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상자 : 나희덕
2. 수상작품 : 「엘리베이터」외 4편
「엘리베이터」
더 들어가요. 같이 좀 탑시다.
병원 엘리베이터 타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육중한 몸집을 들이밀며 한 아주머니가 타고 나자
엘리베이터 안은 빽빽한 모판이 되어버렸다
11층, 9층, 7층, 5층……문이 열릴 때마다 조금씩 헐거워지는 모판.
갑자기 짝수층 엘리베이터에서 울음소리 들려온다
어젯밤 중환자실 앞에서 울던 그 가족들일까.
모판 위의 삶을 실은 홀수층 엘리베이터와
칠성판 위의 죽음을 실은 짝수층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야 만난다. 울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가족들과
짝수층 엘리베이터에 실린 죽음을
홀수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흰 헝겊으로 들씌워진 한 사람만이
텅 빈 엘리베이터 안에 남고, 문이 닫히고,
잠시 후 B1에 불이 들어온다, 그 사이에
홀수층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시 사람들이 채워진다
더 들어가요, 같이 좀 탑시다……아우성이 채워지고, 문이 닫히고,
빽빽해진 모판은 비워지기 위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1층, 3층, 5층, 7층, 9층, 11층……
삶과 죽음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병든 입으로 들어갈 밥과 국을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더 이상 밥과 국을 삼키지 못할 육체를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병든 손을 잡으려는 수많은 손들을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더 이상 병든 손조차 잡을 수 없는 손들을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nefing.com
3. 심사위원 : 정현종(시인, 연세대 교수), 김화영(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김선학(동국대 교수), 김명인(시인, 고려대 교수), 최동호(시인, 고려대 교수)
4. 심사평
「날아오르는 나비와 내려앉는 나비」
장석남, 나희덕 두 시인을 두고 어느 쪽을 수상자로 추천할까 망설였다.
장석남은 매력적인 시인이다. 어떤 분은 ‘타고난 시인’이라고도 말했다. 가령 <수묵 정원 9-번짐> 같은 시를 읽어 보면 그런 말이 수긍된다는 느낌이다. “번짐,/번져야 사랑이지//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오른다” 같은 곳을 읽고 있으면 그의 시적 역동성이 읽는 이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번져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덜어낸 무게 때문에 가뜬히 치켜 올라간 가지 사이의 시들한 이파리들의 팔랑임 사이에”(<살구를 따고>) 같은 치밀한 묘사 위에 덧없는 삶의 한 순간을 덜렁 올려 놓을 경우 또한 그렇다. 그러나 예심을 거쳐온 이 시인의 시편들이 이런 수준과 긴장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좀 아쉬웠다.
반면에 나희덕 시인의 시편들은 언제나 일정한 구조적 긴장과 특유의 어법을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다는 점이 미덕이다. 엘리베이터, 밥상, 젓가락, 맨밥, 현관문, 신발, 호미 같은 사소한 일상의 소도구들이나 거미줄, 기러기 떼, 월식, 새, 나비, 나무, 구름, 비 같은 가시적 대상이나 현상들로부터 존재와 무, 죽음 같은 근원적 문제로 태연하게 건너뛰어 직행하는 그 속도와 고즈넉해서 더욱 섬뜩해지는 시선이 여운과 우울한 감동을 길게 남긴다. 대체로 그의 시는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 슬픔 속에는 일정한 균형을 잡아 주는 무게 중심 같은 것이나 삶의 전모를 흐릿하게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 또한 내장되어 있어서 그 슬픔을 조용하게 견디며 통과하는 암시 구실을 한다. 가령 “한 발은 나비를 신고/한 발은 땅에 디딘 채/절뚝절뚝 봄길을 날아 걸어왔으니//나비야, 나비야,/이 검은 땅 위에 다시 내려와 앉아라/내가 너를 신겠다”의 어두운 초현실주의가 그렇다. 나는 결국 이 “내려앉는” 나비 쪽의 손을 들기로 한다. 나희덕 시인의 “캄캄한 씨방 속에 갇힌 꿈들”이 더욱 단단해지기를 바란다.(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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