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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 박형권

 

 

달이 뜨지 않는 그믐밤이면 바다는 스스로 밝다

파도에 뛰어든 뿌연 인광이 항구의 앙가슴처럼 스스스 무너진다

아직 누구도 허락하지 않은 순결한 밤일수록 더욱 빛난다

빛도 바다의 일부분인 것을 어부들은 안다

가덕도 사람들은 어두운 밤바다의 인광을 시거리라고 부른다

인도에서 흑조黑潮를 타고 온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바다의 인광은 바다의 말일 것이다

사실은 야광충이 내는 빛이지만 나는 여전히 말이 빛을 내는 거라고

믿는다

누구나 한번은 어휘가 많은 인생을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말의 고향인 인도로 한번 놀러가고 싶었다

그 그믐밤 아버지는

나를 저어 탕수구미로 낚시를 갔다

칠흑 같은 바다가 노의 궤적을 그렸다

몰고씨이를 꿰고 바다에 넣자 바다가 몰고씨이의 궤적을 그렸다

그런 밤은 붕장어의 밤이다

섬광 같은 신호가 왔다 바다 밑이 외등을 켰다

꿈틀거리는 빛의 반란!

바다는 살아있는 빛을 모국어로 썼다

모두 몸으로 뒤채는 언어였다

그 사이 이 행성의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가덕도의 밤은 육지에서 꺼졌고 이제 시거리로 말하지 않는다

밥 묵었나? 하고 이웃을 빛나게 하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말의 시대는 내가 시거리를 처음 본 순간부터 떠나가고 있었다

가덕도 탕수구미의 황홀한 말씀이시여... 상향尙饗!

 

* 몰고씨이: 갯지렁이의 가덕도 말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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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출판사와 보은문화원이 주관하는 10회 오장환문학상6회 오장환신인문학상당선자가 확정됐다.

 

솔출판사는 10회 오장환문학상수상자로 박형권(56)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 시집은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모악)이다.

 

6회 오장환 신인문학상당선자로는 광화문바닥분수를 쓴 김백형(본명 김태희) 씨가 선정됐다.

 

이번 오장환문학상의 심사를 맡은 최두석·송찬호·방민호 시인은 수상 시집인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이 온갖 생명으로 충만한 남해의 섬마을을 재현해냄으로써 과거로부터 전해 오는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며 질주하는 자본주의 문명의 암담한 현재와 미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오장환신인문학상의 심사를 맡은 이경철·오봉옥·방민호 시인은 당선작 광화문바닥분수광화문광장이나 지렁이등이 갖는 시대적 상징성과 삶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우화적·알레고리적 기법으로 표현한 시라고 평가했다.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인 박형권 시인은 2006현대시학에 시 , 으로 등단했고, 2013년 한국안데르센상에 장편동화 메타세쿼이아 숲으로가 당선됐다. 시집 우두커니’(실천문학), ‘전당포는 항구다창비), ‘도축사 수첩’(시산맥) 등을 펴냈다.

 

신인문학상 수상자인 김백형(본명 김태희) 씨는 1967년 서울 출생으로, 현재 인문창작공간 <봄울지도>를 운영하면서 ‘12 더하기 시인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창작기금 1000만 원, 오장환신인문학상 당선자에게는 500만 원의 상금을 수여하며, 시상식은 오장환문학제가 열리는 27일 보은문화예술회관 앞 뱃들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오장환 문학상은 보은군 회인면에서 출생해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오장환(19181951)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제정됐으며, 최금진(1백무산(2최두석(3김수열(4최종천(5윤재철(6장이지(7최정례(8이덕규(9)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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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 / 문신

 

 

1

정말로 한번 만져보고 싶게 작은 손이었다

 

2

싸락눈이 내리는 저녁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즐거웠다

누군가의 농담에 모두들 과장된 표정으로 웃어주었고

그것만이 우리의 저녁을 아름답게 장식한다고 생각했다

문득,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축축한 것들이

우리들의 배경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어떤 이는 전화를 하러 눈치껏 자리를 뜨고

그 옆자리의 친구는 화장실에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빈자리의 쓸쓸함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처럼

