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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바다를 품은 산 / 문순희


뜨거운 햇살이 정수리로 내리꽂히는 여름 날

파도소리를 가지마다 걸고 바다를 품은 산에 올랐다

혈관처럼 뻗어있는 숲길을 걷다보면

솔잎향기, 새들의 날개 짓, 알싸한 바다 냄새가 모공을 파고든다

이럴 땐 반쯤 눈을 감고 바람결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산에 오르면 없던 힘도 절로 생겨나니

내게 산사람의 피라도 흐르는 걸까

구릉 같은 산자락은 서서히 키를 높여 산마루에 오르고

숲길은 옹이진 소나무와 갈참나무 깊어진다

길옆으로 잔잔히 흐르는 계곡물도 깊어지고

새소리가 나뭇가지를 흔들면 또 하나의 숲으로 살아 움직인다

바람결에 눈을 씻고 마음도 씻을 쯤

산은 허리춤에 숨겨 놓았던 바다를 꺼내 보인다

산과 바다의 경계에 선 나

눈앞에 극락을 두고도 오욕의 허방다리만 걸어온

내 가난한 삶이 파도에 씻기는 듯 했다

산은 잔잔함의 평화로움도 폭풍우의 성냄도 모두 감싸 안은 적멸보궁

까막딱따구리가 소나무 품에 안겨 무정설법(無情說法)을 읊조리고 있다





은상



소백산에서 / 김미숙


가을바람이 코끝에서 살랑대며

떠나라 떠나라 한다

들뜬 마음 구름위에 얹고

아이들과 소백산의 가을 속으로 떠난다


굽이굽이 죽령을 넘어 다다른 소백산

단풍은 민가로 내려오고 단풍든 사람들 산을 오른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권하는 산

눈으로 마시고 코로 음미하며 귀로 듣는 산은 달디달다

새끼다람쥐가 아이들을 환영한다며 꼬리를 치켜세우고

꽃 향유, 투구 꽃, 까실 쑥부쟁이가 보랏빛으로 웃고 있다


희방계곡에게 출입허가를 받고 다다른 깔딱재

인생의 첫 모험처럼 버티고 서 있어도 즐겁기만 한 아이들

‘그래 그렇게 겁없이 달려 들 줄도 알틴峠立?굴참나무가 한마디 한다

가쁜 숨 깔딱깔닥 몰아쉬며 오르는 돌계단

‘사는 일도 이와 같아 단계를 밟아야한다’고 신갈나무도 거든다

‘게 서시오, 서어나무 쉴 줄도 알아야한다’며 쉼표를 찍고 가라한다

고된 여정 끝에 도착한 연화봉, 그 품이 넓다

저 멀리 산 아래 펼쳐진 삶들이 꿈만 같은데

탁 트인 시야는 능선을 하나씩 끌어 올리고

화폭이 웅장한 수묵화가 펼쳐진다

그 큰 붓을 휘둘러 철마다 다른 그림 걸어놓고

초대하는 신에게 무한한 경이를 표 한다


건너야할 능선 하나를 넘은 듯 훌쩍 커버린 아이들

밤낮의 기온차가 클수록 단풍이 아름답듯

구불구불 험하게 올라와 성취감이 더 큰 정상임을 알기에

시련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가끔은 산에 올라 인생을 관조할 줄 아는

철학자의 눈을 가진 아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산을 내려 온다





동상



산을 닮은 아이 / 조정아


골매라는 아주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물세라는 단어를 모른 채, 산에서 흐르는 물로

먹고, 씻으며 커온 그런 아이지요.

여름 장마철에도 누런 흙탕물을

산삼이 베인 물이라며 훌쩍 마셔버리는 아이

산에는 나쁜 것도 나쁠 것도 없다며

산을 믿습니다.


골매라는 아주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다쳐서 아픈 새는 먹이를 구할 수 없다며

군데군데 쌀 한줌씩 놓아두는 아이

마음이 푸르디푸른 그 아이를 보니

산을 참 많이 닮았단 생각이 듭니다.


골매라는 아주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산을 곁에 두고 앞으로도 산과 살고 싶다며

지금은 푸른 숲을 가꾸기 위해

소중한 나무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

지금 쏟아낸 땀 줄기가 언젠가는

메마른 나무들에게 시원한 소나기가 돼주길 바란다며

산을 참 많이 위합니다.


