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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받습니다 / 박라연

 

 

蘭은 추위를 받아야 꽃망울이 맺히고 별은 영하 90도서

드디어 빛났죠

 

나는 病을 받아야 부지할 수 있는 목숨이어서 별, 받으며

얼어보려고

 

중국 고원 靑海성까지 왔는데 빗줄기 사이사이에 도란도란

제 속내를 떨구는

 

초원장막호텔 공안요원들의 정담을 대신 받네요 뼈처럼

단단해진 情에

 

말이 붙어 있어서 雨中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걸까요?

아무리 춥고 곤궁해도

 

그게 설움인 것도 모르고 눈동자들이 수십 소쿠리의 별을

구워낼 것 같아요

 

사는 이야기를 장작처럼 잘 말려 활활 타오르게 하는

그녀들의 담소가

 

내 안의 당신들을 뱉어내게 했죠 먼지와 탐욕, 부풀린 말

따위를

 

뱉어낸 자리에 초원 위에 뜨는 별을 담아갈 수 있을까요?

그늘도 그림자도

 

별이 될 것 같은 여기서 내 안의 당신들을 다 떠나보내고

싶죠 거대한 가스와 먼지가 살을 섞어 별을 낳는다면

그 별, 받을 수 있다면

 

 

 

 

노랑나비로 번지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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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천연 진주는 조개가 실수로 먹은 모래 혹은 이물질이

진주가 된 것이라지요?

인공 진주는 잠수부가 해저에서 조개를 일단 열어

일부러 일정량의 모래를 넣어버린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인 모래를 온 힘을 다해 밀어내려 하지만

조개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지요?

모래를 밀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할 때 나오는

분비물과 모래가 섞여져서 진주가 되는 점은

두 종류의 진주 모두 공통점일까요?

 

수상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저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습니다. 마치 오랜 세월 모래를 물고

살던 저의 입술이 열리려는 순간처럼.

 

시인이 된 후 저는 공교롭게도 이사를 열 번 이상을 했습니다.

두 해에 한 번 꼴로, 그것도 서울과 지방을 오갔습니다.

집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이삿짐을 쌌고

쌌던 짐도 가족이 원하면 다시 풀어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저런 사람이라면 쌀과 연탄만 안 떨어지면 된다, 였는데

쌀과 연탄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결혼 생활이 아니더군요.

 

실수로든 잠수부의 힘을 빌려서든 진주로 살아가기엔

너무 늦은 나이지만 시를 놓지 않으려면

저의 시 한 편 한 편이 진주의 태생처럼

혹독한 시련을 통해 저를 빠져나오게 할 것입니다.

 

저의 하느님은 저를 살려는 주시되 거의 죽어 살게 하시는 것

아닌가, 하고 화를 낸 적도 많았습니다.

 

무슨 이유로든 입 속에 모래를 물고 살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는 고백으로

이 글을 쓰는 순간에 흘러넘치는 눈물로

이 상을 받는 죄책감을 용서받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빛의 사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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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혜산 박두진문학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그 위상과 품을 높여가고 있다. 우리 시단 중견 시인들의 미학적 정점을 평가하고 승인하는 권위있는 장이 되어가고 있다. 특별히 이번 제5회 박두진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탄탄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중량감있는 중견 시인들을 만나보았다. 수준 높은 시적 진경을 경험한 셈이다. 예심위원의 손을 거쳐 본심에 올려진 중견 시인 다섯 분들은 이미 등단 20년을 모두 넘긴 터라, 각자의 미학적 완결성과 개성을 두루 갖춘 시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심사 과정에서는 미적 품격에서 그 어느 해보다 미더운 성취를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제출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여러 차례 집중적 윤독을 하여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였는데, 그 결과 최근 매우 활달하고 균질적인 성취를 보여주면서 서정적 아취와 단단한 미적 함량을 결속한 박라연 시인을 제5회 혜산 박두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다.

