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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시흥문학상’ 수상자

* 대상 한상식(벽화사진을 보며, 양산)
* 금상 심윤선(십자수, 안산)
* 은상 서은진(관망하기, 시흥)
* 동상 강명자(어미낙타의 눈물, 창원)

 

 


벽화사진을 보며 / 한상식(대상)


신문 하단에 난 고구려 고분 벽화사진을 본다

수레에 탄 채 손에 부채를 든 관리를

축(軸)으로 기마병과 사수와 손도끼를 든

무사들이 있고, 수레 뒤엔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흰 옷을 입은 하인이 봇짐을 지고 수레 뒤를 따른다

용문신처럼 화려한 옷에 온갖 장신구를 몸에 단

관리는 왕의 부름에 평양성으로 왕을 알현(謁見)하러 가는 것일까

고향 집 노모의 병이 깊어 병문안을 가는 것일까

수레가 엉덩이를 들썩일 때마다 뿌연 흙먼지가 갈기를 세우는 길을 가며

그는 왕의 용안(龍顔)과 노모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렸을 것이다

수레바퀴에 툭, 툭, 튕겨나가는 토시 같은 그리움들을 헐어

그날 밤 등불 아래서 긴긴 편지를 썼을 것이다

한줄 쓰다 멈추고 또 한 줄 쓰다 멈추며 본

그 글 속에 그려진 한 여인의 화안한 얼굴에 가슴이 벅차 눈을 지그시 감았으리라

감은, 두 눈에는 차마 글로 쓰지 못한 곤지 같은 사랑이 살풋 어려 있었으리라

딛는 걸음걸음마다 닿는 눈길마다 제 맘 주며 길을 가는 벽화 속 사람들

그 사람들의 곱게 다문 입속엔 내 설익은 사랑이 여물어 가고 있었다


 

 

 

십자수 / 심윤선 (금상)

악다구니를 퍼내어 사랑고백하던 시절이
가을밤에 걸리었습니다
어깨 위로 소슬바람 앉아 위로해 주었으나
남은 것은 겨운 쓸쓸함입니다.
지난 밤, 엄마는 십자수 놓던 손을 내려놓았습니다.
부득부득 이 갈며 엄마가 지나온 흔적
빗질을 해댔으나
이번에 남는 것은 그리움입니다
뼛속까지 엄마의 노래가 차오릅니다
물에 담가 불려 주고 싶던 그 손으로
어여쁜 천사를 불러냈습니다
기억 언저리에 묻혀 있던 한 소녀를 만났지요
내게 손 내밀어 바늘을 쥐어주어
날개를 마저 달아주고
엄마를 만나고 오렵니다
바늘로 기워 넣은 슬픔이 한 자락에 모여들어
축축하게 젖은 날개마저 슬퍼집니다
다시 한 소녀를 만나
옹알이로 대화하고 싶어집니다
문득 가로등이 등을 돌려 나를 끌어 안아줍니다



관망하기 / 서은진 (은상)

아버지는 날마다
푸른 병 속에 들어 있는 기포를 마신다
기포는 아버지를 까맣게 야위게 하고
윗목에 드러눕게 했다
아버지는 점점 가벼워져서
텔레비전 화면 앞으로 붕 떠올랐다
우리는 기포만 가득한 아버지를 걷어치우고
드라마를 보았다
드라마에는 숙제가 없고 오늘도 없고
심지어는 내일에 닿지도 않았다
함께 어깨를 맞대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어느
날은 남자가 누워 있고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자식들이 나왔다
우리는 또 드라마를 보듯이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 남자와 그의 자식들은
아무도 울지도 웃지도 않아
불행해 보이지도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은 단 1분도 꺼지지 않았다


* 프로필
- 1974년 서울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
-1997년 계간 포스트모던 시부분 신인상 수상

 

 

 

 

 

어미낙타의 눈물 / 강명자(동상)

마두금*이여
우울을 노래하라
제 품에 받아들이지 않는 낙타를 위하여
모래바람 구슬픈 가락에 사막이 운다
돌아서는 마음도 어루만지는 성자처럼
오므린 마음 펴는 소리로 늙은 악사여
살아있는 사막
덩치 큰 그 심중에 기꺼이 꽂아라
흐르는 시간 뒤로
끔벅이는 눈동자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받들면
몸 돌려 나를 쓰다듬고
조용히 젖 물리는, 고분고분
몸 바치는 어미의 눈물을 보네
굶주린 시간 힘차게
그대 젖줄이 나를 키우네.

