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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에 고래가 있다 /  김송포

 

죽도 시장에 고래 보러 간다

바다도 아닌 시장으로 고래 먹으러 간다

물고기 중의 제왕을 내려 놓고

시장 골목 안쪽에 몸뚱어리 벗겨진 채

한가로이 누워 있다

허리의 유연함으로 광대 노릇을 하고

공중전으로 파도를 삼키는가 하면

광활한 바다의 영웅이 되었었다

하얀 물줄기로 포효하는 소리

숨을 할딱이게 하는 위용이 태풍에 길 잃었다

언제나 팔팔하지 않은 젊음이

고개 숙이고 등을 굽히고 얌전히 누워 있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

고래의 혀는 말이 없다

비싼 금테 두르고

죽어서 빛나는 눈동자로 비치고 있는지

고래 보러 포항 시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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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말하다 / 윤완수

 

물은 눕기를 좋아하지만 베개를 베고 드러눕진 않아요. 고기잡이 나간 아비 기다리는 아이 등살에 구만 허릿등 보리 익어가던 날, 옆구리 터 진 갯바위에 해송 그늘 끼얹고 바다로 바다로 걸어 나간 탯줄, 태왁 끌어안은 숨 비 소리 종일 파도 속을 딩굴어요.

 

마당에 솥 걸고 팔팔 물 끓이면 배알 없는 고기들 파도타기 즐기다 풍덩 뛰어들곤 했다지요. 청어 떼 거센 파도에 셀 수 없이 떠밀려 와 원 없이, 정말 원 없이 까꾸리로 쓸어 담아도 봤구요. 굽이진 바다 달빛 그윽한 부느리 개, 얕은 바닷말 뒤져가며 아랫도리 걷어 올리는 아홉 번 덖고 아홉 번을 비벼낸 노을이 또 어제의 탯줄을 무심히 잇어 주네요.

 

ㅡ 할아버지, 저 꽃 이름이 뭐야?

ㅡ 접시꽃이란다

ㅡ 저기 해와 색깔이 똑같아요

 

바람은 결코 머무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요 꽃 지듯 피우는 하얀 해

빨간 해, 호미 곶 등대에 제일 먼저 물비늘 털고 비릿한 912번 길

이어주다가 그 큰 눈을 감아 버리네요.

 

아침 해는 삼키고 저녁놀은 뱉어내는

장엄한 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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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월포리/오문경

 

고독보다 짠 바다를 삼키며 울먹이는

먼 잠의 모래사장엔

몽돌만 헤헤거리며 젖은 몸을 말리고.

하얀 모래언덕 덮었다

씻어 내리는 파도 이랑 사이로

가비얍게 차오르는 재갈매기.

신망도 사랑도 잃어버린 구슬픈 노래를

오래전 은하 속의 별을 토하듯 나직이 읊조리는 월포리.

언제고 내 모든 걸 이해하고

용서할 시간 위해,

이토록 먼 길 에돌아왔던가. 파도여

저 멀리 낡은 목선 하나,

혼돈에 지쳤는가, 대취한 채 비틀비틀

아픔만이 그득한 절규를 토해낸다.

, 가난한 포구의 불빛들

하나둘 쓰러지는 시간,

어둠 속, 비릿한 새 삶을 열고자 귀를 적시는구려.

그래도 더 많이 믿어볼 걸 하며






우수상       시 ‘큰부리고래의 꿈’          이주영(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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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본적 / 김선옥 

 

"내일 비가오지 않으면 불가사리 작업합니다"

 

세금미납 안내나

상수도 공사로 인한 불편 전달을 생략한

구만리 아침방송

샛바람 허릿등 언덕에 바짝 엎드린다

 

등만 부풀리다 뇌를 삼킨

별불가사리 울음은

벌래 골짜기 당산목 허리를 휘어감아

초승달 모서리에 꽂힌다

 

별을 밟던 발자국 캄캄한 우주로 사라진 뒤

방파제에 말라죽은 별불가리 떼

페가수스 등을 타고

뭇별로 뜨고

 

