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보훈문예작품공모전 시부문 당선작] 이태학 외
최우수상
가장 아름다운 신부 / 이태학
아버지, 당신의 마지막 전투가 있던 날
금화지구 골짜기에 퍼붓던 총탄처럼
새벽까지 세차던 빗줄기는 멈추고
새파란 하늘 아래 현충원의 휘장들이
만장으로 휘날리는 오늘
어머니를 당신께 보내 드립니다
산딸나무 하얀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날
육십삼 년의 서러운 그리움으로
아버지의 유산이 되어 무겁게 반짝이는
비석의 문을 열고 보내 드립니다
죽음과 수절이 숨바꼭질하며
가슴을 치던 수많은 날들
스치는 바람이 흔드는 문소리에 행여 당신인가
설레임과 두려움에 문을 열던
어린 남매와 청상의 트라우마를 지우고
오늘 어머니를 보내 드립니다
탁자 없이 의자만 있는 거실처럼
늘 어색하고 허전했던 긴 세월들
보이지 않는 눈총에 쉽게 마음 다치고
주눅 들던 유년의 날들보다 더 초라했던
우리의 구멍가게와 어머니가 누워 계셨던
호스피스 병동은 기억하지 마십시오
오늘 육십이 넘은 아들의 친구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의 신부를 운구하여
한 삽의 부토를 얹습니다
어머니의 애틋한 새벽기도와 찬송이 멈추었듯
아버지의 간절한 외출도 휴가도 끝나
귀대 시간이 다가오는 병사의 근심은 없어도 됩니다
아버지, 이제 무거운 짐을 놓으시고
긴긴 날 그리웠던 당신의 신부와 함께
새로운 설레임으로 조국을 지켜봐 주소서
영원한 푸른 병장의 군모를 쓰고
현충원의 길목에 나부끼는 휘장처럼
펄펄 웃으며 어머니를 맞아 주소서
우수상
태극기 / 박세령
그것은 불그스름한 해 위에 어렴풋이 놓여
있기도 하고
때론 새벽녘 시퍼런 안개 위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시꺼멓게 보이게도 하고
때론 새하얗게 보이게도 합니다
그것은 당신과 꿈을 그렸던 곳과도 닮았고
때론 당신의 이름을 적었던 곳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어깨에 고인 빗물과도 닮았고
때론 따듯한 난로 같은 당신의 손과도 닮아
있습니다
남들은 나에게 사랑을 하냐고 묻습니다
아니요…
저는 약은 사랑보다
어리숙한 그리움이 더 좋습니다
불타 없어지는 게 사랑이기에
물처럼 고여 있는 그리움이 더 좋습니다
과거에 묶여 현재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그리워하여 현재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믿기에
나는 아직도 그를 많이 그리워합니다
우수상
진혼곡 듣다 / 윤옥란
참매미 한 마리가
골 파인 대추나무를 움켜잡고
날개 밑 꽁무니를 바짝바짝 들어 올린다
몇 번은 목 메인 소리 내다가
한 번은 할아버지 퉁소 소리처럼 길게 뽑아내는 매미,
날개를 수백 번 부딪치며 빠져나갔을 붉은 목청이
잠시 삼매경에 든 것인가
저리 가늘게 떨면서
하소연하듯 울어 대는 것은
한쪽 다리 절룩거리는 큰아들 한숨소리 같다고
군용 지프에 깔려 돌아가신 할머니의 원성 같다고
할아버지 퉁퉁 부은 눈으로 대추나무를 바라보신다
참매미 입이 갈라지고
눈이 튀어나오도록 우는 것도
먼저 간 이름들을 외우며
마흔아홉 번씩 염불 올리는 것이라고
찢어진 날개를 달고
영가 천도재 올리는 것이라고
매미 울음 끝나는 말복 때까지
대추나무를 찾아온 할아버지
등 휜 대추나무 밑에서
먼저 간 이름들 부르며 진혼곡 들으신다
우수상
전선야곡戰線夜哭 / 박준일
숨 막힐 듯 고요한 밤에 철책선을 앞에 두고
그 너머 북녘 땅을 멍하니 바라본다.
어깨 위의 보름달이 머리까지 올라와
한 줄기 월광 되어 나를 비출 때,
고요한 적막 속 내 가슴의 목소리는
그날의 함성 되어 온 산을 깨운다.
저 산 너머 고지를 지키려 울부짖던 전우들의 목소리,
가족과 조국을 위해 쏟아낸 그들의 피눈물이
새하얀 얼굴 위에 흐드러져 내리고,
그날에 멈춰 버린 표정으로 여전히 바라보고만 있다.
그 빛 속 담겨 있는 기억은 내 표정마저도 그날로 멈추게 하는데,
그날의 기억된 내 가슴의 목소리만이
신념으로 남아 흘러가고 있다.
적막을 가득 채운 그날의 기억처럼
머리 위의 달은 저물어 가지만,
여전히 흘러가는 내 가슴의 목소리는
언제나 멈춰 있을 그날의 얼굴로
다른 이들의 가슴에 떠오르기를
장려상
6월의 환患 / 안지숙
소년은 잃어버린 얼굴을 하나씩 뒤집어쓰고
하얗고 차가운 이마를 반짝이며
군화에 묻은 혈흔을 닦아 낸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탄환의 울림과
눈앞에서 사라져 간 영혼들의 눈물
우리는 작은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풍선인가
호명하는 이름마다 선혈이 그득한 밤
검붉은 입 속에 잠든 혀처럼
침묵 속에서 역사는 반드시 피어나리
유폐된 목소리들이 모두 모여서
숭고한 죽음으로 길을 닦는다
축축한 살 안쪽으로 고이는 어둠
수없이 흔들리며 가라앉는 교복의 이름표
발목에 매달린 그림자를 잘라 내자
허전한 자리마다 날개가 돋아난다
소년은 작고 까만 눈으로
단단한 어둠을 부른다
가족을 가슴에 묻고,
나라를 가슴에 품고,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군화를 닦는다
수없이 떨어지는 탄환들
암흑을 뚫고 나아가는 학도병들
그들이 지나는 자리마다
처절하게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난다
꽃잎을 물고 날아가던 새 한 마리,
붉은 노을 속으로 투신한다
흩날리던 꽃잎들이
봄을 수놓는 밤이다
장려상
송시送詩 / 박현주
청춘에서 굳어 버린 공덕을 기리며
이내 뜨거운 것이 눈앞을 가린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내뻗은 다리엔 아무 힘도 없었다.
비어 버린 탄창은 먼지만을 드리운 채 아쉬워하고
사신처럼 다가오는 육중한 전차의 궤도 진동은
손바닥이 터지도록 쏟아부은 포탄이 무색한 채 드리운다.
낙동의 강 너머 무사할지 모르는 가족들은
그토록 지키고 싶은 단 하나의 열망
지옥불의 아귀마냥 모든 걸 집어삼킬
흉포한 포탄의 총구 아래
가장 미약하나 신성한 단 하나의 방패가 되어 굳어 버렸다.
반세기가 넘도록 맹수는 짖기를 멈추지 않고
결연한 의지는 아들을 넘어 손자에게로 이어진다.
아버지가 자신이 있던 곳에 아들을 보내며 보는 것은,
그를 닮은 등판에 역사처럼 새겨진
굳어 버린 아버지의 의지,
그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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