문이 열릴 때마다 눈길을 돌리곤 했다

그때마다 낯선 얼굴을 만나고는 서둘러

쓰디쓴 눈물빛 술잔을 비웠다

갑자기 세상이 시큰둥하게 보이는 저녁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쌓아놓은 빈 병들을 보며

 

가끔씩 던지곤 하던 농담도 시들해져갈 무렵

창 밖으로 함박눈이 내렸다

우리들은 다시 활기를 띠며 눈에 얽힌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것이 사랑이든, 낭만이든,

아니면 진부한 자유이든,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즐거웠으며

즐거워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조바심 나는 저녁이었으므로

또 한 친구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우리들은 감추어두었던 속내를 더욱 단단하게 여미며

썩 괜찮은 농담을 찾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침몰하기 직전의 선장처럼 우리는

어떤 결정이라도 단호하게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것처럼

창 밖의 함박눈은 우리들을 비껴서 내렸다

서너 걸음 앞에 놓인 영정 사진 한 장으로

우리들은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었으므로

삶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빈 병들은 쓰러졌고 아직은

채워지지 않은 잔들이 우리들 앞에 남아 있었고

감당하기 벅찬 날들은

더 이상 우리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날이었다

남자의 손을 보았다

지하보도에 엎드려 있는 남자의 손은 작았다

제 목숨조차 스스로 거두지 못한 친구의 손처럼, 세상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제것으로 움켜쥘 수 없을 만큼 작은 손

그 작은 손위에 놓여진 동전 개수만큼 침침한 저녁이었다

 

 

 

 

2004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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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만이 내 존재 이유다

 

미련퉁이처럼 시만 쓰고 싶었습니다. 연애도 취직도 하지 않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만 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시는 쓰지 못하고 어느 순간 나는 미련퉁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진짜 미련퉁이가. 그 미련퉁이가 다시 시를 쓰겠다고 합니다. 연애도 해보고 취직도 해버린 미련퉁이가 염치없이 시를 쓰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시에 무슨 매력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외로울 때마다 시를 읽었습니다. 때로는 행간에 발목이 빠져 마음이 시큰거리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시는 제 등을 토닥여주었습니다. ‘스스로 아파하지 마라. 너는 너 아닌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시는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미련퉁이는 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시가 뭔지를 보여주신 이 땅의 모든 시인들과 시집과 그리고 사람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기에 오늘 또 한 권의 시집을 샀습니다.

 

당선 소식에 가장 먼저 기뻐해 주신 이병천 선생님. 고맙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미련퉁이에게 시의 길을 가르쳐주시고 늘 안타깝게 지켜봐주신 선생님의 젖은 눈빛이 문득 낮달처럼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눈빛이 언제 어디서라도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시를 처음으로 읽어주신 김승종 교수님, 시 쓰기를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정도면 괜찮다고 다독여주신 이희중 교수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곁에서 저를 지켜봐준 부모님과 착한 이정민이 아니었으면 제가 시를 쓸 수나 있었을까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마음사랑병원 가족들에게 이 기쁨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3일만 기뻐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련퉁이는 또 시를 써야겠습니다. 두 분 심사위원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똑부러지는 시를 쓰겠습니다.

 

 

 

 

곁을 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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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삶의 슬픔 담담히 묘사

 

