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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낭송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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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 권기만

 

 

얼굴이 간지럽다

다섯 마리 토끼가 풀을 뜯는 모양이다

아무도 본 적 없지만 내 얼굴에는

다섯 마리 토끼가 산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깡충깡깡충 뛰어다닌다

내가 우울하면 쫄쫄쫄 굶는다

 

다섯 마리 토끼가 뛰어다니는 얼굴을 보는 건

즐겁다 토끼가 뛰어다니고 있다면 틀림없이

맛있는 대화중이거나 사랑하고 있을 때다

소곤소곤은 토끼가 제일 좋아하는 풀이다

 

한겨울에는 토끼도 어쩔 수 없이

말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잠을 잔다 봄이 오고

사방에서 꽃이 터지면 기다렸다는 듯 소풍을 간다

꽃 한 송이마다 한아름의 미소가 사는 걸 알아보는 건

토끼다 입 다물고 있어도 봄이 지나고 나면

살금살금 미소가 살쪄있다

 

소곤소곤 조곤조곤을 뜯다가 어른 토끼들은

구름 속으로 이사를 간다 큰소리는 토끼가

제일 싫어하는 풀이다 아이들 말은 토끼의 발

버짐 핀 듯 얼굴 왼쪽이 간지럽다

다섯 마리 새끼토끼가 풀을 뜯는 모양이다

 

 

 

발 달린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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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나는 가끔 우주에서 날아온 별에 입술을 데이곤 한다. 꽃의 화기에 한동안 눈이 멀기도 하지만 그보다 바람의 꼬드김에 환장하는 날이 더 많다. 살갗에 별이 뜨는 날이면 달에서 파도가 친다. 산짐승 같은 어둠을 베고 잠들던 어린 시절에 내 영혼은 아직 멈추어 있다.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일은 언제나 상처다. 발전할수록 기억에 대한 훼손과 무례는 늘어난다. 돌아갈 곳을 만드는 일과 시 쓰기는 무관하지 않다. 문풍지의 떨림이 시의 긴장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래서 일 것이다. 기억이 저장된, 훼손되지 않은 영혼의 고향을 찾아 방황하는 현대인의 아픈 처지를 시가 담아낼 수 있다면 분명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복무하고 싶다는 바램을 오래전부터 품어 왔다. 그러나 떠밀려 억지로라도 건너야 하는 시대에서 개인의 저항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동시대의 아픔을 나누겠다고? 그러나 그러한 고뇌가 시를 관통하지 않으면 그 시는 공허하다. 그것을 앓아야 건강해지는 영혼이 있단 걸 시를 쓰면서 깨달았다. 시를 향한 고뇌가 훼손되지않은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비록 아직 그 길을 온전하게 찾아내진 못했지만 그 희망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이젠 용기를 가지려고 한다.

 

투고해놓고 제 의 허약함에 놀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러한 일에 용기를 내어서 걸어가보라고 손을 들어주신 강은교, 이경림, 권혁웅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문학 부흥에 앞장 서 주신 지리산문학회와 시산맥 관계자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동리목월 김성춘, 구광렬, 손진은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시작나무, 시와사람들 그리고 언제나 한몸처럼 응원해준 영남시 동인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평]

 

신인상 심사평에서는 흔히 '신인다운 패기'를 심사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사실 이 기준에 따라 신인을 고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신인상은 입사(入社)의 관문이고,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와 비슷해야지 달라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패기란 신인의 숫기 없음을 격려하거나 거친 솜시를 에둘러 말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사정이 달랐고, 심사위원들로서는 그 점이 기뻤다. 10명의 본심자(강두원, 강태승, 권기만, 남상진, 박광석, 박선희, 박은석, 이기호, 임원혁, 전영) 중에서 세 명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박광석의 시들은 오랜 수련의 흔적을 품고 있다. 호흡도 안정되어 있고,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도 탄탄하다. 그런데 바로 그 안정과 탄탄함이 약점이다. 생각이 제재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표현이 흔한 투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좋은 시와 비슷하다는 것만큼 시에 해로운 것도 없다. 근사(近似)하다는 건 바로 그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박선희의 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때 시적인 정념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간주되었던 구절들이 있다. "바람의 행진" "지문 위 실핏줄" "몸에서 자라는 산" 같은 구절이 그런데, 모두 이 응모자의 시에서 뽐은 구절이다. 이런 구절은 정념을 담는 게 아니라 흩어버리는 역활밖에 하지 못한다. 잘 표현된 상념일수록 타협의 산물임을 명심해주셨으면 한다.

