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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그물 / 정호승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다만 가을밤에 보름달 뜨면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기러기들만

하나 둘 떼지어 빠져나갑니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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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지용제를 기해 선정하는 정지용 문학상 수상 시인과 수상작이 결정됐다.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정호승 시인으로 그의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 수록되어 있는 `하늘의 그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88년 옥천이 고향인 정지용 시인의 월북작가 해금을 맞아 지용회에서 제정하고 시와시학사에서 주관하고 있는 지용문학상은 올해로 12번째를 맞고 있으며 작년 수상작으로는 송수권 시인의 `눈 내리는 대숲 가에서'가 선정된 바 있다. 고은, 오세영, 김재홍 시인은 심사평에서 "세상 만물은 모두가 하늘이 정한 율법의 그물 또는 지상적인 삶의 척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가없는 연민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만이 그 모든 한계와 구속을 벗어날 수 있는 원천이자 힘임을 이 작품은 은유와 상징을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정호승 시인은 1950년 대구생으로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첫 시집인 `슬픔이 기쁨에게' 간행 후, `서울의 예수'(1982),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88)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으며, 1989년 제3회 소월시문학상과 1997년 제10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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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가는 길 / 유안진

 

 

서리 덮힌 기러기 죽지로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

 

오십령 고개부터는

추사체로 뻗힌 길이다

 

천명(天命)이 일러주는 세한행 그 길이다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 녹여 가시란다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 흘려서

자욱자욱 붉게 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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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지용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올해 열 번 째로 시행된 정지용문학상에 유안진57씨가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정지용문학상을 선정하고 있는 시와시학사에서는 올해 정지용 문학상 수상자로 지단 3월 유안진 씨의 세한도 가는 길이란 시를 선정했다

 

유안진 씨의 세한도 가는 길은 잃어가고 있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독특한 미의식으로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유안진 씨는 지난 1965년 현대문학에 데뷔한 후 현재 서울대 교수로 재임하고 있는 중견작가이다

 

시집으로 '달하', '전망시편', '누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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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白頭山) 천지(天池) / 오탁번

 

 

1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가까워 장백소나무 종비나무 자작나무 우거진 원시림 헤치고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순례의 한나절에 내 발길 내딛을 자리는 아예 없다 사스레나무도 바람에 넘어져 흰살결이 시리고 자잘한 산꽃들이 하늘 가까이 기어가다 가까스로 뿌리내린다 속손톱만한 하양 물매화 나비날개인 듯 바람결에 날아가는 노랑 애기금매화 새색시의 연지빛 곤지처럼 수줍게 피어있는 두메자운이 나의 눈망울 따라 야린 볼 붉히며 눈썹 날린다 무리를 지어 하늘 위로 고사리 손길 흔드는 산미나리아재비 구름국화 산매발톱도 이제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백두산 산마루를 나 홀로 이마에 받들면서 드센 바람 속으로 죄지은 듯 숨죽이며 발걸음 옮긴다

 

2

솟구쳐오른 백두산 멧부리들이 온뉘 동안 감싸안은 드넓은 천지가 눈앞에 나타나는 눈깜박할 사이 그 자리에서 나는 그냥 숨이 막힌다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백두산 그리메가 하늘보다 더 푸른 천지에 넉넉한 깃을 드리우고 메꿎은 우레소리 지나간 여름 한 나절 아득한 옛 하늘이 내려와 머문 천지 앞에서 내 작은 몸뚱이는 한꺼번에 자취도 없다 내 어린 볼기에 푸른 손자국 남게 첫울음 울게 한 어머니의 어머니 쑥냄새 마늘냄새 삼베적삼 서늘한 손길로 손님이 든 내 뜨거운 이마 짚어주던 할머니의 할머니가 백두산 천지 앞에 무릎 꿇은 나를 하늘눈 뜨고 바라본다 백두산 멧부리가 누리의 첫새벽 할아버지의 흰 나룻처럼 어렵고 두렵다

 

3

하늘과 당 사이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천지가 그대로 하늘이 되고 구름결이 되어 백두산 산허리마다 까마득하게 푸른 하늘 구름바다 거느린다 화산암 돌가루가 하늘 아래로 자꾸만 부스러져 내리는 백두산 천지의 낭떠러지 위에서 나도 자잘한 꽃잎이 되어 아스라한 하늘 속으로 흩어져 날아간다 아기집에서 갓 태어난 아기처럼 혼자 울지도 젖을 빨지도 못한다 온 가람 즈믄 뫼 비롯하는 백두산 그 하늘에 올라 마침내 바로 서지 못하고 젖배 곯아 젖니도 제때 나지 못할 내 운명이 새삼 두려워 백두산 흰 멧부리 우러르며 얼음빛 푸른 천지 앞에 숨결도 잊은 채 무릎 꿇는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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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출신 시인 오탁번 씨가 지용회가 제정하고 계간 '시와 문화'사에서 주관하는 제9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지난 88년 정지용 시인이 해금된 후 정지용 시인의 높은 문학적 성과와 문학사적 위치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 상은 지난 한 해 동안 뛰어난 작품 한 편을 선정해 수상하는 것이다.

