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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과자 주세요 / 이신율리

 

 

아는 과자는 어제 다 사라졌어

달콤한 맛을 알기 전에 사라져서 다행이야

사과는 계모가 다 먹어치웠지 내겐 사과 대신 다크초콜릿만 주고

 

유혹하지마, 모르는 것은 달콤하지

 

계모를 동그랗게 묶어 마카롱을 만들었어

빨주노초파남보 다음은 분홍이 되는 이상한 나라에서

서로 모르는 가족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거짓말 두 개 넣고

 

맛없는 크림이 자랄 때까지 과자는 햇살의 공식을 모른다고 했지

 

, 터지는 멘토스와 다이어트 콜라 폭발하는 계모가 좋아

 

폴란드초코와플 테니스공껌 턱 빠지는 풋젤리 모르는 과자 주세요

 

쓴 맛도 알고 싶어?

쓴맛이 아는 과자를 안다고 먹고 칡촉

아는 과자가 모르는 과자를 모른다고 먹어치워 악마의 잼 누텔라

 

계모의 주머니가 깊어지고 있어

아는 과자만큼 손목이 따뜻해져 거울아 거울아

 

주머니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츄파춥스 일곱가지 맛을 빨면서 모르는 과자를 찾아가지

 

 

 

 

[심사평]

 

오장환문학상 신인상에는 총 107명의 응모자들이 모였다. 수준이나 완성도 면에 크게 떨어지는 시들은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시들이 감상적이고 설명적이며 관념적이었다. 시의 언어가 산문의 언어와 다른 점은 의미의 명료함이 아니라 오히려 모호함이다. 세계가 확정해놓은 의미로부터 언어를 해방시키기 위한 시의 전략이다. 때문에 시의 언어는 감상과 설명과 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세계의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세계의 실재를 드러낸다. 자신의 시가 어떤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일이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손에 남은 작품은 김미소, 김점복, 김창훈, 최진명, 이신율리 등 총 다섯 명의 시들이었다.

 