산을 닮은 그 아이를 제가 사랑하고자 합니다.

산의 나무처럼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그런 넉넉한 존재

산을 믿고 산을 위하고 산을 닮은 그 아이

그 아이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메아리에게 마음의 편지를 전해봅니다.





동상



햇살나무 / 김신희


그 나무엔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 나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나무 신기하게도 말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땐 숲이 막 깨어나 아침을 준비 할 때입니다

그 때

아침 햇살이 조용히 다가와

그 나무에게 말을 건넵니다

무어라 계속 말을 건넵니다

그러면 그 이름없는 나무

햇살에게 무어라 조잘조잘

잘도 말을 합니다

너무 좋아서 까르르 웃기도 하고

손을 좌우로

전후로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땐 빛을 비추기도 합니다

그 나무는 그렇게 좋아라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나무

새로이 이름이 생겼습니다

숲을 지나던 다람쥐가 반갑게 인사하며

그 나무를 불렀습니다

햇살나무야 안녕?

오랫동안 다람쥐에게 쉼터도 놀이터도 되어준

그 나무가

햇살이 있어야만

조잘 거리며 까르르 웃는걸 보고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햇살나무야 안녕?

이젠 그 나무 햇살이 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늘도 그 나무

햇살과 놀며 까르르 웃어 댑니다

숲속 동물들과도 웃어 댑니다

온 산이 떠들석하게 까르르 웃어 댑니다

온 산이 행복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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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강송림剛松林 / 고수정

 

 

지루한 무더위 끝자락

하염없이 쏟아지던 폭우에

마음 심란해하다가

마침내 태양이 고개 내민 날,

강송림(剛松林)에 가본다.


간밤의 폭우에 힘들었을텐데도

맑게 갠 오늘,

거짓말같은 싱그러움을 보여주는 나무들은

눈물겨운 힘이 된다.


수만가지 사념(思念)과 감정에

갈래갈래 마음을 어지럽히고

수만가지 걱정과 갈등에

답도없이 서서히 파묻혀가던,

그래서,

찬바람에 시린 것은

몸이 아닌 마음.

그런 겨울의 어느 날,

강송림에 가본다.


나무의 잔가지들은

수북 쌓인 눈에 힘들어 떨다가

마침내 우지직 - 풀썩-

부러져 떨어진다.


그렇게 나무는 더 곧아진다.

자신을 무겁게 하는 잔가지 떨치고는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높아진다.


산다는 건

만만치 않아

폭우가 나를 몰아치고

눈들이 내 가지를 짓누를 때,


나도 그리하고 싶다.

큰 비를 이겨내고

나를 얽매는 잔가지들을 털어내고

오직 곧고 높고 푸르고 싶다.

붉은 정열과 푸른 희망의 금강소나무처럼

나도 그리하고 싶다.


그리하고 싶다고

그리하고 싶다고

되뇌이며

오늘도

강송림에 가본다.


한결같이 나를 맞아주는

부모같은 강송림에서

한결같이 싱그러운

생기(生氣) 가득한 강송림에서

고고한 초록빛향에 맘껏 취해본다.

 

 

 

 

금상

 


조령골에는 / 김용수

 

 

이른 아침 물빛 바람이

무지갯빛 햇살을 물고 마패봉을 넘을 즈음

곤줄박이 텃새는 예쁜 목소리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조령골 관문을 열었다.


속세의 짐 하나씩 어깨에 짊어진

문밖에서 기다린듯한 사람들이

저마다 물살에 밀려 와서는

산 속으로 노도처럼 빨려 들어간다.


석양빛 보다 더 고운

아름드리 붉은 결 고운 노송이

푸른 하늘을 열면 물빛 바람은

물고 온 고운 햇살을 바다색 보다

더 푸른 드높은 솔위에 떨어뜨렸다.


조령골 골짜기에 부챗살 무늬로 엷은 햇살이 펼쳐지면

소원성취 돌탑에는 온갖 꿈이 가득 하였고

아주 오랜 옛날 용이 하늘로 올라간 팔왕폭포 계곡에는

수천년의 전설이 살아나 넓은 하늘을 하나 더 담았다.

