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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 이하석

 

 

비슬산의

숭엄과 신화의 바위가

검은 속 왈칵왈칵 쏟아내어

질펀한 서사를 이룬 것입니다.

 

그 물 대구시내 들어오는

가창 끝머리쯤에서

맑은 죽음들 품어 쓰다듬는 할머니가 떠먹고,

한바탕, 서러운 술을 깨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그 깨움을 들고서야 겨우,

어미 강이 되는 것입니다.

수달이든 왜가리든 고라니든 인간이든

선 것들 입에 젖 물린 채

마구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 죽은 이들의 자식들 여전히 여기서 자라기에

대구분지는 그렇게 문득 또, 환하게

젖는 것입니다.

한바탕, 새로 저항해야,

깨어나는 것입니다.

 

 

 

 

천둥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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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 시인이 천둥의 뿌리’(한티재, 2016)로 제14회 이육사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지난 29일 이육사 문학 축전이 펼쳐진 안동 이육사문학관에서 열렸다.

 

이육사 시문학상은 이육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숭고한 생애와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TBC2004년 제정했다. 상금은 2천만 원.

 

천둥의 뿌리는 대구 가창댐, 경산 코발트 광산 등 역사의 현장을 유족들과 수년 동안 찾은 시인이 “10월 항쟁을 핥고 되새김질하는 언어로 그려내길바라며 194610월항쟁과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죽음의 기억을 담은 시집이다.

 

심사를 맡은 문정희, 박태일, 송재학, 염무웅, 황현산 등은 죽음을 호명하면서 그들의 뼈와 혼백이 발소리를 내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없을 수 없다. 70세 시인의 필력은 섬세하고 예리하다고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이하석 시인은 가창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진 참혹한 처형의 기운에 휩싸였다. 그 죽음의 시를 쓰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졌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이하석 시인은 1948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1971현대시학으로 등단해 1980년 시집 투명한 속’, ‘김씨의 옆얼굴’,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 ‘연애 간()’ 등이 있다. 1987년 대구민족문학회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현재 예술마당솔 이사장, 대구문화예술회관 예술감독이다. 대구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도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광협문학상, 대구시문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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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낯선 사람들 / 이하석

 

 

그의 구두는 검다

구두 곁 아스팔트 위로 달리는 차의

푸른 차체의 표면에 일요일 오후의 거리가 비친다

그의 검은 구두는 거기에 잠깐 비친다

 

사람들의 얼굴들 아래 그의 구두는 검다

이 아래, 구두쪽에 시선을 두면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도 생각나지도 않는다

감정도 그렇다

 

계속해서 온갖 색깔의 차들은 구두를 지나가고

그의 검은 구두엔 차바퀴들이 비친다

 

그의 구두는 일요일 오후의 모든 것들이

최루탄으로 메케하게 젖어 있는 거리를 따라

고운 함성들 잦아진 시끄러움 속을

무심히 구두들 속을 검게

무관심하게 계속 걸어간다

 

 

 

 

 

우리 낯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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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이하석

 


2. 수상작품 : 「가야산」외 5편

 


「가야산」

계류와 더불어 칭얼대며 내가 숨긴 길. 동굴의 숲가엔
엘레지꽃들이 고개숙인 채 나의 그림자를 응시한다.

그 짧은 생애들의 외롭고 강렬한 눈길 따돌리며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조릿대숲이 앙칼지게 울며 열린다. 큰바람이 내 욕망을 뒤집느라 웅성거린다.

아직 집에 가고 싶지 않다.
바람의 칼날이 조각하다 부러뜨린 나무가지 끝에
간밤에 눈이 얼리고 간 내 꿈이 싹트고, 산정에서
뒤엉키는 내 마음의 사나운 구름.

 

 

 

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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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김종길(시인, 고려대 교수),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황동규(시인, 서울대 교수), 오세영(시인, 서울대 교수), 정현기(연세대 교수)

 


4. 심사평

 

이기철의 <아름답게 사는 길> 연작과 <地上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연작은 그가 계속 시에 따스함과 깊이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삿일이 아니다. 그전까지의 그의 시는 편한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고, 그 방향은 대체로 ‘돌아오지 않는 江’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살을 획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病들도 친숙해지면 우리의 외로움을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地上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같은 통찰력도 동반한 살이다. 아마도 나까지 포함해서 주로 이미지 중심의 시론을 갖고 있는 사람 다수의 심사위원 구성이 아니었다면 이 상이 그에게 갔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이에 이하석도 변모를 했다. 철저히 군살빼기 운동을 한 것이다. 말이 쉽지 느낌과 생각의 군살이 그리 쉽게 빠지는가. 가슴을 선뜩하게 하는 곳도 있었다. <가야산> 끝부분이 특히 그랬다. 다만 대부분 시의 제목이 되고 있는 地名들이 그냥 <山 1>, <山 2>, <山 3> 등으로 바꾸어도 좋을 만큼 개별적인 필연성을 덜 갖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번의 변모가 앞으로 그의 시에 뚜렷한 흔적을 남길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에, 일과성이 아닐 것 같기 때문에, 더욱 유의하기 바란다. 그리고 유모어, 혹은 마음의 여유 같은 데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그와 나 사이엔 이번 상이 두번 째 인연이다. 두 배로 축하한다.(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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