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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나의 임이여 / 김주희

 

처마 끝 고드름이 녹아 낙숫물이 떨어집니다

그물이 흙바닥을 치고 또 치더니

그렇게 물웅덩이가 되었습니다

 

고드름 녹기 전 돌아온다던 당신의 말이

이내 맘에도 눈물 웅덩이가 되었습니다

 

텃밭 끝자리에는

민들레가 새치름하게 어여쁜 빛깔 물들이고

내 양 볼에는 세월이 깊게 파고들어 튀튀한빛이 물들었습니다

임자 고운모습 고이 담고 떠난다던 당신의 뒷모습이

깊게 패인 살사이 물 흐르는 소리로 허공에 흩어집니다

 

내 가슴팍에 파고들어

어미의 젖을 찾던 우리 아가는

당신이 쌓은 돌담만치 훌쩍 자랐습니다

 

아가는 까치발을 들지 않아도 돌담너머를 기웃이는데,

그 너머 끝 총탄 소리에 가려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나의님이여,

울부짖는 나라가 부르는 그 소리를 듣고

무거운 발걸음 가벼이 가신 나의님이여

 

달력에는 의미 없는 숫자만 야속하게 넘어가는데

뱃고동 소리 나는 어떤 이의 심장에

장전한 두 눈으로 총을 겨누어

해 뜨는 아침도 긴 밤이 되었습니까

 

아침이 오지 않아도

언제나처럼 하늘에는 뜨거운 빛이 물드는데

아침 알리는 암탉의 소리는 아니 들리고

귀를 찌르는 총칼소리가 아지랑이로 피어납니다

 

조약돌 나지막한 그 길에는

탄피가 삐죽히 자리 잡아

아이들 공깃돌이 되었습니다

 

긴 밤 임이 드리워진 군모 쓴 그림자 위에

무릎 꿇고 핏물어린 정화수에

총칼을 내려놓은 두 손을 모아 소원해봅니다

 

이 땅의 아침을 위해 힘겨운 발자국 남긴 나의님이여

군살 박힌 손에 태극기 쥐고서

끈 풀린 군화에 자욱한 먼지 털어내고

찬란한 태양 길 따라 걸어오는 임의 이마에 맺힌 아침이슬이

이 땅에 축복으로 가득해지기를

 

 

 

 

[장려상]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 표성배

- 육이오 전사자 유해 발굴에 부쳐

 

이 골짜기를 타고 넘는 바람이

왜 숨을 죽이는지

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날짐승들이

왜 날갯짓을 멈추는지

이리도 생생히 살아 있는 그대 앞에 서고서야

알겠습니다

 

그대 흘린 피 얼마나 뜨거웠으면

대지(大地)는 온통 황토 빛으로 빛나기만 했던가를

아직도 벗지 못한 군복이 하늘처럼 푸르러

반도의 산하(山河)는 이리도 미치게 푸르기만 한가를

 

그대 잃어버린 꿈이 무엇인지

이루고자 했던 소망이 무엇인지

수천 년 한 결 같이 흐르기만 하는 강물이

끊임없이 저 산맥을 타고 넘는 바람이

오늘은 대답을 준비 해야만 합니다

 

녹슨 철모를 반듯하게 닦아 봅니다

손대면 푸르게 푸르게 물들 것만 같은 군복을

가만히 어루만져 봅니다

 

조국 산천에 깃발처럼 나부끼던 그대 함성을

내 온 몸으로 듣는 중입니다

 

꼭 살아 돌아오마던 맹세를 지키기엔

참으로, 너무나 너무나 긴 시간이었습니다

기다림의 한숨이

저 산을 넘고 강을 건너기를 수십 년

그러나, 한 번도 잊은 적 없습니다

그대 흘린 피가 이 조국(祖國) 산하를

더욱더 푸르게 만든다는 것을

 

어찌 그 맹세가 거짓이겠습니까

아직도 스무 살 청춘인걸요

 

힘차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쪽빛 바닷물처럼

산하를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처럼

끊이지 않는 포성(砲聲)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그대 모습이 눈에 선하게 어립니다

 

이제 내려놓으십시오 홀가분하게,

붉게 녹슨 철모를

두 발을 붙들고 있는 군화를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소총을

저희들이 대신 그대들의 철모를 군화를 소총을

단단히 쥐겠습니다

 

조국은 언제나 그대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니, 조국은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반백년이 흐르도록 조국은

그대들을 편히 쉬게 해 주지 못했습니다

편히 감지 못한 두 눈 앞에 무릎 꿇고

이제야 고합니다

이 푸른 유월의 쪽빛 바다를

높고 높은 푸른 하늘을 마음껏 가슴에 품고

다시 꾸고 싶은 꿈이 있다면

강물처럼 바람처럼 꾸십시오

이제야 그대들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한

이 못난 저희들을 꾸짖어 주십시오

 

뚜벅 뚜벅 걸어서라도 가고자 했던

그대들의 꿈, 그 꿈을 꾸는

푸른 유월입니다

 

 

 

 

 

[장려상] 동작동에서 / 양해극

 

다부동

1950년

무너진 가슴안고

 

오뉴월

질긴 햇살

양산으로 가린 모정

 

두 손을

모은 명치에

한강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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