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개선가 / 김강인
할머니,
이제 생의 군화를 벗고 퇴역하시네
호상이었다
일생 땅에 엎디어 사신 할머니
씨름판에서
황소 한 마리씩 몰고 오던 남편이
구름만 떼로 이끌고
한 줌 군번줄로 귀가한 날부터
임전무퇴의 참전용사였다
가을마다 수확하던
그리움이 할머니의 전투식량
홀어머니 아래서
자식들은 서로를 기르고
종일 깨 줍던 손으로
밥상 꾸리던 날과 밤마다
포화 소리 한 뼘씩 멀어지고
상실은 정물로 굳어갔다
4남 1녀, 막내까지 먹이고
입혀 가르치는 일이 고지였고
논피처럼 솟아나는 외로움이
일생의 주적(主敵)이었으니
퇴로는 없었다
스뎅 밥그릇이 철모요 밥상이 진지인
치열한 전장에도
봄은 어김없이 발발하여
꽃잎이 탄피처럼 흩어졌다
평화가 향기롭게 날리는 등교길에서
큰아들 뒷모습 점차 남편을 닮아갔다
키는 더 크겠지, 하지만
계절마다 벌어지는
궁핍과의 게릴라전
수시로 쌀독이 헛헛했고
허기는 연습할 수 없어서
매 끼니가 실전이었다 그런데도
아들들은 우람했다
그들의 등과 어깨가
최고의 무공훈장이었다
막내딸은 깍지 속의 콩처럼
하냥 뽀얗고 조그맸으나
동네 사내애들과도 드잡이를 했다
과연 용사 부부의 막내였다
시간은 가장 든든한 아군이자
치밀한 적군이었다
할머니의 부대원들은
각개전투를 위해 차례로 출전했다
막내가 제 몫의 운을
총검 대신 들고 떠나간 날
군영은 비고
할머니는 노년의 초소에서
종일 보초를 섰다
전리품은 몇 소쿠리의 적막이었다
혼자 불침번을 서던 새벽
수십 년 전의 남편이
군화 끈을 고쳐 묶으려
꿈의 대청마루에 걸터앉았다
할머니는 헐거운 흑색 끈을
다 풀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꿰었다
아주 천천히, 더디게
포성이 그치고 휴전선이 그이고
막내가 시집가던 늦가을까지 등목
꾸물거리면서
아무도 떠나지 않는 꿈
이제 육신을
묵직한 전투복처럼 벗어두고
가볍게 발돋움하여 떠나는 할머니
한 생의 종전(終戰)을 알리며
바람이 분다
잘생긴 황소 구름 한 마리 끌고
먼저 봄이 된 남편이
하늘 어귀까지 마중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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