예심을 통과한 응모자 19인의 작품들 가운데서 5분의 1이 본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나머지 작품들에 견주어 비슷하기보다는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제 나름의 개성을 풍기는 것은 모든 예술작품의 첫 걸음이다. 예컨대, 모대가리금풍뎅이 한 쌍과 가시돌거미 새끼들의 삶과 죽음을 빌려서 애벌레 같은 아이를 안고 뛰어내린 어미를 보여준 잃어버린 길’(박여주), ‘탱탱한 가지 위에서/ 포슬포슬한 감자 위에서/ 아삭아삭한 오이 위에서/ 알싸한 쪽파 위에서/ 팔랑거리는나비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린 세 시의 나비’(이승주), ‘열 아홉 평 진달래 아파트 가판대에서 오천원에 세 장씩 싸구려로 팔리는 ‘30수 면사 런닝셔츠같은 이력서’, 서양문물이 세계화의 이름으로 동양을 점령해버린 이 시대에 아시아 갈대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태평양을 건너가서 미국의 오대호 연안에 뿌리를 내렸다는 여정기’(김미안) 등이 그러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편의 시,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평가되기에는 모자라는 데가 있어서 아쉬웠다. 부분을 다루는 이들의 솜씨가 전체를 마무리하는 기량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당선작으로 뽑힌 작은 손’(문신)은 오늘의 평범한 현실을 소재로 삼았다. ‘지하보도에 엎드려 있는 남자의 손제 목숨조차 스스로 거두지 못한 친구의 손을 오버랩시키면서, 죽은 친구의 영안실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고인이 남기고 간 빈자리의 쓸쓸함’, 조객들의 허황된 농담과 공허한 웃음, 피상적인 관습이 되어버린 조문과 속내에 감추어진 삶의 슬픔이 저녁에 내리는 싸락눈처럼 잔잔한 공감을 일으킨다. 아무런 내면적 교감도 없이 겉 모습만 스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활에 숨겨진 우수를 평이한 일상어로 형상화했다. 억지로 만들어낸 은유적 표현이 적어서 친근하게 읽히고, 산문의 어조에 시적 정취를 담았다. 구체적 부분에 충실하면서도 전체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함께 투고한 숲으로 가는 곰 인형에서도 이 작품과 대등한 수준의 저력이 드러난다.

 

새 시인의 등단을 축하하며, 계속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유종호 문학평론가, 김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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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둥근 이유 / 하기정

 

 

안골 사거리 우회전 공터 지나 높은 오르막 길을

유모차 한 대 오신다

팔월의 햇살 아래 불 지핀 아궁이 속 같은 열기가 아스팔트 위를 어룽거리는데

유모차엔 아기 대신 노끈으로 친친 동여 맨 삼양라면 박스 새우깡 박스 옥시크린 박스

내용물 없는 빈 상자가 삐죽 튀어 나왔다

노파가 유모차에 걸어 놓은 간판처럼

 

아슬아슬 고갯길이 한참이다

지구는 둥글지, 자꾸 걸어 나가면

지구가 둥근 이유는 멀리 수평선 돛단배를 보면 알지

돛단배는 돛부터 보여주다 차츰 배 전체가 드러나지

 

노파의 등과 아스팔트 길이 쌍곡선이다

저 속도로 가다보면 빈 종이상자의 무게만큼

라면 한 박스라도 바꿀 수 있을까

나아간다는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빈 상자 묶음은 들쑥날쑥, 뒤틀린 판게아처럼

노파의 손은 밀려난 대륙의 끝자락을 잡고 있다

 

지구는 둥글지

굴러도 항상 그 자라 한 바퀴 돌아 나와도 제자리 걸음

바다에 나가 돛의 머리를 보지 않아도 알지, 지구가 둥근 이유를

 

대륙과 대륙이 멀다

닻을 내릴 수 없다

 

 

 

 

 

밤의 귀 낮의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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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2010년으로 30주년을 맞는 5.18문학작품의 외연을 어디까지 넓힐 것이냐는 주최자나 응모자나 공통된 고민 중의 하나일 것이다. 폭넓게 5월 정신의 연장이나 확대를 작용시키자면 그 한계가 모호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 어떤 주제이든 과연 5.18과 연관성을 가지며 과연 절실성은 있는가가 항상 심사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경제적 난국 탓인지 유난히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시들이 많았다. 또한 5.18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아니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생경한 구호성 목소리가 섞여있거나 혹은 지나치게 주눅 들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는 허위를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허위를 말하는 것조차 허위가 아닌지 되물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당선작 지구가 둥근 이유는 작품의 완성도와 사회의식이랄까, 현상의 묘사나 고발에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려는 의지를 높게 샀다. 특히 민중적인 인물들을 내세워 감칠맛 나는 넋두리로 시를 노련하게 이끌어가는 다른 시들과 달라 현대적이고 이지적인 높게 샀다.

 

끝으로 당선은 되지 못했으나 끝까지 고민한 작품은 들창 밖 모시풀, 신기동리 가는 길이었다. 매우 잘 쓴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하다는 느낌이 망설이게 한 것은, 순전히 심사위원의 취향일 수 있는 만큼 다른 지면을 통해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임동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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