병풍처럼 펼쳐진 천길 기암절벽위에 사람들이 있었고

그 아래 숲속 청운의 오솔길에도 있었다.

산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있었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머리를 쑥내민 물박달 나무도

종일 물속을 기웃거렸다.


늦은 오후 산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사람들이 나온다

무거운 욕심도 없어 보였고

고달픈 고뇌도 없었다.

속세의 짐을 훌훌 털어 버리고

마술같이 밀려나왔다.

 

 

 

 

은상


 

소나무의 눈물 / 박재현


당신은 소나무의 눈물을 본 적이 있습니까?

화마(火魔)에 휩싸인 생사의 기로에서

자작자작 타 들어가는 소나무의 몸에서 흐르는

저항의 눈물

주검의 눈물

생존의 눈물

그 소나무의 눈물을 보셨습니까?

그 옛날 일제(日帝)가 그어놓은 상처의 아픔처럼

소리 없이 흘리는 눈물

당신은 그 소나무의 눈물을 보셨습니까?

아비규환(阿鼻叫喚), 소나무들의 외침을 들었습니까?

눈물이 마르고 바싹 타들어가 더 이상의

눈물도 흘리지 못하던 그 지옥의 현장

저는 보았습니다.

두 눈 뜨고 차마 못 볼 그 처참한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참으로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소나무의 눈물을

다시는 소나무의 눈물을

보아선 안 되겠다는 것을

우리의 자손들에게

뼈저리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반만년 이어온 소나무의 역사를 끊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나무 민족이며 소나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화마(火魔)에 타는 소나무의 눈물에 제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당신은 애끓는 소나무의 눈물을 보았습니까?

미인송(美人松), 금강소나무의 눈물을 보았습니까?

다시는 보지 말아야할 검은 눈물을,

산불로 사라지는 소나무들의 절규를....


 

 

 

 

동상


 

노송 / 유혜진


굵은 허리가 위태롭게 휘어진 채

모진 바람에 맞서고 있다.

몸통의 힘겨움을 알고나 있는 걸까?

푸른 잎은 바람 앞에

그 끝을 들이대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했던가!

어느새 나타난 따사로운 햇살이

지친 몸통을 감싸주자

웅크렸던 몸을 펴고

굽은 허리를 들어본다.


아이고 햇살이네!

쫙 펴진 푸른 잎의 지친 입가엔

미소가 감돌고

어느새 만들어낸 영양분을

몸통으로

뿌리로

보내느라 분주하다.


고마워!

지치고 피곤했던 허리가 인사를 한다.

꿀맛이야!

정말?

피곤한 입가엔 행복의 웃음이 번진다.


오늘도 늙은 노송(老松)은

바닷가 한 귀퉁이에 당당하게 서있다.


 

 

 

동상


 

안면도 솔숲 / 임지희


솔숲은 일어선다.

가지를 세차게 꺾는 태풍을

원망도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키를 세울 줄 안다.


솔숲은 현명하다.

고집을 세울 땐 강철보다 빳빳하게

햇살과 바람을 탈 땐 양떼구름 보다 보드랍게


독한 막걸리가 뿌리를 적셔도

취하지 않는 선비의 기품과

묵은 잎이 채 지기 전에 솔잎을 싹틔우는

지혜도 갖췄다.


거죽을 치장하기 보다는

옹골차게 나이테를 늘리고

때가 되면 도편수의 손끝에서

하늘을 받치는 대들보로 탄생하는,


화백의 붓끝에서

묵향으로 부활하는

아아, 반만년을 이어 온 겨레의 곧은 기개여!


오늘도 나는

철새처럼 지친 날개를 접고

안면도 솔숲에 착륙한다.


솔바람 소리로 귀를 씻고

폐 속 가득 송진 내음을 채운다.

바다보다 깊고 검푸른 사랑을 갈무리하고 나면

어느새 내 몸은

한 그루 강직한 곰솔이 되고!


