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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소년의 외출 / 김근


1


누가 어미의 장사를 지내줄 것인가 누가

어미의 육체를 장엄하게 썩게 할 것인가

내 갈라진 혀는 여태도 길고 사나우니

내 날카로운 독니로 찢고 발긴

어미의 살점은 또 어느 허공에 뿌려질 것인가

어미이기도 하고 어미가 아니기도 한

아들이기도 하고 아들이 아니기도 한

암소이기도 하고 수소가 아니기도 한

이 질긴 슬픔의 그나풀을 누가 끊을 것인가


2


무릎이 까진 채 버려진 나무 아래

오누이가 울고 있다 울면 안 돼

울면서 오라비는 우는 누이의 뺨을 때린다

돌아오지 않아 아무도 영원히

오누이의 눈물방울들이 무거운 공기 안에 멈춘다

쉭쉭거리며 나는 혓바닥을 내밀어 눈물을 맛본다

암염처럼 딱딱한 눈물방울들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아프지 않은 거란다

내 몸의 모든 비늘이 가늘게 떨린다

비늘이 고요해지자 나는 오누이를 긴 몸통으로 휘감는다

몸통 안에서 오누이가 으스러진다 으스러져 한데 엉긴다

사라지는 것은 그저 비늘처럼 적막해지는 일일 뿐

무릎이 까진 채 버려진 나무처럼

나는 우는 법을 모른다

긴 몸을 풀었으나 오누이가 보이지 않는다


3


태를 묻지 못했으니 고향도 없다

몇 차례 허물을 벗었는지는 잊었다

허물을 벗어도 허물 안의 기억은

허물 바깥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것이 허물 안의 기억인지

어느 것이 허물 바깥의 기억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안인가 바깥인가

몇 차례 허물을 태우면서

한때 번들거렸으나 이제 푸석해진

한 生이 지글지글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삶인가 죽음인가

이승인가 저승인가

돌 하나 붙박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기가 돌의 고향인지는 묻지 않았다


4


주름 자글자글한 소녀를 만난 적 있지

어제가 오늘과 살짝 옷을 바꿔입는 구멍 앞에서

그 늙은 소녀가 자꾸 풀을 꺾는 것을 지켜보았어

나는 풀들의 꺾인 뼈를 맞추며

늙은 소녀와 내가 아기를 낳으면

뱀이기도 하고 소년이기도 한

할미이기도 하고 소녀이기도 한

아기가 태어날지 궁금했다구

저녁이 한번 부르르 진저리를 쳐

긴 몸통에서 새빨간 성기를 꺼내 나는 오줌을 갈기지

길이 풀어지고 풀어진 길을 거슬러 늙은 소녀가

훠이훠이 구부러진 허리로 걸어와

이 길은 주름이 너무 많아 네 성기처럼

나 늙은 소녀의 늘어진 살가죽을 벗겨내

벗겨도 벗겨도 늙은 소녀는 늙은 소녀야


5


몸을 벗고 말을 벗고 어미가 누워 있네

나는 어미를 모르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다 어미네

뻣시디 뻣신 띠풀을 뽑아내

어미를 지고 나는 거기로 미끄러져들어가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네 몇천 년 미끄러지네

누군가 구멍으로 거기를 들여다보네

말이 아니라 비로소 그가

내 몸에 새겨진 무늬를 읽어나가네






* 蛇福不言 : <삼국유사> 의해편). 사복(蛇福)은 사복(蛇伏), 사파(蛇巴) 혹은 사동(蛇童)으로 불리나 모두 ‘뱀아이’다. 그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지는 <삼국유사>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이월 / 김근


 그리 깊지도 않은 내 몸속 어딘가에 현악기가 하나 들었나봅니다 밤이 되면 텅 빈 내 몸은 커다란 울림통이 되고, 차고 딱딱한 어둠으로 가득 채워지지요 좀처럼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둠들은 늘 따로따로 제 울음이 깃들 현들을 더듬거린답니다 소리를 찾지 못한 어둠들은 가끔 눈이 되어 내리기도 하구요


 한 번도 켜지지 않은 그 낡은 악기에는 활대도 없답니다 (날개가 없는 것들에는 활대가 필요하지요) 어두컴컴한 늑골 언저리 웅크린 악기의 둔중한 떨림이 느껴질 때는 아픈 등불만 깜박깜박거렸구요 누가 내 몸속에 악기를 넣어두었을까 의심하는 사이 또 한 켜의 먼지가 내려 쌓이고 먼지에 못 이기는 이월, 자주 몸을 눕히고 싶었습니다


 이따금 그 불쌍한 현악기에 잎이 돋는 꿈을 꾸곤 한답니다 악기를 버리고 나무가 되는 꿈 말이지요 (퉁겨지지 못하는 현들은 모두 잎이 되는 모양입니다) 무성한 이파리들이 한꺼번에 몸을 흔들면 불협화음으로 솟구치는 새떼들의 날갯짓이 보이는 듯도 하지요


 상한 소리들이 휴지처럼 너저분한 아침이면 내 몸을 빠져나간 야윈 길들은 내내 얼었다 녹았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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