 

서두에서 말한 패기를 권기만의 작품에서 발견했다. 능청스레 풀어가는 입담 너머에서, 삶에 관한 통찰이 오롯이 빛난다. 무엇보다도 '그럴듯함'의 흉내를 내지 않은, 생활세계에서 길어 올린 정서가 작품마다 배여 있다. 동거처럼 미소 짓게 하는 작품에서 설국처럼 둔중한 슬픔을 안은 작품까지, 그 정서의 폭도 넓다. 수상을 축하드리고, 패기 있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시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강은교(시인), 이경림(시인), 권혁웅(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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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우물 / 권기만

 


목마를 때, 경주 박물관 간다

뜰 앞 우물에서

공손하게 물 한 바가지 떠먹는다

이 우물 앞에선 텅 빈 마음이 바가지다

조용히 눈 감으면

물이 고여와 넘친다

넘쳐흘러 하늘에 가 고인다

하늘 한 바가지 떠먹기 위해

새들은 몸속을 텅 비운다

누가 맨 처음 허공에 우물을 파고

청동의 치마를 둘렀을까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낭산 너머로 흘러가는 반월半月

우물 속에 잠겨 있다

때가 되면 텅 비어지는 몸을 들고

목울음까지 차오르는 에밀레

한 바가지 퍼서 월성月城이 젖도록

흐득흐득 마시다보면

우물도 달을 퍼서 마시고 있다

   

 

 

발 달린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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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탑골 / 윤승원

 

 

물소릴 밟으며 산을 오른다

대나무 숲 그림자 장삼처럼 펄럭이는 길을 지나면

달빛은 발아래 물비늘처럼 부서진다

옥룡암 돌다리를 건너 마중 나오는

보리사 저녁예불소리

산 아래서 길을 잃어버리는 날이 많았던 나는

발자국을 벗고 부처바위 밑에 쪼그려 앉는다

무서움도 모르고 주변을 살피다가

들쭉날쭉 소망을 쌓은 탑재들을 본다

탑이 많아 탑골이라 했던 것일까

은하처럼 널브러져 있는

달빛 돌조각들을 주워 탑을 쌓는다 한 기단, 두 기단

탑은 어느새 삼나무 우듬지 위로 올라서고

구름이 합장하듯 찰주에 걸리고

바람이 편종 소리로 산기슭을 적시면

꽃이 피는 것처럼 탑들이 피어난다 탑골엔

층층의 나무며 크고 작은 키의 풀,

높고 낮게 나는 새들이 품고 있는 탑들이 자라고 있다

저녁이 되면 배반리 사람들 고단한 머리맡에

저마다의 소망을 쌓기도 하는,

산 아래 불빛들이 어둠을 토닥거리는 시간

누가 내 안에 마애불하나 돋을새김하고 있다

 

 

 

 

 

[심사평]

 

‘우물 외’, ‘탑골 외’, ‘땅속의 여자 외’를 투고한 세 분의 작품이 당선을 겨루었는데, 고심 끝에 ‘우물’을 당선작으로, ‘탑골’을 가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작은 종소리의 파문을 출렁이는 우물물로 환치시키는 능력이 탁월했고, 비움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정신을 일깨움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기갈을 채우는 데도 훌륭히 기여하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와 울림, 스케일도 나무랄 데가 없다. 함께 투고한 두 편의 시도 이 분의 탄탄한 실력을 보증하고 있었다. 다만 사물과 비유가 약간 어긋나면서 시적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면과 군데군데 보이는 타성화 된 언어는 경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탑골’은 좋은 작품이었으나 언어가 좀 절제될 필요가 있었고, 대상을 완전히 자기화하는 데 약간 부족함이 있어 보였으며, ‘땅 속의 여자’는 과거에 갇혀 있는 흠이 있었다. 응모자 모두는 ‘신라정신’은 박제화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삶과 정신 속에 스며 있으며 나날이 갱신되고 승화되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월명문학상이 문인지망생들의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문학상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임수, 손진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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