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강송림剛松林 / 고수정
지루한 무더위 끝자락
하염없이 쏟아지던 폭우에
마음 심란해하다가
마침내 태양이 고개 내민 날,
강송림(剛松林)에 가본다.
간밤의 폭우에 힘들었을텐데도
맑게 갠 오늘,
거짓말같은 싱그러움을 보여주는 나무들은
눈물겨운 힘이 된다.
수만가지 사념(思念)과 감정에
갈래갈래 마음을 어지럽히고
수만가지 걱정과 갈등에
답도없이 서서히 파묻혀가던,
그래서,
찬바람에 시린 것은
몸이 아닌 마음.
그런 겨울의 어느 날,
강송림에 가본다.
나무의 잔가지들은
수북 쌓인 눈에 힘들어 떨다가
마침내 우지직 - 풀썩-
부러져 떨어진다.
그렇게 나무는 더 곧아진다.
자신을 무겁게 하는 잔가지 떨치고는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높아진다.
산다는 건
만만치 않아
폭우가 나를 몰아치고
눈들이 내 가지를 짓누를 때,
나도 그리하고 싶다.
큰 비를 이겨내고
나를 얽매는 잔가지들을 털어내고
오직 곧고 높고 푸르고 싶다.
붉은 정열과 푸른 희망의 금강소나무처럼
나도 그리하고 싶다.
그리하고 싶다고
그리하고 싶다고
되뇌이며
오늘도
강송림에 가본다.
한결같이 나를 맞아주는
부모같은 강송림에서
한결같이 싱그러운
생기(生氣) 가득한 강송림에서
고고한 초록빛향에 맘껏 취해본다.
금상
조령골에는 / 김용수
이른 아침 물빛 바람이
무지갯빛 햇살을 물고 마패봉을 넘을 즈음
곤줄박이 텃새는 예쁜 목소리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조령골 관문을 열었다.
속세의 짐 하나씩 어깨에 짊어진
문밖에서 기다린듯한 사람들이
저마다 물살에 밀려 와서는
산 속으로 노도처럼 빨려 들어간다.
석양빛 보다 더 고운
아름드리 붉은 결 고운 노송이
푸른 하늘을 열면 물빛 바람은
물고 온 고운 햇살을 바다색 보다
더 푸른 드높은 솔위에 떨어뜨렸다.
조령골 골짜기에 부챗살 무늬로 엷은 햇살이 펼쳐지면
소원성취 돌탑에는 온갖 꿈이 가득 하였고
아주 오랜 옛날 용이 하늘로 올라간 팔왕폭포 계곡에는
수천년의 전설이 살아나 넓은 하늘을 하나 더 담았다.
병풍처럼 펼쳐진 천길 기암절벽위에 사람들이 있었고
그 아래 숲속 청운의 오솔길에도 있었다.
산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있었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머리를 쑥내민 물박달 나무도
종일 물속을 기웃거렸다.
늦은 오후 산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사람들이 나온다
무거운 욕심도 없어 보였고
고달픈 고뇌도 없었다.
속세의 짐을 훌훌 털어 버리고
마술같이 밀려나왔다.
은상
소나무의 눈물 / 박재현
당신은 소나무의 눈물을 본 적이 있습니까?
화마(火魔)에 휩싸인 생사의 기로에서
자작자작 타 들어가는 소나무의 몸에서 흐르는
저항의 눈물
주검의 눈물
생존의 눈물
그 소나무의 눈물을 보셨습니까?
그 옛날 일제(日帝)가 그어놓은 상처의 아픔처럼
소리 없이 흘리는 눈물
당신은 그 소나무의 눈물을 보셨습니까?
아비규환(阿鼻叫喚), 소나무들의 외침을 들었습니까?
눈물이 마르고 바싹 타들어가 더 이상의
눈물도 흘리지 못하던 그 지옥의 현장
저는 보았습니다.
두 눈 뜨고 차마 못 볼 그 처참한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참으로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소나무의 눈물을
다시는 소나무의 눈물을
보아선 안 되겠다는 것을
우리의 자손들에게
뼈저리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반만년 이어온 소나무의 역사를 끊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나무 민족이며 소나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화마(火魔)에 타는 소나무의 눈물에 제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당신은 애끓는 소나무의 눈물을 보았습니까?
미인송(美人松), 금강소나무의 눈물을 보았습니까?
다시는 보지 말아야할 검은 눈물을,
산불로 사라지는 소나무들의 절규를....
동상
노송 / 유혜진
굵은 허리가 위태롭게 휘어진 채
모진 바람에 맞서고 있다.
몸통의 힘겨움을 알고나 있는 걸까?
푸른 잎은 바람 앞에
그 끝을 들이대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했던가!
어느새 나타난 따사로운 햇살이
지친 몸통을 감싸주자
웅크렸던 몸을 펴고
굽은 허리를 들어본다.
아이고 햇살이네!
쫙 펴진 푸른 잎의 지친 입가엔
미소가 감돌고
어느새 만들어낸 영양분을
몸통으로
뿌리로
보내느라 분주하다.
고마워!
지치고 피곤했던 허리가 인사를 한다.
꿀맛이야!
정말?
피곤한 입가엔 행복의 웃음이 번진다.
오늘도 늙은 노송(老松)은
바닷가 한 귀퉁이에 당당하게 서있다.
동상
안면도 솔숲 / 임지희
솔숲은 일어선다.
가지를 세차게 꺾는 태풍을
원망도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키를 세울 줄 안다.
솔숲은 현명하다.
고집을 세울 땐 강철보다 빳빳하게
햇살과 바람을 탈 땐 양떼구름 보다 보드랍게
독한 막걸리가 뿌리를 적셔도
취하지 않는 선비의 기품과
묵은 잎이 채 지기 전에 솔잎을 싹틔우는
지혜도 갖췄다.
거죽을 치장하기 보다는
옹골차게 나이테를 늘리고
때가 되면 도편수의 손끝에서
하늘을 받치는 대들보로 탄생하는,
화백의 붓끝에서
묵향으로 부활하는
아아, 반만년을 이어 온 겨레의 곧은 기개여!
오늘도 나는
철새처럼 지친 날개를 접고
안면도 솔숲에 착륙한다.
솔바람 소리로 귀를 씻고
폐 속 가득 송진 내음을 채운다.
바다보다 깊고 검푸른 사랑을 갈무리하고 나면
어느새 내 몸은
한 그루 강직한 곰솔이 되고!
밤하늘에 별이 뜨면
융단 같은 꿈을 깁는
어부가 되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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