 

오탁번 시인은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로 당선되고 뒤이어 동아일보, 대한일보 신춘문예에도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오탁번 시인은 시작을 통해 서정성과 주지적 감각을 아름답고 탄력 있게 결합함으로써 서정시의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이번 수상작 백두산 천지는 정지용 시인의 시 '백록담'과 짝을 이룰 만큼 서정성과 깊이가 돋보인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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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 1 / 이시영

- 백야

 

 

키가 훌러덩 크고 웃을 때면 양볼에 깊이 보조개가 패이는

작은집 형수가 나는 좋았다

시집온 지 며칠도 안 돼 웃냇가 밭에 나왔다가

하교길 수박서리하다 붙들린 우리 패거리 중에서 나를 찾아내

"데름, 그러믄 안 되는 것이라우" 할 때에도

수줍은 듯 불 밝힌 두 볼에 피어나던 보조개꽃 무늬

, 웃냇가 웃냇가

방아다리 지나 쑥대풀 우거지고 미루나무숲 바람에 춤추는 곳

사래 긴 밭에 수많은 형수들이 엎드려

하루종일 밭고랑 너머로 남쪽 나라 십자성 부르는 곳

저녁에 소몰이꾼 우리들이 멱감는 냇가로 호미 씻으러 내려와서는

"데름 너무 짚은 곳에는 들어가지 마씨요 이" 할 적에도

왈칵 풍기는 형수의 땀 냄새가 나는 좋았다

홀시아버지 밑 형제 많은 집으로 시집와 남정네마저 전쟁터에 보내놓고

새벽논에 물대기 식전밭에 고추따기 아침볕에 보리널기

쏘내기 밭에서 소고삐 몰아 쥐고 송아지 찾기로 여름 내내

등적삼에 벼이슬 걷힐 날 없으면서도

저녁이면 선선한 모깃불을 피워 놓고 콩국수 말아

와상 가득 흥겨운 집안 잔치를 벌일 줄도 알았던 형수,

모깃불 매캐하게 사위어가고 하나 둘 어린 형제들 잠들어갈

무렵이면

내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데름, 데름은 꼭 우리 집안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쓰우."

"훌륭한 사람이 워떤 사람인디라우?"

"장군 같은 것, 그 뭣이라더라 밥풀 여럿 단 쏘위 같은 것...."

그러면 마당 한구석에서 다가온 어둠이 빤한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이 쏟아질 것만 같은 내 눈에

갑자기 별빛 한 무더기가 쏟아져내렸다

환한 밤이었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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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문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8회 정지용문학상에 시인 이시영48씨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정지용문학상은 기존 문단에서 뛰어난 활동을 보이는 문인에게 수여해오고 있는데 이시영 씨는 올해 2월 발표된 마음의 고향 6'이라는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작인 마음의 고향 6'은 산업화의 후유증 때문에 잃어버린 고향을 다룬 작품으로 시적 형상성과 서정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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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노래 / 이성선

 

 

큰 산이 큰 영혼을 기른다

우주 속에

대봉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설악산 나무

나는 밤마다 별 속에 떠 있다

산정을 바라보며

몸이 바위처럼 부드럽게 열리어

동서로 구름 가지가

바람을 실었다. 굽이굽이 긴 능선

울음을 실었다

해지는 산 깊은 시간을 어깨에 싣고

춤 없는 춤을 추느니

말없이 말을 하느니

, 설악산 나무

나는 너를 본일이 없다

전신이 거문고로 통곡하는

너의 번뇌를 들을 바 없다.

밤에 길을 떠나 우주 어느 분을 만나고 돌아오는지 본 일이 없다

그러나 파문도 없는 밤의 허공에 홀로

절정을 노래하는

너를 보았다

다 타고 스러진 뱃빛 하늘을 딛고

거인처럼 서서 우는 너를 보았다

너는 내 안에 있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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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정지용 문학상에 큰 노래의 이성선(53) 시인이 수상하게 되었다. 정지용 문학상은 지용회에서 매년 1명의 시인을 선정, 시상하고 있는데 시상식은 오는 13일 오후 6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연회장에서 있게 된다.

