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 이정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산다

 

자주감자가 첫 꽃잎을 열고

처음으로 배추흰나비의 날갯소리를 들을 때처럼

어두운 뿌리에 눈물 같은 첫 감자알이 맺힐 때 처럼

 

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뭇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운다

 

목마른 낙타가

낙타가시나무 뿔로 제 혀와 입천장과 목구멍을 찔러서

자신에게 피를 바치듯

그러면서도 눈망울은 더 맑아져

사막의 모래알이 알알이 별처럼 닦이듯

눈망울에 길이 생겨나

발맘발맘, 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

 

섭섭하고 서글프고 얄밉고 답답하고 못마땅하고 어이없고

야속하고 처량하고 북받치고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렵다

 

눈망울에 날개가 돋아나

망망가슴, 구름에 젖는 것들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nefing.com

 

 

5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자로 이정록 시인이 선정됐다.

 

박재삼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지난 513일 예심을 통과한 10편의 시집 가운데 지난 63일 본심 심사를 통해 이정록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을 수상작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정록 시인은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등 아홉권의 시집을 냈다. <콧구멍만 바쁘다> 3권의 동시집, <대단한 단추들> 4권의 동화책, 산문집 <시인의 서랍> 등을 펴냈다. 2001년 제20회 김수영 문학상, 2002년 제13회 김달진 문학상, 2013년 윤동주 문학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박재삼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예심위원(유성호 평론가, 이영광·장만호 시인), 본심위원(김명인·이하석 시인)으로 구성해 시력 20년 이상 된 시인이 2016년 출간한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했다.

 

심사위는 박재삼 시인은 세상살이의 정한(情恨)을 절제된 문맥으로 되살려낸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다. 그는 풍경과 언어가 시적 비유로 통합되어 새롭게 확장된다는 사실을 우리말의 창조적 활용이나 전통시학의 재발견을 토대로 실현해보였다이정록 시인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은 시인의 표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들의 환한 표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간의 방심 위에 얹히는 영롱한 시의 모습이기도 했다고 평했다.

 

이하석 김명인 본심 심사위원은 이정록 시인은 시가 생의 허기 속에서만 똬리 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무르녹는 풍상을 통해서도 흘러넘친다는 것을 수많은 가편(佳篇)으로 증명해 보였다때로는 능청스럽기조차 한 그의 물활론적 세계관은 우리 서정시의 또 다른 중심과 만나려는 시도로서도 충분히 개성적이다. 특히 수상작이 된 시집에서도 이러한 성취는 두드러지는 바, 일찍이 박재삼 시인이 추구한 해맑고도 아련한 살림의 시학을 정통으로 이어받고 있다고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5회 박재삼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78일 오후 4시 사천시 박재삼문학관에서 박재삼문학제추진위원회(위원장 김경숙) 주관으로 열릴 예정이다.

 

19회 박재삼문학제는 7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박재삼문학관 일원에서 개최되며, 7일 전국 학생 시 백일장, 8일 청소년문학상 결선, 일반부 백일장, 박재삼 시 암송대회 결선, 세미나, 문학의 밤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한편, 박재삼 문학상 역대 수상자는 제1회 이시영 시인을 시작으로 이상국, 이문재, 2016년에는 고영민 시인이 수상한 바 있다.

 

728x90

 

 

영혼의 거처 / 이정록

 

 

개구리의 눈은 쌍무덤이다

저승을 열었다 닫았다 이승 쪽에 긴 혀를 내민다

오뉴월에 상을 치러본 사람은 안다 곡비哭婢의 무덤이다

등에는 산판 작업복을 배에는 상복을 지어 입었다

 

개구리의 영혼은 뒷다리에 있다

넓적다리의 무게가 없다면 물 밖으로 눈을 내놓을 수 없다

먼 하늘로 날아가고 싶은가 물밑 하늘에 배를 대고

구름의 능선을 넘는 상여처럼 비스듬하게 떠있다

뒷다리에서 얼이 빠져나가면 수장水葬이다

상복이 하늘 쪽으로 뒤집힌다

 

사람의 영혼도 머리나 심장에 있는 게 아니다

허벅지에 있다 위엄 있게 죽는 게 소원이지만

병실에 눕혀진 채 자신의 눈자위에 무덤을 파는 사람들

나날이 솟구치는 사성莎城*, 침상 머리맡 좀 올려달란 말과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남은 열 마디 가운데에 여덟아홉이다

귓구멍이며 혀뿌리까지 구름이 몰려들건만

새 다리를 허우적이며 바깥세상에 시비도 걸고 싶다

 

침대 좀 세워 줘!

꺼져드는 묘혈墓穴을 링거 줄이 잡아당긴다

수액이 스미는 만큼 가라앉는 뒤통수, 이장移葬한 무덤자리처럼

베개도 쉬이 꺼진다 땅땅했던 영혼이 졸아들기 때문이다

등짝 어디께로 운석이 떨어진다 화상이 깊다

등창燈窓, 부화의 실핏줄이 번지기 시작한다

뒤통수가 어린 새의 부리 같다

세웠던 침상을 뉘고, 야윈 새처럼 등을 보이며 엎드린다

비상을 도우려는 의사와 간호사의 흰 날개깃이 바빠진다

죽음은 영혼을 부화시키는 일, 허벅다리에서

배까지 올라온 영혼의 새가 머릿속으로 치고 올라온다

이윽고 숨이 멎는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흰 깃털이 스르륵 덮힌 다

수평을 잡고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 구름장에서

다리가 긴 빗줄기가 내린다

 

장례식장 사층, 신생아실에선

겨우 발가락만 내민 올챙이들이 물장구를 친다

작은 주둥이가 햇살에 마르지 않도록

탯줄의 이똥이 천천히 떨어진다, 강보에 누워

다리를 들고 꼼작인다 첫 걸음마는 날갯짓을 닮으리라

발가락 끝마디에 물방울 추를 매달고

허공에 걸음마를 내딛는 어린 영혼들

 

* 묘혈墓穴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뒤에 반달 모양으로 둘러막은 둔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nefing.com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와 계간 '서시'가 주관하고 서울 종로구가 후원하는 '8회 윤동주 문학대상' 수상자로 시인 이정록(49)씨가 22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영혼의 거처' 9편이다.

 

한편 '젊은작가상''저녁의 계보' 4편으로 시인 김병호(42)씨에게 돌아갔다.

 

이씨와 김씨는 상금 1000만원과 300만원을 받는다. 시상식은 928일 오후 5시 서울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열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