 

박라연 시인은 그동안 한없는 존재론적 슬픔과 타자를 향한 연민과 헌신의 시세계를 보여왔다. 그녀의 시편들은 시인의 내면에서 상상적으로 구성되고 추구되는 사랑의 힘에 의해 추구되어온 것이다. 이번 시편들에도 여전히 그녀만의 힘인 슬픔과 연민과 헌신의 힘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편들이 보여주는 남다른 개성은, 그 발원지가 좀 더 근원적이고 서정적인 차원으로 옮겨진 데 있다. 삶과 죽음, 성과 속, 상상과 실재의 단층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려가는 품을 견고하게 보여주면서 시인은 근원적이고 서정적인 미학을 완성해가고 있다.

 

수상작으로 뽑힌 「별, 받습니다」의 경우, 존재론적 슬픔과 초원 위에 뜨는 별의 심상이 아름답게 교차하면서, 그 별을 받고자 하는 열망과 수긍의 마음을 보여준 가편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재회」라는 작품이 보여준, 짤막하지만 관계론적 자각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표현을 보여준 사례 또한 단단한 성취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 생의 단순한 슬픔을 벗어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생의 여러 겹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도정에 들어선 시인은, 힘찬 자가 발전의 동력으로 사랑의 시학을 완성해갈 것이다. 거듭 수상을 축하하면서, 박라연 시인만의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유종호 김용직 이영섭 조남철 유성호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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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5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박라연(朴蓏娟, 문학박사,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출강) 시인이 선정되었다.

 

혜산 박두진 시인의 시세계를 기리는 취지로 안성시에서 주최하고 있는 이 상은, 그동안 제1회 신대철 시인, 제2회 천양희 시인, 제3회 최문자 시인, 제4회 최동호 시인을 선정하였고, 이번에도 공정하게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박라연 시인을 선정하게 되었다.

 

심사위원은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예술원 회원), 김용직(문학평론가, 학술원 회원), 이영섭(시인, 경원대 교수),조남철(한국방송통신대학 총장, 문학평론가,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선생님이 참여하였다.

 

박라연 시인은 그동안 한없는 존재론적 슬픔과 타자를 향한 연민과 헌신의 시세계를 보여왔다. 그녀의 시편들은 시인의 내면에서 상상적으로 구성되고 추구되는 사랑의 힘에 의해 추구되어온 것이다. 이번 시편들에도 여전히 그녀만의 힘인 슬픔과 연민과 헌신의 힘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편들이 보여주는 남다른 개성은, 그 발원지가 좀 더 근원적이고 서정적인 차원으로 옮겨진 데 있다. 삶과 죽음, 성과 속, 상상과 실재의 단층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려가는 품을 견고하게 보여주면서 시인은 근원적이고 서정적인 미학을 완성해가고 있다.

 

수상작으로 뽑힌 「별, 받습니다」의 경우, 존재론적 슬픔과 초원 위에 뜨는 별의 심상이 아름답게 교차하면서, 그 별을 받고자 하는 열망과 수긍의 마음을 보여준 가편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재회」라는 작품이 보여준, 짤막하지만 관계론적 자각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표현을 보여준 사례 또한 단단한 성취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 생의 단순한 슬픔을 벗어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생의 여러 겹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도정에 들어선 시인은, 힘찬 자가 발전의 동력으로 사랑의 시학을 완성해갈 것이다. 거듭 수상을 축하하면서, 박라연 시인만의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러한 시세계를 기려, 제5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박라연 시인을 결정하였다.

 

시상식은 10월 30일(토) 오후 3시 경기도 안성시 안성문예회관 공연장에서 제10회 혜산문학제 때 있으며 상금은 일천만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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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장 / 최동호

 

 

인기척에 놀라 단풍잎 흩날리는 가을

망월사 앞마당

구들장 뒤집어 불의 심장을 말리고 있었다

 

생솔가지 지피며 눈물 감추던 겨울

돌의 숨결에

침묵의 먹을 갈던 구들장 돌부처

 

홀연히 그가 밟고 간 먹구름 뒤의

천둥소리 환한

절 마당에 작파해버린 경판 조각들

 

지옥의 유황불 치달린 가을 말발굽

망월사 앞마당

구들장을 뒤집어 바람의 갈기를 다듬고 있었다

 

 

 

 

