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순의 면앙정가
1. 송순[宋純, 1493~1583] : 조선 중기 문신. 구파의 사림으로 이황 등 신진 사류와 대립했다. 대사헌 등을 거쳐 우참찬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어갔다가 치사했다. 강호가도의 선구자로 시조에 뛰어났다. 송순의 본관은 신평(新平). 자 수초(遂初). 호 면앙정(俛仰亭) · 기촌(企村). 시호 숙정(肅定).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에 급제, 1547년(명종 2)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지냈다. 1550년 이조참판 때 죄인의 자제를 기용했다는 이기(李芑) 일파의 탄핵으로 유배되었다. 구파의 사림(士林)으로 이황(李滉) 등 신진사류(士類)와 대립하였다. 1569년(선조 2) 대사헌 등을 거쳐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가 치사(致仕)했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시조에 뛰어났다. 담양(潭陽)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문집에 《기촌집》 《면앙집》이 있고 작품에 《면앙정가(俛仰亭歌)》가 있다. 현재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담양 가사문학관 면앙 송순 전시실이 있다.
2. 면앙정가[俛仰亭歌]는 조선 중종∼선조 때의 시인 기촌(企村) 송순(宋純)이 지은 가사(歌辭)로 1524년(중종 19)에 발표된 것으로 《면앙정장가(俛仰亭長歌)》라고도 불린다. 1524년(중종19)의 작품으로, 작자가 고향인 담양(潭陽)에 면앙정을 짓고 은거할 때 주변 산수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읊은 것이다. 모두 146구로서 《기촌집(企村集)》에 한역(漢譯)되어 있으나, 가곡집에는 한글로 전한다. 이 가사는 표현이나 정조(情調) · 어구(語句) 등으로 보아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성산별곡(星山別曲)》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되며, 세련된 언어와 다양한 수사법 등이 뛰어난, 가사의 효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3. 무등산의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무등산을) 멀리 떼어 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없이 넓은 들에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일곱 굽이가 한데 움츠려 우뚝우뚝 벌여 놓은 듯하다. 그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어 놓은 듯하다.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혀 놓았으니, 마치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다. 옥천산, 용천산에서 내리는 물이 정자 앞 넓은 들에 끊임없이 (잇달아) 퍼져 있으니, 넓거든 길지나, 푸르거든 희지나 말거나(넓으면서도 길며 푸르면서도 희다는 뜻), 쌍룡이 몸을 뒤트는 듯, 긴 비단을 가득하게 펼쳐 놓은 듯, 어디를 가려고 무슨 일이 바빠서 달려가는 듯, 따라가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 듯하다. 물 따라 벌여 있는 물가의 모래밭은 눈같이 하얗게 펴졌는데, 어지러운 기러기는 무엇을 통정(通情)하려고 앉았다가 내렸다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울면서 서로 따라 다니는고?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 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지는 듯 잇는 듯, 숨기도 하고 보이기도 하며,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며, 어지러운 가운데 유명한 체하여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뚝 선 것이 추월산 머리 삼고, 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어져 있는데, 멀리 가까이 푸른 언덕에 머문 것(펼쳐진 모양)도 많기도 많구나.
흰 구름과 뿌연 안개와 놀, 푸른 것은 산 아지랭이다. 수많은 바위와 골짜기를 제 집을 삼아 두고. 나며 들며 아양도 떠는구나. 오르기도 하며 내리기도 하며 넓고 먼 하늘에 떠나기도 하고 넓은 들판으로 건너가기도 하여, 푸르락 붉으락, 옅으락 짙으락 석양에 지는 해와 섞이어 보슬비마저 뿌리는구나. 뚜껑 없는 가마를 재촉해 타고 소나무 아래 굽은 길로 오며 가며 하는 때에, 푸른 들에서 지저귀는 꾀꼬리는 흥에 겨워 아양을 떠는구나. 나무 사이가 가득하여(우거져) 녹음이 엉긴 때에 긴 난간에서 긴 졸음을 내어 펴니, 물 위의 서늘한 바람이야 그칠 줄 모르는구나. 된서리 걷힌 후에 산 빛이 수놓은 비단 물결 같구나. 누렇게 익은 곡식은 또 어찌 넓은 들에 퍼져 있는고? 고기잡이를 하며 부는 피리도 흥을 이기지 못하여 달을 따라 부는 것인가? 초목이 다 떨어진 후에 강과 산이 묻혀 있거늘 조물주가 야단스러워 얼음과 눈으로 자연을 꾸며 내니, 경궁요대와 옥해은산같은 눈에 덮힌 아름다운 대자연이 눈 아래 펼쳐 있구나. 자연도 풍성하구나.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치로다.
인간 세상을 떠나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쏘이려 하고, 달도 맞이하려고 하니,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으며,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 것인가? 아침나절 (자연을 완상하느라고) 시간이 부족한데 저녁이라고 싫을 소냐? (자연이 아름답지 아니하랴.) 오늘도 (완성할 시간이) 부족한데 내일이라고 넉넉하랴? 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 번거로운 마음이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은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쉴 사이가 없는데(이 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하러 올) 길이나마 전할 틈이 있으랴. 다만 하나의 푸른 명아주 지팡이가 다 못 쓰게 되어 가는구나.
술이 익었거니 벗이 없을 것인가. 노래를 부르게 하며, 악기를 타게 하며, 악기를 끌어당기게 하며, 흔들며 온갖 아름다운 소리로 취흥을 재촉하니, 근심이라 있으며 시름이라 붙었으랴. 누웠다가 앉았다가 구부렸다 젖혔다가, (시를) 읊었다가 휘파람을 불었다가 하며 마음 놓고 노니, 천지도 넓고 넓으며 세월도 한가하다.
복희씨의 태평성대를 모르고 지내더니 이때야말로 그것이로구나. 신선이 어떻던가 이 몸이야말로 그것이로구나. 강산풍월(江山風月) 거느리고 내 평생을 다 누리면 악양루 위에 이백이 살아온다 한들 넓고 끝없는 정다운 회포야말로 이보다 더할 것인가.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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