페이드 아웃4편을 보내온 김미소의 시들은 일상적 대상과 사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목소리로 인해 일상은 일상 너머 존재하는 비극성을 서서히 드러낸다. 특히 여름에게는 폭발적인 목소리의 흐름이 여름이라는 계절에 새로운 상상력을 끌어들이며 성장과 소멸, 삶과 죽음이 난반사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시의 목소리가 지닌 리듬과 그 리듬이 불러일으키는 파토스는 우리를 참혹하지만 매혹적인 세계로 안내한다. 그러나 다른 시편들은 아직 너무 거칠고 손쉽게 관념어와 추상어들이 남발되고 있다. 더 충분한 상상과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비대칭의 아침4편을 보내온 김점복의 시의 장점은 대상을 낯설게 우리 앞에 새롭게 존재하도록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발화 방식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인데, 하나는 철저하게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아예 대상의 내부로 파고들어가는 방식. 둘 다 그에게는 효과적인 시적 전략으로 보였다. 다만, 대상과의 거리가 어정쩡할 때, 대상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거나 대상에 대한 피상적 해석을 가하는 시들이 다소 눈에 띄었다. 그 결과 시가 상식적 세계를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주지 못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자신이 무엇을 써야 하는지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계동 104번지4편을 보내온 김창훈의 시에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묘사다. 치밀한 묘사가 끌어들이는 이미지는 대상과 정황에 새로운 감각을 부여해 시가 마주한 세계를 낯설게 다시 경험하도록 한다. 특히 그의 시 환생이 보여주는 이미지의 감각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할머니라는 어쩌면 번연할 수도 있는 소재를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다른 각도로 접근하면서 보신 분 연락 안 해도 무방해요라는 역설을 끄집어낸다. 그 역설을 통해 환생은 복잡한 다층적 의미를 띄고 우리 앞에 다시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성취는 많지 않다. 다소 식상한 발상에 너무 기대 있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협소한 현실로 수렴되어 상식적 결론에 이르는 시들도 있었다. 이미지를 좀 더 밀고 나가는 힘 그래서 모르는 세계로 시를 진입시켜 보는 용기가 더 보태진다면 조만간 그를 지면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A44편을 보내온 최진명 시의 존재론적 시선은 매력적이다. 그는 일상의 감각들 확장시키고, 그 감각에 의해 파생되는 이미지들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외부에서 길어 올려진 감각들이 내면의 고통스러운 목소리와 버무려지며 내면과 세계가 조우하게 된다. 내면도 세계도 그 과정에서 변화를 겪는다. 다른 내면과 세계가 그의 시에서 새롭게 창조된다. 그러면서도 섣불리 흥분하지 않는 점은 그의 시의 또 다른 매력이다. 환촉은 그가 어떻게 감각과 이미지를 운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미지란 결국 하나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계의 통합적인 감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도 이 시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시들은 관념적으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여서 무척 아쉬웠다. 관념은 결국 세계를 축소하고 자폐적이고 왜소한 내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최진명의 시를 손에서 내려놓는 데 오랜 망설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이신율리의 시를 선택했다. 통통 튀는 감각으로 무장한 자유로운 상상력은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리듬을 통해 그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넣는 점은 그의 시가 지닌 큰 장점이었다. 이런 점은 다른 응모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력이었다. 그럼에도 거칠지 않고 과하지 않으며 매끄럽게 시를 진행하는 솜씨는 그가 만만치 않은 내공의 시간을 거쳐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는 과자는 어제 다 사라졌어라고 시작하는 그의 시 모르는 과자 주세요는 흔한 백설공주 계모 모티프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다양한 과자의 감각과 발랄한 리듬과 어우러지며 상식적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며 우리를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로 데려간다. 결국 모르는 과자모르는 세계의 상관물이며, 그 세계로 진입하려는 자의 불안을 아이러니하게도 발랄한 리듬과 감각적인 이미지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시에서 상식세계의 윤리를 대상에게 들이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대상에 대한 역설적 접근이 가능해지며 이러한 접근을 통해 새로운 윤리가 발생한다. 이것이 그가 보여주는 모르는 세계의 모습이다. 다만, 그의 시에서 일상적 정황에 너무 도드라질 때 감각과 리듬만 남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점은 그의 시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아쉽게 당선에서 밀려난 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곧 좋은 소식으로 만나게 될 것을 믿는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그가 지금보다 훨씬 더 모르는 세계로 그의 시가 통통 튀며 뛰어나가길, 그래서 우리가 더욱 자유로운 상상력의 언어로 우리 세계를 다시 창조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우리 시의 영토가 조금쯤 넓어지겠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김근(심사평), 안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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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숨 / 박혜정


숨은 것도 다 들킨 봄이다 삼월의 봄꽃들을 말려 지갑에 90도로 접어 놨다 꽃은 그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피는 거다 가끔 난 당신에 대해 마음만 앞선 것은 아닌지 할 때가 있고 또 가금은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는 나인가

할 때가 있다


그렇게 뭘 모를 때가 많다


몇 해 전부터 당신은 나의 세계를 들락날락하고 있다 보면 나는 없고 당신만 있다


맑은 하늘이 나무에 걸린 가을 나뭇잎의 날씨를 만들자는 당신의 작음 숨소리가 지금도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날아가지 못했다 꽃피우지 못한 말들이다 또 부메랑처럼 내게 다가온다 밀려와 나를 생각의 굴레에 빠드린다


무얼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없고 나 없는 당신의 세계를 말하고자 한다


당신의 세계는 어지러운 생각이다 더러운 생각이다 당신을 생각하면 머리가 깨진다 깨진 머리카락들이 징글징글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숨소리다 꽃이 숨을 내뱉는 공기다 꽃이 피워 올린 생각이다

제발 가, 다시 오지 말고 가,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생각이다

생각을 기차역에 두고 온 날이면

구두가 먼저 나를 벗는다

구두 굽에 달라붙은 당신, 내가 생각을 버리고 왔는데 생각은 버리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거야, 하고


어디선가 내 밤을 보고 있는 당신의 숨소리가 들린다








생의 얼굴


사진기가 없던 시대에는 얼굴이 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늦은 여름의 길거리에 화가 많이 난 새를 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빨간 물감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빨갛게 물든 새를 바라보는 오후의 다섯 ㅣ시도 하나하나 물들어 갔다