불꽃 비단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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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문학상을 주관하시는 선생님으로부터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 잠시 망연한 기분에 빠져 들었다. 얼마 전 땅 끝 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망연함이 되살아 나왔다. 맑은 바람과 푸른 바다 그리고 무량한 햇빛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해왔는가 돌아보았다. 손에 잡히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구체적인 것은 나에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 이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시를 공부하고 시를 써보겠다는 마음으로 조지훈 선생을 찾아 국문학과에 진학한 다음 시 쓰기보다는 책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긴 생애를 돌아 다시 처음 자리 거기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대학 시절 읽었던 예이츠의 <이니스프리 호도>의 여운을 잊지 못해 2005년 여름 예이츠의 고향을 찾아간 적이 있다. 적막한 석양 무렵의 맑고 고요한 호면을 바라보며 번잡한 도회 생활 중에도 유년시절의 이니스프리를 잊지 못하던 그를 생각하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시 쓰기에 전념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돌아왔었다. 그러나 시간은 덧없이 지나가고 내 손에는 번거로운 책들의 알 수 없는 문자만 이리저리 떠나지 않았다.

 

1966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엘리엇과 같은 비평적 지성과 그의 <황무지>와 같은 대작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적이 있다. 그로 인해 지난 40 여 년 동안 창작과 비평이라는 감성과 지성의 상충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대의 명제였다. 공부를 많이 하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옛 스승의 말씀에 따라 열심히 학문의 길을 걸어왔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여기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러나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더라도 느리게 멀리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조바심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해남 녹우당 앞에서 나는 수 백 년 묵은 우람한 은행나무의 장관을 보고 다시 땅 끝에서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길이 끝나자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한 비평가의 말을 다시 떠올리면서 느리지만 천천히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박두진 선생님은 나의 은사이신 조지훈선생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시인이셨다는 점에서 남다른 감회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박두진 선생님의 개결한 정신과 높은 품격의 시들은 나에게 언제나 존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 분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문학상을 받게 된다는 것은 너무 황송하고 외람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지하에 계신 지훈 선생께서 한 말씀 거들지 않고는 이런 인연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가야만 하고 갈 수밖에 없는 나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 이번 수상의 영광에 진심으로 보답하고 싶다. 심사에 임해 주신 문단의 선배 심사위원 선생님들 그리고 이 상을 운영하시는 관계자 여러 분들에게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제왕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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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이번 제4회 박두진 문학상 심사는, 예심을 통과한 여섯 분의 중견 시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지난 1년 동안 문예지에 발표한 시편들을 차분하게 읽어나가면서 진행되었다. 여섯 분 모두 우리 시단에서 남다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중견 시인들이어서, 시적 성취의 높고 낮음은 이미 차이를 두기 어려웠고, 각자 그 나름의 개성적 음역을 갖추고 있었다고 심사위원들은 판단하였다.

 

  오랜 토론 끝에 최동호 시인의 최근 시적 성취가 괄목할 만한 것이며, ‘박두진 문학상’이 가지는 여러 기율들을 충족하고 있다고 심사위원들은 합의를 이루었다. 곧 그의 시편들이, 혜산 시학이 가지고 있는 호방함을 갖추고 있고, 진중한 사유와 구체적 감각을 두루 결합하여 혜산 시학의 정신적 상승과 단단한 견인의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최동호 시인은, 서구의 근대 시학과는 대척점에 있는 이른바 정신주의의 맥락 혹은 동양 시학의 정수를 혼신을 다해 정초(定礎)해왔다. 그 실례로 심사위원들은 「구들장」이라는 작품을 눈여겨보았다. 이 시편은 비유컨대 불과 물과 바람과 꽃과 돌이 이루어내는 일종의 경전이다. 그 경전이 결국 구들장 돌부처의 성스러움에 가 닿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시인은 사물과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통찰을 깊이 있게 각인한 것이다. 그리고 「아일랜드 시편」 연작에서는, 아일랜드와 우리의 경험적 유대를 통해, 각별한 역사적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 모두가 최동호 근작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뚜렷한 사례라고 판단되었다.

 

완미한 미적 성취를 거둔 수상자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하면서, 더욱 정진하기를 마음 모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전 연세대 석좌교수, 예술원 회원) 김용직(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이영섭(시인, 경원대 교수) 조남철(문학평론가, 방송통신대 교수,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수원 남문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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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4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최동호(崔東鎬, 고려대학교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가 선정되었다.