밤하늘에 별이 뜨면

융단 같은 꿈을 깁는

어부가 되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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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산행 / 최찬상

-설악을 넘으며


해돋이를 보기 위해 대청봉에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험한 산길을 따라 봉우리로 올라가고

10월 단풍은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소청봉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길 사이

눈잣나무들이 이파리를 고드름 속에 화석처럼 박고 동면에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룻밤 사이 공중에서 두 계절을 건너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음 능선을 밟고 가는 느낌은 차고도 맑았습니다

마지막 숨결의 동아줄을 당기며 대청봉에 올라 섰습니다

파란 새벽 하늘이 이마에 시리게 부딪쳐 왔습니다

나의 발 아래론 가을의 천장을 뚫고 산이 우뚝 솟아 있었고

산의 발치에는 푸른 동해의 파도가 밀려와 부딪칩니다

붉은 여명 속에서, 잠시 나는, 묵념하듯

나에게 봉우리를 허락해 준 산과

산의 조화를 꾸며 온 대자연의 신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드디어 동해를 하나의 부챗살로 펼치며 해가 떠올랐습니다

나의 턱 밑을 조명하는 햇살은 더욱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태양은, 자기를 태우지 않고는 등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스스로를 태워 없애면서 세상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사랑이

온 누리에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순간 태양의 눈동자 속에 서 있었습니다

차갑고 어두운 곳을 따뜻하게 조명하고자

내 눈동자에도 불을 그었습니다

이렇게 어둠을 뚫고 봉우리로 짊어지고 온 나를 부리고

새로운 나를 짊어지고 황금 빛 정상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다시 단풍잎들이 불타는 가을로 돌아왔습니다

등 뒤로는 여전히 밤과 낮을 이어가며 내가 넘어온 길이 아득히 솟아 있습니다

이제

앞 길 저 멀리 아스라이 솟아있는 생의 봉우리를 향해

출발할 채비가 되었습니다

 

 

 

 

금상


 

산에서 몽땅 털렸다 / 이영옥


등산복에는 

주머니가 여러 개 달려있다

일주일분의 고민과

일주일분의 집착과

평소 털어내지 못한 절망의 부스러기들이

조금씩 쌓여 주머니가 불룩해질 때쯤

나는 주저 없이 산으로 간다

비 그친 산에는 세탁된 햇살 조각들이

퍼즐처럼 널려있고

투명한 새소리는 물방울을 뚫고 날아들었다

은사시나무 잎사귀를 뒤집던 바람과

세상의 한 귀퉁이를 잡아보려는

저 가느다란 덩굴손에

나는 어느새 주전부리 모두 털려버렸다

바위 위에 좌판 차린

등 굽은 노파가 말아주는 국수처럼

붉은 노을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

무거운 시간들을 벗어버린

등산객의 뒷모습이 보인다

빈 것이 아름다워지는 저녁

나는 주머니가 몽땅 털려 행복하다

모든 것을 받아준 산은

어둠만 꿀꺽 꿀꺽 삼키고

계곡물은 콸콸콸 소리를 높여

참았던 속내를 허옇게 게워내고 있다

 

 

 

 

은상

 

 

방태산 자연휴양림에서 / 이향순


나는 지금 별천지로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여우별 풀밭에 총총 나들이 나온 듯

살짝 눈맞춤하며 발목 잡는

쥐똥나무아래 흐드러진 애별꽃 방긋 나를 반깁니다.

그 별꽃 빛에 눈이 부십니다.

온몸을 휘감는 덩굴진 사위질빵에게도

잔뿌리를 뻗고 발길질 해대는 애별꽃에게도

어린 새들의 비상에 빈 가지를 내어주어도

쥐똥나무는 불평하는 법이 없습니다.

눈뜨기 위해 찬 땅에 몸 비비는 벌레마저

삶의 치열함 속에서 보듬고 아우를 뿐

쥐똥나무는 결코 채근하는 법이 없습니다.


밤골 계곡을 따라 박달나무 푸른빛 우거진

꺽지가 산다는 마당소에 이르면

잎보다 먼저 숨결 불어넣어

도깨비방망이 같이 생긴 꽃밥을 인

앉은부채처럼 덩그라니 통나무 집 한 채

터를 잡고 있습니다.

쑤아아 청아한 물소리가

나무들 사이를 지나 하늘로 놓여납니다.

시간에 떠밀리고 공간 속에 갇힌

연연한 내 삶을 끝내 놓아버립니다.

