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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
-(중봉선생을 생각하며)
주석희
나는 지금 자작나무숲에 서 있다
함부로 휘지 않는 결기를 보고 있다
폭설을 딛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며
기어이 숲을 이룬
순결한 뼈를 눈이 부시도록 바라보고 있다
가지가 잘려나간 자리마다
검은 눈동자가 훈장처럼 박혀 있다
또렷한 눈동자 쪽으로 가만히 귀를 가져가 본다
< 탕-탕- 필사적으로 미끄러지며 한 남자가 자작나무 숲으로 뛰어든다 사냥개들이 분홍빛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미친 듯이 그를 추격한다 숲에 박혀 있던 새들이 까마득 허공으로 뽑혀 나가고 희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들 소스라치며 어지러운 눈빛을 다급하게 장전한다 >
그의 신음인가
차가운 바람이 은갈치처럼 숲을 헤집고 다닌다
나이테에 박힌 총상이 바람 소리로 가벼워지는 중이다
아직도 감지 못한 검은 눈동자 앞에서
다소곳 무릎을 꿇고 있는 겨울 햇살이여!
남루하게 쓰러져 빛나는 눈동자여!
충절의 눈빛은 물관으로부터 뿌리에게
뿌리로부터 실뿌리에게 끝없이 유전된다
시린 발목부터 가녀린 목덜미까지 흰 붕대를 감고 서서
심장 깊숙이 박힌 통증의 기억으로
허공을 밟아가는 의병의 노래를 듣고 있다
한 번 죽고, 영원토록 살아서 끝끝내 백의종군하는 눈동자 앞에서
나는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까지 서 있다
출처 : 포엠포엠POEMPOEM
글쓴이 : POEMPOE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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