 

혜산 박두진 시인의 시세계를 기리는 취지로 안성시에서 주최하고 있는 이 상은, 그동안 제1회 신대철 시인, 제2회 천양희 시인, 제3회 최문자 시인을 선정하였고, 이번에도 공정하게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최동호 시인을 선정하게 되었다.

 

심사위원은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예술원 회원), 김용직(문학평론가, 학술원 회원), 이영섭(시인, 경원대 교수), 조남철(방송통신대 교수,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선생님들이 참여하였다.

 

최동호 시인은, 서구의 근대 시학과는 대척점에 있는 이른바 정신주의의 맥락 혹은 동양 시학의 정수를 혼신을 다해 정초(定礎)해왔다. 그 실례로 심사위원들은 「구들장」이라는 작품을 눈여겨보았다. 이 시편은 비유컨대 불과 물과 바람과 꽃과 돌이 이루어내는 일종의 경전이다. 그 경전이 결국 구들장 돌부처의 성스러움에 가 닿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시인은 사물과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통찰을 깊이 있게 각인한 것이다. 그리고 「아일랜드 시편」 연작에서는, 아일랜드와 우리의 경험적 유대를 통해, 각별한 역사적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 모두가 최동호 근작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뚜렷한 사례라고 판단되었다.

 

이러한 시세계를 기려, 제4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최동호 시인을 결정하였다.

 

시상식은 10월 31일(토) 오후 3시 경기도 안성시 안성문예회관 공연장에서 제9회 혜산문학제 때 있으며 상금은 일천만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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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의 꽃구경 / 최문자

 

 

그해

그를 생으로 뽑아낼 수 없어서

생으로 사랑니 하나 뽑아내고 치통을 견디다 못해 꽃구경을 갔었다.

토종 흰 민들레 군락지, 제천 구인사

한꺼번에 피를 다 쏟아낸 듯한 핼쑥한 꽃들이

어금니가 보이도록 희게 웃고 있었다.

엎드려서 흰 꽃 두 송이 꺾는 사이

피가 한입 가득 고였다.

 

흰 꽃 위에다 대고

시뻘건 그를 뱉고 또 뱉어냈다

비린 입술을 흰 꽃으로 닦았다.

 

해질녘까지 지혈되지 않는 그를

약솜처럼 물고

하루 종일 그 산을 쏘다녔었다.

 

그해

그게 꽃구경이었을까?

 

 

 

 

파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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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시인이셨던 한성기 선생님(당시 국어 선생님)께서 나의 시 몇 편을 읽어보시더니, 다른 국어 선생님이셨던 김승옥 선생님(당시 「현대문학」에 박두진 선생님 1회 추천 받으셨던 분)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박두진 닮았어. 김 선생이 이 놈 잘 키워봐. 당신 박두진 제자잖아.”

하고 내 시를 김승옥 선생님께 넘기셨다.

 

「현대문학」 등단 이후 시를 써오면서 한 번도 ‘시가 닮았다’는 이 사실에 대하여 떠올려진 적이 없었는데,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는 순간 새롭게 40여 년 전 한성기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겨보게 되었다.

 

‘시’는 인간 정신을 표현하는 한 형태이다. 그러나 ‘시’ 이것이 삶 자체에 대하여 전혀 별개의 활동을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늘 우울했고, 그러면서도 시 하나에 선명하게 매달리거나 묶이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또 내 시는 늘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참을 수 없는 내 시에 대한 불만 때문에 문학상을 탈 만큼 모든 시를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내가 나를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내가 그토록 거절하려던 동일성을 붕괴시키고 팽팽하게 탄력이 살아나는 경우가 된다면 정말 이 수상은 나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열정에서 적잖은 것들을 버리고 있는데, 이렇게 부족한 나를 수상자로 뽑아주신 유종호 선생님, 김용직 선생님, 강창민 선생님, 조남철 선생님, 유성호 선생님께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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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제3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그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신대철 시인과 천양희 시인에 이어 이번에 제3회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단단한 최근의 시적 성취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수준 높은 시적 차원의 점진적 진경을 경험한 셈이다. 이번에는 모두 일곱 분의 시인이 예심위원의 손을 거쳐 본심에 부쳐졌다. 이미 등단 20년을 모두 넘긴 우리 시단의 중진들인지라, 작품적 완결성과 미적 좌표의 품격이 그 어느 해보다 미더운 성취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밝히면 고운기, 마종기, 신현정, 이승하, 이재무, 정희성, 최문자 시인이었다. 이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최종적으로 신현정과 최문자의 시편들을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였다. 그 결과 최근 매우 활달하교 균질적인 성취를 보여주었으면서도, 혜산 선생의 종교적 의식과 높은 친연성을 보여준 최문자 시인을 제3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다.

