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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어느 전시회  / 박노혁
 


살아온 시간들은 소멸되지 않는다.
 
기억들은 집을 짓고
저마다의 마을을 이루며 살아 가고 있다.
때로 길이 끊어져 영원히 갈수 없는 별이 되었다해도
그곳에서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하여 삶이 잔잔해지는 어느 늦은 오후에
꿈틀거리며, 기억들은 시간의 문을 두드린다.
 
유년의 마당에서
젊은 아버지가 나를 목마 태우고 환하게 웃고 서 계신다..
나의 첫사랑이
목련나무아래 기대어 낙화처럼 손짓하고 잇다.
바람의 자락을 잡고 춤추는 보리밭
작은 새와 잠자리, 나비. 양떼구름. 붉은 입술처럽 번지는
버들피리 불며 뛰어놀던 기억의 능선.
 
지나간 시간은 스쳐지나온 액자속의 그림들처럼.
차곡차곡 기억의 마을로 사라져 가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하는 날
밤하는 별들처럼 하늘 한켠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으리라.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여..

 

 

 

금상

 

누이가 오래 된 집으로 걸어온다 / 김영호


1.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장맛비에 젖는다 세족식처럼 길이 씻긴다 가로등 불빛이 울음을 그친 눈빛 같다 실직한지 오래인 아버지 우중충 젖은 벽지에 한숨이 머리를 박는다 책가방이 흠뻑 젖어있다


2. 

 몇 시간째 눈이 내린다 꿈의 세계로 달려가던 밤이 나침반을 내 던지자 장판 아래 어두운 구들 틈새 사이를 비집고 그림자도 없는 일산화탄소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창백한 꿈속에서 차례로 기어 나온 동생들과 누이가 윗목에 엎어진다 한 장씩 늦은 책장을 넘기던 내 눈에 아슬아슬한 뉴스의 한 장면이 스친다 어디선가 북 소리가 불안하게 울린다 하늘에 오르지 못한 하얀 눈이 쓸모없는 날개처럼 굴뚝에 처박혀 있다


3. 

꺼지지 않는 연탄불은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이다


소리 없이 시작되는 연극처럼 

새벽을 연 어머니  

부엌에서 밥솥의 하얀 김이 안개의 발원지처럼 솟고

끼니마다 상에 오르는 콩나물 냄새가

문틈 사이를 지나 동 트기 전 어두운 새벽을 깨운다

 

연탄불에 엉덩이를 댄 세숫대야엔

언제나 조용히 물이 끓고 

그 물을 아끼며 식구들이 차례로 잠을 털어낸다


창호지에 찬란한 아침이 드리우면

오늘의 기대감이 외출 할 시간이다 


4.

 오래 되어 거뭇한 손과 어두워진 눈이 바늘귀에 실을 꽂듯 고등학교를 졸업한 누이는 우유회사 꿈 많은 스무 살 신입사원이었다 적은 월급이 대나무 살처럼 가늘게 쪼개져도 누이의 얼굴은 늘 갓 따온 채소처럼 파랬다 서른을 넘겨 만난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 사내를 따라 미국으로 간 누이의 목소리는 일요일이면 어머니의 안부를 살피기 위하여 안방에 나타났다 바람난 그 사내가 언젠가 집을 나갔다는 말이 송곳 같았다 뜨거운 연탄불같은 사랑으로 아들을 키우는 누이의 한 쪽 턱이 헤쓱한 하현달처럼 차츰 기울어갔다


누이가 오래된 집으로 걸어온다 선인장 화분에서 백년에 한번 피는 보랏빛 꽃이 봉긋 솟아오른다


 늘 끼고 살던 시집과도 멀어진 듯한 요즘이다. 진달래 피고 뜰앞에 백목련이 눈부시게 피어나니 자구만 옛생각에 젖어든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시를 읽는다. 김영호의 '누이가 오래된 집으로 돌아온다'를 읽으면 가슴 아래께에 아득한 통증이 느껴진다.
 

 

 

 

우수상

 

그 여자의 바다 / 김명숙

 

바다가 길을 내어 놓는다


포구를 떠나간 사내가 돌아오지 않자

바다를 통째로 마시겠다던 그녀

사내를 기다리다 썰물이 되어 나섰다


바다 끝자락까지 가면 사내가 있을 것 같아

질벅한 갯벌의 사타구니도 마다하고

수평선을 향해 내닫는다

 

바다만 바라보다 섬이 되고팠던 여자

그 사내에게만 치마를 벗고 싶었던 여자

덕지덕지 바위에 붙어 있는 따개비 같은 상처가

그녀 안에서 구획을 넓혔다

 

뚝심 좋은 사내가 미끼를 던져도

아랫입술 질끈 깨물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던 날들이

그녀 앞에 쌓여갔다, 깻단에서 깨 쏟아지듯.


섬을 떠난 그녀,

어부가 된 남자의 바다가 된다

 

 

본심 심사위원 약력

 

심사위원장 / 조병무

 

시부문

조병무. 평론가, 시인

호는 평리(平里) 함안 고향, 마산 성장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대문학’(‘63-’65) 문학평론으로 등단.

수상 :

현대문학상. 시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본상. 동국문학상. 조연현 문학상 등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협회 부회장.

‘96문학의 해 기획팀장 및 기획분과회장,

군포문인협회 회장.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현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 및 평의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군포신문 논설위원,

저서 : 문학평론집 : 『가설의 옹호』『새로운 명제』『존재와 소유의 문학』『시짜기와 시쓰기』,『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문학작품의 표현과 기술』『한국소설묘사사전(전6권)』

시집 :『꿈 사설』『떠나가는 시간』『머문 자리 그대로』, 수필집 『니그로오다 황금사슴』『꽃바람 불던 날』『기호가 말을 한다』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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