 

이번 제6회 정지용문학상을 선정하기 위하여 박두진 시인등 5명의 시인, 평론가 등이 심사를 맡았다. 강원도 고성 출신인 이성선 시인은 67년 고려대 농학과를 졸업, 70'문화비평'시인의 병풍,목련등의 시를 발표하고 이어 72'시문학'새벽, 합창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이 시인의 시세계는 자연과 합일된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세계를 꿈꾸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특히 이번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인 큰 노래에서는 고산준령 속의 한 그루 거목으로 살고자 함으로써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그이 시세계가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집으로 몸은 지상에 묶여도, 밧줄, 하늘문을 두드리며, 별이 비치는 풍경, 시인의 병풍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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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연가 /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박정만 시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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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의 무덤 / 김광균

 


꽃 하나 풀 하나 없는 荒凉한 모래밭에
墓木도 없는 무덤 하나
바람에 불리우고 있다.
가난한 漁夫의 무덤 너머
파도는 아득한 곳에서 몰려와
허무한 자태로 바위에 부서진다.

언젠가는 초라한 木船을 타고
바다 멀리 저어가던 어부의 모습을
바다는 때때로 생각나기에
저렇게 서러운 소리를 내고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것일까.

오랜 세월에 절반은 무너진 채
어부의 무덤은 雜草가 우거지고
솔밭에서 떠오르는 갈매기 두어 마리
그 위를 날고 있다.

갈매기는 생전에 바다를 달리던
어부의 所望을 대신하여
무덤가를 맴돌며 우짖고 있나 보다.

누구의 무덤인지 아무도 모르나
오랜 조상때부터 이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태어나
끝내는 한줌 흙이 되어 여기 누워 있다.

내 어느 날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고
이 黃土 무덤 위에 한잔 술을 뿌리니
해가 저물고 바다가 어두워 오면

밀려오고 또 떠나가는 파도를 따라
어부의 소망일랑
먼― 바다 깊이 잠들게 하라.

 

 

김광균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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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포인트

지난 여름 온갖 사람들로 시장바닥처럼 들끓던 바닷가엔 이제 파도 소리만 저혼자 우우우 소리치며 몰려왔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쓸쓸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파도와 거품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그 속성으로 인해서 일상사의 반복과 권태, 그리고 허무한 인생사를 표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인생사의 고단함이며 적막함이고 허망감이라고 할 것입니다. 한 어부가 초라한 목선을 타고 스스로의 삶을 노질하다가 끝내는 무덤 속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지요. 살아생전의 그 많던 꿈과 소망, 고뇌와 슬픔들은 이제 하나의 파도가 되고 거품이 되어 스러져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누구의 삶이라도 다 마찬가지겠지요. 어디 사람뿐이겠어요. 갈매기도 풀도 꽃도 다 그렇겠지요.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누구나 다 혼자 살다가 가는 것이고 한번 살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가는 것이지요. 죽음 앞에서는 높낮이가 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말씀입니다.

김광균 시인도 이제는 가고 없지만 이 가을 그의 시는 이제껏 남아 한 어부의 쓸쓸한 삶의 자취, 허물어져 가는 바닷가 무덤을 통해 우리네 허망한 인생사를 맑은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군요.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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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체 / 박두진

 

 

노래해다오. 다시는 부르지 않을 노래로 노래해다오.

단 한번만 부르고 싶은 노래로 노래해다오.

저 밤하늘 높디높은 별들보다 더 아득하게

햇덩어리 펄펄 끓는 햇덩어리보다 더 뜨겁게,

일어서고 주저앉고 뒤집히고 기어오르고

밀고 가고 밀고 오는 바다

파도보다도 더 설레게 노래해다오.

 

노래해다오. 꽃잎보다 바람결보다 빛살보다 더 가볍게,

이슬방울 눈물방울 수정알보다 더 맑디맑게 노래해다오.

너와 나의 넋과 넋, 살과 살의 하나됨보다 더 울렁거리게,

그렇게보다 더 황홀하게 노래해다오

환희 절정 오싹하게 노래해다오.

영원 영원의 모두, 끝과 시작의 모두, 절정 거기 절정의 절정을 노래해다오.

바닥의 바닥 심연의 심연을 노래해다오.

 

 

 

 

혜산 박두진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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