해당화 모가지 길어지는 새벽

보리밭 비탈진 구만리에 순장한다  

                                                

 

 

 

 

푸른전설을 보셨나요 / 김선옥

 

해.와.달.을.보.고.싶.어

 

정말 볼 수 없나요 종일 사태 지는 백일홍 아래 서서 호수를 수제비 떠요 호수를 건너는 풀벌레 소리 일월사당 누각에 걸쳐진 벽오동 속에서 난분분하겠죠 명주비단 한 필로 건진 해와 달의 심장, 혹시 개기월식 때문 아니었을까요

아 그냥, 그냥요 딱총 같은 사내들이 해달못*은  통제구역이라해서,

푸른전설이 궁금하잖아요 왜가리 떼 울음으로 돌아선 천제단 빈터, 치자 빛 석양이 내릴 것 같아요 연오랑 세오녀 안부는 달을 몰고 나오는 병장에게 물어보죠. 수런거리는 숲이 문을 닫네요 내일은 보여줄거죠

딱총 같단 말 최소예요

                                                

  *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덕리 해병부대 내에 있는 해달못 (현재 일월지)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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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 이소연

 

아시다시피 똥물고기를 낳은 원효와 혜공은 물이 되어 흘러갔다 처음 배운 물고기의 유영조차 잊어버렸느지도 모른다 오어사의 연못은 장엄하게 예뻤으니까

 

구름사다리를 잘 알고 똥물고기를 잘 아는 저녁이 올 때

나는 그저 멍하니 물고기나 낚아볼까 물비늘 싱거워진 못에 손이나 씻어볼까

 

내가 낮에 다녀온 원효암에는 원효가 없다 원효는 연못 아래에서 배회한다, 허연 물 기침이 사위를 더욱 어둡게 만들어 간다 이곳에는 불경이 없다 목탁이 없다

 

팔월인데도 연못의 물이 차고 넘친다 오어사의 물고기가 차고 넘친다 물속이 파랑처럼 깊다

 

오어사는 무료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나는 물벼락에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물거울에 참회 젖은 원효를 생각한다

 

물 위에 삿갓을 쓰고 있는 원효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나는 집요하게 공포에 젖었다, 그날 밤 물의 꿈이 와서 내게 물고기 비늘을 입힌다 비린내가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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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포항소재 문학작품 공모전 최우수상

 

호미곶* 2 / 송유미(필명 유현미) 

―돌배

 

바다에 폭설주의보 내렸다.

먼 풍랑을 헤쳐 온 이끼 낀 돌배 한 척

언덕 위까지 날아온 새들이 선회하는

그 땅 끝에서 나는 호랑이 꼬리로 찰싹거리는

삼국유사의 바다를 더듬더듬 읽고 있었다.

어떤 이가 그 배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것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가 내 귓속에 대고

달과 해를 삼키고 난파한 저승배라고 했다.

어떤 이는 밤에는 죽비 같은 달빛이 하얗게 쏟아진다고 했다.

낚시꾼 하나 온종일 수평선을 묶었다 풀었다 했다.

유배 온 선비 닮은 바람은, 조용한 붓질로

헬 수 없는 허공에 갈매기 몇 마리

멋지게 그려 놓고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그리움들은

이 바다에 와서 깊어 가길 마다하지 않는가.

밤하늘의 아기별들은 할 말이 무척

많은 입술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바다도 밤이면 꿈길이 답답한 듯 돌아눕는가.

문득 등을 돌린, 바다 한 장

온몸을 구기며 오래오래 발밑에 와서 흐느꼈다.

생각하니 나 고향바다 너무 멀리 떠나 살았다.

이제 그만 돌배야 길을 떠나도 좋겠구나.

비단으로 짠 세오녀의 달과 해를 싣고서

미명의 저편에서 그대 손짓하는 그곳으로…

 

 * 호미곶은 호랑이 형상인 한반도의 꼬리에 해당하며, 이곳에 『삼국유사』에 나오는 영일만 배경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 조각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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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포항소재 문학작품 공모전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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