하룻밤 새 여린 영혼 여기서 몸풀고

아침이면 아스라한 안개처럼 가벼워져

가만, 귀기울이면 꽃눈 트는 소리에 온 산이 진동합니다.


 

 

 

동상


 

너도 알겠구나 / 김희동


백련암 내려오는 길

속이 빈 나무 한 그루

길옆에 서 있다.


아이가 조르륵 달려가

나무의 가슴 안으로 들어서며

사진을 찍어 달란다.


“예쁘게 찍어 주세요.”

하고 말하며

미소 짓는 일도 잊지 않는다.

오래 전에는

제 엄마가 바로 나무였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르는 아이.


그러나 아이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 때는 물론 저도

또 다른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서.


 

 

 

동상

 


산에 한번 올라가세 / 황승철


여보게 친구

우리 산에 한번 올라가세

삶에 지쳐 피곤하고 힘들 때

그 신선한 산소를 마음껏 마셔보세

어느 새 닫혔던 입이 절로 열려

어릴 적 외쳤던 “야-호”가

순박함을 간직한 채

희망과 용기로 분출될 걸세


여보게 친구

망태와 지게지고 수없이 올라 다녔던

그 산에 한번 올라가세

우리가 성장해서 변했을지라도

언제나 변함없이 반겨주었던 어머니의 품일세

그 어떤 소리도 그 누구의 외침도

편애하지 않고 귀담아 들어주던

정겨운 메아리가 귓가에서 사라지기 전에…


여보게 친구

새벽마다 피어오르는

연무빛 안개가 그립지 않는가

부드러운 솜이불로 거대한 안개바다를 만들고

알아주는 이 없어도 암벽 틈새에 힘겨운 뿌리를 내리고

거센 바람과 사연 많은 세월을 이겨낸 노송을 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삶의 지혜를 배우세

아직도 남과 북의 소나무는 여전히 푸른색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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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청옥산에서 / 임종훈


그 산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힘들어

사람도 차도 늦재 발치께에 이르면

숨이 턱까지 차올라 저 높은 고개

어찌 넘을까 아득해지는데 힘든 만큼

그 산에 들기만 하면 공으로

저잣거리에서의 오래되어 묵은 숨들을

날것 그대로의 싱싱한 숨들로 바꾸어

감히 불사(不死)를 꿈꾸지는 못하더라도

마치 한 목숨 새로 얻은 듯할 터이니

기꺼이 넘지 않고 어쩌겠는가?


산에 들면 산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법.

불길로 타오르다 스러져 그 안에 재로

두텁게 쌓여 있을 세간에서의 시시(是是)

비비(非非) 따위는 남김없이 털어 내고

대신 텅 빈 그곳에다 그늘조차도 훤한

산의 깊은 속내 한움큼 심어볼 일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의 오랜 사색(思索)이

은은한 향(香)으로 떠도는 원시(原始)의 숲에서

고요히 눈감고 앉아 깊은 숨 들이쉰다.

가슴속에서 쉴새없이 와글대던 말들이

일시에 차분해지며 내 안에도

침묵의 산 하나 만들어진다.

다시 말로써 말많은,

수다스러운 세간(世間)으로 내려가도

들리는 말들에 연연해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쉬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청옥산에서는,

무심한 바람이 나무의 겨드랑이를

스치고 지나는 파도소리나

골 따라 흐르는 물소리, 심지어

꽃이나 잎들이 피고 지는 소리조차

오랜 묵언(默言)의 수행(修行) 끝에

비로소 입을 연, 산의 한 소식만 같아

모름지기 귀를 세우게 된다.


늦재:현동과 태백을 잇는 고개의 이름


 

 

 

 

금상


 

나는 산을 보았다 / 최영미


바라만 보았을 때는 알지 못했다

하늘은 점점 낮아지고

구름은 유유히 발 아래로 흐르며

바람은 어디에도 부딪침 없이 나에게로 온다는 것을,


바라만 보았을 때는 알지 못했다

이름모를 야생화 한 송이에도 동공이 열리고

가슴이 어느새 나무를 향해 서면

몸은 말없이 가벼워져 잠시 세상을 잊기도 한다는 것을,


바라만 보았을 때는 알지 못했다

나와 가까이 걷고 있는 사람과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과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향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바라만 보았을 때는 알지 못했다

먼 산은 멀리에 있을 뿐

봉우리에 오르지 않고는

산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산을 보았다고 말하며 살고 싶다.