버스 정류장에 앉은 바람은 여름 온도로 더 높아진다

붉은 외투를 입다가 버리는 식은 바람들은

새의 흐릿한 눈동자처럼 휙

바람의 조각난 눈동자처럼 휙휙

핏빛 옷을 벗는 새들의 얼굴은 점점 늘어난다


다섯 명의 새들은 또 다섯 명의 새를 데리고 온다

새의 부리는 또 다른 눈이라고 의지한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기울기는 더 낮아진다


새들이 전해 준 소식들은 전부 다 그러했을 것이다

모두 같같은 안부하며 새의 부리가 쪼아대고

가엾은 새들은 부리를 땅에 묻고 죽어 간다

땅에 새와 얼굴과 현미경을 묻는다


무덤을 찍는 렌즈는 투명하게 알고 있다

현상된 사진에는 새의 영혼이 있을 것이다

더운 길거리에 화가 나 죽어 간 얼굴들도

바람이 된 빨간 물감들은 그대로 있다









모래시계를 삶았다


모래시계를 커피포트에 삶았더니 저녁 9시가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들을 시곗줄로 엮어 긴 바늘 뒤에 숨겨 두었습니다 감춘 시계의 손톱이 짧은 바늘과 나란히 걸어갑니다 잠깐 멈춘 사이 5월의 어둠은 커피포트 속에 끓고 있었나 보죠 당신은 문구점으로 라이터를 사러 간다고 했습니다


내 손바닥의 그림자는 시계를 좌우로 뒤집어 굽고

시계에 묶어 둔 체크무늬 리본 보플이 아름답게 떨어집니다

당신에게 숙제를 시킨 것도 아닌데 필통은 보이질 않습니다

라이터와 당신은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요?

천천히 식어가는 모래시계가 내 갈색 눈동자를 쿡쿡 찌르고 있습니다

시계가 내지르는 소음이 극성맞게 나에게 달라붙는 밤입니다

창문에 박힌 별의 발자국이 똑딱거립니다


당신은 어딧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이 공식의 수수께기를 나에게 남겨 두었을까요? 풀리지 않는 문제와 차가운 시곗바늘의 뾰족한 모래들이 부엌에서 픽픽 쓰려져 갑니다

당신이 자주 눕던 소파의 자세처럼요








목련나무 신분증


앞마당에 목련 나무가 새벽부터 울먹거린다

딸각거리는 기척들이 몸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물들이 흡수가 되어버린 몸, 나는 두 개의 몸이다

목련 나무가 좋아하는 부스러진 돌멩이들이 있다

달빛의 두 볼이 스친 별들의 어깨들도 고요하다


부지런하게 펄럭거리던 개매의 손짓들을 살펴본다

내 안에 이런 것들을 가만히 되새겨보는 새벽,

나는 아내에게 내려온 조금은 이른 봄을 생각한다

앞구르길기를 하며 그녀 앞에 움직이지 않는 봄,

뒤구르기를 하며 다섯 해에 떠나간 아이의 계절을


나의 신분증에는 아내의 봄이 들어 있다

봄이 두 개, 몸도 두 개라고 불렀다.