* 마두금 : 악기의 끝을 말머리 모양으로 만든 두 개의 현을 가진
몽골의 전통 현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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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아기의 햇살 / 변삼학

 

옆자리에 곤히 잠든 아기의 두 발이

가지런히 내 무릎 위로 넘어온다

송이버섯만한 낯선 두 발이 닿는 순간

내 시린 무릎이 

보온 덮개를 올려놓은 듯 따뜻하다

달리는 전동차가 요람인 듯 새근새근

잠든 아기의 얼굴이 갓 솟은 햇살 같다

지나는 역과 역의 길이만큼이나

더 퍼져 오른 아기의 햇살 때문일까

내 무릎이 한낮 햇볕으로 데워진다

꿈속의 꽃동산이라도 거니는 것일까

앙증맞은 꽃무늬 양말 속

꼼지락 꼼지락 햇살 발가락이 걷고 있다

몇 개의 역을 지났을까 중천쯤에 떠오른

햇살이 무릎을 지나 가슴속까지

봄볕을 나르는 듯 훈훈하다

온몸 그 훈김에 혼곤히 빠져있을 때

아장아장 돌배기 

내 손을 잡고 꿈속의 동산으로 이끌어간다

온갖 꽃 무리 속을 거닐며

그 많은 꽃들의 이름을 일일이 물어본다

저어기 저 노란 꽃은? 저어기 저 분홍 꽃은?

어느새 우리는 가족이었다.

 

 

 

 

<금상>

 

아내의 손톱 / 노점섭

 

하루를 짊어지고 온 허리띠가 느슨해지는 시간

석양은 하늘모서리부터 문을 닫고

담장 밑 붉은색 가득 담은 아가씨는

문 닫는 소리에 버려질 제 상처도 모르고

시집갈 날 기다리는 웃음을

아내는 저 웃음을 쇼윈도에 걸려있는 전시품처럼

뭇 사람들의 눈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풀잎 냄새같은 그녀는 손톱에 봉선화를 묻어놓고

10살 적 단발머리 소녀가 되었다 고

떨어지면 사라질 물방울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초경에 흐르던 선명한 색은 손가락마다 흘러

쇼윈도의 장식품이 되고 싶다 고

길거리 간판 색을 그려 넣고 있었다


신상품이 걸려있는 손끝마다

시계바늘에서 어제와 오늘이 출렁이는 소리

꿈나라에서 돌아 와 허물을 벗는 동안

교차로에서 부서져버린 10살 소녀는

첫 사랑 깔아놓은 장식품의 빛 좋은 색깔마저 허무러져

세월은 아픔이었는가


황혼은 선명한 그림자를 밀어내고

거울속에 비춰진 나이테의 수를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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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 장흥진


  택배로 온 상자의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방식으로 단단히 묶인 끈

보다못한 아이가 칼을 건넨다


늘 지름길을 지향하는 칼

좌석표가 있다는데 일부러 입석표를 끊어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서서 가시며

그 근소한 차액을 남기시던

어머니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분이었다


상자 속엔 가을걷이한 곡식과 채소가 들어있을 것이다

꾹꾹 눌러도 넘치기만 할 뿐 말끔히 닫히지 않는 상자를

가로 세로 수십번 이 비닐끈으로 동여 매셨을

어머니의 뭉툭한 손마디가 떠올라

칼을 가만히 내려 놓는다


힘이 들수록 오래 기도하시던 어머니처럼

무릎을 꿇고

밤이 이슥해지도록 상자의 매듭과 대결한다

이는 어쩌면 굽이진 어머니의 길로 들어가

아득히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린 날에는 이해되지 않던 험한 길 굽이마다

붉게 저녁 노을로 걸린 어머니의 생애

옹이진 어머니의 매듭같던 암호는

난해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풀어내고 보니

이음새도 없이 어머니의 길은 길고 부드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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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시흥문학상 입상자 현황


. 대상 --- 조현주

. 금상 --- 한명숙

. 은상 --- 김수정

. 동상 --- 박경애

. 우수작 --- 박순희

. 우수작 --- 전명순

. 우수작 --- 이문자

. 우수작 --- 윤영배

. 우수작 --- 김성기

 

 

 


부고 / 김수정(은상)