 

최문자 시인은 어떤 ‘근원’을 지향하면서 그것을 ‘신성한 존재’에 대한 미학화로 확장하고 중층화하려는 시적 기획을 일관되게 보여온 시인이다. 이번에 당선작으로 선정된 시편들은 그동안 최문자 시세계를 구성해왔던 ‘사랑’과 ‘슬픔’의 힘이 좀 더 근원적 차원으로 번져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자신의 실존적 슬픔을 치유하고 나아가 어떤 ‘신성한 것’에 가 닿고자 하는 열망을 균형적으로 완성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시는 깊은 ‘상처’와 철저한 자기 응시로 엮여져 있다. 하지만 그의 시가 갖는 독특한 매력이 ‘상처’에 대하여 감상과 탐닉의 이중 유혹을 함께 경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재차 강조되어야 한다. 감상과 탐닉의 동시 경계는 그의 시에 일정한 내구성을 부여하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미적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면서, 그만의 시적 연금술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지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예술원 회원, 전 연세대 석좌교수) 김용직(문학평론가, 학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강창민(시인, 전 서경대 교수) 조남철(문학평론가, 방송통신대 교수, 박두진 문학제 운영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사과 사이사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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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3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최문자(崔文子, 협성대학교 총장) 시인이 선정되었다.

 

혜산 박두진 시인의 시세계를 기리는 취지로 안성시에서 주최하고 있는 이 상은, 그동안 제1회 신대철 시인, 제2회 천양희 시인을 선정하였고, 이번에도 공정하게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최문자 시인을 선정하게 되었다.

 

심사위원은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예술원 회원), 김용직(문학평론가, 학술원 회원), 강창민(시인), 조남철(방송통신대 교수,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선생님들이 참여하였다.

 

최문자 시인은 어떤 ‘근원’을 지향하면서 그것을 ‘신성한 존재’에 대한 미학화로 확장하고 중층화하려는 시적 기획을 일관되게 보여온 시인이다. 이번에 당선작으로 선정된 시편들은 그동안 최문자 시세계를 구성해왔던 ‘사랑’과 ‘슬픔’의 힘이 좀 더 근원적 차원으로 번져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자신의 실존적 슬픔을 치유하고 나아가 어떤 ‘신성한 것’에 가 닿고자 하는 열망을 균형적으로 완성한 것이기도 하다.또한 그의 시는 깊은 ‘상처’와 철저한 자기 응시로 엮여져 있다. 하지만 그의 시가 갖는 독특한 매력이 ‘상처’에 대하여 감상과 탐닉의 이중 유혹을 함께 경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재차 강조되어야 한다. 감상과 탐닉의 동시 경계는 그의 시에 일정한 내구성을 부여하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미적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세계를 기려, 제3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최문자 시인을 결정하였다.

 

시상식은 9월 27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성시 안성문예회관 공연장에서 있으며 상금은 일천만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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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너를 눈뜨게 하고 / 천양희

 

 

이른새벽

도도새가 울고 바람은 나무쪽으로 휘어진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나 보다

가지가 덜리고 둥지가 찢어진다

숲에서는 나뭇잎마다 새의 세계가 있다

세계는 언제나 파괴 뒤에 오는 것

너도 알 것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남은자의 고통은 자란다고 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렴

