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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아기의 햇살 / 변삼학

 

옆자리에 곤히 잠든 아기의 두 발이

가지런히 내 무릎 위로 넘어온다

송이버섯만한 낯선 두 발이 닿는 순간

내 시린 무릎이 

보온 덮개를 올려놓은 듯 따뜻하다

달리는 전동차가 요람인 듯 새근새근

잠든 아기의 얼굴이 갓 솟은 햇살 같다

지나는 역과 역의 길이만큼이나

더 퍼져 오른 아기의 햇살 때문일까

내 무릎이 한낮 햇볕으로 데워진다

꿈속의 꽃동산이라도 거니는 것일까

앙증맞은 꽃무늬 양말 속

꼼지락 꼼지락 햇살 발가락이 걷고 있다

몇 개의 역을 지났을까 중천쯤에 떠오른

햇살이 무릎을 지나 가슴속까지

봄볕을 나르는 듯 훈훈하다

온몸 그 훈김에 혼곤히 빠져있을 때

아장아장 돌배기 

내 손을 잡고 꿈속의 동산으로 이끌어간다

온갖 꽃 무리 속을 거닐며

그 많은 꽃들의 이름을 일일이 물어본다

저어기 저 노란 꽃은? 저어기 저 분홍 꽃은?

어느새 우리는 가족이었다.

 

 

 

 

<금상>

 

아내의 손톱 / 노점섭

 

하루를 짊어지고 온 허리띠가 느슨해지는 시간

석양은 하늘모서리부터 문을 닫고

담장 밑 붉은색 가득 담은 아가씨는

문 닫는 소리에 버려질 제 상처도 모르고

시집갈 날 기다리는 웃음을

아내는 저 웃음을 쇼윈도에 걸려있는 전시품처럼

뭇 사람들의 눈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풀잎 냄새같은 그녀는 손톱에 봉선화를 묻어놓고

10살 적 단발머리 소녀가 되었다 고

떨어지면 사라질 물방울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초경에 흐르던 선명한 색은 손가락마다 흘러

쇼윈도의 장식품이 되고 싶다 고

길거리 간판 색을 그려 넣고 있었다


신상품이 걸려있는 손끝마다

시계바늘에서 어제와 오늘이 출렁이는 소리

꿈나라에서 돌아 와 허물을 벗는 동안

교차로에서 부서져버린 10살 소녀는

첫 사랑 깔아놓은 장식품의 빛 좋은 색깔마저 허무러져

세월은 아픔이었는가


황혼은 선명한 그림자를 밀어내고

거울속에 비춰진 나이테의 수를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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