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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지용의 생애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3~?) 은 1903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하여 1918년 휘문고보에 입학한 후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영어 교사를 하였다.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 문과대학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휘문보고 시절부터 습작 활동을 시작하여 이듬해 12월,《서광》 창간호에 그의 유일한 소설인 <삼인>을 발표하였다. 1925년《학조》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시를 발표하였고, 1927년《조선지광》에 그의 대표작이라 불릴 수 있는 <향수>를 발표하였다.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 1939년 《문장》지의 추천위원이 되어 청록파 시인과 김종한,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었다가 평양 감옥으로 이송된 후 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정지용의 작품은 남한에서 판매 금지 서적으로 묶여 있다가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서 정부 당국이 일련의 금서를 해금할 때 함께 해금됨으로써 오늘날 지용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시집으로는《정지용시집》(1935),《백록담》(1941),《지용시선》(1946),《문학독본》(1948),《산문(散文)》(1949)등이 있다.


 

 

2. 정지용 시의 변모과정


  그의 시세계는 크게 세 단계의 변모과정을 거친다. ①1925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감각적인 이미지즘의 시, ②1931년 <그의 반>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그리고 ③<옥류동>, <구성동>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풍이 그것이다.

  초창기 그의 시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도시적인 소재로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새로운 언어감각을 가지고 1930년대의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시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된다. 동시에 그는 이 시기의 유행 사조였던 KAPF에 대립하여 <향수>와 같은 향토적인 순수 서정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1931년 종교시(신앙시)의 첫 번째 작품인 <그의 반>을 발표하면서 시적 사조의 변모를 꾀하는데 그의 종교시에서는 주로 신의 절대성과 인간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그의 종교시는 1934년 <다른 하늘>, <또 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로 자취를 감춘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4년여의 침묵 흐른 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시풍이 바뀌어 동양적인 관조와 고독의 세계를 많이 다루었다. 대표작으로는 <옥류동>, <봉>, <구성동> 등이 있다. 이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정신으로 극복하려는 동양적 정신주의를 많이 강조하였다.

  정지용의 시는 서구적인 이미지즘이나 모더니즘을 넘어서서 우리의 오랜 시적 전통에 근거한 산수시의 세계를 독자적인 현대어로 개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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