어떻게 여기 왔냐고 묻기도 전에

어떻게 유리창을 보지 않았냐고 묻기도 전에


새의 죽음이 화가 나서

부리에 꽉 낀 가지를 힘껏 빼내

려 해도 빠지지 않는다


쩍쩍 벌리고 있을 어린 새끼들과

오돌오돌 눈알 돌릴 것 같은 어미새가

서녘 놀 다 지도록 기다리고 있을텐데


알아야 가보든가 하지

알아야 가족에게 알려주기나 하지

가을 숲을 다 뒤져볼 수도 없고

이 부고를 어디에 띄워야 하나

지나는 새도 보이지 않고

개똥도 찾으면 없다더니

흔한 까마귀도 보이질 않네

오늘은


살아있음의 가벼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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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 하백수(대상)

1
티벳으로 한철 여행을 떠난
아내 대신 나는 살림을 한다

아내는 이 도시가 갑자기 납처럼 무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무료한 오후의 벤치, 표정 없는 가로수
틀에 박힌 상자에 담긴 위선의 꽃바구니들
아내는 아무래도 피부가 다른
이국의 거리가 보고 싶었을 거다

고갯길에 휘날리는 무수한 타르쵸를 보며
손길이 닿지 않는 經典을 새로이 꿈꾸고
비만에 익숙한 생의 한 자락을
바람에 훌훌 날려 버리고 싶었을 거다
만년설에 덮인 경계 없는 히말라야
그곳에 換錢할 수 없는 무욕의 발자국을 남겨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만 하던 관습의 시계를
춥고 서늘한 본래의 태엽으로 짱짱하게 감아
게으른 張力을 허공에 날아오르게 하여
생의 내리막길을 숨차게 山頂에 올려놓고,
사람의 마을로 들어가는 어귀에서
항아리 등짐으로 물을 길어 나르는 승려의 고행을
경건한 마음으로 만나고 싶었을 거다

아내의 힘으로 살아가는 온달에게
아내가 없는 빈집이란 폐가 같아서
여기저기 소음과 먼지가 천지로 쌓인다
화초에는 이내 가뭄이 들고 瓷器엔 꽁초의 탑이
밤마다 자리하는 것은 숙면이 아니라
그릴에 굽는 생선의 비릿한 茶毘와 벽에 부딪치는 선잠
끊임없이 오가는 인적의 초인종 소리 뿐

지금쯤 아내는 덜컹대는 버스에서 내려
창포와 유채꽃이 아름다운 티벳 어느 길가에 섰을까
神託을 내려주는 신성한 호수를 쳐다보며
환생을 찾아 떠도는 무색의 바람이 되어
寺院 안쪽 그늘에서 타오르는 버터램프의 불빛을
두 손 모아 간절히 별자리로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그새 햇빛에 까맣게 그을려
한여름 長席에 널린 검붉은 고추처럼
목이 타는 딱딱한 표정을 하고
함께 동행한 원주민 사내의 야릇한 눈웃음에
도취의 此岸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야채도 과일도 자라지 않는 황량한 터전에서
오직 보이는 건 하늘과 호수바다, 빙하의 계곡
사나운 바람이 숨을 고르는 오르막 고샅길
그 끝에 자리한 스투파, 첨탑의 그림자에 엎드린 나그네
하늘로 가는 길은 만년설 계단뿐인데

이른 아침 야크가 끄는 수레 위엔
버거운 생의 누더기와 業障이 가득 실려 떠나고
순례자들이 피워 놓은 쥬니퍼 향불 앞에
나이 어린 수도승이 굶주린 영혼을 말리면
눈먼 아버지가 언덕에서 구름소리를 듣는
아 티벳, 그곳에서 나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고
내가 부끄러워해야 할
해맑은 타인의 얼굴만이 눈부시게 마주할 터인데

무를 썰어 넣고
왜간장에 파 마늘을 다져 넣은
기교의 양념을 만들어 고등어 조림을 하고
들기름 발라 김을 굽고
대양의 참치를 묵은 김치에 목욕시켜
청양고추를 송송 빠뜨린 매콤한 찌개를 꿈꾸는
지상의 우리들 생애란 사실 단순한 모자 같은 것
몸에 맞지 않는 겉옷 같은 것
아무 때나 연기에 훅 날려버리고

길에 오른 순례자와 같이
야크가 이끄는 마차나 천막 버스, 가벼운 자전거를 타고
온몸에 파고드는 원시의 햇살에 오체투지한다면
나도 남에게 아름다운 타인이 될 수 있을까
후회 없이 세상을 적시는 한 점 비구름이 될 수 있을까

