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바다를 품은 산 / 문순희
뜨거운 햇살이 정수리로 내리꽂히는 여름 날
파도소리를 가지마다 걸고 바다를 품은 산에 올랐다
혈관처럼 뻗어있는 숲길을 걷다보면
솔잎향기, 새들의 날개 짓, 알싸한 바다 냄새가 모공을 파고든다
이럴 땐 반쯤 눈을 감고 바람결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산에 오르면 없던 힘도 절로 생겨나니
내게 산사람의 피라도 흐르는 걸까
구릉 같은 산자락은 서서히 키를 높여 산마루에 오르고
숲길은 옹이진 소나무와 갈참나무 깊어진다
길옆으로 잔잔히 흐르는 계곡물도 깊어지고
새소리가 나뭇가지를 흔들면 또 하나의 숲으로 살아 움직인다
바람결에 눈을 씻고 마음도 씻을 쯤
산은 허리춤에 숨겨 놓았던 바다를 꺼내 보인다
산과 바다의 경계에 선 나
눈앞에 극락을 두고도 오욕의 허방다리만 걸어온
내 가난한 삶이 파도에 씻기는 듯 했다
산은 잔잔함의 평화로움도 폭풍우의 성냄도 모두 감싸 안은 적멸보궁
까막딱따구리가 소나무 품에 안겨 무정설법(無情說法)을 읊조리고 있다
은상
소백산에서 / 김미숙
가을바람이 코끝에서 살랑대며
떠나라 떠나라 한다
들뜬 마음 구름위에 얹고
아이들과 소백산의 가을 속으로 떠난다
굽이굽이 죽령을 넘어 다다른 소백산
단풍은 민가로 내려오고 단풍든 사람들 산을 오른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권하는 산
눈으로 마시고 코로 음미하며 귀로 듣는 산은 달디달다
새끼다람쥐가 아이들을 환영한다며 꼬리를 치켜세우고
꽃 향유, 투구 꽃, 까실 쑥부쟁이가 보랏빛으로 웃고 있다
희방계곡에게 출입허가를 받고 다다른 깔딱재
인생의 첫 모험처럼 버티고 서 있어도 즐겁기만 한 아이들
‘그래 그렇게 겁없이 달려 들 줄도 알틴峠立?굴참나무가 한마디 한다
가쁜 숨 깔딱깔닥 몰아쉬며 오르는 돌계단
‘사는 일도 이와 같아 단계를 밟아야한다’고 신갈나무도 거든다
‘게 서시오, 서어나무 쉴 줄도 알아야한다’며 쉼표를 찍고 가라한다
고된 여정 끝에 도착한 연화봉, 그 품이 넓다
저 멀리 산 아래 펼쳐진 삶들이 꿈만 같은데
탁 트인 시야는 능선을 하나씩 끌어 올리고
화폭이 웅장한 수묵화가 펼쳐진다
그 큰 붓을 휘둘러 철마다 다른 그림 걸어놓고
초대하는 신에게 무한한 경이를 표 한다
건너야할 능선 하나를 넘은 듯 훌쩍 커버린 아이들
밤낮의 기온차가 클수록 단풍이 아름답듯
구불구불 험하게 올라와 성취감이 더 큰 정상임을 알기에
시련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가끔은 산에 올라 인생을 관조할 줄 아는
철학자의 눈을 가진 아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산을 내려 온다
동상
산을 닮은 아이 / 조정아
골매라는 아주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물세라는 단어를 모른 채, 산에서 흐르는 물로
먹고, 씻으며 커온 그런 아이지요.
여름 장마철에도 누런 흙탕물을
산삼이 베인 물이라며 훌쩍 마셔버리는 아이
산에는 나쁜 것도 나쁠 것도 없다며
산을 믿습니다.
골매라는 아주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다쳐서 아픈 새는 먹이를 구할 수 없다며
군데군데 쌀 한줌씩 놓아두는 아이
마음이 푸르디푸른 그 아이를 보니
산을 참 많이 닮았단 생각이 듭니다.
골매라는 아주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산을 곁에 두고 앞으로도 산과 살고 싶다며
지금은 푸른 숲을 가꾸기 위해
소중한 나무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
지금 쏟아낸 땀 줄기가 언젠가는
메마른 나무들에게 시원한 소나기가 돼주길 바란다며
산을 참 많이 위합니다.
산을 닮은 그 아이를 제가 사랑하고자 합니다.
산의 나무처럼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그런 넉넉한 존재
산을 믿고 산을 위하고 산을 닮은 그 아이
그 아이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메아리에게 마음의 편지를 전해봅니다.
동상
햇살나무 / 김신희
그 나무엔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 나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나무 신기하게도 말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땐 숲이 막 깨어나 아침을 준비 할 때입니다
그 때
아침 햇살이 조용히 다가와
그 나무에게 말을 건넵니다
무어라 계속 말을 건넵니다
그러면 그 이름없는 나무
햇살에게 무어라 조잘조잘
잘도 말을 합니다
너무 좋아서 까르르 웃기도 하고
손을 좌우로
전후로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땐 빛을 비추기도 합니다
그 나무는 그렇게 좋아라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나무
새로이 이름이 생겼습니다
숲을 지나던 다람쥐가 반갑게 인사하며
그 나무를 불렀습니다
햇살나무야 안녕?
오랫동안 다람쥐에게 쉼터도 놀이터도 되어준
그 나무가
햇살이 있어야만
조잘 거리며 까르르 웃는걸 보고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햇살나무야 안녕?
이젠 그 나무 햇살이 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늘도 그 나무
햇살과 놀며 까르르 웃어 댑니다
숲속 동물들과도 웃어 댑니다
온 산이 떠들석하게 까르르 웃어 댑니다
온 산이 행복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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