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남수의 생애
시인 박남수(朴南秀, 1918~1994) 는 1918년 5월 3일 평양시 진향리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인 상업고등학교(崇實商高)를 거쳐 1941년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6.25이전에는 한국 척산은행 평양지점장으로 근무하였으며 1951년 1.4후퇴 때, 월남하여 창작활동을 하다가 1973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1994년까지 계속적인 창작생활을 하다가 별세함.
1932년부터 신문과 동인지에 시와 희곡을 발표해 오다가 다음해인 1933년에 <기생촌>이 《조선문단》에 당선되었으며, 1939년 김종한의 권유로 《문장(文章)》지에 투고된 《심야(深夜)》 《마을》 《주막》 《초롱불》 《밤길》 등의 시를 정지용(鄭芝溶)으로부터 추천받음으로써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1년 1·4 후퇴 때 월남하여, 《문학예술》지 《사상계》지의 편집위원(1954)으로 있다가 박목월, 조지훈, 장만영, 유치환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 창립회원이 되었다. ,《사상계》지 편집위원(1959) 등을 거쳐 한양대 강사,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첫시집 《초롱불》(1940)을 일본에서 발간한 이후 1957년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2번째 시집 《갈매기 소묘》(1958)를 발간하여 이어령(李御寧)으로부터 “시원스레 울리는 지성의 악기”라는 호평을 받았다. 《신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暗葬)》(1970) 등의 시집을 내고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후 5번째 시집 《사슴의 관(冠)》을 한국에서 발간하였다. 1993년 《그리고 그 이후》를 발간, 공초(空超)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뉴저지주(州)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박남수는 언어표현의 암시성을 중시하는 이미지의 시인이다. 시사적 측면에서 그는 정지용과 함께 김영랑에 버금가는 언어와 형태미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아울러 언어에 형이상학적 깊이도 부여하였다.
그의 시적 경향은 첫시집부터 다섯 번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는데, 암시적인 이미지로 사물의 존재에 대한 관념을 함축시키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일관되게 의도한 것은 결국 ‘존재’의 문제로, 그 양면성의 본질 탐색에 그의 모든 직관과 감각이 받쳐져 있다.
구성의 강렬성 및 사물의 섬세한 표현에 뛰어난 그는 ‘새의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시에서 새는 자아의 생명탐구를 상징하는 존재론적 반영으로, 그의 철학이자 미학이 되고 있다. 감각과 인식의 적절한 조화로 언어의 자각에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인 그는 사물이 지닌 미적 질감을 넘어 그 존재의 이원성을 꿰뚫는 ‘존재의 시인’으로 우리 시사에 기록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