일과 일에 걸림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는 것이라고

저 나무들도 잎잎이 나부낀다

삶이 암중 모색이다

가지가 찢어지게 달이 밝아도 세계는 그림자를 묻어버린다

일어서렴

멀리 보는 자는 스스로를 희생시켜 미래를 키우는 법이다

새의 칼깃 뒷에도 나는 자의 피가 묻어 있다

그러니 너는 네 하루를 다시 써라

쓰는 자의 눈으로 안 보이는 것은 없을 것이니

극복 못할 일이 어디에 있을라고

극복에도 바람은 있다

뒤어넘으려는 것이 너의 아픈 극복일 것이다

 

 

 

 

 

단추를 채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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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듣고 42년 전, 저에게 시인의 길을 열어주셨던 선생님을 오래 생각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찾아가서 시에 대해 여쭐 때마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떠올라 그때가 몹시 그리웠습니다. 시를 쓸 때는 어떻게란 첫 물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하셨고, 진정한 시는 이 세상에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느 땐 네 앞에 놓인 백지(원고지)가 떠오르는 해처럼 눈부신 것만이 아니니, 원고지에 공포를 느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가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 때이다.”라고도 하셨습니다.

 

대학 3학년이던 1965년에 학생 시인이 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의 준엄한 그 말씀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시 하나 붙잡고 살아가는 저에게 이 상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상처처럼 생각됩니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인이 된 제가 선생님을 기리는 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저도 이름값을 할 수 있고, 인식을 전환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인도의 고유악기 중에 줄이 하나밖에 없는 악기가 있습니다. 줄이 하나밖에 없는 악기라고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안 두다가도 상상력의 현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 순간에 사람들의 인식이 전환된다고 합니다. 상상력의 현! 얼마나 특별하고 놀라운 현입니까. 이 놀라운 현을 하나밖에 없는 시의 줄로 삼겠습니다.

 

이름 없는 풀꽃은 씨앗으로 자신의 이름값을 합니다. 씨앗 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으로 이름값을 하는 풀꽃! 그 씨앗으로 시의 생명을 삼겠습니다.

 

힘을 모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새벽에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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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통과해온 시인은 모두 여섯 분이었다. 이분들은 혜산 박두진 선생과의 작품적 친연성이 높은 데다가, 문단에서 폭 넓은 경의를 받고 있는 중진 시인들이었다. 또한 이분들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가장 왕성한 작품 발표를 한 시인들이기도 하였다. 문단 경력 20년을 넘긴 중진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는, 그 점에서 미더운 시읽기의 경험을 심사위원들에게 선사해주었다. 그분들의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밝히면 김신용, 정진규, 정호승, 천양희, 최문자, 한광구 시인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인들의 수상 후보작 10여 편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혜산 박두진 선생의 시세계와 깊은 연관성이 있으며, 최근까지 균질적이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고, 섬세한 미의식과 시에 대한 치열한 사유를 보여준 천양희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빼어난 시적 성취를 보여준 시인들인지라, 오랜 시간 다종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었다. 이분들께 한결같은 경의를 표하면서, 심사위원들은 불가피한 선택의 과정에서 그동안 천양희 시인이 보여준 지속적인 시적 성취에 신뢰와 격려를 얹기로 하였다.

 

천양희 시인은 1965년에 등단하여 그동안 섬세한 여성성과 치열한 시적 감각으로, 놀랄 만한 가편들을 지속적이고 균질적으로 써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중진 시인이다. 특별히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 안에는 시인으로서의 첨예한 자의식과 타자들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부드럽고도 역동적인 언어 감각이 담겨 있었다. 우리 시대의 시적 지표에 충분한 귀감으로 읽힐 만한 성취라고 생각된다.

 

거듭 수상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여 혜산 박두진 선생을 기리는 문학상의 영예를 높여가기를 깊이 소망한다.

 

심사위원 유종호(위원장, 예술원 회원 전 연세대 석좌교수, 문학평론가) 김용직(학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정공채(시인, 전 현대시인협회장) 조남철(혜산 박두진 문학제 운영위원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

 

 

 

 

지독히 다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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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 박두진 문학제 운영위원회(위원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조남철 교수)는 ‘청록집’ 발간 60주년을 맞아 안성시와 동아일보사, 월간 ‘현대시학’의 후원으로 “ 혜산 박두진 문학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제2회 수상자로 시인 천양희(千良姬 65세)씨를 선정하여 오는 20일 제7회 혜산 문학제 기간 안성시에 있는 혜산 문학자료관에서 시상한다.