 

 

 

 

은상

 


 

미루나무 / 이근창


몸 가득 이파리들 짊어지고 강가에 사는 미루나무

문득 살찐 젖가슴에 푹 안기고 싶어진다

땀 뻘뻘 흘리며 서 있는 미루나무는 잠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긴 목을 빼어

사방을 쉴새없이 두리번거리고 헤아릴 수없이

많은 손바닥들을 흔들어 반짝반짝 누구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지친 바람들 가슴에 안았다 떠나보내고

어스름에 찾아오는 집 없는 새들 재워 주고

진종일 울어대는 매미들 등때기에 업고

아무도 반기지 않는 흉물스런 벌레들 끌어안고

물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송사리들 그늘 드리워 덮어주고


아하, 알겠다 천수천안관음보살처럼

미루나무는 푸른 이파리마다 밝은 눈 열어

세상의 아픈 소리들을 읽는구나 그리하여

서러운 것들 모두 불러모으는 것이다




 

동상

 


광릉 숲에서 / 정애자


올망졸망한 복수초 제비꽃 진달래 얼레지 다투어 피는 광릉숲길로 접어드니

한 움큼 마신 숲의 공기 내 폐부로 흘러들어가 어디까지 물처럼 흘러들어 오는지

가도 가도 광릉 숲 끝나지 않고 습지원 푸른 이끼와 원추리를 지나서

수생식물원 창포와 수련의 잎을 만나고 관목원, 고산 식물원, 활엽수원 지나는 길에는

이리저리 뛰노는 다람쥐들 정겹다

이렇게 한가롭게 광릉숲길을 걸어가니 나는 한그루 나무.

걸어 다니는 나무, 내 흔들리는 팔에 나비 떼 와 앉고

내 걸어가는 다리에 풀잎이 와 매달린다.

아 광릉 숲 향기에 나는 잠시 섬백리향, 그대는 금강봄맞이꽃,

졸망졸망 따라오는 아이들은 눈이 부신 초롱꽃,

광릉 숲은 하루 쉬었다 가는 시골집 뒷마당처럼

가도 가도 아직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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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수목원에서 / 박재근


이른 아침, 빗살무늬 햇살이 온 수목원을 뛰어다니자

주부 크낙새는 강인한 삶을 부리로 담고

맛있는 아침 성찬을 위해 나무들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청설모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곡예하며