마치 아이와 중첩이 된 임산부 같았다

나는 아내에게 아이를 천천히 갖자고 말했었다


입버릇처럼 아내는 우리가 아이를 갖는 게 아니야,

아이가 우리에게 오는 거라며, 목련 꽃잎이 잘게

떨어진 골목에서 울음들을 거침없이 토해내기도 했다

꽃잎까지 떨어드린 아내의 울음은 온 집안에 있는

가구들과 내 마음까지도 축축하게 물들여 놓았다


아내는 밤의 밑바닥에 배냇저고리를 내려두고서야

하루의 간격에 잃어버린 잠을 찾을 수 있었다

창틀도 조용한 저녁에는 작년에 심은 목련 나무의

작음 잎사귀를 손등처럼 쓸어내렸다, 아내와

아이의 작은 귀처럼 핀 목련 나무의 꽃망울

곁에 서서 내 검은 눈썹들을 말끔히 흘려보냈다







무덤이라는 침대


아버지의 두 다리가 침대 가로선을 넘어간다

양복바지를 살 때도 실의 넓이는 두툼했다

물방울들이 지겨운 빛을 꺼둔 바밤이 되면

양복을 이입은은 아버지는 내 방으로 기어 온다


-아들아, 밥은 먹고 다니니

용돈을 얼나마 부족할까


삐뚤엊어진 글자들이 환생을 하는 아침이 오면

토요일의 햇빛들은 침대 다리들을 깨물고 있고

아버지의 두 다리는 내 책상 위에 가지런하다


나는 독일어를 검정 볼펜 뚜껑에 끼워 두고

아버지의 긴 다리를 접어 무덤에 놓는다


달력에 붙어 있는 숫자들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자

이번 달 통장에 잔고가 남은 동전 소리가 딸랑거린다

아버지의 두툼한 양 발바닥의 울퉁불퉁하게 새겨진

흰 눈송이 냄새는 늘 부드럽게 내 콧등을 만졌다


-아버지, 여긴 방에요 쉿!

오늘 먹어야 할 알약을 놓고 갈게요

제발, 소주는 하루에 한 잔만요


오늘도 아버지는 치매를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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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움찔할 때 외 4편 / 안성군  

이른 아침 무에 들었던 

거무스름한 살얼음 


점퍼를 덮고 잠든 사람 

그 사람 밖으로 삐죽  빠져나온 

푸릇한 발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햇살 들 때까지만 바라봐야지 

햇살에 무가 움찔할 때까지만 

바라보아야지 하며 

지켜본 적이 있다. 


동사(凍死), 제 계절에 죽지 못한 

철없는 주검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는 구덩이에 묻혀 

노란 싹을 뚫는 봄을 기다리고 

생채기 많던 손을 골라내고 

흙 묻은 신발을 골라내던 

아무리 끌어 덮어도 

모자란 겨울밤이 있다. 


마치 웅크린 몸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나와 있던 

무의 파란 웃통을 본 적이 있다. 




집이 운다


한파주의보에도 

잠잠한 집 

바짝 웅크린 잠 같은 집 위로 

흰 눈이 내렸다. 


 그 사이 짬을 내어 풀린 한파 

웅크렸던 집이 

훌쩍훌쩍 

똑똑 운다. 

지붕 밑 주림을 

지붕 끝이 안다는 듯이 

적요하게 집이 운다. 


우는 집은 고아 같다 

어쩌다 화목한 기회를 모두 놓치고 

망연하게 서서 울던 집 

을씨년스러운 집은 모두 단란(團欒)의 유품 같다. 

집 마당에서 떨고 있는 개 

개를 만져주는 푸르뎅뎅한 손 

두 귀가 한껏 넘어 간다. 


무럭무럭 조난신호 같은 연통 

그 난로 속으로 

한 토막 넣어 주고 싶은 

소주 반 병 

울던 집도 뚝 그치고 

유일한 소일엔 바람이 빠져 있다. 


하루의 끝자락은 

꾸덕꾸덕 힘이 세다. 






총체적인 총체 


엄마는 자주 

총체(總體)로 나를 때리곤 했다. 


엄마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화근인 나를 화풀이처럼 털어내곤 했다. 

나는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엄마의 주특기는 

총체로 온 집 안 구석구석을 털어내는 일. 

나는 집안의 어디쯤에 

웅크리고 있는 구석일까 


엄마와 나는 서로의 근심 

 근심이 구석이라고 생각했다. 


총체는 구석만 만나면 

먼지만 만나면 

춤추는 듯 즐겁게 

분란을 일으켰다. 


먼지들의 대장도 못 되는 나는 

어느 꼬리를 닮은 털이범은 더욱 못 된다. 


엄마의 취미는 창문을 열고 

분란을 밖으로 털어내는 일 

분란이 다 빠져나간 내 방은 또 

을씨년스럽다. 







털신


그 집을 지나치다 

털이 수북한 신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본다. 

언젠가 노인 한 분이 

저 털이 수북한 신발을 신고 

자꾸 나를 돌아보던 생각이 났다. 


