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최우수상] 고패질 / 최류빈

 

후박나무 밑동에 손금이 오른다

곡면으로 직히는 도끼의 말

죽은 나무 깊은 협곡, 진한 생명선으로 남아

너의 찬란한 운명을 증명하고 있다

여린 살 비워갈수록 물고기가 태어나

비늘을 털고 잎처럼 매달리는 논센스

파랑을 건너온 이파리가 천칭처럼 흔들린다

바람의 주술로 총소리 분분한 소리복채

한 쪽으로 기울수록 반대편이 고갤 드는데

나는 땅의 말로 묻히고 너는 오르는 도끼처럼

하늘에 걸리는 달그림자다

아픈 도끼를 뽑아올릴 때마다 살이 자라는

우람한 나무다

너는 짐승처럼 솟아 도끼에게 포효하고 있다

날이 스친 빗면이 조각하는 을씨년스런 표정

죽어 얼굴로 내걸린 너는 신이랴

침략당하면서도 음각으로 호통을 치는 후박나무 일생

파리한 도끼를 아예 뽑아 들고는

복판에 천하대장군, 살을 덜어 양각 오롯한 너

울툴한 겉껍질 사이로 실금처럼

핏물이 흐른다

 

 

 

 

 

[우수상] 무궁화 식당 / 이정희

 

달걀형 무딘 톱니로 허공을 밀어 젖힌다

 

바람의 속살을 휘어잡고

꽃이 되기 위해 뜬구름을 선택했다

빨강보다 연보라를 매단 죄

손에 물마를 날 없이 움직였다

밑 부분이 더 짙은 단심 그늘

종형의 짧은 잎자루처럼 지루한 나날들

 

울타리가 되기로 한 날로부터 한식집을 열고

화려한 자태보다

날마다 싱싱한 꽃을 피우며

꺽이지 않는 섬유질처럼 살기로 했다

 

삼천포 부둣가 허름한 골목에서

스스로 터득한 비법

새벽마다 부풀어 터지는 꽃잎으로

신선한 꽃밥을 차렸다

간발의 차이로 어긋나는 맛과 사투를 벌이며

우툴두툴한 세상 둥글게 말았다

 

검붉은 저녁놀을 즐길 여유도 없이 

종종걸음 치며 내일을 준비한다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메뉴

수시로 진딧물이 달려들어

뒷덜미를 낚아채고

디딤돌마저 건들리기 일쑤

 

빛바랜 잔가지 끝에 레시피를 눌러 적고

갈색 풍미를 곁들인다

푸른 핏줄이 이슬 고여 젖은 눈망울

날갯죽지 파고드는 벌새다

 

보라색 꽃을 매단 푸른 건물

군데군데 마른 얼룩이 찍혀있다

햇살을 건너가는 초록 발톱

내일 아침 환한 꽃이 조식이다

 

 

 

 

 

[우수상] 발로 깍은 나무 / 권효은

 

바람이 말하더군요

이 의자는 참으로 곱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고울까

작은 새도 동동 구르며 무게를 덜고

그 위의 이슬도 미안하여

나이테를 돌고 돈다고요

 

시시 검은 두발은 나무를 안고

발가락에 쇠를 얹어

노수의 심장을 두동강 내셨었지요

아픔을 가리는 것은 허공 속의 화약

온통 잡히지 않는 것뿐

머리 위에 내려앉은 어린 솔잎조차

털어내지 못하는

당신을 보며

나는 원망하였습니다. 조국을

그리고 평화로운 타인의 삶을

 

동강난 나뭇가지는

곧게 뻗은 또 하나의 복사뼈

발가락 사이로 고개 내민 풀이며

손이었다면 향기가 없어 뜯어낼 욕심이겠지요

아, 이토록 너그러운 당신

 

아버지

아버지가 만든 발로 깎은 나무는 의자가 되었습니다

의자의 주인은 없지만

천공을 벗겨 내려앉은

저 빛의 줄기도

감히 바로 앉지 못하는

당신의 훌륭한 의자입니다

 

고요한 푸름이 찾아옵니다

이곳에 앉아 계시던

아름다운 어느 날처럼

 

 

 

 

 

 

[장려상] 나비무덤 / 최다혜

 

할머니의 눈가에는

나만 볼 수 있는

나비무덤이 있다

 

죽은 흰나비의

요람이다

 

나비는 할머니의 눈가를

거닐기도 한다

나비의 발자국은 검버섯이 됐다

 

가끔은 날갯짓을 세게 해서

할머니의 눈가를 젖게 하고

 

가끔은 날갯짓을 적게 해서

할머니의 눈가를 주름지게 한다

 

그 주름 사이로 다니며 할머니와

40년을 보냈다

 

할머니는 오월이

겨울같은 봄이라고 하셨다

죽음같은 봄

 

동네에 향냄새가 그득한 오월이면

흰나비는 요람에서 나오지 않았다

흰나비가 요람에서 나오지 않아도

할머니의 눈빝 반달은 늘 젖어 있었다

 

군복입은 손자를 보며 흠칫하던 할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기덮인 나무관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던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한다

잊으라 하면서 떠나지 못하는 흰나비의 

마음을 생각한다

오랫동안 거세된 그 슬픔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의 슬픔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심연의 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누구도 그 봄에서 멀어지지 못했다

 

언제쯤 흰나비는 요람에서 잠을 잘까

언제쯤 향냄새 나는 날에도 할머니 눈밑

반달이 메마를까

 

어쩌면, 이 생에, 못이룰, 일 들

 

 

 

 

 

 

[장려상] 탕 안의 전사 / 김동은

 

세월의 깊이가 천장에 붙어

또옥, 똑 떨어지며 비 내리는

공중목욕탕 구석엔

강원도의 굴곡진 철책선을

이마 깊이 착색한 노인이

6월 내내 몸을 닦고 있었다

 

흙의 온도가 피처럼 뜨거워지는 날이면

태백산처럼 굽은 등허리에 돋은 상흔이

가슴 깊이 파고들어 울음조차 토할 수 없다고 했다

한 때 굵은 잔뼈였던 앙상한 둔부를 이끌고

탕으로 기어오르는 노인의 허리춤에는

알 수 없는 이름들이 주름과 함께 늘어져 삐걱거렸다

 

탕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연기에서

때로 화약 냄새를 맡는다고,

38도C 따뜻한 탕 안의 물결 아래

전우의 얼굴이 발가락 사이를 찰방거리며

늙그수레한 몸의 진땀을 쫙 빼 놓는다고 했다

살갗에 닿는 회상의 파동이 잠잠해질 때면

노인은 탕에서 내려와 끝도 없이 몸을 씻었다

피 냄새가 난다고, 내 몸에서 자꾸 피 냄새가 난다고

 

아득하게 번쩍거리는 총부리와

거칠게 떠안은 책임의 삯은

듬성듬성 빠져 볼품이 없어진

백발의 머리칼을 흩트려 놓았다

희어진 입가에 떨리며 흘러나오는

전설이 된 꽃의 노래는 전사가 되어

돌 뿐인 탕 안에, 낮고 흥건하게 미끄러졌다

 

수건으로 조심스레 떫어진 입가를 훔치고

해독할 수 없는 상처를 보듬어 닦는

노인의 가냘픈 뒷모습은 고독한 숙명처럼 장엄했다

 

 

간판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낡은 목욕탕 출구를 나서며

구식구식 이름을 꿰매어 붙인 노인의 등에는

회수하지 못한 영혼과

빛처럼 흩어진 살점들

속 깊이 허기진 혼잣말

적막한 전사의 마지막 모습이 반짝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