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새벽
도도새가 울고 바람은 나무쪽으로 휘어진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나 보다
가지가 덜리고 둥지가 찢어진다
숲에서는 나뭇잎마다 새의 세계가 있다
세계는 언제나 파괴 뒤에 오는 것
너도 알 것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남은자의 고통은 자란다고 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렴
일과 일에 걸림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는 것이라고
저 나무들도 잎잎이 나부낀다
삶이 암중 모색이다
가지가 찢어지게 달이 밝아도 세계는 그림자를 묻어버린다
일어서렴
멀리 보는 자는 스스로를 희생시켜 미래를 키우는 법이다
새의 칼깃 뒷에도 나는 자의 피가 묻어 있다
그러니 너는 네 하루를 다시 써라
쓰는 자의 눈으로 안 보이는 것은 없을 것이니
극복 못할 일이 어디에 있을라고
극복에도 바람은 있다
뒤어넘으려는 것이 너의 아픈 극복일 것이다
[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듣고 42년 전, 저에게 시인의 길을 열어주셨던 선생님을 오래 생각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찾아가서 시에 대해 여쭐 때마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떠올라 그때가 몹시 그리웠습니다. 시를 쓸 때는 ‘어떻게’란 첫 물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하셨고, 진정한 시는 이 세상에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느 땐 “네 앞에 놓인 백지(원고지)가 떠오르는 해처럼 눈부신 것만이 아니니, 원고지에 공포를 느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가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 때이다.”라고도 하셨습니다.
대학 3학년이던 1965년에 학생 시인이 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의 준엄한 그 말씀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시 하나 붙잡고 살아가는 저에게 이 상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상처처럼 생각됩니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인이 된 제가 선생님을 기리는 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저도 이름값을 할 수 있고, 인식을 전환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인도의 고유악기 중에 줄이 하나밖에 없는 악기가 있습니다. 줄이 하나밖에 없는 악기라고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안 두다가도 ‘상상력의 현’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 순간에 사람들의 인식이 전환된다고 합니다. 상상력의 현! 얼마나 특별하고 놀라운 현입니까. 이 놀라운 현을 하나밖에 없는 시의 줄로 삼겠습니다.
이름 없는 풀꽃은 씨앗으로 자신의 이름값을 합니다. 씨앗 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으로 이름값을 하는 풀꽃! 그 씨앗으로 시의 생명을 삼겠습니다.
힘을 모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평]
예심을 통과해온 시인은 모두 여섯 분이었다. 이분들은 혜산 박두진 선생과의 작품적 친연성이 높은 데다가, 문단에서 폭 넓은 경의를 받고 있는 중진 시인들이었다. 또한 이분들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가장 왕성한 작품 발표를 한 시인들이기도 하였다. 문단 경력 20년을 넘긴 중진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는, 그 점에서 미더운 시읽기의 경험을 심사위원들에게 선사해주었다. 그분들의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밝히면 김신용, 정진규, 정호승, 천양희, 최문자, 한광구 시인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인들의 수상 후보작 10여 편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혜산 박두진 선생의 시세계와 깊은 연관성이 있으며, 최근까지 균질적이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고, 섬세한 미의식과 시에 대한 치열한 사유를 보여준 천양희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빼어난 시적 성취를 보여준 시인들인지라, 오랜 시간 다종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었다. 이분들께 한결같은 경의를 표하면서, 심사위원들은 불가피한 선택의 과정에서 그동안 천양희 시인이 보여준 지속적인 시적 성취에 신뢰와 격려를 얹기로 하였다.
천양희 시인은 1965년에 등단하여 그동안 섬세한 여성성과 치열한 시적 감각으로, 놀랄 만한 가편들을 지속적이고 균질적으로 써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중진 시인이다. 특별히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 안에는 시인으로서의 첨예한 자의식과 타자들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부드럽고도 역동적인 언어 감각이 담겨 있었다. 우리 시대의 시적 지표에 충분한 귀감으로 읽힐 만한 성취라고 생각된다.
거듭 수상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여 혜산 박두진 선생을 기리는 문학상의 영예를 높여가기를 깊이 소망한다.
심사위원 유종호(위원장, 예술원 회원 전 연세대 석좌교수, 문학평론가) 김용직(학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정공채(시인, 전 현대시인협회장) 조남철(혜산 박두진 문학제 운영위원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
혜산 박두진 문학제 운영위원회(위원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조남철 교수)는 ‘청록집’ 발간 60주년을 맞아 안성시와 동아일보사, 월간 ‘현대시학’의 후원으로 “ 혜산 박두진 문학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제2회 수상자로 시인 천양희(千良姬 65세)씨를 선정하여 오는 20일 제7회 혜산 문학제 기간 안성시에 있는 혜산 문학자료관에서 시상한다.
수상자는 등단 20년이 경과되고 지난 1년간 작품을 발표한 시인 중에서 혜산 시세계와의 시적 친연성, 시적 성과 등을 고려하여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하였다.
천양희 시인은 1965년에 등단하여 그동안 섬세한 여성성과 치열한 시적 감각으로, 놀랄 만한 가편들을 지속적이고 균질적으로 써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중진 시인이다. 특별히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 안에는 시인으로서의 첨예한 자의식과 타자들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부드럽고도 역동적인 언어 감각이 담겨 있었다. 우리 시대의 시적 지표에 충분한 귀감으로 읽힐 만한 성취라고 생각된다.
본심의 심사위원은 유종호(위원장, 예술원회원, 전 연세대 석좌교수), 김용직(학술원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정공채(전 현대시인협회장), 조남철(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이다.
상금은 1천만원이고 상패를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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