불시에 사람과 맞닥뜨린 짐승이 

어둑한 저녁 쪽으로  사라지던 그 풍경 

사람과 짐승의 경계도 아직은 

살 만하다는 듯이 

저녁이면 불이 켜지고 

아침이면 밭은 기침 소리가 들리곤 했다. 


네 발과 두 발을 두고 

고민하는 듯 

한 사람의 생애가 기울어지고 

때로는 하늘이 넘치곤 했다. 


천천히 발부터 

짐승으로 변해가는 그 집의 노인 

어떤 걸음을 택할지 

고민하듯 천천히 걷고 있는 

털이 수북한  발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다 








노는 땅 


우리 동네에는 노는 땅이 많다. 

생전의 할머니가 가끔 다녀오시던 

노구를 짜내어 흥겹게 춤추던 

관광버스 풍경처럼 노는 땅 많다. 

그런 노는 땅을 찾아내서 

같이 놀던 할머니 


노는 땅들은 바쁘다. 

종자를 가리지 않고 몰려든 풀들 

온갖 곤충들부터 고양이까지 

누군가 버리고 간 가전제품 

환삼덩굴 줄기를 타고 신나게 논다 


논다. 라는 말엔 

감출 수 없는 흥겨움과 한적함이 동시에 있다. 

그런 노는 땅과 놀던 할머니 

지금은, 밑으로부터 여섯 칸 

우로 네 번째에서 무료하시다. 


비가 내리는 날 

질퍽질퍽 땅들은 잘도 논다 

찡그리거나 구겨지다 슬금슬금 펴지는 것들 

호미, 낫, 지팡이, 수레 

각종 농기구를 가지고 논다. 


노는 땅들은 오늘도 

우거지고 가지런해진다. 









[당선소감] 


  시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아닙니다, 사실은 시까지 끌고 가거나 끌고 와야 될 관계들과의 소통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나름의 방식이라는 것이 있어 그 얄팍한 방식을 고집한 끝에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한쪽 방향으로만 쏟아지는 밤, 새벽 틈새 속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어야 했던 지난날들이 잠깐의 단잠에 들겠습니다. 어릴적부터 꿈꾸었던 것이 이렇게 부풀어 시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해 주신 심사 위원분들께 감사합니다.  믿고 기다려 주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모님, 감사합니다. 다시 새로운 계획 앞에 선 성희에게도 힘내라는 말 전합니다. 넌 할 수 있다고 매일매일 응원해 준 준섭아, 고맙다. 그리고 같이 등단하자고 다독여 주고 어설픈 글들 많이 봐줬던 형석이 형, 형의 친절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항상 시의 기초에 대해, 인간의 품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임동확 교수님께 존경의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직 진행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배워야 하고 써야 할게 너무 많은 저에게 시는 슬쩍 구석 한 편에 감춰두고 싶은 소중한 보물 상자와도 같습니다.  언젠가 시를 가르치는 위치에 설 수 있다면, 이 진행중인 감정들을 나직하게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심사평] 


 올해 《실천문학》신인상에는 총 198명이 응모했으며, 예심을 거친 6명의 작품이 본심에서 논의되었다. 이번 신인상 심사를 통해 얻은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많은 응모자들이 이미 언어의 조탁자로서 뛰어난 시적 기술을 발휘했지만 과도한 외국어 및 외래어 사용, 지나친 관념어 남용, 관념적 사변 취향은 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었고, 심사위원들을 다소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하루 씨의 작품들은 개성 있는 상상력과 담대한 시의 전개가 인상적인데,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구구절절한 문장들을 통해 오히려 시인이 표현하고 싶은 핵심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조시현 씨는 미학적인 서사를 시에서 구현하고자 한 노력이 돋보이지만, 응모한 작품들 모두가 산문적일 뿐 아니라 비슷한 구조와 어조를 반복하고 있어 지루해질 우려가 있다. 장안아 씨의 시는 일상을 재발견하는 시선을 담고 있으며 리듬감 있게 읽히는 맛이 있다. 그러나 글쓴이의 신성한 착상을 시의 몸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좀 더 끈질긴 싸움이 필요할 것이다. 장주영 씨는 어떤 거대한 세계 앞에서도 훼손 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그려냈다. 그러나 역시 시 속에 너무 많은 '할 말'들을 욱여 넣음으로써 시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석범진 씨는 다체로운 주제와 소재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끌어올려 심사 위원들에게 새로운 프레임을 전해 주었다. 다만 시의 주제의식을 더욱 집요하게 끝까지 펼쳐낸다면 더 큰 가능성을 가진 문청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당선작으로 뽑은 안성군 씨의 시는 화려하지도 발랄하지도 않다. 하지만 편편의 시가 서정성을 갖고 자기만의 시선과 호흡을 견지하고 있다는 데서 남다른 인상을 주었다. 이는 근래에 우리 시단이 얼마나 소통 가능한 시에 목말라 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에 와 닿는 시는 어떤 것인가, 생활이 있고, 육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각성과 성찰을 가져다 주는 시를 기다린 심사 위원들에게 이 젊은 당선자의 시는 한겨울에 "삐죽 빠져나운 푸릇한 발"(무가 움찔할 때)처럼 선명하게 우리를 각성하게 했다.  