잠에서 깨지 못한 산새들을 흔들어 깨웠고

아직 어리광이 남아 있는 유치원 잎새는

제 손을 뒤로 한 채 햇살에 얼굴을 내맡겼다

할아버지 소나무는 삭정이를 떨구며

어느새 맨손체조를 끝내는 참이었고

어디선가 부산하게 스적거리는 소리에 보면

싸리비가 제몸을 비스듬히 뉘인 채 벌써

수목원 골목을 쓸고 있었다


수목원에는 예로부터 立秋에 관한 전설이 있었다

누이 단풍나무는 가을 초입부터 수줍음을 타게 된다는

내 기억은 선전포고 없는 계절을 때때로 놓치곤 하지만

할아버지 소나무는 四季에 대해 모든걸 꿰고 있었다

그 수줍음은 수목원에 찬바람이 안주하면서부터라고 했다

찬바람이 은근슬쩍 한 번씩 마실을 올 때마다

누이 단풍나무 얼굴이 한 번씩 붉어지고

그때마다 가을이 오고

연이어 주술에 걸린 듯 온 나무들이

누이 단풍나무의 수줍음을 닮아가기 시작하고

할아버지 소나무의 허허거림 속에

수줍음이 전염병처럼 퍼져


온 수목원은 그야말로 단풍천지가 된다 했다

그제서야 내 지난 기억이 선연하게 부화되었다

땅속으로부터 단풍을 긷던 뿌리가 잠시 일손을 놓는 낮

꾀꼬리 한 마리가 온 수목원에 입방아를 찧고 다녔다

사연인 즉, 참새는 둥지를 틀면서 떡갈나무를 짝사랑했고

떡갈나무는 맞은편 상수리나무를 사모했단다

그 사실을 알고 참새가 떠나겠다 엄포를 놓았지만

떡갈나무는 한 번 준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 했다

돌이킬 수 없어 참새는 수목원을 떠났고

이후로 수목원이 아닌 들판을 휩쓸고 다닌단다

삼각관계가 끝나던 날, 수목원의 모든 나무와 새들은

떡갈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사랑을 축하해 주었다


해질 무렵, 나는 공해로 잠식당한 폐를 안고

점점 더 깊숙이 수목원 안으로 접어들었다

산책길을 오르느라 내 호흡이 가빠지자

소나무가 내 입에 산소호흡기를 물렸다

이내 가빠지던 호흡이 되살아났고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니 모든 나무가 땅거미로부터 산소를

이수 받아 물관부에 차곡차곡 채우고 있었다

내 걸음걸음마다 나무들이 산소 한 사발씩을 건넸고

나는 산소를 감로수처럼 받아 마셨다, 마시면서

산소를 닮고 싶었다

닮고 싶어 산소에 대해 묻자

갈참나무의 대답 대신 수목원 여기저기서

쿵쿵 소리를 내며 빗장을 질러댔다

어둠의 넝쿨이 점점 발목부터 감아 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뒤돌아서 천천히 수목원을 빠져나갔다

내 발자국 뒤로 초록발돋움이 조용히 뒤따랐다


 

 

 

금상


배웅 / 박문수


산을 다 오르도록

산은 아무 말이 없었다.


능선에서 쉬는 동안

구름은 느릿느릿

큰 봉우리 하나를 건너고 있었다.


산을 다 내려오도록

산은 아무 말이 없었다.


숲을 벗어나자

바람에 쓸리는 듯


돌아보면 등 뒤로

작은 봉우리 몇몇이

우두커니 서고


두어 발치 곁에서

한참을 따라 나오는

개울물소리.



 

 


은상

 

 

봄 산 / 정태영


둥긋이 놓여있는 작은 봄 산에 오릅니다

아버지와 함께 걷는

산으로 이어진 시골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입니다


고개 들어 하늘 보면

얼굴에 와 닿는 깨끗한 공기,

따뜻한 바람은 코끝을 간질이고

눈부신 햇살이 볼에 가슴에

햇볕 냄새를 남깁니다

길을 열어주는

도토리나무, 오리나무, 떡갈나무는

가지마다 꽃보다 더 고운 새잎

피워냅니다


눈길이 마주치는

나뭇가지, 나뭇잎, 돌멩이, 풀꽃

하나하나 환하게 빛나고

고사리가 손 내밀면

고사리 끊어 나물 해먹던 이야기

진달래가 웃으면

진달래 꽃 따먹던 이야기

산과 함께 자란 아버지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저 구불구불한 하얀 길만큼

이어지겠지요


그 길을 걸어

둥그런 산의 등을 밟고 서 있는

아버지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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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老 산간수의 고백 / 박승수


박 군!

내가 처음 이곳에 들어설 때 산은

온통 붉은 속살을 드러낸 알몸이었다네

그 때는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생나무 껍질을 벗기고 풀뿌리를 캐야 했지

그런 시절에 나는 산림보호 서기보였고

산림보호담당 구역은 성수면1)이었네

나는 브리지스톤2)을 타고 다니며 주로

나무를 심고 산림보호 순산(巡山)을 했다네

그리고 틈틈이 이 동네 저 동네를 기웃거리며

청솔가지나 낙엽을 뒤지는 일도 많이 했지

그 때는 석양에 초가집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 색깔만 보고도

무엇을 아궁이에 몰아넣고 있는지 다 알았지

참 대단했네!

동네사람들이 나를 김 주사 님 김 주사 님 했으니까

그뿐인가 그 시절에 브리지스톤을 타고 다녔으니

어떻겠나? 

동네 처녀들한테 왕자였지! 왕자 그런데

불법임산연료 채취 단속은 군정(郡政) 추진에

이용되기도 했던 것 같애

아궁이 개량, 퇴비증산, 피살이, 신작로부역, 사방사업 등

군정실적이 좋지 않은 지역을 더 뒤졌으니깐 말야


왕자였던 나에게 첫 사랑은 쓴잔을 안겨주었다네

나의 첫 사랑! 그녀는 나에게

봄에는 제비꽃, 여름에는 쪽동백, 가을에는 석류알,

겨울에는 눈꽃처럼 눈부신 존재였었어

그런 그녀가!

