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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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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황재우. 전통시와는 전혀 다른 형식과 내용의 시로 유명한 시인이다.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당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으로 옮겨 1985년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문학계간지 〈외국문학〉과 〈세계의 문학〉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1994년부터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재직했다. 2002년 월드컵 문화행사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05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의 책 100' 선정위원회 위원장 및 주빈국 조직위원회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에 취임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4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09년 사퇴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연혁(沿革)〉 입선, 〈문학과 지성〉에 수필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작활동뿐만 아니라 극작 및 미술평론에서도 능력을 보였다.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대와 분리될 수 없는 그의 시에는 정치성, 종교성, 일상성이 시적 파괴의 형태로 융화되어 있으며 시인은 시적 화자의 자기부정을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저서로는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4), 〈나는 너다〉(1987), 〈게눈 속의 연꽃〉(199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백석문학상 수상작인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가 있으며 역서로는 〈예술사의 철학〉, 〈큐비즘〉 등이 있다. 창작희곡으로 〈101번지의 3만일〉, 〈오월의 신부〉, 〈물질적 남자〉가 있다. 김수영문학상, 백석문학상 외에도 현대문학상(1991), 소월시문학상(1993), 대산문학상(1999) 등을 수상하였고 2006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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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러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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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직 따뜻하다 / 이상국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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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에 가면 설악산과 이상국을 만난다. 이상국은 어쩌면 그리도 의연한 대청봉 같은지. 고향 떠나 서울 객지에서 사는 나 같은 소설가가 그를 보면, 언제나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서구 사조에 의존하고 있을 때, 그는 양양의 논밭 고랑에서 한국인의 정신을 다지고 키우고 지켜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국은, 나를 늘 부끄럽게 한다. - 이경자 (소설가)

 

이상국의 禪林院址에 가서는 전통적인 한시풍의 격조와 여유로움을 유감없이 발산하는 작품으로서, 이번 시집의 가장 빛나는 시편의 하나로 손꼽을 만하다.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비유의 능숙한 구사에 힘입어 밀도 높은 풍경이 재현되고 그런만큼 시의 육체성이 자연 도드라진다. 나는 당당한 산세의 위풍을 지닌 시를 참 오랜만에 만나 충만감에 빠져들었다.- 임규찬 (문학평론가)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것이다 / 황지우

 

 

초경을 막 지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 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인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 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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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시집을 위해 8년을 다듬어 온 황지우의 지독한 장인정신... 황지우의 장인적 태도야말로 90년대 이후의 '날림'의 글쓰기 속에서 문학을 살아남게 하는 마지막 힘이 될 것이다.- 이인성 (소설가)

 

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이 지난 319일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위와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2억 원의 기금으로 199710월에 제정되었습니다. 최근 2년내에 출간된 뛰어난 시집에 주어지는 백석문학상이 우리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문학의 탄생을 촉진하는 중요한 제도로 자리잡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백석문학상이 갖는 이런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심사위원회도 문단의 비중 있는 시인, 평론가들로 구성하여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를 기하였습니다.

 

심사위원회는 최종심에 올라온 이상국(李相國), 황지우(黃芝雨) 시집을 놓고 신중히 논의하던 끝에 두 시집 모두 80년대와 90년대의 양편향을 넘어서 시의 본래의 모습에 충실 하려는 진정한 문학적 고투가 담겨 있을뿐더러 시인이 선 자리는 각기 다르지만 더욱 깊은 사유로 안과 밖을 아우르는 시적 변용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근래 보기 드문 뛰어난 시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판단되어 공동수상으로 하는 데 흔쾌히 합의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제1회 공동수상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 첫 회인 이번은 공동수상 관계로 이상국, 황지우 시인에게 각각 500만원씩 지급됩니다. 시상은 1999423()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할 예정입니다.

 

- 심사위원: 백낙청(문학평론가), 신경림(시인), 정현종(시인), 최원식(문학평론가), 황현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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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에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언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뼈아픈 후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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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8회 소월시문학상에 시인 황지우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뼈아픈 후회> 10편이다.

 

황지우 시인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문학과지성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 및 등단한 이후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나는 너다(1987) 등을 출간했다. 또한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 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하였다.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불빛 속에서 우리는 이 모순된 축복의 별, 지상에서 흔들리는 등불이 곧 하늘의 별이 되는 불빛 하나를 찾았다. 황지우라는 이름의 언어가 그것이다. 황지우에게 제8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8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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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션으로 정평이 나 있는 황지우 시인에게 걸맞는 영예다. - 구상

 

민중시의 정치 참여적 요소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이어령

 

황지우 시인은 물론 강은교 · 장석주 · 최승호 씨 등의 작품도 우리 시문학을 대표하는 것이다. - 김남조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실험 의식이 돋보인다. - 김용직

 

제도화된 사회 혹은 물화된 사회에 대한 공격의 미학을 담고 있다 - 오세영

 

- 심사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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