 또한 '조난 신호'같은 연통이 있고, '훌쩍훌쩍' 울기도 하는 집이지만 "하루의 끝자락은/꾸덕꾸덕 힘이 세다"(집이 울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 시인이 가진 결기,'꾸덕꾸덕'버티며 세상과 맞서는 복서와 같은 자세를 심사 위원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안성군 씨가 그려낸 시 속 주인공은 대개 반백수거나 노동자거나 노인이다. 안성군 씨는 그들을 응시하고 발견함으로써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끈끈한 동류의식을 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람이요, 어떤 위협앞에서도 자신의 서정과 역사를 수호하고자 하는 '문지기'에 다름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안성군 당선자의 새로 출발을 축하하며, 한국 문학의 미래를 잇는 시인으로서 성장하길 바란다. 아울러 신인상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에겓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 심사위원 : 김은경, 이승하,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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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기 / 박진경
-2016년 이화의 여름을 기억한다


교수님 빨갱이가 뭐에요?
그러니까 네가 빨갱이지!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나는 곰곰 생각한다


빨 갱 빨 갱
씹히는 맛이 좋아
젤리인가?


내 몸에 빨 강
한 알도 없는데...


가끔 
아주 가끔
밑으로 피를 흘릴 뿐


이제 
그 마저도 
흘리지 않는데...


요즘 죄다 폐경기라서
텅 텅 빈 인문대 소강당


환영사를 마친 교수님이
박수를 치시며 우리들을 기 다 리 신 다








00:01 - 11:11


안으면 안는 만큼
움푹해지는 소파가
몸에 꼭 맞는 무덤이 되기까지
계속되는 포옹 속에서


뭉텅뭉텅
만져지는 얼굴이
너야?


생크림시멘트 범벅으로
계속되는 입맞춤 속에서
씹히는 포도알


나야.
방금 들었어?
엎질러진 곤충채집통에서
실로폰 터지는 소리
나는 보았어. 새하얀 아이들의 발목
빈 나뭇가지에 걸려 헛도는 자전거 바퀴


그것이 애 얼굴이라면
기억나?


흔들의자에서 두 사람 같이
두 사람 같이 흔들리는 오후가 가고
켜 놓은 티브이는 꺼져버리기 위해
채널링링을 한다

하루에 세 번 양치하듯이
            파 앙 파 앙 울어주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 레, 미, 파
  쏠-! 쏠의 치닫는 자세입니다


활 쏘는 체위로 성욕을 스트레칭하고 무너진 잇몸으로 호두를 씹으면
뭐랄까, 마릴린 먼로의 사진이 걸린 노인의 방에서*
빵이 충분히 빵 같지 않은 기분이랄까
파 앙 파 앙 부서지는


나 봐봐.
등을 두드려주면 효과가 배가된다 해서
여기저기서 주워온 팔들을 매달아 봤어
예뻐?


애벌레가 사과를 파먹으며 포옹하듯
계속되는 포옹 속에서 깊어지고
검어지는 구멍 속에서


숨소리가
숨소리를 지우고


두 사람 같이
두 사람 같이 뒤척이다가
싱글사이즈 침대에서
올려다 본 멈춤
11:11


* 찰스 부코스키,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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