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 개의 초록 / 마종기
"초여름 오전 호남선 열차를 타고
창밖으로 마흔 두 개의 초록을 만난다.
둥근 초록, 단단한 초록, 퍼져 있는 초록 사이,
얼굴 작은 초록, 초록 아닌 것 같은 초록,
머리 헹구는 초록과 껴안는 초록이 두루 엉겨
왁자한 햇살의 장터가 축제로 이어지고
젊은 초록은 늙은 초록을 부축하며 나온다.
그리운 내 강산에서 온 힘을 모아 통정하는
햇살 아래 모든 몸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물 마시고도 다스려지지 않는 목마름까지
초록으로 색을 보인다. 흥청거리는 더위.
열차가 어느 역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
바깥이 궁금한 양파가 흙을 헤치고 나와
갈색 머리를 반 이상 지상에 올려놓고
다디단 초록의 색깔을 취하도록 마시고 있다.
정신 나간 양파는 제가 꽃인 줄 아는 모양이지.
이번 주일을 골라 친척이 될 수밖에 없었던
마흔두 개의 사연이 시끄러운 합창이 된다.
무겁기만 한 내 혼도 잠시 내려놓는다.
한참 부풀어 오른 땅이 눈이 부셔 옷을 벗는다.
정읍까지는 몇 정거장이나 더 남은 것일까."
대산문화재단이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시 부문 마종기(76)의 '마흔두 개의 초록', 소설 부문 황정은(39)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뽑았다.
희곡 부문 김재엽(42)의 '알리바이 연대기', 번역 부문에서는 얀 헨릭 디륵스(40)의 '바셀린 붓다'(원작 정영문)가 수상한다.
심사위원단은 '마흔두 개의 초록'에 대해 "언어의 매끄러운 연쇄 위에 수놓아진 삶의 체험이 전해주는 묵직한 울림",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대해서는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삶의 존재 이유를 침묵의 문장으로 풀어냄" 등을 높게 평가했다.
'알리바이 연대기'에 대해서는 "개인사와 현대사 교차시킨 역사적 현실에 대한 서사적 글쓰기 개척", 정영문 원작을 독일어로 옮긴 '바셀린 붓다'에 대해서는 "제3세대 번역가의 등장을 알린 유려하고 문학성 높은 등가 번역"이라고 평했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로 상금 5000만원이 주어진다. 양화선 조각가의 소나무 청동 조각상패도 수여된다.
시상식은 12월1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올해 심사대상작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희곡은 지난 2년·번역은 지난 4년)까지 단행본으로 출판되거나 공연된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예심은 김선우·박정대·오형엽(시), 김동식·김숨·심진경·이기호(소설) 등 7명이 6월부터 약 세 달 동안 했다. 본심은 고형진·김광규·신달자·유종호·정호승(시), 강석경·구효서·김형경·도정일·최원식(소설), 박근형·이강백·이미원·이윤택·정복근(희곡), 김륜옥·김용민·안문영·전영애·프리트헬름 베르툴리스 등이 8월부터 두 달 동안 장르별로 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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