 

수상자는 등단 20년이 경과되고 지난 1년간 작품을 발표한 시인 중에서 혜산 시세계와의 시적 친연성, 시적 성과 등을 고려하여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하였다.

 

천양희 시인은 1965년에 등단하여 그동안 섬세한 여성성과 치열한 시적 감각으로, 놀랄 만한 가편들을 지속적이고 균질적으로 써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중진 시인이다. 특별히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 안에는 시인으로서의 첨예한 자의식과 타자들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부드럽고도 역동적인 언어 감각이 담겨 있었다. 우리 시대의 시적 지표에 충분한 귀감으로 읽힐 만한 성취라고 생각된다.

 

본심의 심사위원은 유종호(위원장, 예술원회원, 전 연세대 석좌교수), 김용직(학술원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정공채(전 현대시인협회장), 조남철(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이다.

 

상금은 1천만원이고 상패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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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 신대철

 

 

전신주 박혀 있던 태왕릉*

호석** 흩어지고 봉분 패이고

 

뻥대쑥이 흔들린다. 능 너머로 도굴된 능 너머로 조선족들 밀려간다. 장정들 큰 도시로 떠나가고 퉁거우 평원 빈 자리에 옥수수들 웃자란다. 바람받이 길목에 햇볕만 지글거린다. 평상에 앉아 있던 노인들 장기판 들고 나무 아래로 들어간다. 졸 가고 말 가던 땅에 판 바뀌어 동네 혼령들 드나든다. 독립군이 혼강으로 통화현으로 무기 나르던 시절 혼령들이 길을 안내했단다. 훈수 두던 아낙 슬며시 울안으로 들어가고 어디선가 덜그덕 장독 뚜껑 여닫는 소리, 봉숭아 물들인 소녀들 옥수숫대에 붙어 서서 살랑거린다. 고개 내밀다 눈만 웃는다. 지붕 위로 박넝쿨 호박넝쿨 올라가고 굴렁쇠 굴리고 간 아이들 갈 곳 잃고 녹슨 길 감아 돌아온다. 여산인지 용산인지 뻐꾸기 운다. 먼먼 울음 소리에 흐른 강물 따라와 흐른다.

 

한밤에 가족 이끌고

옛 땅 숨어들었다가

전답 붙일 새 없이

쫓기고 굶주렸던 농민들

지지난 밤 빗속에

강을 건너온 탈북자들은?

 

뻐꾸기 울음 그쳐도

강물이 흐른다.

흐른 강물 다 거느리고

압록강이 흐른다.

 

 

 

