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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면 옷깃을 여미어 볼 일이다 / 이창수

 

유월이 오면 그대

풀잎을 스치거나

상처 난 나무뿌리를 더듬게 되면

고약같이 검게 엉켜진

피딱지를 만질 수 있으리

아니

아니

심장이 박동하는 붉은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

 

그러면 그대

저렇게 푸른 산하가

희생으로 남겨진 역사라는 것을

검붉은 피를 흘리며 사라져 간 유월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리

 

한반도 어느 그늘진 골짜기에

외로운 원혼 한 둘 없을까만

때때로

유월의 하늘이 먹구름을 몰고 와서

비라도 뿌릴 때면

오래된

함성과 땀과 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리

 

더러는

빗물로 씻겨진 흙더미 속에서

상처 난 역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으리

희생으로 남겨진 조국을 느낄 수 있으리

 

그대 녹음이 우거진 골짜기에서

땀과 피의 흔적 같은

이름 없는 꽃이라도 만나게 되거나

외로운 산새의 울음소리라도 듣게 되면

옷깃이라도 여미어 볼 일이다

 

결코

세치 혓바닥으로 꾸며진 미사여구로만

산화한 유월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리,

 

 

 

 

 

묘소 앞에서 / 최원택

 

어버지,

아직도 남북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 아파트에 있으면서도

호수가 다른 물을

닫고 사는 사람들처럼,

보시기에 짐짓

세워진 휴전선 앞에서,

우린 아직

육중한 그 무엇을

습관처럼 겨누고 서 있진 않습니까

조붓한 땅의 일부를

순국의 묘지로 내어주고도,

그 처참했던 실황을 눈물로 담아 몇 십년

이루 못 막을 강으로 흘려보내도,

아버지,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무덤 가,

자잘한 풀잎들처럼

고요히 웃자랄 희망들,

아, 그 말없는 함성의

파도들이, 산맥처럼

하나로 뒤덮여갈 세상을

회중에 품은 채,

힘없이 꺽이고 스러져간

아버지와 아버지, 또 그 아버지들께

이 세월의 눈물 한 잔 정중히 받아 올립니다

이제 선지처럼 굳은 피, 강물로 씻고

그 원망마저 흘려버리면

써레질한 논 위에 벼가 자라듯

이곳에도 곧 청명한 봄이 움터 올 것입니다

붉은 물결의 두만강, 압록강의 추억은

드넓은 마음으로 품으시어, 부디 드센 물결로

파도치는 통일의 소리를 듣게 하십시오

아버지,

내후년에 다시 뵐 땐

양 손 가득 그 바다를

안고 오겠습니다

살아생전 눈부셨던

미소와 같이

 

 

 

 

전몰장병을 기리며 / 유영택

 

노랗게 흩뿌려진 산수유 꽃그늘 아래서

너나들이를 하던 동무들이

별을 닮은 별꽃처럼 갓맑은 웃음을 웃던 그 시절,

두견이 품은 연분홍, 진달래는 한을 피워내었을까

 

먼지잼으로 녹음이 피어난 즈음,

무슨 일이 터졌기에

터구사 좋던 씨동무들은

서름한 눈빛을 주고 받고,

푸접이 좋은 이웃은 스스러워졌을까

 

유월의 물쿤 날씨에

겨레의 쌈싸우러 떠나던

젊디 젊은 사나이들

우물같이 웅숭깊은

서늘한 그 낯빛

 

그날의 총탄은

고수레하듯 휘날리던 숱한 이파리와 같이

시울 고운 가지 코숭이의 칠석물 한 줄금 같이

그 젊은이들을 향해 쏟아졌을까

 

한낮의 작살비처럼 쏟아지는

그날의 포탄은

꽃 송아리처럼 머금었을 그들의 그리움을

어떠한 이유로 짓밟았을까

 

어둑발이 깔리는 쓰렁한 사위가

막새바람에 훌치듯 서걱댈 때에는,

쓰러진 장병의 낯을 가린 잎사귀는 무배처럼 춤을 추었을까

 

뉘누리 몰듯 돌개바람이 쓸고 간 전쟁은

사나운 손떠퀴를 만난 민족에게

졸가리에 설핏 앉은 가을날 노을빛 해처럼

애오라지 설움만 남기었을 뿐

 

하지만

도도록한 살갗을 잃었어도

배냇짓하는 아기의 표정을 짓곤

철겨운 바람을 맞으며

그 젊디젊은 사나이들은

매오로시 조국을 기루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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