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여인숙 1 / 최갑수
더 춥다
1월과 2월은
언제나 저녁부터 시작되고
그 언저리
불도 들지 않는 방
외진 몸과 외진 몸 사이
하루에도 몇 번씩
높은 물이랑이 친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어요, 집 나선 지 이태째라는 참머리 계집은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며
부서진 손톱으로
달을 새긴다
장판 깊이 박히는 수많은 달
외항을 헤매이는 고동소리가
아련하게 문턱까지 밀리고
자거라, 깨지 말고 꼭꼭 자거라
불 끄고 설움도 끄고
집도 절도 없는 마음 하나 더
단정히 머리 빗으며
창밖 어둠을
이마까지 당겨 덮는다
밀물 여인숙2 / 최갑수
바다가 밤을 밀며
성큼 뭍으로 손을 내밀고
아낙들이 서둘러
아이들을 부른다 겨울밤은
폐선의 흔들림을 감당하기에도
벅차고 내 잠을 밀고
촘촘히 올라오는 잡어떼
별처럼 삼십촉 백열구가 떴다
아직도 잠들지 못한 걸까, 홑이불 속
사고 싶은 것이 많다는 그 여자도
따라 뒤척인다 뒤척인 자리마다
모래알들이 힘없이 구르고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등
나는 입술을 대고
그녀의 이름을 낮게 불러본다
그 여자의 등이 조금씩 지워진다
어느 땐가 내가 서 있었던 해변과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해보던
사납던 그 밤도 지워진다
여자의 등에 소슬하게 바람이 일고
만져줄까, 하얗게 거품을 무는
그녀의 얇은 허리와 하루종일
창문을 벗어나지 못하는 섬
집이 없는 사내들이
모서리 한 켠씩을 차지해
저마다 낮은 어깨를 누인다
지붕 위에는 밤안개가
오래오래 머문다
밀물 여인숙3 / 최갑수
창밖을 보다 말고
여자는 가슴을 헤친다
섬처럼 뛰어오른 상처들
젖꽃판 위로
쓰윽 빈배가 지나고
그 여자, 한 움큼 알약을 털어넣는다
만져봐요 나를 버텨주고 있는 것들, 몽롱하게 여자는 말한다
네 몸을 빌려
한 계절 꽃피다 갈 수 있을까
몸 가득 물을 길어 올릴 수 있을까, 와르르 세간을 적시는
궂은 비가 내리고
때 묻은 커튼 뒤
백일홍은 몸을 추스린다
그 여자도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애처로운 등을 한 채
우리가 이곳에 왜 오는지를
비가 비를 몰고 다니는 자정 근처
섬 사이 섬 사이
두엇 갈매기는 날고
밀물 여인숙
조용히 밀물이 들 때마다
신포동 / 최갑수
가을밤 눈이 감기지 않았다
집어등도 이따금 파도에 끊기고
적적한 골목을 내다니는 것이
내 유일한 고단함인 양
어깨를 기울이고 문 밖으로 나서면
느티나무들이 소리내어
손가락을 꺽고 있었다
개처럼 짝짝거리며 하현이 가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바람이
잔잔히 별을 애무할 때
여자들은 온 몸으로 일생을 반짝거리며
방파제 너머로
가느다란 웃음을 던졌다
가을은 이곳에도 깊이 들었구나
아무도 잠들지 않는
자정의 거리
한 차례 소란스러운 비가 훑고 지난 뒤
커튼을 닫고 사내들은
조용히 숨을 들었다 놓았다
나는 왜 뜨겁게 달아오르지 못하는가
노랗게 불을 흔들며
나를 희롱하는 창문과
되돌려지지 않는 걸음 사이로
수런거리며 안개가 모여들었다
밤에게 엿보이는 내 헐한 가슴에는
시시때때 알지 못할 이름을 외우는
목청이 큰 바다가 있었다
해안 / 최갑수
예인선은
둥근 빛을 흔들고
누군가 동백잎에 물들어
깊은 병을 가질 때
여관집 늦은 가을비는
창가에 온다
밀물 드는 소리에
취객은 마음을 빼앗기고
여자들이 등을 달고
바다처럼 조용히
부풀어오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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