바이칼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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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혜산 선생님 생전에 그 푸른 그늘에서 삶과 문학을 배웠고 돌아가신 뒤에도 여전히 그 그늘에서 배우고 있는 제가 첫 수상자라니 송구스럽습니다. 우리 현대시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신 선생님의 문학적 위상을 생각하게 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혜산 선생님은 우리 현대시사에서 한용운, 이육사 등 지사적 시인의 전통을 잇는 민족 시인으로서 일제 강점기에는 조국 광복의 비전을 보여주셨고, 해방 후에는 처음으로 존재에의 용기와 자유 의지를 일깨워 김수영, 김지하 등 후대의 현실 의식 시인들의 정신적 모범이 되셨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어서 너는 오너라」, 「봄에의 격」, 「우리들의 기빨을 내린 것이 아니다」 등 민족 격변기를 감당하셨던 선생님의 대표시들은 이미 우리 시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혜산 선생님은 이렇게 역사적 현실에 준엄한 시선을 가진 예언적 시인이셨지만, 감성적으로는 고향 안성 사갑들에서의 자연의 감화를 잊지 못한 순수 자연인이셨고, 종교적으로는 야콥 뵈메, 썬다 씽 같은 기독교 신비가들의 경건주의로 삶의 지표를 세운 독실한 신앙인이셨습니다. 혜산 선생님이 인류의 비극적인 상황을 노래하면서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꿈꾸신 것도 바로 기독교 정신의 핵심인 ‘포옹무한’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혜산 선생님과 김수영 선생님을 통해 문단에 나왔으면서도 유신 체제하의 억압된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간신히 체험에 기대어 「×」, 「우리들의 땅」 등 시 몇 편을 썼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23년 만에 다시 창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께 다시 시 쓰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상을 받게 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이 자리에 서니 문득 선생님의 모습이 은은히 떠오릅니다. 강 건너 뱃사공을 옆에 있는 사람처럼 ‘어어이!’ 하고 부르시던 선생님, 안개 속에서 그 음성 듣고 ‘예!’ 하고 노 저어오던 뱃사공. 저도 어디서든 선생님의 음성을 듣고 언제나 정신적으로 화답할 수 있는 시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혜산 선생님은 언제나 한결같이 고고하고 학 같은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그 인간적 품격을 그대로 시에 발현시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굴하지 않고 역사를 증언하셨습니다. 데뷔작 「향현(香峴)」으로부터 유고 시집 ꡔ당신의 사랑 앞에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무한혁명’ 사상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포옹무한’ 정신으로 민족의 통일과 인류의 구원을 노래하셨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민족과 인류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시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혜산 박두진문학상’의 첫 수상자로 올려주신 여러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제 옆에 미소를 짓고 계신 혜산 선생님, 이 상을 영광스럽게 받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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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위원들은 혜산 박두진 선생의 시세계와 친연성이 높고, 문단에서 각별한 경의를 받고 있으며, 작년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왕성한 작품 발표를 한 시인들 가운데, 2~5인의 추천 시인을 각각 정해 와서 논의하기로 하였다. 예심위원들은 이 가운데, 등단 20년을 넘어섰고, 다른 문학상의 수상 경력이 적은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한 혜산 선생과의 시적 친연성도 적극 고려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강은교, 문인수, 박이도, 신대철, 정진규, 조창환, 천양희 등 7인의 시인을 선정하였다. 예심위원들은 이 시인들의 수상 후보작 10편 내외를 수합하여, 본심위원들에게 우송하는 것으로 임무를 마쳤다.

 

본심위원들은 일곱 분의 역량있는 한국의 대표 시인들 가운데, 혜산 박두진 선생의 시세계와 각별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광활한 대륙적 세계와 지사적인 역사 의식을 보여준 신대철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시적 성취를 보여준 시인들에 대해 문학적 경의를 표하면서, 본심위원들은 불가피한 선택 앞에서, 신대철 시인의 그동안의 예술적, 정신적 궤적을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 수상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여 제1회 혜산 박두진문학상의 영예를 드높여가기를 소망한다.

 

심사위원 예심 : 이영섭(경원대 교수), 안경원(시인), 이숭원(서울여대 교수), 이희중(전주대 교수), 유성호(한국교원대 교수) / 본심 : 유종호(위원장, 전 연세대 석좌교수), 김용직(서울대 명예교수), 정공채(시인), 유경환(시인), 조남철(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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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 박두진문학상 수상자에 신대철 시인

 

혜산 박두진 문학제운영위원회(위원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조남철 교수)는 ‘청록집’ 발간 60주년을 맞아 안성시와 동아일보사, 월간 ‘현대시학’의 후원으로 “ 혜산 박두진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제1회 수상자로 시인 신대철(申大澈, 61세, 국민대 교수)씨를 선정하여 오는 25일 제6회 혜산 문학제 기간 안성시에 있는 박두진 문학자료실에서 시상한다.

 

수상자는 등단 20년이 경과되고 지난 1년간 작품을 발표한 시인 중에서 혜산 시세계와의 시적 친연성, 시적 성과 등을 고려하여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하였다.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며 광활한 대륙적 세계와 지사적인 역사의식을 보여준 신대철 시인은 대표작 “압록강”에서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민족의 유이민 현상과 민족의 역사적 암울한 현실을 고통스럽게 노래]하고 있다.

 

본심의 심사위원은 유종호(위원장, 전 연세대 석좌교수, 예술원회원), 김용직(서울대 명예교수), 정공채(전  현대시인협회장), 유경환(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조남철(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이다.

 

시상식은 25일 박 시인의 고향인 경기 안성의 안성문예회관에서 열렸으며 상금은 1,0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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