어느 집 골방에서 청솔가지 한 다발 뒤져낸 것을 보고

독한 사람이라며 결별을 선언했네, 그리고 떠나 버렸지

사나이란 사랑 앞에 아무 것도 아니란 걸 그 때 알았네

황토바람이 이는 비탈길을 제 몸 돌보지 않고

마냥 헤집고 돌아다니며 밤낮없이 울먹였지

국토녹화!

그것은 보릿고개 시절에 우리가 맡은 고약한 역할이었지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숲은 저렇듯 짙푸른 것일까 ?

첫 사랑 그녀! 이제 그 시절

산간수의 고약한 역할을, 그 독한 마음을 이해할까 ?

다시 태어나 첫사랑을 황토바닥에 묻어야 할지라도

나는 산간수이기를 거부하지 않겠네

저 숲 자네가 지켜주게


1) 필자의 고향 전북 임실군 성수면

2) 우리 산림자원을 수탈해간 왜로부터 청구권자금으로 들여온 산림보호용 오토바이

 

 

 

 

최우수상

 

 

산행 / 이명식


문득 산에 가고 싶었다

언제나 눈에 들어와 있는 평범한 산이지만

오늘은 여느 날과 달리 그 산이 그리웠다

일요일이라고 맘 풀어놓고 늦잠 자고있는 아이들을

툭툭 건드려 곧은 나무로 일으켜 세웠다


이슬을 털며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까지는

여러 가지 기대로 가슴이 울렁였다

장승처럼 서있는 늙은 소나무에게

우리의 이름과 주소, 산을 다녀간 횟수, 산에 가는 목적을 말하고

화기엄금! 가지고 온 짐 검사를 마친 뒤

산짐승들이 다니던 길에 발자국을 포개며 산으로 들어갔다


활엽수가 엉켜 차일(遮日)이 쳐있는 사이를 비집고

영롱한 아침햇살이 들어온다

휘파람소리! 때맞추어 나무들은 숨구멍으로 일제히 산소를 내뿜는다

우리들의 입이 벌어진다. 노폐물과 산소가 교차하는 사이

나무마다 제 이름을 단 독특한 향기들이 입안으로 쭉 빨려 들어오고

그 맛을 가늠하기 위하여 옹달샘 물로 입가심한다

다람쥐, 산토끼, 고라니, 산 꿩이 짝짝 박수를 치며 우리들을 맞이하고

억새꽃, 구절초, 산국(山菊)에게 혼(魂)을 빼앗겨 세상일을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산은 한바탕 손님을 치른다 땀이 흥건하게 배이도록......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한마디씩 한다

"아! 좋다"

"산에 오기를 백 번, 천 번이나 잘했어"

우리 모두는 웃었다

그때 산도 웃음 못 참고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든다

 

 

 


 

우수상

 

 

광릉 숲 단상 / 박재현


따스한 봄날

광릉 숲엔 불그레 얼레지가 피고요

샛노란 복수초도 피고요

솔숲에선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 백로가

솜보다 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날고요

잣나무 꼭대기엔 쉿쉿 청설모가 날 보며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요

잣나무는 소나무는 바람 따라 휘청대며

몸을 부딪고 사랑을 나누지요

바람은 너무도 정겨운 중매쟁이랍니다

소나무도 짝을 지어 주고 전나무도 짝을 찾아 주고

숲에는 우리의 미래가 있어요

숲에는 우리의 희망이 있어요

크낙새가 돌아오면

광릉 숲엔 행복이 넘칠 거예요


 

 

장려상


메아리 / 오태봉


너를 향해 외친다.

산아!

그러면 너는

감미로운 사랑의 시로

내게 돌아온다.


너를 향해 외친다.

산아!

그러면 너는

그 여름 시원한 바람처럼

내게 돌아온다.


너를 향해 외친다.

산아!

그러면 너는

곱게 물든 가을단풍 그림처럼

내게 돌아온다.


너를 향해 외친다.

산아!

그러면 너는

유년시절 그 포근한 어머니 품처럼

내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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