빈집에 온종일 햇살 모여들고
거친 바람에 휘날리는 정갈한 타르쵸가 보인다
내가 벗긴 육신의 살가죽 높이 나부끼며
바람에 잘도 마른다

2
아내는 어제 빗방울로 카트만두에
도,
착,
했,
다,
고,
서풍에게 전해 왔다


 



운해 / 손일호(금상)

 

쉬어가듯 소리없이 누워있는 골짜기에
하얀 소복의 雲海가 머물고 있다
매정히 흐르는 시끄러운 물소리도
젖은듯 깨어버린 새소리도
그에겐 방해가 되지 안나보다

부끄러운 아낙의 속곳을 감추듯
살포시 고개내민 검디 검은 쪽빛속에
밤새 울어버린 지친 대지의 結晶이
눈물되어 떠 있나보다

답답한 한세상 솜처럼 덮어버라고 싶어서
그렇게 소리없이 떠 있나보다

온열을 느끼는지
하나 둘 옷을 벗는 처녀의 목마름처럼
그도 그렇게 스러짐을 보면서

욕망도
지친 삶도
절절한 사랑도
흔적조차도 과거처럼 용서하며
서편 하늘에 짙게 드리워진 슬픈 그림자에
체념하듯 그렇게 묻어 버리나보다






삶,풍경 / 유택상(은상)

삶의 강줄기를 따라가면
구불구불한 물굽이를 타고 오르내리는
시원한 바람을 만난다
길이 갈라지는 삼각주에서
나의 삶을 따라가는 강줄기들은
나뭇잎 몇개 등에 업고 내려가곤 한다
처음엔 햇살에 등이 붉어지도록
내가 가야 할 풀밭 길을 홀로 걸었다
강둑 아래로는 여치며 쓰르레기의 울음들이
흩어져 떠내려 갔고 나는 커다란 돌무덤 아래서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몇 번을 소용돌이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강둑 위를 맴도는 유년의 불꽃놀이를 보았다
아,마른 풀잎들이 타들어 가며 내는 소리를
소리없는 물줄기가 깊게 흐른다는 것을,
아침 햇빛에 검게 빛나는 강둑의
오랜 세월 동안의 고통을,
나는 삶의 중심과 흐르면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몸에 걸친 것들을 모두 벗어 제치고
치부를 가렸던 나뭇잎마저 치워 버렸을 때,나는 보았다
나의 삶을 따라가는 물줄기들이
밑바닥부터 용솟음치는 것을,






겨울.월곶 / 장재희경(동상)

한때 깊은 바다 밑면 헤아리기 어려웠었지, 버얼건 햇덩이 뭉개
진 수평선 너머로 뚜-욱 지곤 하는데, 오래 전 닻을 내려 뻘 밭 깊
이 고뇌를 묻고 더께로 녹슬고 있는 해묵은 폐선, 등거죽 허옇게
소금끼 말라가고 있다. 감출 것도 드러낼 것도 없이 키 낮은 어깨
에 마음을 기댄 채 목청 높여 걸판지게 부르던 육자배기, 언제부턴
가 가고 오지 않는 썰물, 물에도 길이 있었던 걸 기억하나?
바닷물 가두고 물푸게 힘차게 돌리며, 소금가마 지고 나르던 짜디
짠 기억들 접고 이제 간판도 없이 삭아가는 저 선술집, 처마 끝
햇살만 기웃대고 등 굽은 노인 남루를 꿰차고 앉아, 곰방대 들이키
는 것도 힘겨워 하네, 깊어진 주름마다 저! 세월의 끝 돌아보게 하
네, 저만큼 둥싯 섬하나 떠 있었던 걸 기억하나, 어쩌면 무심한 야산의 끝이었는지도 몰라, 바람이 차다 해풍이랄지 몰아치는 기세 등등한데, 죽음의 빛깔인가?
소금창고 어두운 그림자만 내 앞에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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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상  

 강연복

   나무, 비탈길이 되다

울산광역시

 금 상

 이희섭

    고춧대  

안양시

 은 상

 김영은

    호  소

부산광역시

 동 상

 이상미

    회  귀

서울특별시

 

 

 

 

