔으며 호소력도 상당하다. 한데 내용이 너무 평범해서 어디서 한 번 들은 것같이 귀에 익다. ‘민달팽이’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껍데기조차 지니지 못하고 대학을 나온 아들의 취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오늘의 아버지 모습이 잘 나타나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당선작으로는 무언가 1퍼센트 모자란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어느 한 구석 맺힌 데가 없어서일 것이다. 설수인의 시 가운데서는 ‘투석실의 하루’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직접적인 체험 없이는 쉽게 얻을 수 없는 표현이라는 점이 우선 호소력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 고통을 통해 도달하는 깨달음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한데 조금 장황하고, 내용 탓인지 읽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목이 없지 않다. ‘줄 끊긴 바이올린’이나 ‘앉은뱅이 저울’에 대해서도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원의 ‘역을 놓치다’는 참 따듯하고 애달픈 시다. 여러 면에서 오늘의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가난하지만 평화스럽고 행복한 서민의 가정 풍경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새롭고 예리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흠을 가졌다. ‘육교 밑 고고학자’나 ‘냉장고는 태교중’은 비유가 안이하고 서툴다. 이상의 후보작들을 놓고 숙의한 끝에 시의 완성도에 무게를 두기로 하면서 ‘역을 놓치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소에 관한 시에 당선소감을 적자니 한 슬픈 소에 관한 생각만 나고 좀 멋진 소재를 찾으려는 머리를 가슴이 와서 턱턱 막는다. 결국 가슴을 따르기로 한다.
반드시 필必 자와 사랑 애愛 자를 쓴 둘째누나의 이름에는 다음번엔 반드시 아들을 낳자는 백부님과 백모님의 염원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분은 둘째누나 아래로 딸 둘을 더 낳으셨다. 도시로 일 나간 부모님 덕에 어릴 때 큰댁에 간 나는 누나들의 경쟁적인 사랑에 싸여서 자랐다. 특히 둘째누나의 사랑은 지극하였다. 나와 비록 사촌이지만 머루 다래 으름을 따면 자기 입에 넣지 않고 꼭 내 입에 넣는 것은 물론이고, 방앗간 집 개가 나에게 달려들었을 때 그야말로 혈투를 벌이다 나대신 물리기도 했다.
둘째누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백부님과 백모님을 따라 농사일을 했다. 누나에게 공부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기표현을 잘 하지 않고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는 심성 때문이었다. 다른 누나들은 모두 도시로 공부하러 나가고 둘째누나는 오뉴월 땡볕 아래에서 미련스러울 정도로 논밭 일을 했다, 저녁에는 풀어놓은 소를 몰고 내려왔다. 소를 몰고 오는 시간은 누나에게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끔 누나와 함께 소를 몰고 올 때도 있었다. 해가 뉘엿할 때 소를 몰고 오는 누나는 천생 하루 일을 마친 소였다. 자기 기분은 말하지 않는 누나가 무슨 마음인지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공부하고 싶다. 머리가 아파서 공부가 될지 모르겠지만.’ 천하장사 같은 누나가 아프다고 말하다니.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둘째누나는 이웃마을로 시집가고 딸 하나를 낳고 삼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뇌수막염이라고 했다. 백부님이 혼자 한탄하시는 걸 나는 들었다.
“소 같은 것... 부모형제에게 희생만 하고 갔어.”
자기를 내주고 가는 사람들, 석가와 예수와 간디... 모두 소 같은 인물들이다. 그리하여 소는 자기를 내줌으로써 한 우주를 탄생시킨다. 슬픈 소들이여, 아름답다.
논리적일 필요가 없는 유일한 존재가 예술가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시인의 창작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아주 극단의 현실에서 비현실적 비의을 읽어내고 그 누구도 발견한 적 없는 눈물을 추려내어 함부로 흩뿌려대고 있는 멋진 시 두 편을 만났던 탓이다. 그 한 편이 박형권의 ‘도축사 수첩’이다. 나는 저 시편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의식을 잃어가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 읊조리며 눈물을 흘렸을 ‘예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신의 모습은 언제나 거대하고 영웅적이라기보다는 저렇게 나약하고 처연한 형상으로 인간들에게 수시로 다가왔다 돌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어쩌면 진짜 신의 모습일 런지도 모르며 신의 모습이 꼭 그랬으면 좋겠다.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신은 인간적이며 사랑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형권의 시편에서는 소의 목숨을 주재하는 도축사가 실은 신의 지위에 있으나 시인은 소에게 그 지위를 넘기고 있다. 신이며 곧 각이 떠져 부위별로 다른 생물들에게 분배될 육신을 조용히 내놓는(약자의 어쩔 수 없는 처지라고는 말하지 말자) 모습은 예수의 그것과 차마 닮아있다. ‘보정 틀’에 섰거나 누웠을 때의 모습은 인간의 교화를 위해 시정에서 체제를 위협하는 연설을 해왔을 ‘그’의 형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은 박형권의 신이나 신철규의 신이나, 그들의 슬픔이나 눈물은 환생이나 윤회의 오리엔탈적 정서를 함의하고 있다. 눈물은 고통과 슬픔, 환희의 부산물이고, 엎디어 우는 자의 등어리 위로 드러나는 애처러움과 눈물의 무게는 너무 무거워 어떤 저울로도 달 수 없을 것이다. 박형권 시인께 진심으로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