나무, 비탈길이 되다 / 강연복

오래된 나무가 누웠다
숲 속 자그마한 길을 가로질러 길게 누웠다
그러자 바람은 사나운 본색을 감추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번쯤은 편안하게도 보이는
슬프거나 그립게 누운 나무의 마른 등 위로
눈먼 새들이 밟고 다녔다
기억처럼 각인되던 발자국은
젖어가고 녹아가고 굳어가더니
급기야 쩌억 갈라진 마른 등에 검은 채찍자국을 새겨넣었다
황사 바람처럼 매운 채찍자국
지친 나무는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었을까
거름처럼 햇볕이 내려앉고
생각의 주름을 달고 있는 벌레 하나가
열심히 흙을 부추겼지만
나무는 끝내 잎을 피우지 못하였다
아, 썩은 물도 빨아올리지 못하는 뿌리
푸른 이끼들만 잠을 자는 고독한 껍질이 나무가 아니듯이
잎을 피우지 못하는 나무는 더 이상 나무가 아니지 않는가!
나무, 비탈길이 되었다 서서히 차가워졌다
지난날 길목에 누워있는 너를 무수히 밟고 다녔었다
앙상하게 굳어가는 너를 무심히 바라보았었다
이제 후미진 골목 곳곳에 비탈길 너가 눕고 있다
얇은 발목이 욱씬거려 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너의 시선 너머로
후드득, 쓴 기억같은 새 한마리 날아오르고
비스듬히 누워가는 나는 더 이상 나무가 아닌 듯
눈 먼 다람쥐가 징검다리 삼아 밟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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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 이혜순


그 집에는 여러 개의 쪽방이 있다.

밤마다 살아온 내력만한

소리들이 산다

오래 전 논두렁에 두고 온

꿈을 그리는 취기소리와

고장 난 기계처럼 쿨럭이는 기침소리와

공사판을 떠돌다 휘어진

뼈마디 앓는 소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세상을 향해 투쟁가를 부르듯

소리들은 밤마다 목청을 높인다

지칠 줄 모르는 높고 낮은 음들을

쉼 없이 쏟아내며

집안 가득 음표들을 채운다

문틈으로 흘러나온 음표들은

밤새도록 동네를 떠돈다

시위대처럼 골목골목을 누비며

닫혀진 사람들의 귓속을 파고든다

오래도록 사람들 가슴속에서

잠들어 있던 빛을 깨운다

어둠을 밀어내며 아침이 오고

소리들은 다시 버려두었던 꿈들을 찾아서

햇빛 속으로 흘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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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시흥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오이도 포구에서 / 박주영

바다는 나보다 먼저
비우는 기쁨을 알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
꽁꽁 동여맨
가슴을 활짝 열고

가득 채워야 안심을 하는
인간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갯벌의 바다는
아낌없이
나누어 주고 있었다.

살아서 펄떡이는 목숨
천진스런 아이들의 환호

바다는
채우는 즐거움보다
나누어주는 행복을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비웠기 때문에 채울 수 있는
삶의 지혜
나보다 바다는 먼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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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곡지에서 / p r a h a

 

 

 

꽃 핀다, 꽃 피어난다 / 김경성

  

이미 꽃 진 지 오래된 연밭을 찾아 나섰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연잎들

토굴에 들어가서 수행자가 된 연꽃 씨앗, 

제 몸 말리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토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몸속 깊은 방, 문 열어놓고 

진흙 속으로 떨어지는 뿌리의 긴 시간을 위하여

연잎은 몸 꺾고

둥근 잎 오므려서 몸의 소리로 장엄한 연주를 한다

내밀한 향기로 울림을 주던 시간은 이제 없다

사라지는 것들은 몸속의 것을 다 비워낸 후

제 몸을 울려서 피 울음 같은 소리를 낸다

적멸한다는 것은 저토록 진한 핏빛 눈물 말리는 것이었음을

몇 천 년 후 다시 맑은 연꽃잎 펼칠 수 있음을

제 몸을 두드려서 내는 소리 연밭 가득 퍼지고

그 소리 들으며 토굴 속 연꽃 씨앗

하나 둘 씩 진흙 속으로 뛰어내린다

씨앗 한 개 주워서 입술 대어본다

천 년 후 어느 날  해 질 녘,

은유의 바람으로 세상 적시고 있을 때

꽃 핀다, 꽃 피어난다 

어화둥둥

내, 꽃 입술 찍어놓은 연꽃 피어난다

 

 

 

제 9회 시흥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출처 : 바람의 궁전
글쓴이 : 프라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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